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59화 (65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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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수해의 왕?

힘을 쌓을 수 없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한 마디는 많은 의미를 품고 있었다. 특히 '수해의 왕'이라는 언급은 예전에 내가 들어봤던 기억이 있었다.

[ 크하하! 신을 죽여야 하는 원월천살법 계승자로서의 의무는 엿바꿔먹었나?]

[ 하긴 너는 천재일 뿐 진정한 계승자가 아닐테니.]

과거 내 22번째 전생과정 중에 해신전(海神戰)때 십이율주가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그 때 미야모토 무사시가 발끈한 듯 대꾸한 이야기였다.

[ 멋대로 말하지 마라. 진정한 계승자같은 건 없다.]

[ 정말 그럴까?]

[ 그래. 수해(樹海)의 왕을 쓰러뜨릴 자는 존재할 수 없다.]

그 당시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먹지를 못해서 대충 넘어갔었다. 그리고 당장 해신과의 전투가 급한 상태에서 정보를 캐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때 미야모토 무사시가 언급했던 수해의 왕이라는 게 하필이면 아베노 세이메이의 입에서 다시 언급된 것이다!

심각함을 느낀 건 나 뿐만이 아닌 듯 다른 이들의 표정도 일변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물었다.

"수해의 왕이 뭐지?"

"알고 싶어?"

"당연하지."

"그럼 중간계산을 하지."

"뭐?"

아베노 세이메이는 무심한 눈빛으로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결계의 유지보수를 위해 보물을 준다고 하지 않았나? 이쯤에서 받고 싶다."

"아..."

이 순간에 요구를 하다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해의 왕에 관한 정보를 교묘하게 쥐고 흔드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 들어놓고 나중에 내주겠다는 식으로 말해도 되었겠지만, 이렇게 나온 이상 이 자리에서 즉시 보물을 내어주는 게 도리상 맞는 모양새였다.

' 제길, 뭘 주지...'

내가 망설이자 옆에 있던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품속에서 꺼내서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건네주었다.

"오화칠금선이라는 보패요. 당신이라면 잘 쓸 수 있을 거요."

"망량! 그건..."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강해져봤자 딱히 의미가 없지 않겠소?"

"......"

그렇다 해도 보패란 결코 술법사로서 쉽게 양도할 수 있는 게 아닐텐데.

내가 할 말을 잊었을 때 아베노 세이메이가 오화칠금선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말했다.

"충분하군. 이걸로 야사카니노마가타마(八尺瓊曲玉)만큼 효과를 볼 수 있겠어."

"팔척경곡옥?"

나는 그 말을 듣자 흠칫하며 반문했다.

"오화칠금선에 삼종신기만큼의 힘이 잠재되어 있는건가?"

아베노 세이메이는 오화칠금선을 자신의 소매에 흔적없이 집어넣으며 대꾸했다.

"설마. 삼종신기는 월요이니 이 보패가 아무리 강해도 그에는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이 보패에는 기묘한 힘이 깃들어 있으니 그 가호를 최대한 살리면 결계강화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역시 음양사의 수장쯤 되면 삼종신기가 월요라는 걸 알고 있는 건가?

나는 의혹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기묘한 힘?"

"나도 살펴봐야 알 것 같군."

처음 듣는 소리였다. 망량을 쳐다봤지만 그도 처음듣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화칠금선에는 모종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수해의 왕이란 입해(入海)에서 가장 강력한 마왕(魔王)이며 멸해(滅海)로 넘어가는 문지기라고 할 수 있다."

"뭐? 문지기?"

"그렇다.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실질적으로 수해에서 가장 강대한 마(魔)라고 판단하고 왕(王)이란 칭호를 붙인 것이다."

그가 침중한 말투로 말했다.

"사실 이 아오키가하라 수해도 다른 잡놈들이 아니라 그 '왕'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지..."

"......"

수해의 왕!

그 놈은 입해에서 보았던 투선급 괴물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란 말인가?

내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함께 온 천우진이 질문했다.

"아베노 세이메이. 그럼 멸해에는 무엇이 있는 것이오?"

"흐음."

"멸해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가 '왕'이라면 멸해 내부에는 대체...?"

"그대가 환신이라 불리는 자로군. 과연 명성대로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아베노 세이메이는 짜증스럽게 말하는 천우진을 흥미롭게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모른다. 알 수가 없어."

"......?"

천우진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그를 황당한 눈으로 보자 아베노 세이메이가 옆에 있던 귤을 집어서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이 수해를 우리가 봉인하게 된 경위부터 설명해야겠군."

"태초에 이 동영땅에 마(魔)가 창궐하게 되어서 그대들 음양사 일족이 책임지고 마(魔)를 몰아서 수해에 봉인하게 되었다고 들었소."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조금 다르거든."

"어떻게 다르오?"

"사실... 이 동영땅은 야만적인 기질을 품은 채 마(魔)와 공존하며 수천 년동안 살아온 터전이라고 할 수 있어."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들 중원인들은 삼황오제의 가호를 받았고, 반도인들은 단군, 삼사, 십이율 등의 보호를 받았지. 그러나 동영땅에서는 태초에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를 비롯해서 아마츠카미(天津神)들이 쫓겨난 후 변변찮은 가호도 하나도 없이 마(魔)와 요괴에 맞서야 했다. 그래서 중원보다 더 극악한 악행과 참극도 심심찮게 일어났지..."

"음..."

"다만 운이 좋았던 건 요괴와 마(魔)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들끼리 싸웠다는 점이었다. 그 덕에 강력한 요괴들이 나타나서 인간과 피를 섞고, 이족과 싸울만한 강한 초능력을 타고난 인간영웅도 종종 생겨났지. 그 때문에 이 땅의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마(魔)에 대한 저항력은 물론이고 요력이나 초상능력을 자주 타고나. 맨주먹으로 바퀴벌레처럼 싸워온 결과라고나 할까."

"그렇군."

"그리고 내 전성기에 인간의 힘이 가장 강해진 순간이 찾아왔었어. 그 때 나는 음양사와 영웅들을 이끌고 동영 전역의 마(魔)를 끌어들여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봉인하는 대결계를 펼쳤지. 하지만 그 때 문제가 발생했어."

"문제?"

아베노 세이메이가 한숨을 쉬었다.

"본래 나는 전역의 마를 봉인한 후 즉시 다른 세계로 떼어내서 버릴 생각이었다. 알다시피 이런 악의 구덩이가 있어봤자 인간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기 때문이지. 하지만... 마력이 뭉쳐서 응결되어 혼돈의 구체가 생겨나자 그 구체가 새로운 마왕을 만들어내 버린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우진이 말했다.

"동영의 모든 마력이 결집되어 만들어진 마왕, 그게 바로 수해의 왕이란 건가?"

"그렇다. 그리고 그 존재가 탄생한 순간부터 그 자리에 마계(魔界)가 발생했지. 차원문 수준을 넘어서서 [옛 지배자]의 영토와 직접 연결되는 극한의 이계... 나는 여력을 남기지 못하고 수해의 왕과 마계를 봉인하는데만 모든 힘을 써야 했다."

"......"

"망량선사께서 파천의 가호를 전해주신 덕분에 살았지. 내가 아마테라스 오오카미(天照大神)의 소환권을 얻지 못했다면, 그 때 동영은 멸망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그 때 마를 몰아서 가둔 덕에 이후의 동영은 인간문명이 순조롭게 발전했다."

아무래도 아베노 세이메이가 망량선사를 극히 신뢰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듯 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힘만으로는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대결계를 만들 수 없었지만 망량선사가 파천의 가호를 빌려준 덕에 겨우 명맥을 유지한 것이다.

옆에서 곰곰히 생각하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수해의 왕조차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수해의 왕이 지키고 있는 그 이후의 비경(秘境) 멸해(滅海)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구려."

"그런 셈이지. 그 안쪽은 미지의 영역이야. 확실한 건... 도저히 인간으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게 존재한다는 사실."

"......"

"우리 츠치미카도 일족의 힘으로는 수해의 왕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니까."

"그럼 아까 미야모토 무사시가 수해의 왕에게 도전했다 패했다는 게 무슨 말이오?"

망량의 질문에 아베노 세이메이가 왠지모를 웃음을 지었다.

"미야모토 무사시... 그 자는 확실히 걸물이었지. 그리고 천운을 타고난 사내이기도 했고."

"무슨 뜻이오?"

"미야모토 무사시를 만나본 적 있나?"

아베노 세이메이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몇 번 만나보긴 했소."

"그럼 그 자의 강함도 알겠군."

"... 인간세상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요. 검술 하나만으로는 세계최강이라 할 수 있소."

"그걸 잴 수 있다니 당신도 대검호라 불릴만 하겠군..."

아베노 세이메이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의 기준으로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강함을 측정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듯 했다. 잠시 후 아베노 세이메이가 말했다.

"여태껏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많은 무사들이 도전했지만 제대로 입해까지 돌파해서 수해의 왕을 대면한 건 무사시가 처음이었어. 다만 무사시의 힘으로는 수해의 왕에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지..."

"그럼 죽었어야 정상 아니오?"

"그래서 천운의 소유자인 거다. 수해의 왕은 어찌된 일인지 무사시를 마음에 들어해서 그를 멀쩡히 보내주었으니까."

"......!!"

세상에 그럴수가?!

수해의 왕이 마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순수한 마왕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 그 자체인 존재가 인정을 베풀다니.

내가 깜짝 놀라자 아베노 세이메이가 말했다.

"다만 수해의 왕은 한번 자신에게 패배한 존재를 두 번 다시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는 도전권이 없다."

"무슨 말이오? 그러든말든 일단 덤비면 되는 게 아닌가."

"수해의 왕은 자신에게 최초로 도전하는 자에게는 입해의 모든 권속마물을 물리고 일대일로 싸워준다. 그러나 도전권 없이 무작정 덤비는 자는 수해의 왕을 보호하려고 몰려드는 입해의 괴물들과 수백 대 일로 싸워야 하지."

"......"

입해의 괴물들 하나하나가 투선급인데 그런 놈들이 합공을 한단 말인가?

그런 법칙이 있다면 확실히 수해의 왕에 대한 1회 도전권은 굉장히 귀중한 것이었다. 실낱같은 승산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해의 왕은 이미 신적인 존재에 가깝다. 나는 이미 그 존재를 없애는 걸 포기했어."

"그렇지만..."

나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앞으로 오백여년 후에 '종말'이 올 텐데 그 때는 방법이 없잖소. 그 때가 되면 수해의 왕도 봉인을 깨고 부활해서 세상을 활보할 거요."

"그렇지. 아무런 대책이 없지."

"그런데도 당신이 태산부군제를 지내서 불로불사를 얻은 이유를 모르겠소. 그저 오래 살 뿐이고 처참한 종말의 순간을 두 눈으로 보아야 할 뿐인데 뭐하러 그렇게 한 거요? 당신이라면 사후세계 중에서도 '좋은 곳'을 골라갈 수 있을 텐데."

내 질문에 아베노 세이메이가 훗하고 웃었다.

"확실히 제일 상석에 앉아서 종말을 관람하고 싶기도 했지. 인위적인 구원이란 건 알고 있으나 그게 그나마 나은 길인 건 사실이니까."

그는 귤껍질을 의자 뒤로 던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오래 살면서 이 결계를 내 술력으로 유지하지 않는다면 종말까지 이 동영이라는 땅이 버틸 수도 없어. 종말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때까지 이 땅에 사는 인간들에게 하루하루를 영위하게 해주고 싶은 거다."

"......!!"

"인간사는 어차피 언제든 영고성쇠에 흥진비래(興盡悲來). 하지만 그렇다 해서 살아가는 시간이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삶과 의지를 이루어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업이기에."

아베노 세이메이의 말에 떠도는 묘한 현기는 그가 보이는 것과는 달리 매우 오랜 시간을 살아온 대술법사이자 현자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망량선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순간 멍하니 있었지만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진짜 중요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 진짜 묻고싶은 질문이 있는데 이것도 대답해 줘."

"보패 하나로 생색을 있는대로 내는 것 같지만, 받아들이겠어."

"넌... 원월천살법(圓月天殺法)이 구체적으로 뭔지 알고 있어? 그리고 원월천살법의 '진짜 계승자'라는 게 뭔지도?"

내 질문에 아베노 세이메이가 대꾸했다.

"원월천살법은 환상이나 전설일 뿐이야. 그런 무술은 존재하지 않고 전승자도 존재하지 않아."

"진짜로? 거짓말 아니야?"

"애초에 일백 명의 천재가 모여서 신살을 위해 만들었다는 강대한 무술이 있었다면 내가 먼저 배웠을 거다. 수백 수천년이 걸려서라도 내가 원월천살법을 배워서 수해의 왕을 죽이러 갔을 거야. 하지만 동영의 빛과 어둠을 수백 년간 보아왔으나 그런 건 한번도 보지 못했어."

"......"

"미야모토 무사시 또한 원월천살법을 배운 게 아니야. 그는 그저..."

뭔가 말하려던 아베노 세이메이가 말을 멈추고는 말했다.

"내가 더 얘기할 부분이 아니군. 본인을 찾아가서 물어 봐."

"정말 모르는 거냐?"

"나는 뜻밖에 등장한 천재에게 희망을 걸고 그가 수해의 왕 앞까지 가도록 도와줬을 뿐이야. 자세한 건 그가 나보다 잘 알겠지."

"알았어."

나는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물었다.

"얼마 전에 입해에서 삿갓 쓴 무사가 괴물한테 덤비다 죽었다던데 혹시 놈의 얼굴을 알고 있나?"

"그런 일도 있었나?"

"뭐?"

"보고받지 못했어."

"너희가 관리자 일족이잖아."

"우리 츠치미카도 일족에서 확실히 관리할 수 있는 건 생해와 사해 뿐이야. 입해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의 관리영역을 많이 벗어나 있어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거의 파악하지 못해. 너처럼 마도구를 써서 왔다갔다 한 흔적은 알 수 있지만 안쪽 일은 모른다."

"......"

그렇군. 그렇다면 삿갓 무사의 정체는 따로 알아내야 한다는 건가?

이 정도면 알아낼 건 다 알아낸 듯 하다.

나는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동료들과 함께 본거지로 되돌아왔다.

망량이 말했다.

"백웅. 그럼 이제는..."

"더 이상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소. 너무 해야할 일이 많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화룡신검이 회복되는대로 즉시 암천향에 도전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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