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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62화 (66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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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내 외침에 동료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잠시 후 당산이 망설임없이 손을 들며 말했다.

"난 각오가 됐어!"

"뭐? 넌 아직..."

"안 갈 각오가 됐다고."

"......"

내가 황당한 눈으로 당산을 쳐다보자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 수련할게 많이 남았어. 10년쯤 용맹정진하면 절대지경도 찍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앞날이 창창한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암천향같은 위험한 별세계에 가서 당신이랑 같이 목숨을 던질 이유는 없다고. 날 구해주고 무공도 전수해준 건 고맙지만 그거랑은 별개의 문제지."

"음..."

"이건 나 뿐만이 아니야. 애시당초 목숨을 던지러 가면서 다른 사람의 목숨도 걸라는게 뻔뻔하지 않아?"

당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나도 줄곧 생각해오던 것이었기에 침착하게 말했다.

"맞아. 하지만 나 혼자서 가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있어.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조력자를 원하는 거야."

암천향이 정말로 대라신선조차 미쳐죽는 대지라면 내가 한발짝 들이밀자마자 산산조각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아직 내가 가진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보조는 필요했고, 아군의 협력을 얻으려는 것이다.

당산이 말했다.

"망량이나 진소청이야 당신이 가자고 하면 따라갈 의사가 있을거야. 하지만 그들도 정말로 따라가고싶은건 아니란 것 정도는 알고 있잖아?"

"... 그건..."

"난 여기서 수련하면서 여기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졌는지 알게 됐어. 이런 기재들이 갈려나가는 건 보기 싫어."

"......"

"제갈사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당신을 믿는 동료의 호의에 기대지 마."

나는 당산의 일침에 정곡을 찔린 느낌이 들었다. 당산의 말대로 지금 내 행동은 제갈사의 제안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 백웅. 너 혼자 암천향에 가면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다. 동료들을 최소한 두 명은 데리고 가라.]

[ 하지만 거긴 사지(死地)야. 같이 죽자고 할 순...]

[ 우리는 어차피 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장기말일 뿐이야. 네가 왕이라면 우리를 소모품으로 활용하는 게 필요하지.]

제갈사는 '동료'라는 이름으로 모인 인재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소모'해서 전생과정을 최대한 줄이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제갈사의 말은 논리상 옳았고,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이번에 동료들에게 제안한 것이다. 정 안되면 내가 자살하는 것으로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후우...'

다만 역시 내게 있어서는 전생의 일부일 뿐이지만 동료들에게는 하나뿐인 목숨을 거는 행위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 상황에서 당산의 일침을 들으니 더는 제안할 수 없었다.

그 때 진소청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렇다 해도 백웅, 나는 당신을 따라가겠소."

나는 착잡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오. 당산의 말이 맞군. 너무 내가 내 생각만 했소."

"그렇다 해도 나는 당신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소."

"이광의 일은 잊으시오. 전생을 하다보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으니."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을, 딱 한 놈만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다들 다음 생에 봅시다."

"잠깐..."

나는 그 순간 비등에 의지를 전달했다.

[ 비등이여.]

마치 살아있는 하나의 마도생물처럼, 비등의 내부에 존재하던 사악한 혼(魂)이 내 의지에 반응하는게 느껴졌다. 비등의 눈이 번쩍 떠 지는게 느껴졌고 놈이 제안했다.

[ 가겠는가?]

[ 나는 너의 부름을 받아들이겠다!]

스무 번 넘는 전생 중에서 최초로 비등의 사악한 부름에 응한 그 순간이었다.

휘오오오

꿈과 악몽이 뒤섞인 것 같은 곳이었다.

거대한 대륙이 있고, 대륙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지형이 보였다. 그리고 달이 매우 가깝게 느껴졌다. 여기저기에는 내가 보았었던 이계(異界)의 이족(異族)들이 살아가는 게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놈들도 있었는데 거대벌레, 산양, 개머리 두상을 한 인간 등등이었다.

쿠구구구

예전에는 그 광경을 구경만 할 뿐이었으나, 점점 전경이 좁아지면서 모든 사물이 크게 변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실상은 내 몸과 영혼이 그 장소에 접근하면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 큭...!!'

나는 순간적으로 내 몸이 거대한 막을 통과하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잘은 알 수 없었지만 방금 내가 통과한 게 아무래도 차원의 경계인 듯 했다.

위위위윙

나는 암야(暗夜)를 날아가다가 갑자기 주변에서 발광하는 뭔가가 잔뜩 맴돌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어느 새 처음에 비등에서 보았던 몽환적이면서도 거대한 전경은 사라졌고 마치 어둠의 바다를 헤매이는 듯 했다.

그 순간, 나는 '공격'이 날아듬을 느꼈다.

쉬익!

"......!!"

급히 허공에서 허공답보의 요령을 시전하며 몸을 뒤튼 덕분에 공격의 궤도를 피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옆구리에 약간 상처가 났다. 그만큼 기궤현란한 궤도로 빠르게 날아온 습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날아가는 와중에 습격자의 모습을 빠르게 감지했다.

' 회전하는... 가오리?!'

얼핏 보았지만 저건 분명히 수생생물중 하나인 가오리의 모습이었다. 단지 일반 가오리와 다른 점은 크기가 일 장에 이를 뿐만 아니라 눈이 다섯 개나 달려있고 꼬리에 보기만 해도 흉악한 촉수가 매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저 가오리 괴물이 방금 전에 천전(千轉)하듯 엄청난 회전을 하며 나를 공격해 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베인 옆구리가 따끔함을 느꼈다.

"큭!"

나는 옆구리에서 시허연 무언가가 흐르는 걸 느꼈다. 뭔지는 몰라도 굉장히 불길한 게 확실했다. 나는 어서 지상에 착지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날아가고 있는지, 천지의 상하좌우가 어디인지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숱한 험지를 모험했다고 생각했지만 이토록 혼돈 그 자체인 장소는 처음 본 것이다.

나는 급히 외쳤다.

"날 보호해!! 그리고 주변을 밝혀."

위잉

명령이 떨어지자 나와 함께 암천향에 온 제갈부가 술법을 전개해서 방어막을 쳤다. 동시에 발광하는 구체를 소환하자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

가오리 떼거리!!

핏빛 구름이 천지를 가득 메운 장소에서 괴물 가오리가 수천 마리도 넘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 수 없는 인력에 이끌려서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고, 방금 그 가오리 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시퍼런 살기를 비추고 있었다. 이대로는 추가공격이 올 거라는 걸 직감한 나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난데없이 공중전이라니."

공력을 이용해서 체공하거나 천상제나 허공답보로 어떻게든 할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까부터 영문모르고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딘가에서 정체불명의 인력(引力)이 나를 잡아끌고 있는데 도대체 그게 땅인지 하늘인지도 알 수 없다!

퍼버벅

이윽고 가오리들이 사방팔방에서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방어막 덕에 직접 싸우지 않아도 되었지만 육편이 사방에 흩어지는 게 보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화룡신검의 힘을 쓸까 생각했다.

' 아니.. 아끼자.'

여기서 쓸 힘이 아니다.

나는 방어막이 최대한 버틸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뜻밖에도 가오리들의 공격은 계속해서 튕겨나갔고 놈들만 피해를 입자, 더 이상은 공격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한 숨 돌리고 있을 때 느닷없이 시꺼먼 벽이 시야로 덮쳐왔다.

콰앙!!

"크윽."

나는 재빨리 착지했다. 그리고 내가 떨어진 곳이 어디인지 확인을 하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주변은 혈염같은 구름에 휩싸인 흉흉한 운해(雲海)였다. 정상적인 인기척 따위는 눈을 씻고봐도 없었으며 그저 소름끼치는 혼돈의 울음소리가 고적하게 울려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대신에 시꺼멓고 뾰족한 산맥이 저 너머에 있는 걸 음영으로 알 수 있었다.

"흠..."

나는 전국옥새의 정령을 불러서 명령했다.

[ 이 암천향의 지도를 작성해 주고 내가 어디로 가면 안전한지 알려줘!]

[ 검색 중...]

정령은 잠시 후 말했다.

[ 지도 작성이 불가합니다. 부유이계(浮遊異界)라서 좌표를 확인하는게 불가능합니다.]

[ 부유이계? 그게 뭐지?]

[ 이 장소는 암천향이 아닙니다.]

[ 뭐?]

[ 여기는 생명체의 뱃속입니다.]

내가 놀랄 틈도 없이 이변이 연속으로 닥쳐왔다.

쿠우우우...

"......!!"

시꺼멓고 뾰족한 산맥.

분명 산맥일진대 - 그 산맥을 뒤덮듯 거대한 손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렇게 거대한 생명체가 산맥 뒤에 있다는 것만 상상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보통 인간이라면 저 광경을 보는 순간 압도적인 공포에 휘말릴테지만 다행히도 괴물은 볼만큼 보아온 터라 나는 재빨리 기척을 숨겼다.

츄르르륵

"으윽! 아파."

나는 옆구리에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옆구리를 보자 놀라서 눈을 흡떴다.

알이다!

꾸르륵

아까 가오리한테 베인 옆구리의 상처에 새하얀 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알 중 하나가 툭 터지며 뭔가가 깨어났고, 그건 괴물의 유충으로 보였다. 나는 잠깐 베였을 뿐인데 기생생물에게 당해버린 상황이라 황당하기까지 했다.

' 제기랄. 불로 상처를 지져야 하나?'

제일 직관적인 방법이 생각났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놈들이 불에도 당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만 불타버릴 뿐이다. 대신에 나는 당산이 준 절독 주머니 중 하나를 풀어서 상처에 뿌렸다.

츠아아악

"끄윽...!!"

이것도 당가십대절독인 무망산(無忘散)이라서인지 괴물의 알과 유충들은 금세 괴로워하며 말라죽어버리고 말았다. 단순독성이 매우 강력한 독이라서 잘 먹혀든 것이다. 마치 인두를 생살에 지지는 것처럼 아팠지만 확실하게 몸에 듣자 치료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나 자신은 만독불침이기 때문에 어떤 독이든 약처럼 쓸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상처를 치료한 나는 전국옥새의 정령에게 물었다.

[ 저건 또 뭐야? 저 산맥의 괴물도 옛 지배자인가?]

[ 검색 중... 자료에는 없습니다. 정체불명입니다. 다만 신성이 없는 혼돈의 결집체이므로

신격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 저건 또 얼마나 센거야?]

[ 판단 불가능합니다. 전대미문의 생명체입니다. 순수한 혼돈이므로 전투는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드립니다.]

[ 여기가 생명체의 뱃속이라는 건 무슨 말이야?]

[ 이 부유이계 전체가 거대한 생명체의 위장(胃腸)이라는 게 판명되었습니다.]

[ 뭐... 제길... 그게 말이 돼?]

나는 황당해졌다. 방금 전에 나는 비등을 써서 이계에 떨어지자마자 무려 한 식경이 넘게 날아가기만 했는데 그 속도를 생각하면 거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도 이 공간은 그저 하나의 세계로 보일 뿐 도저히 닫힌 세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개 국가의 넓이를 훌쩍 뛰어넘을 것 같았는데 이게 고작 위장이라고?!

' 그럼 저 거대한 산맥괴물도 그냥 기생충인가?'

어이없는 크기다.

하지만 나는 침착성을 되찾고는 말했다.

[ 좋아. 그럼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 위벽을 뚫으셔야 합니다.]

[ 위벽은 어디 있는데?]

[ 최단거리... 남남서로 이천오백 리를 가면 혼돈이 끓어오르는 위산의 바다가 있습니다. 바다의 깊이는 칠백 장으로 추측합니다.]

[ ......]

나는 암울한 기분에 휩싸였다. 보나마나 혼돈이 끓어오르는 위산의 바다라고 하면 생명체따위는 닿기만 해도 녹아버릴 지옥이 분명했고, 그 깊이가 칠백 장에 이른다면 도저히 맨몸으로 돌파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게 바다 칠백 장을 쩍 갈라버릴 수 있는 절대검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 최단거리 말고 위로 날아가서 위산이 없는 곳을 뚫을 수는 없냐?]

[ 가능합니다. 직각으로 전개한다는 가정하에 팔천 리를 가면 위벽이 드러납니다.]

[ 제기랄!! 내가 어떻게 팔천 리를 날아!!]

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 무한의 내공을 가진 백련교주나 호법사자면 몰라도 지금 나로서는 택도 없어!!'

나는 제갈부를 힐끔 쳐다봤다. 저 놈의 술법으로 보조받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몰랐지만 아무리 그래도 팔천 리는 너무나 멀었다. 대륙을 횡단하고도 남을 거리를 하늘을 날아야 한다는 게 도무지 말도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방금 전 그 가오리를 보면 천공에도 괴물딱지나 이족들이 숱하게 많이 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지금만 해도 이 착지한 부근 여기저기에서 시꺼먼 그림자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십중팔구는 괴물들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비등을 썼다.

'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자!'

최초로 도달한 지점까지 가면 어떻게든 수가 생길 것이다.

퍼억

"어?!"

그 순간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그 자리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비... 비등이."

비등이 깨졌다.

전생하면서 사상 최초로 겪는 일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왜 부숴졌는지 의아해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힘을 주거나 막 써서 부숴진 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부숴져야 한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분해되어버린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 함정.'

비등이 보여줬던 환영은 고도의 함정이었다.

암천향에 갈 수 있을 것처럼 사용자를 속여놓고, 비등을 자주 사용하면서 성능에 확신을 가진 마도사가 부름에 응하는 순간 - 어마어마한 마도괴물의 지옥같은 위장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어버리는 함정이었던 것이다!

이 생지옥에서 탈출할 방법이 있을까?

"......"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난 탈출할 수 있어!"

내가 이런 곳에서 쉽게 괴물 밥이 될 리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발버둥쳐서 최대한 성과를 얻고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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