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65화 (66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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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부우웅!!!

마도생물에게 매달리자 무언가가 떨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완전히 빛의 선이 날아다니는 폭풍처럼 변했고, 이윽고는 그것조차 사라진 빛의 공간으로 변했다. 나는 이 현상이 빛의 속도를 뛰어넘었을 때 생기는 일이라는 걸 제갈사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도 이 녀석을 이용해 본 적이 있었기에 익숙했다.

잠시 후, 마도생물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나는 왠지 별빛 수정이 허공에 잔뜩 부유해 있는 대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아까처럼 위벽 속이 아닌지 경계했지만 이 근처에는 마물의 기척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전국옥새의 정령을 불러서 이 근처의 지형을 탐색해 줄 것을 명령했다.

[ 탐색 중... 현 위치는 암천향의 북부인 청동의 별 지역입니다.]

"청동의 별?"

나는 의아해서 되물었다.

"설마 너는 암천향의 지형을 알고 있는 거냐?"

[ 전국옥새의 제작자이신 소호금천님께서 직접 입력하신 암천향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천년 전의 정보이므로 현재와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호금천!

삼황오제의 일인이자 전국옥새라는 보패를 직접 만들어낸 존재였다. 나는 그 이름을 새삼 듣게 되자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별천지같은 이계를 돌아다니다보니 현실감각이 사라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정보와 지도같은게 있으면 전부 가르쳐 줘."

[ 지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위잉!

잠시 후 고대 양피지로 된 듯한 커다란 지도가 화면이 되어 허공에 떠올랐다. 거대한 대륙이 통합되어 있었고 곳곳에 호수나 고원 등이 보였다. 의외로 동서남북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으며 꽤나 문명이라고 할만한 것도 있어 보였다. 특히 대도시가 있는 말에 나는 약간 놀라서 정령에게 물었다.

"도시? 그 곳에는 이족들이 살고 있나?"

[ 경이(敬異)의 제왕이 통치하는 꿈의 도시가 존재합니다. 이 곳에 거주하는 자들은 꿈의 주민이며 인간이라고도 이족이라고도 부를 수 없습니다.]

"신선같은 존재들인가?"

[ 자세한 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적대적이지는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줘."

나는 이윽고 전국옥새가 보여준 자료를 보자 흠칫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자들은 확실히 이족도 섞여 있었지만 대다수는 '인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대라신선조차 미쳐죽는다는 암천향에서 인간처럼 생긴 종족이 도시를 이루어 융성한다는 건 특이한 일이 틀림없었다.

' 여긴 정말 알 수 없는 장소군...'

나는 내심 중얼거리다가 전국옥새에게 말했다.

"알았어. 잠깐 들어가."

사실 더 물어볼 게 있었지만 일단 담판을 지어야 할 게 남아있었다. 나는 전국옥새의 정령을 들어가게 한 후 여의봉에서 신공표를 불러냈다. 신공표는 영체를 띄운 채 오만하게 말했다.

[ 왜 부른 거지?]

"모른척 하지 마. 넌 지금 내가 암천향에서 토요를 찾는 걸 기다리고 있잖아."

[ 왜 그렇게 생각하지?]

"토요를 언급했을 때 큰 반응을 보였고 지금도 엄청난 힘을 되찾아놓고는 잠잠하게 있잖아. 내가 바본줄 알아?!"

내가 으르렁거리자 신공표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군.]

"내가 토요를 찾으면 뭔가 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 후후. 그렇다 해도 너한테 말해줄 리는 없잖나.]

"... 확실히 하자고."

나는 한숨을 쉬곤 신공표에게 말했다.

"여긴 나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장소야. 봉인이 풀렸다 해도 아직까지 여의봉에 귀속되어있는 너 또한 마찬가지지. 둘이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추측이긴 하지만 신공표는 봉인이 풀렸다고 해도 아직까지 여의봉에서 쉽게 풀려날 수 없는 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선검으로 위벽을 부순 후 혼자서 빠져나갔어도 되었을텐데 내 제안에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육신이 없는 상태라는 것 또한 그녀의 힘이 아직 완전치 않다는 뜻이었다.

[ 하고싶은 말이 뭐냐?]

"서로 정보를 나누고 동맹관계를 갖추자. 나도 정보를 넘겨줄 테니까 너도 아는 걸 말해 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기서 돌아다니는 [옛 지배자]를 피하면서 토요가 있는 궁전까지 도착하는 게 불가능해."

[ ......]

신공표는 팔짱을 끼고 뭔가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불현듯 말했다.

[ 인간인 네가 칠요를 모으는 이유부터 듣고 싶다.]

"내 제안에 응한 거냐?"

[ 들어보고 결정하지.]

아무래도 의사가 반반쯤 갈리는 지점에 온 것 같다. 나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신공표의 설득에 나섰다.

"내가 칠요를 모으려는 이유는 칠요를 모아야 사악한 신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어. 칠요를 모아서 해방시키면 신과 대등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전설을 들었었거든."

[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니란 거냐.]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칠요를 일정갯수 이상 모으면 삼황오제의 방해와 견제가 들어와. 대라신선급의 힘을 갖고 있어도 그 때는 어쩔 수가 없어. 그래서 꽤 절망적이지만 내 동료들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어."

[ 어떤 의견?]

"황제(黃帝) 공손헌원을 판으로 끌어들이는 미끼로 쓰자고."

흠칫!

내 말에 신공표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로 내 말이 의외인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뭐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이젠 나도 칠요만 모아서 신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 안 해. 다만 삼황오제가 종말을 대하는 태도와 묘한 결속력은 인간의 힘으로는 깰 수 없는 걸 확인했어. 천계 또한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 손아귀에 들어간 것 같아."

[ 그렇긴 하지.]

나는 차분하게 제갈사와 망량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면 다른 삼황오제의 권위를 깰 수 있으면서도 인간에게 호의적일 가능성이 있는 황제 공손헌원의 조력을 얻는 수밖에 없어. 황제는 보통의 [옛 지배자]와 차원이 다른 존재가 확실하니까."

[ ......]

"잘하면 황제가 좀 더 종말을 유예해주거나 인간을 살려줄지도 몰라.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칠요를 모아서 황제를 만나볼 필요가 있어."

[ 너무 희망적이군.]

"칠요를 미해방 상태로 어떻게든 육요까지 얻으면 일요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고 들은 바가 있어. 지금은 그걸 목표로 움직이고 있고, 동시에 만신전으로 가는 방법도 찾고 있는 중이지. 그래서 그 일환으로 토요를 찾으러 암천향에 온 거야."

이 정도면 핵심정보 중의 핵심정보는 거의 다 말한 셈이다. 사실 이 계책은 망량과 제갈사가 내 기억을 얻고 나서 몇날 며칠동안 토론을 하던 중 만들어낸 결론이었고, 나는 앞으로도 칠요를 섣불리 해방하지 않은 채 육요를 다 모을 수 있는 최적(最適)이자 최단의 전생로를 찾아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 그럴듯하군...]

신공표가 나를 조금 두려운 눈으로 보더니 말했다.

[ 후, 믿기지가 않는군. 봉신전쟁 이후 인간은 권능도 봉인당해 버러지가 되었을텐데 그런 놈들이 신의 비밀을 그 정도까지 알아냈단 말인가?]

"응? 권능?"

[ ... 좋아, 네가 통천교주인 나와 교섭할 자격이 있다는 건 인정해 주마 백웅.]

신공표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내 소개를 다시 하지. 나는 사보검(四寶劍)과 절교(絶敎)의 주인인 통천교주(通天敎主) 신공표(申公豹)다. 그리고 신선이 되기 전 인간이었을 적의 이름은 허유(許由)였다.]

신공표!

그의 명성은 사실 도가에 있어서 전설이나 다름없는 혁혁한 것이었다. 고대 은주시대의 정권교체기에 두 개의 거대한 선계가 충돌했으니, 그 충돌은 요괴신선으로 이루어진 절교와 인간신선으로 이루어진 천교의 대립이었다. 선계의 전쟁 끝에 결국 천교가 승리하여 선계의 대세가 인간신선이 되었으며 요괴신선들은 금오도에 봉인되어 추방되었다는 게 바로 그 유명한 봉신연의(封神演義)의 전설이었다.

또한 신공표는 그 봉신연의의 계획을 주관한 전설의 대재상, 태공망 강상의 사제이자 원시천존의 제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공표는 유독 태상노군에게서 큰 가호와 가르침을 받아서 다른 신선들에게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들은 것이다. 신공표는 봉신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하다가 결국 봉인당했다고 한다.

나는 의아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통천교주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니까? 전설에서는..."

[ 말했지. 봉신연의라는 이야기는 왜곡되었다고.]

불유쾌한 어조로 대꾸한 신공표가 말했다.

[ 그 전에 이 장소는 안전한가?]

"방금 전에 전국옥새의 정령이 말하길 청동의 별 지역은 얼룩말이 많이 사는 곳이고 사나운 이족이 없는 안전한 장소라고 했어."

[ 그렇군. 그럼 옛날 이야기를 좀 해 볼까...]

신공표는 휘익 하고 근처에 부유하고 있는 자수정 바위에 올라갔다. 그녀는 황금빛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푸른 머리칼을 휘날렸다.

[ 고대에 내가 인간 허유였을 때, 나는 요(堯) 임금에게 왕위를 계승할 것을 제안받았지만 물리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등선하여 원시천존의 제자가 되었고 동시에 태상노군의 술법을 전수받아 신공표라는 이름을 얻었다.]

"......?!"

나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설마 요 임금에게 왕위를 제안받고 귀를 씻었다는 전설의 선비 허유가 진짜 너였..."

[ 다른 건 다 왜곡해도 그런건 왜곡되지 않았나 보군. 흥.]

"그럼 넌 설마 삼황오제를 직접..."

신공표가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 봤지.]

"......!!"

생전에 삼황오제에게 직접 왕위를 제안받고 목격한 당사자!

나는 이런 경우를 처음 보았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보았던 삼황오제는 다들 엄청난 신격이었는데 과연 어떤 일이었을까? 내 얼굴에 기대감이 깃드는 걸 확인한 신공표가 말했다.

[ 그 일은 네 생각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미담(美談)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요 임금이 당시 학자였던 내게 왕위를 제안한 이유는 겸손의 미덕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뭐?"

[ 요 임금은 요순(堯舜)의 화신(化神)이었지. 그러나 인간계를 통치하다보니 지루해져서 갈아탈만한 육체가 새로 필요했던 것이다.]

신공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나였다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양 쳐다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화존재는 물론 삼황오제의 진실에 대해 어느 정도 접근한 상태였으므로 신공표의 말에서 감을 잡고 얼굴이 딱딱해졌다.

"... 인간 허유는 삼황오제 요순의 새로운 화신이자 신체로 선택받았던 거군."

신공표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 이유는 내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권능과 초능력이 강했기 때문이었지. 당연히 나는 거절했지만 삼황오제의 집요한 요구는 쉽게 거부할 수가 없었고, 죽어서 명계에서 고통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천계에 입문해서 최고위격인 원시천존과 태상노군, 삼청의 보호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설마 인간세계의 순 임금도."

[ 네가 생각하는 대로다. 내가 천계의 고위인사가 되어서 쉽게 건드리지 못하게 된 삼황오제가 순이라고 하는 새로운 꼭두각시를 만든 것에 불과하지. 그게 역사서에는 선양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화신교체에 불과했어.]

신공표가 비직 비웃음을 흘렸다.

[ 요순은 둘 다 삼황오제의 화신이며 동일인물이야. 진짜 요순의 본체는 이름조차 발음할

수 없고 알아내는 순간 보통 인간은 미쳐버리고 마는 마신(魔神)이다. 모든 인간은 이름을 바꾼 신의 인형에게 영겁토록 통치받고 있을 뿐.]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시대는 태평성대 아니었나?"

[ 태평성대였지. 그러나 동시에 인신공양(人身供養)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다양하게, 거부감없이 이뤄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루에 천 명이 순장되거나 학살당하는 일도 빈번했지.]

"......!!"

[ 태평성대라는 건 신의 가호를 가장 많이 받아서 인간이 번영했지만, 극악한 인신공양에 대한 거부감도 가장 적었다는 뜻에 불과하다. 태평성대를 누린 가축이었을 뿐.]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아무런 저항없이 도살당하는 가축의 시대!

설마 모든 중원인이 막연하게 최고의 낙원이었다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유학자들도 종종 인용하는 요순시대가 인신공양의 극치에 달한 시대였다니?! 하지만 지금까지 고대의 비밀을 좇다가 신겁의 악의를 무수히 마주쳤던 나로서는 공감하는 게 가능했다.

내가 침묵하자 신공표가 입을 열었다.

[ 천계의 삼청이 나를 제자이자 후계자로 받아들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삼황오제에 대한 견제의 의도였지. 아무리 삼청이라 해도 삼황오제의 권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인간을 배려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또 하나는?"

[ 내 뛰어난 재능... 내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권능'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의 제자가 된다면 역대 최강의 대라신선이 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지. 삼청은 미래에 성장한 나와 힘을 합쳐서 삼황오제를 상대할 생각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녀석이 자기자랑이 가득한 건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아까부터 권능 권능하는데 그게 대체 뭐야? 설마 항우처럼 성좌의 기운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 설마. 그 놈이 쓰는 능력은 본질적으로 [옛 지배자]의 힘이다. 그러나 내 권능은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

스윽

신공표가 사보검을 들더니 갑자기 분리시켰다. 네 개의 검이 허공에 둥둥 떠 있자 그녀가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 보다시피 사보검은 네 개의 보패다. 하지만 보통의 대라신선은 네 개나 되는 보패를 동시에 전개할 수 없어. 잠깐잠깐 힘을 뽑아쓰는 게 아니라 나처럼 한꺼번에 운용할 수 있는 자는 그 고명한 구천현녀 정도 뿐이지. 그렇기에 역사상 사보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통천교주는 나 뿐이었다.]

"뭐야. 힘자랑이냐?"

[ 내가 타고난 능력이 바로 이거다. 나는 무한에 가까운 정신유지력과, 모든 술법과 보패를 쓸 때 아무런 힘의 소모가 없는 능력을 타고났지. 또한 모든 술법을 보자마자 다 이해하는 능력도.]

"......?!"

뭐라고?!

내가 황당해서 입을 벌리자 신공표가 말을 이었다.

[ 지금은 천계에 봉인되었지만 - 인간이 태초부터 갖고 있었던 혼돈의 재능. 간헐적으로 대라신선을 순수하게 뛰어넘는 인간이 태어나곤 했던 원동력. 은주시대에 이 혼돈의 재능을 가장 강하게 타고난 게 바로 나, 신공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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