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61화 (660/1,615)

661====================

암천향(暗天鄕)

오악?

나는 또다시 옆길로 새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해졌지만 어쨌든 응룡이라는 이름이 나온 이상 화룡진인의 요청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나는 화룡진인에게 말했다.

"응룡이 교신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잘 모르겠다.]

"그럼 오악으로 가야하는 이유는요?"

[ 그 곳으로 오라고 했다.]

"......"

그저 응룡 쪽에서 일방적으로 부르고 있을 뿐, 화룡진인은 아는 게 없어보였다.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걸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진인의 말씀대로 하지요."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비밀에 휩싸여 있던 만신전, 그 중에서도 황제의 오른팔이자 오제와 동격으로 취급받는 응룡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기회다.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뭔가 알아내겠다고 다짐하고는 화룡진인의 일을 책사들에게 알렸다.

제갈사가 말했다.

"뜻밖의 일이군. 여태껏 이런 일은 없지 않았나?"

"그러게."

"아무래도 천계에서 회복한 힘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강했나 보군. 천 년 전, 여동빈을 만났을 당시에 이미 힘이 꽤 소모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다."

옆에 있던 망량이 말했다.

"백웅. 화룡진인께 용왕의 권능 중에 어떤 걸 회복했는지는 여쭤보지 않았소?"

"물어봤소만 아직 회복중이라고만 대답하셨소."

"흠... 일단은 나와 사제가 따라가겠소. 여차할 경우 당신을 도와야 하니."

"오악 중에서 어디로 가는게 좋겠소?"

망량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숭산이오."

"소림사가 우리 편이기 때문이오?"

"그렇소. 신승에게도 도움을 요청합시다. 때마침 거기서 동료들이 수련중이니 진소청이나 검마의 도움을 받아도 좋소."

파앗

우리는 소림사로 향했다. 그리고 숭산의 천제단에 오르기 전에 신승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숨읍시다."

나는 고수 특유의 강한 직감과 감지능력으로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파악했다. 사방에 자욱하게 깔려있는 삼엄한 기세는 틀림없이 무예를 고도로 익힌 자들의 것이었고, 섣불리 기척을 드러내면 안된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천우진이 은신술법을 즉시 펼치자 우리는 투명한 상태로 주변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산야 위에서 소림사의 건물이 세워진 부지를 바라보던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풍신대(風神隊)..."

나는 시력을 강화시켜서 소림사 여기저기에 은신해있는 고수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백련교 사대무류 풍신류를 따르고 있는 실전부대인 풍신대였으며, 풍신대원들은 하나하나가 강호에서는 절정급 고수로 불릴만한 실력자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여러번 부딪힌 적이 있는데다가 얼굴을 기억하는 자도 꽤 있었다. 뿐만 아니라 풍신대를 통솔하는 풍신대주는 물론이고 풍신류의 장로급 고수도 더러 보였다.

풍신류의 장로들은 소림사의 대웅전 주변에서 승려들을 꿇려앉혀놓고 감시하는 중인 듯 했다. 감시하는 승려들은 소림사의 원주급 이상가는 무승(武僧)들이었다. 신승의 모습은 일견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소림사는 풍신류 놈들에게 제압당한 것 같소. 전투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얌전히 항복한 것 같군."

"그런가!"

망량이 탄식했다.

"백련교주가 움직였구려. 그는 소리소문없이 하루아침에 소림사를 접수한 거요. 우리 반천맹의 귀에도 들어오지 않다니 대단한 행동력이군."

"하지만 소림사는 봉문(封門)했는데."

"백련교주가 그런 걸 신경쓸 자는 아니오. 그의 눈에 무림의 명망 따위는 하잘것없소. 되려 소림사를 멸망시키지 않은 게 그의 자비로움이라고 해야겠지."

"그렇긴 하지."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백련교주는 소림사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생각하는 거구려."

"십중팔구는.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천제단에 오르기 전에 신승부터 구출하는 것이오. 신승은 우리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으니 그가 고문당하기 전에 서둘러 움직입시다."

확실히 그렇다.

신승을 믿고 흑요석을 공유했으니, 그는 내가 전생자라는 걸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 목표나 비장의 수단도 거진 알고 있는 셈이다. 신승의 정보가 백련교주에게 들어가게 되면 굉장히 골치아파진다.

"큭... 신승과 명룡자를 그냥 본거지에 데려왔어야 했는데."

"그들 스스로가 거부했으니 어쩔 수 없었잖소."

"......"

"백웅. 왜 그러시오?"

나는 망설이며 말했다.

"풍신대와 장로들이 모조리 와 있고, 소림사쯤 되는 거대방파가 조용히 항복했다는건... 이 자리에 용비천이 와 있다는 뜻이오. 신승은 호법사자와의 실력차이를 알고 있으니 희생자를 내지 않기 위해 항복한 거요."

"그럴 것이오."

"호법사자 용비천을 상대로 사상자 없이 신승과 소림사를 구해낼 자신이 없소. 그 놈과 싸움의 여파만으로도 많은 승려들이 죽을 거요."

"일리있는 걱정이구려, 백웅."

잠시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우리 셋만으로는 좀 힘들겠지. 그럼 당초 계획했던대로 동료들을 더 데려옵시다."

"알았소."

"그 전에 중요한 전력을 본거지에서 먼저 데려옵시다."

"내가 빨리 갔다오겠소."

'전력'을 데려온 후, 우리는 근처에 있던 의문의 고대시설으로 향했다. 원래는 신승의 지문을 인식해서 문이 열리는 구조였지만 신승이 장치를 조작한 덕에 우리도 가볍게 바위를 열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백웅. 무슨 일이오?"

안에는 진소청, 검마, 극호, 당산 등이 열심히 무예를 수련하는 중이었다. 이 공간에서는 공력이 쌓이는 속도가 바깥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빠르게 힘을 키우기에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침중한 안색으로 전후사정을 설명했고 다들 안색이 안 좋아졌다.

검마가 말했다.

"용비천을 상대로 사상자를 내지 않을 수는 없네. 놈을 해치우는 거야 전력이 충분하고도 남지만, 놈이 무한의 내공을 살려서 저항하면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네. 소림사 승려들이 죽는 건 피할 수 없어. 하물며 풍신류의 전력까지 와있지 않은가."

"하지만..."

"정면으로 싸우면 여파때문에 소림사가 멸망하는 걸 피할 수 없네."

검마의 말은 단호했다. 진소청을 바라보았지만 그 또한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힘을 모아도 용비천을 순식간에 암살할 수는 없소. 호법사자와 싸우면 결국 힘싸움으로 번질 것이오. 절대지경에서도 상위의 깨달음이 아니라면..."

풍신류 놈들을 없애는 건 할 수 있지만 희생자가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크윽..."

천우진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힘든 건 힘든 것이리라. 천우진이 환신이라고 해도 도와줄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때였다. 옆에서 육포를 씹어먹고 있던 극호가 말했다.

"당산한테 맡기지 그래?"

좌중의 이목이 극호에게 쏠렸다. 극호는 옆에 있던 당산을 턱짓하며 말을 이었다.

"이 꼬맹이, 이제 무시 못할 실력이야. 잘만 수를 쓰면 목표를 쉽게 이룰 수도 있다."

"무슨 말이야 극호?"

"직접 물어보라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나는 당산에게 질문했다.

"당산. 뭔가 방법이 있어?"

당산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흐흐. 아주 쉬울 거 같은데."

"뭐?"

"직접 창칼 맞대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란 말씀."

이윽고 우리는 소림사 인근으로 다같이 몰려갔다. 그리고 당산이 준비해 왔던 독 보따리를 풀어서 바람에 실어서 날려보냈다. 천우진이 바람의 술법을 써서 큰 돌개바람을 일으켰기에 훨씬 빠르게 독가루가 확산되었다.

스스스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독가루가 날린지 대략 한 식경 정도가 지났을까?

난데없이 경계를 서고 있던 풍신대원들이 호흡에 곤란을 느끼는 듯 했다.

"헉... 커헉..."

"크흑!"

고수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풍신대원들이 순식간에 절반 이상 전투불능이 되자 풍신류 장로들이 위기상황을 느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독이다!"

"내공으로 기혈을 보호하고 호흡을 조절해라!!"

정신을 차린 고수들 중 대다수가 바로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내공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절정고수는 독에 저항력이 있어서 내공을 운용해서 독을 몰아내는 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독을 이겨내지 못하는지 이윽고 입에서 선혈을 왈칵 터뜨리며 앞으로 엎어졌다.

"커헉..."

"너, 너무 독기가 강해..."

"장로님... 피하십시오..."

"으윽."

풍신류 장로들은 대단한 공력을 갖고있는지 아직 괜찮아 보였지만 다른 자들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풍신류가 전투불능이 되자 장로들은 급히 몸을 빼기 시작했다. 대문파 하나를 하루아침에 없앨만한 전력이 모여있던 것 치고는 허망한 최후였다.

화악

우리는 독이 쓸어간 장소에 뒤늦게 찾아와서는 사람들에게 해독분을 살포했다. 해독약을 하나하나 먹이기에는 시간이 없었으므로 가루를 땀구멍으로 흡수시키는 식이었다. 그러자 쓰러져 있던 승려들은 물론 풍신대원들도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풍신대원들을 진소청과 극호가 점혈해서 제압했다.

그리고 나는 풍신대원들과 승려들을 모두 일단 목갑에 집어넣었다.

' 이걸로 휩쓸릴 걱정은 덜었군.'

이제 용비천과 마음껏 싸울 환경이 만들어졌다.

다만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도대체 무슨 독을 쓴 거야? 절정고수도 못 버티는 독이라니..."

당산이 히죽 웃었다.

"당가 비전의 십대절독 중 하나인 장혼사(藏魂死)다. 한 줌의 장혼사로도 100명을 중독시킬 수 있고, 장혼사를 오래 맡으면 초절정고수도 육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지."

"넌 어떻게 장혼사를..."

"예전에 당가 직계놈 하나를 고문해서 제조법을 훔치게 하고 외웠지."

"해독법도 말이냐?"

"아, 그건 원래 없었는데 내가 혼자서 연구해서 알아냈어."

"......"

"나중에 생명의 은인인 당신한테 도움이 될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독과 해독제를 미리 만들어뒀었지."

독술이라는 건 고도의 수리적, 공학적 계산이 필요한 분야인데다가 오랜 연마기간이 필요했다. 뛰어난 두뇌는 당연히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고작 십대 초반의 나이에 독의 제조법만 보고도 해독제를 창조할 정도의 천재성이라니? 나는 당산이 새삼 절세천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당산의 독 덕분에 귀찮은 일을 해결하고는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전시안으로 미리 보았던대로 용비천이 있는 소림사 대웅전에 들어가자, 그 곳에는 용비천과 풍신류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

' 신승은... 죽었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전시안으로 보았을 때 방금 전까지는 신승이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살아있었는데 죽어버린 것이다. 신승을 죽인 건 십중팔구는 용비천이 분명했다.

용비천은 나와 동료들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잘 됐군. 이 놈한테서는 거의 알아내지 못했는데 당사자들이 찾아와줬어."

"용비천. 제정신이냐? 백련교가 봉문한 소림사를 쳐서 멸망시키려 하다니 이런 미친짓을 하는 이유가 뭐냐."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용비천이 말했다.

"크크크. 하룻강아지 같은 놈. 나 혼자서도 너희들 정도는 문제없다."

나는 용비천의 자신감이 근거없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무한의 내공을 갖고 있는 호법사자가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숭실봉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코웃음치며 말했다.

"신승을 죽인게 네 실수다. 여전히 힘만 세고 멍청한 놈아!"

"그 입 닫아라!!"

용비천이 노호성을 내지르며 허공에서 거대한 풍탄을 만들어내서 내게 날려왔다. 엄청난 힘과 속도라서 본래라면 굉장한 압박감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즉시 화룡신검을 들어서 일격에 풍탄을 잘라버렸다.

슈콱!

"......!!"

용비천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연지기가 허공에서 잘리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정확하게 기력의 중심을 노려 베었기 때문이었고, 뇌신류의 이름없는 베기동작 한 번에 묘역의 예를 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놈을 비웃듯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의 너 정도는 나 혼자서도 이길 수 있어. 하지만..."

스으윽

옆에서 진소청과 검마, 그리고 극호가 한걸음씩 내딛었다. 그리고 본거지에서 데려온 제갈부도 공격태세를 갖추었으며, 옆에서 망량과 천우진도 술법을 전개할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윽... 뭐냐?! 어디서 너희같은 고수들이..."

용비천은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꼈는지 목에 땀을 흘리며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동료들과 함께 빨리 끝장내 주마."

"자, 잠깐..."

"닥쳐! 넌 이제 중요하지 않아."

들을 가치도 없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거침없이 합공했다.

쿠콰콰쾅

콰과광

용비천과의 전투는 그로부터 약 삼십 초 후에 끝났다. 용비천은 무한의 내공을 돋우어서 최대한 큰 공격을 하며 버텼지만, 우리가 단숨에 해치워버릴 셈으로 합공하자 빈틈투성이였다. 용비천의 무학 깨달음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닌지라 진소청이 도중에 파고들어서 란나찰을 한방 먹여주자 그는 상반신에서 피를 좍좍 흘리며 앞으로 엎어졌다.

풀썩

"크아악..."

호법사자 용비천을 때려눕히자마자 극호가 그를 증오섞인 시선으로 쳐다보더니 창을 내찔렀다.

퍼벅

극호의 창이 놈의 머리통을 꿰뚫어 버렸고 이윽고 목과 몸통을 분리했다. 극호는 거대한 사자후를 내질렀다.

"스승님!! 원수를 갚았습니다!!"

빠르게 용비천을 해치운 후 나는 그 자리에서 죽은 신승의 영혼을 천신경의 술법으로 불러냈다. 신승은 생전에 매우 모진 고문을 당한 듯 영혼상태에서도 그다지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 미안하오... 백웅 시주... 그대의 말대로 그대들의 본거지로 피해있어야 했으나... 무고한 본사의 승려들이 피해를 입을까 우려했소... 나 하나에게 집중하게 해야 승려들이 몰살당하는 걸 피할 수 있었으니...]

"음..."

[ 허나 걱정 마시오... 용비천이 나를 고문했으나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소... 다만 그가 천제단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캐물어서 거기에 대해서는 말할 수밖에 없었소...]

"천제단?"

[ ... 교주는 아무래도 천제단을 차지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 같소...]

신승이 꺼지듯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 시주. 부탁하겠소... 아마 무당파의 명룡자 또한 나처럼 곤경에 처해있을 것이오. 부디 그를 구해주던가... 아니면 고통없이 보내 주시오.]

"알았소."

[ 그대의 다음 전생에는 더욱 도움이 되었으면 하오...]

파앗

신승의 영혼이 사라졌다. 나는 즉시 비등을 들어서 무당파로 가려 했지만 그 때 망량이 말했다.

"백웅. 성급하게 굴지 말고 일단 전시안을 써서 명룡자의 생사여부부터 확인하시오."

"알겠소."

나는 전시안을 써서 명룡자의 위치와 현재 상태를 검색했다. 그러자 전국옥새의 정령이 그가 현재 살아 있으며, 알 수 없는 밀실에 혼자 갇혀 있으며, 고문받는 중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었다.

그 화면을 함께 보던 망량이 말했다.

"무당파를 백련교가 습격한 건 확실한 것 같소만 신승과 달리 명룡자는 몸을 잘 빼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오. 저기는 아마 무당파의 은신처같은 장소일 거라 생각하오."

"흐음. 그럼 지금 당장 구해와야지."

파앗

나는 명룡자를 바로 구출해 왔다. 명룡자는 죽어있는 신승의 시체를 보자 낙담하며 한숨을 쉬었다.

"자업자득이니 누구를 원망할까... 하아."

"백련교인들에게 붙잡히진 않았습니까?"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본파의 제자들이 크게 걱정되는군..."

"나중에라도 구해드리겠습니다."

"... 부탁한다."

나는 명룡자를 안전한 본거지로 이동시키고 다시 숭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소림사의 일을 대충 수습하고는 천제단으로 올라갔다.

우우웅

천제단 위에 올라가자 갑자기 화룡신검이 신령스러운 빛을 뿜어냈다. 내 손을 떠나서 혼자서 허공에 떠오른 화룡신검에서 엄청난 화염이 천상으로 뿜어졌고, 그 화염은 천지를 잇는 불꽃기둥처럼 보였다.

후오오오오

"앗, 말려든..."

동료들이 재빨리 피했지만 너무 가까이 있던 나는 그럴 새가 없이 불꽃기둥에 말려들고 말았다. 하지만 불꽃기둥은 뜨겁거나 내게 해를 미치지 않았고, 나는 어느 새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무(無)의 공간에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여긴...'

이 공간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화룡진인이 고대의 의복을 입은 채 거대한 용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는데, 그 용은 신령스러운 바람을 일렁이며 기품어린 자태를 흘리고 있었다. 거대한 용의 날개가 인상적이었다.

화룡진인이 용에게 말했다.

[ 나의 본체여. 나를 왜 부른 것인가? 나를 거둬가려 하는가?]

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용은 그저 화룡진인을 한동안 응시했는데, 잠시 후 화룡진인의 모습이 이 공간에서 깨끗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앗!!"

나는 깜짝 놀라서 검을 들고 용에게 달려들었지만 마치 무한한 거리가 그와 나 사이에 있는 듯 도저히 닿을 수가 없었다. 내가 허공을 허우적거리고 있자 용은 눈에서 현묘한 빛을 흘리며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그의 의지가 내게 도달했다.

[ 구천현녀. 오랜만이군...]

구천현녀?

슈우욱

내가 당혹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심장에서 새파란 검날이 튀어나왔다. 그건 실재하는 검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내면에 품고 있던 선검(仙劍)이었으며, 선검이 날의 절반 이상을 내 가슴에서 뽑아냈을 때 자연스럽게 선검의 끝에서 구천현녀가 흐르듯이 나타났다.

설마... 구천현녀가 내 선검을 매개로 이 공간에 나타났다는 건가?

내가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구천현녀가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용에게 말했다.

[ 응룡이시여. 화룡진인을 만신전에 거둬가려 하십니까?]

응룡!

역시 이 공간에 나타나 있는 저 신령한 용은 응룡인 것이다.

응룡이라 불린 존재는 천천히 대꾸했다.

[ 그럴 필요는 없지... 종말까지는 저 아이 마음대로 하게 두겠다.]

[ 그녀를 애초에 왜 천계에 보내셨죠?]

[ 황제께서 원하셨으니까...]

[ ......]

[ 그 분의 뜻을 감히 추측하려 하지 말게. 창힐같은 놈은 하나로 족해.]

응룡의 말에 구천현녀가 한숨을 쉬었다.

[ 거대한 악이 암약하고 있습니다. 천계가 망해도 상관없으신 겁니까?]

[ 악은 세상의 본질이기도 하지. 우리가 선악을 잴 자격은 없다.]

[ 응룡께서는 본디 영수왕이셨거늘 이 땅에 미련이 없으시단 말입니까?]

[ 그만 하라.]

파아앗

응룡이 약간 성을 내듯 기운을 내뿜는 순간이었다.

구천현녀는 크게 움츠러들며 안색이 파리해진 듯 했다. 응룡이 단지 기세를 뿜었을 뿐인데도 천계 최고의 대라신선 중 하나인 구천현녀가 움츠러든 것이다. 응룡이 오제에 준하는 존재라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닌 듯 했다.

응룡은 현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 구천현녀여. 나는 네가 징징거리는 소리나 들으려 여기 온 게 아니다. 삼황오제가 끼어들기까지 여유가 없으니 넌 이만 돌아가라.]

[ 하지만...!!]

[ 가거라.]

슈르륵

구천현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무래도 응룡은 이 공간에서 절대자나 다름없어서 누구든 원하는대로 쫓아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이 나를 향하더니 응룡이 입을 열었다.

[ 내 화신을 회복시켜줘서 고맙다, 필멸자여.]

나는 응룡에게서 삼황오제같은 압도적인 파멸과 혼돈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기보다는 그가 본디 품고 있는 힘의 성질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왠지 그에게 친숙한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응룡이시여. 화룡진인을 예까지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십니까?"

[ 기특해서.]

"네?"

[ 저 아이는 자신의 본질에 의문을 품을 법도 했으나 자신의 신념을 줄곧 지켜가고 있다. 저 아이를 지켜보는 게 내게는 얼마없는 낙이다. 그리고 신념을 지켜갈 힘을 되찾았으니 대견하게 느껴졌다.]

뭔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응룡이 말했다.

[ 필멸자여... 그대에게서는 친숙한 혼돈의 잔향이 느껴진다. 허나 이런 기운은 혼돈에서 태어난 순수한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것... 인간에게 허용된 게 아님이지만... 그럼에도 그대는 인간. 아주 특이한 자로구나.]

"......"

[ 그대는 만마(萬魔)에게 사랑받는 재능이 있구나.]

별로 그런 재능 필요하지 않다고!!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응룡 앞이라서 겨우 참았다.

나는 응룡에게 말했다.

"응룡이시여. 저와 계약해 주십시오. 아니면 만신전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거절한다. 그대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럼 만신전이 어떤 장소인지 알려주십..."

[ 거절한다.]

"공양을 받아주시면..."

[ 나에게는 물질계의 공양이 필요 없다. 만신전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마찬가지다. 필멸자와의 모든 거래를 거절한다.]

"......"

[ 황제께서 모든 걸 제공해주시는데 그 분의 의지를 거스르고 굳이 뭔가를 받을 이유가 없다.]

애초에 거래를 거절하다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는가? 그것도 만신전 소속은 모두 거래관계를 금지한다는 말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 말대로라면 앞으로 공양의식으로 만신전과 관계를 터 보려는 행위는 모두 봉쇄된 셈이다!

' 아니 너무 폐쇄적이잖아!'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응룡이 말했다.

[ 전욱과 제곡이 이 공간에 끼어들려 하는군...]

쿠구구구궁

그 말대로 바깥쪽에서 날개달린 거대한 손, 그리고 수만 마리의 귀신들이 힐끗거리며 형태를 비추었다. 거대한 손은 아마 제곡의 힘을 대리하는 화신일 것이고 귀신들은 보나마나 만마전에서 파견된 소신격들일 것이다.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삼황오제가 왜 여기에 들어오려 합니까?"

[ 그들은 만신전으로 간절히 가고싶어하기 때문이지... 황제의 측근인 나를 붙잡아서라도 길을 열고싶어하지... 왜냐하면 가면을 벗고싶기 때문이지.]

"가면?"

[ 결국 제멋대로 하고싶다는 것 뿐이면서... 저런 놈들이 스스로 이 세계의 제왕으로 칭할 자격이 있는가?]

염증이 난다는 듯 중얼거린 응룡이 갑자기 한 번 포효를 내질렀다.

[ 꺼져라!]

꽈르릉!

그 포효가 울려퍼지자 제곡의 손은 순식간에 핏조각이 되어서 하늘 너머로 날아가 버렸고 만귀전의 소신격들도 단번에 찢겨서 육편이 되고 말았다. 그 포효에 말도 안 되는 힘이 담겨있는 걸 알아챈 나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응룡의 힘이 정말로 강대했기 때문이다.

' 가... 강해!'

삼황오제가 간섭하려고 내뻗은 손길을 가볍게 물리칠 수 있다니!

주변을 정리한 응룡이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 사바세계에 오랜만에 내려오니 성가신 일이 너무 많군... 이만 가 보겠다.]

아무래도 응룡은 진짜로 화룡진인이 귀여워서 딸보듯 보러 온 느낌이었다. 딱히 나를 보러 온 건 아닌 듯 싶었다.

"자, 잠깐만요."

나는 뭔가 얻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였다.

' 이건 흔히 있는 기회가 아냐!!'

화룡신검을 몇 달 씩이나 천계에서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얻을 수가 없다!

제천대성의 협력을 얻기도 힘든 일이다!

응룡을 그리 자주 볼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이 기회에 뭔가 알아내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머리를 팽팽 돌리다가 응룡에게 외쳤다.

"만신전에 있는 일요(日曜)는 정말로 나머지 칠요 6개를 다 얻으면 가질 수 있습니까?!"

이 정보의 진위만큼은 확인하고 싶다!

멈칫

응룡이 이 공간에서 떠나려다가 멈췄다. 그리고는 내 말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 그렇다.]

"칠요 6개를 모으면 만신전으로 가는 문이... 열리는 겁니까?"

[ 아니다. 별개의 일이다.]

"별개의 일이라 함은..."

[ 만신전으로 오는 방법은 따로 찾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대답한 응룡이 날개를 펄럭였다.

[ 필멸자여, 칠요를 모으려는 어리석은 야망은 멈추거라... 그건 삼황오제가 이 땅에 버티는 한 이룰 수 없으리라.]

파앗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불꽃 기둥이 펼쳐지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마치 그 순간부터 눈 깜박일 시간도 흐르지 않은 듯 했다.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주먹에 힘을 주었다.

' ... 어리석으면 어때.'

누가 뭐라든간에 일단 해내고 볼 것이다!

"모두들. 지금 각오가 된 사람만 손을 들어줘."

나는 마음이 정해지자마자 비등을 들어서 주변에 있던 동료들에게 외쳤다.

"지금 바로 암천향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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