666====================
암천향(暗天鄕)
혼돈의 재능!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 같았지만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예전에 망량과 했던 이야기였다.
[ 전욱에게서 삼황오제의 비밀을 듣고,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을 다시 잇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목표요. 그게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천계에 직접 도전할 수 있게 되며 인간에게 금지되어 있던 여러가지 권능을 손에 얻을 수 있을 것이오.]
[ 인간에게 금지된 권능이라니?]
[ 잘 몰랐겠구려. 전욱이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으면서 인간의 술법은 많이 퇴보하고 말았소. 태초의 인간이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던 여러가지 권능이 천계에 봉인되어 있소. 그걸 해금(解禁)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욱 강해질 수 있소.]
과거에 16번째 삶에서 광성자의 삼황내문을 얻었던 망량이 했던 이야기였다. 그가 말하기를 인간에게 금지된 권능이 존재했다고 하며 그걸 얻어서 해금하면 우리 모두가 한층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 망량의 조언에 따라서 하늘과 땅을 이어보는 방법을 찾아서 봉선의식을 찾아다니는 등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망량도 그 권능이 뭔지 자세하게는 모르는 듯 막연한 정보만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때 망량이 언급했던 '권능'이라는 게 지금 신공표가 말한 '혼돈의 재능'과 같은 게 아닐까?
나는 혹시나 해서 신공표에게 물었다.
"신공표! 내가 과거 삼황내문을 얻은 도사에게 듣기로 전욱이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었을 때 봉인되었다는 권능이 혹시 그것이냐?"
그러자 신공표가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봤다.
[ 정말 많은 정보를 갖고있군. 넌 정말 인간이냐? 천계 대라신선보다 훨씬 많이 알고있는 것 같은데...]
"... 그저 모험을 많이 했을 뿐이야."
[ 아마 같은 것일 것이다.]
"하지만 칠대로 중화를 통치한 전욱의 시대는 네가 살던 십대 요순의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데, 그러면 이야기가 안 맞잖아."
[ 멍청한 놈이 이상한 데서 예리한 질문을 하는군...]
신공표가 대꾸했다.
[ 전욱이 하늘과 땅을 가르면서 봉인했던 인간종족의 권능은 불멸(不滅)을 포함한 몇몇가지라고 들었다. 다만 그때까지는 너무 강력한 존재가 재림하는 걸 방지하는 차원이었기에 인간에게는 권능이 많이 남아 있었지. 그러던 게 봉신전쟁을 치른 후 2차로 완전히 봉인된 것이다.]
"전욱이 1차로 거둬갔다는 말인가."
[ 불멸의 힘이란 게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후.]
신공표는 뭔가 아쉬운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서 질문했다.
"불멸? 그게 뭐지?"
[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걸 타고난 인간이 한때 신조차 위협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아마 전욱도 경계심을 느껴서 거둬갔다는 걸 갑골문을 통해 배웠었다.]
"흐음. 그 타고났다는 게 누구야?"
[ 나도 모른다. 문헌에는 아예 기록되지 않았고 구전되어올 뿐이었지.]
신공표도 잘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전욱이 하늘과 땅을 가르던 때라고 하면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이고, 고대신선인 신공표 시점에서도 수백년 전의 일이니 어찌 알겠는가? 인간이 기껏해야 원시적인 부족생활을 갓 벗어났던 시점일 것이고, 너무나 초고대의 일이라 문서에 제대로 기록되어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궁금한 걸 질문했다.
"그래서 봉신계획과 선계전쟁은 왜 일어난 거야? 너는 왜 반대한 거고?"
[ 대멸망(大滅亡)이 목표였지. 그리고 배후에는 삼황오제가 있었고, 나는 유일하게 천교에 대적할 수 있었던 절교에 백액호를 타고 가서 교주가...]
뭔가 설명해 주려고 하던 신공표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졌다.
[ 넌 나와 이 곳에서 백년 천년 이야기나 할 셈이냐?]
"응?"
[ 멍청한 놈, 지평선 너머를 봐라.]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는 신공표의 말에 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평야 저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금빛으로 너울대는 갈대같은 게 이어지는 평화로운 들판일 뿐이었기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신공표가 정말로 짜증이 난 듯 말했다.
[ 강하다고 해봤자 인간일 뿐이군! 백사십 리 밖에서 사악한 존재가 살기를 드러낸 걸 못 알아챘단 말이냐?]
"......"
[ 아마 강함의 수준으로 볼 때 [옛 지배자]일 것이다. 자칫했다가는 놈과 싸울지도 모르니 서둘러 은신하거나 이 장소를 벗어나라.]
아니 제기랄 아무리 내가 고수라도 백사십리 밖의 살기를 어떻게 알아?!
나는 내심 욕지기가 흘러나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신공표의 기준은 최소 대라신선에 맞춰져 있었으며 그 자신도 과거 대라신선의 수장이었던 통천교주였다. 겉으로는 인간처럼 생겼지만 실상으로는 신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한 초월자이므로 내 능력이 그녀의 기준에 많이 못 미칠 수밖에 없다.
"알았어."
파앗
나는 전국옥새를 불러서 청동의 별 근처에 적대적인 존재가 있는지 확인하고 근처의 지형을 탐색했다. 그리고 안전해 보이는 협곡으로 가서 큰 만장단애를 세 번 넘은 후 무지개빛 강물 근처에 도착하자 전국옥새가 안전하다고 알려 주었다.
"... 이게 안전해? 정말?"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강물빛이 무지개빛이다. 보통 물의 빛이 아무리 독특해도 붉은색이나 검은색 정도일텐데 정말로 일곱 빛깔이 너울지며 수심을 전혀 볼 수 없게끔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전국옥새의 정령이 대답했다.
[ 인간이 저 물을 마시면 즉사하지만 들어가서 헤엄치거나 접촉하는데 쓰는건 문제 없습니다. 암천향에서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장소라고 판단합니다. 기생충이 전염되거나 저주받거나 심연의 촉수가 공격하지 않습니다.]
"......"
내가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신공표가 말했다.
[ 이제 정보공유는 충분히 된 것 같은데 토요를 찾으러 가는게 어떠냐?]
"너무 속보이는 거 아냐? 너도 토요를 얻고싶은 것 같은데 나한테 다 드러내고 괜찮겠어?"
내가 이죽거리자 신공표가 훗하고 웃었다.
[ 네놈이 죽을 각오로 암천향에 왔다는 건 잘 알았다. 네가 죽어도 내가 토요를 현실에 들고가 줄 테니 걱정말고 죽으면 된다.]
"웃기시네. 살 수 있으면 살 거야."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전국옥새에게 명령했다.
"토요가 있는 측천무후의 황궁을 찾아줘!!"
[ 검색 중...]
전국옥새는 한참동안 검색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뜻밖의 보고를 했다.
[ 경고! 신격(神格)이 전국옥새에 강제로 접속하는 중입니다. 관리자 권한하에 즉시종료가 가능합니다.]
"......?!"
파지직 파지직
전국옥새의 정령은 마구 뇌전을 방출하다가 잠시 후 조용해졌다.
[ 자동보호기능이 발동중입니다. 1차 침입을 막았습니다만 즉시 접속을 차단하는 걸 권장합니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순발력을 발휘해서 재빨리 전국옥새를 끄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전국옥새를 재빨리 목갑 내부에 집어넣었다. 일련의 과정을 옆에서 영체로 지켜보고 있던 신공표가 물었다.
[ 왜 난리를 치고 있지?]
"전국옥새에 신격이 접속했다면서 빨리 끄라고 하던데..."
[ 흐음.]
신공표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 그 목갑은 중요한 물건들을 넣어두는 아공간 마도구가 아니냐?]
"그런데 왜?"
[ 그럼 나라면 전국옥새를 거기 넣어두지 않을 것이다.]
"왜?"
[ 신격이 강제로 꺼진 전국옥새에 재접속해서 목갑 안에서 강림한다면 과연 신격이 그깟 마도구 하나 뚫고나오지 못할까.]
"......"
논리정연했다. 동시에 나는 내심 소름이 끼치는 걸 느끼면서 등줄기에 땀이 축축하게 젖었다.
' 마, 맞아! 그럼 어떻게 해야...'
일단 전국옥새의 발동을 멈추긴 했지만 신격이 다시 전국옥새에 깃들려 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목갑에 넣어두는 걸로 막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전국옥새처럼 큰 힘이 되며 앞으로의 탐색에 중요한 보패를 버릴 수가 있는가?
전국옥새를 버린다면 당장 토요가 있는 측천무후의 궁으로 갈 수 없게 된다. 이 험난한 암천향을 맨몸으로 여행하면서 굴러야 하는데 아무 의미도 없이 허망하게 죽을 게 뻔하다! 게다가 전국옥새가 강화해주는 영력의 가치를 생각하면 절대 버릴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문 후 결단을 내렸다.
"제기라아알...!!"
아무리 도구가 소중해도 지금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나는 재빨리 전국옥새를 꺼내서 다시 접속했다. 그리고 일촉즉발의 상황에 재빨리 외쳤다.
"전국옥새! 나한테 모든 영력을 넘긴 후 자폭해라!"
[ ... 명령 확인했습니다.]
파지지직
다시 현실세계로 되돌아오면서 내 몸에는 푸른빛 영기가 감돌면서 일순간 엄청난 힘이 솟구쳤다. 전국옥새에게서 영력을 넘겨받았다 해도 비장하고 있던 약간의 기운일 뿐이었기에
머지 않아 사라질 테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뇌전이 감도는 전국옥새를 하늘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하늘 너머로 날아가서 잘 안보이게 되었을 때 서둘러 마도생물을 불러서 외쳤다.
"동쪽 끝으로 가!!"
동쪽 끝 근처에 환상의 도시가 있다고 들었으니 어떻게든 거기로 가면 되겠지!
콰과광
나는 이윽고 빛과 함께 날아감과 동시에 전국옥새가 폭발하는 저편에서 무언가 [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잔영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에 나는 심장이 격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파앗
동쪽 끝에 도착한 것일까?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먹빛 바닷물이 찰랑이는 바닷가에 와 있는 걸 알아차렸다. 이 곳도 정상적인 곳은 아닌지 주변에 혼돈의 기운이 가득했고 여기저기에 마수가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의문의 신격과 대면하는 극한상황보다는 나았기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일단 목숨은 건졌지만 전국옥새를 잃은 것은 뼈아프다. 내가 이 곳에서 생존할 확률이 2할은 줄어든 기분이었다.
' 대체 신격이 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짐작가는 게 있다면, 내가 이 곳에서 토요가 있는 측천무후의 황궁을 찾으려 한 게 계기인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때까지 잠잠하게 있다가 하필 그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강림하려고 할 리가 없는 것이다.
' 전국옥새에 원래 저장되어 있던 명령? 아니면 측천무후의 뒤를 봐주는 그 [옛 지배자]...?'
어느 쪽이든간에 골치아프다. 토요가 있는 장소까지 편하게 가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생이 아니더라도 다음 생에도 전국옥새로 즉시 통하는 최적로를 만들 수 없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민이나 하고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살아 숨쉬는 이 순간에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면서 암천향의 정보를 모아야...
그 때였다.
휘오오오오오
허공에서 구름이 뭉치더니 뭔가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나는 저게 신적 존재의 강림이라는 걸 즉시 직감했는데, 왜냐하면 저 구름에서 심상치 않은 신력과 마력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 존재는 나를 노리고 온 것이다.
"......"
도망칠 수 없을 것 같다. 마도생물을 방금 전에 불러버렸기에 약식소환으로는 더는 무리였고 충분한 제물을 바쳐서 달래야 재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냥 달려서 도망쳐봤자 신적인 존재 앞에서는 재롱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광속으로 날아다니는 마도생물을 쫓아서 온 능력이라면 내 신법따위 쉽게 따라잡을 게 분명하다.
' 싸울 수밖에 없나...?'
싸우면 승산이 얼마나 될까?
나는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도 방금 전에 전국옥새의 비장된 영력을 넘겨받아서 모든 능력이 크게 상승되어 있긴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게다가 내게는 여동빈도 강림할 수 없는 상태였고 오로지 화룡진인의 힘만 빌려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상대가 만일 마왕급이거나 해신에 준하는 존재라면 도저히 그것만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화룡신검을 들면서 여의봉에 있던 신공표에게 말했다.
"힘을 빌려줘."
[ ......]
"살고 싶어."
이대로 개죽음당할 수는 없다.
신공표의 힘을 빌려서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한다.
신공표가 뭉쳐지던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 네 녀석 혼자서는 절대 못 이기겠군. 굉장히 강한 존재야. 그런데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거지?]
"당연히 살아야지 그걸 질문이라고..."
[ 이곳 암천향에서 오래 버텨봐야 극악한 고통을 느끼고 죽을 확률만 늘어날텐데 적어도 눈 앞의 저 놈은 깔끔하게 너를 결단내 줄 의사가 보이는군. 어차피 죽기로 마음먹은 놈이면서 왜 이리 집착이 심한지 모르겠어.]
나는 신공표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죽을 거 왜 사냐는 거군."
[ 그런 거지.]
"죽을 마당이니까 이야기하는 거지만 나는 전생자(轉生者)야."
[ ......?]
신공표가 무슨 황당한 말을 하냐는 안색으로 변했다.
"죽으면 다시 시작하니까 나한테는..."
화르륵
화룡진인을 깨우자 검의 내면에 있던 화룡진인이 눈을 뜨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외쳤다.
"죽는 방법이 중요할 때가 더 많다고!!"
조금이라도 오래 살지 않으면 동료들한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발버둥칠 수밖에!
우르르릉...
그와 동시에 눈 앞에서 뭉치던 구름이 완전히 형태를 갖추고는 인간형으로 변했다. 그 존재는 뜻밖에도 확실히 '인간'이며 '남자'로 인식할만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다소 졸린 눈매인데다가 등에 잡다한 병장기를 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존재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졸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천인의 신경을 그렇게나 긁었다는 유명인이 바로 너로군."
"당신은 누구요?"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암천향까지 와서 인간 암살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니, 묻지 않아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난 저 얼굴을 본 적이 있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모르는 척 할 뿐이다.
내가 생각한 대로의 존재라면 - 틀림없이 여기서 나는 죽는다.
전생 후 동료들이 모두 성장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상대인데 이런 꼴로 붙어서는 말도 되지 않는다.
끼기긱
"백웅이여. 준비해라."
사내는 졸린 눈으로 등허리춤에 있던 녹슨 검을 천천히 뽑으며 말했다.
"나는 팔부신중(八部神衆) 아수라(阿修羅). 창힐 님의 보물로 금기의 영역을 탐한 죄, 명을 받아 그 혼을 주인께 회수해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