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6====================
암천향(暗天鄕)
북망산으로 가기 전에 태산부군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나는 계획이 잡히자 마자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천계에 직접 쳐들어가서 본인들에게 태산부군의 정체를 캐묻고 명계출입권을 받는건 말도 안 된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공양의식으로 태산부군을 소환하면 되잖아."
"좋지. 제물을 바쳐서 명계의 출입권을 받아야 할 텐데 무엇을 공양제물로 내놓을 생각이냐?"
"음..."
나는 고민했다. 뭘 내놓는게 괜찮을까?
장삼봉 진인이 제물을 되돌려주었으니 사실 제물은 충분하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걸 내놓겠어."
내가 내놓을 제물을 이야기하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그건 좀 더 조사해보고 나서 줘도 될 텐데. 다음 생에 서방수도사의 손에 감춰진 걸 따로 얻기는 성가시지 않겠소?"
"어떻게 말이오?"
"내 추측이지만 지금 갖고 있는 물건을 갖고 시도해볼 만한 게 있소."
나는 망량의 말대로 해 보기로 했다.
스으으
이윽고 나는 목갑에서 서방 수도사 벨로프에게서 받은 수수께끼의 은빛 창을 꺼내서 손에 힘을 집중했다. 그러자 음신지력(陰神之力)이 손에 모여들면서 창으로 스며들었고, 나는 힘을 몰아서 크게 불어넣었다.
쿠구구구
은빛 창은 갑자기 파장을 내뿜으며 반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망량이 놀란 듯 말했다.
"역시... 그 창은 사연이 있군. 상당한 명품이오."
"힘들군. 계속 힘을 넣어야 하오?"
"그럴 수밖에 없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음신지력을 불어넣고 있긴 하지만 요도 무라마사 때와는 달리 창에서 반발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라마사는 자연스럽게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이 좋아진 듯한 반응이었지만 이 창은 달랐다. 음신지력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 까탈스럽군...'
잠시 후 나는 음신지력을 더 끌어내기 버거워서 이마에 땀을 송골송골 흘렸다. 더 이상 하다가는 적공되어 있는 음신지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결국 힘을 불어넣기를 멈추고 말았다.
망량이 내 느낌을 듣자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음신지력을 불어넣으면 창에 담겨있는 힘과 기억이 정령으로써 구현할지도 모른다 생각했건만... 아쉽구려."
망량이 제안한 방법은 바로 음신지력을 불어넣어서 무기의 자아(自我)를 각성시키는 것!
요도 무라마사 또한 원래부터 자아가 있는 무기는 아니었으나, 음신지력을 강하게 불어넣자 반응해서 광기어린 자아를 각성했다. 게다가 각성하고 나니 원래 없었던 기술과 폭주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다른 무기에도 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천우진이 말했다.
"잠깐 그 창을 내게 줘 봐."
내가 순순히 천우진에게 창을 건네주자, 그는 급급여율령의 주문을 외우고는 영안을 뜨고 뭔가를 살피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소용없진 않았어. 이 창은 지금 정령의 자아가 싹트려 하고 있다."
"음신지력의 영향으로?"
고개를 끄덕인 천우진이 대답했다.
"삼황오제의 권능인데 안되는 게 이상하지. 하지만 내가 볼 때는 힘이 부족해서 각성하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말도 안 돼. 지상에 나보다 음신지력을 많이 보유한 인간은 없다고."
"무기 자체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되는군. 요도 무라마사는 본래 요이한 기운을 품고 있으며 강렬한 음기에 친화도가 높지만 이 은창(銀槍)은 반대야. 성(聖)스러운 힘이 잠재되어 있으며 용살(龍殺)의 흔적이 있다. 음신지력을 사신(邪神)의 힘으로 간주하고 싫어하는 거겠지."
나는 천우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용살?! 이 창으로 용을 죽인 자가 있었다는 건가?"
"용의 저주가 스며있다. 물론 장식품 수준이고 아마 용을 죽였을 때 그 원한이 묻은 거겠지. 용을 잡을 때 이 은창을 쓰면 효과가 좋을 것 같다."
"그럼 내가 음신지력을 더 넣으면 이 창이 각성할까?"
내 질문에 천우진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할 수는 있겠지만 안 하는게 좋을걸."
"왜?"
"비효율적이야. 내가 볼 때 이 창을 각성시키려면 최소한 10년의 음신지력을 소모해야 한다. 네 목표는 음신지력을 빠른 시간에 대성하는 걸텐데 고작 창의 정령 하나 각성시키려고 낭비하는 건 좀..."
"그, 그렇군."
나는 천우진의 말을 듣자 신중해졌다. 확실히 지금은 전생을 하면서 전욱의 동상을 이용해서 음신지력을 쌓아가는 과정인데 아껴도 모자랄 판에 펑펑 쓰면 안되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망량이 말했다.
"하지만 백웅. 음신지력은 쌓이면 쌓일수록 그 힘의 차원이 달라지는 성질이 있는 것 같소. 아마 충분한 음신지력이 모이고 나면 힘을 잃지 않고도 무기의 영령을 각성시키는 게 가능해질 것이오."
"흠."
나는 망량의 말을 듣자 생각했다.
' 그럼 최소한 백 년 정도의 음신지력을 더 모으고 나서 시도해보는 게 좋겠군.'
망량의 계책은 상당히 쓸모가 있었다. 음신지력은 신의 힘이기 때문에 사연있거나 걸출한 명품은 음신지력에 반응해서 정령을 각성하게 된다. 나중에 내가 음신지력을 더 쌓게 된다면 모아둔 명품이나 절세무기의 정령을 각성시켜서 한차원 강한 물건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강화된 물품은 제물로 바쳐질 때도 좀 더 높은 위계의 공물로 대접될 게 분명했다.
나는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그러고보니 칠요에 강대한 대성급 음신지력을 불어넣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으음... 그건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고 밖에 말할 수 없소."
침음성을 흘리던 망량이 말했다.
"그러나, 자폭에 가까운 결과가 될 거라고 예상할 수는 있소. 수요(水曜)의 경우는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칠요가 각각 다른 삼황오제의 힘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서 그런 거요?"
"그렇기도 하고.... 내 생각이지만."
망량이 부채를 부치며 말했다.
"칠요의 정령이 각성할 경우 대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소."
"음?"
"칠요의 정령이라면 격이 다를 것이오. 그 자체로 신령일 것이며, 세계를 부술만한 힘을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되오."
"내 생각도 사형의 생각과 같다."
옆에 있던 천우진이 끼어들었다.
"안 하는 게 좋아."
"......"
"전욱의 경우는 신이라서 자신이 칠요의 힘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넌 그게 아니잖나."
대참사라.
나는 기껏 무기의 영혼을 각성시키는 능력을 목전에 뒀는데도 정작 최강의 무기인 칠요에는 손댈 수 없다 생각하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맛을 다실 때 망량이 말했다.
"그럼 가 봅시다. 괜히 시간을 지체할 일이 아니니."
"알았소."
나는 망량, 천우진과 함께 공양의식을 하러 갔다. 그리고 제물로 은빛 창을 올려놓은 후 깃발을 꽂아서 제단을 만들었고, 잠시 후 천우진이 천신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쿠구궁
천우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라신선을 강신한 상태가 된 것이다. 천우진의 몸에 강신한 존재가 나를 보고 말했다.
[ 태산부군을 부른 자가 그대인가?]
나는 그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당신은 태산부군이십니까?"
[ ......]
잠시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고 침묵이 이어졌다. 끈질긴 침묵 끝에 상대가 말했다.
[ 태산부군이란 직책을 맡고 있으나 태산부군은 존재치 않는다.]
"그럼 당신은..."
[ 나는 북두성군(北斗星君). 태산부군의 직책을 함께 가지고 있다.]
역시!
천우진의 예상대로였다. 투선 북두성군과 남두성군이 실상은 명계출신으로써 태산부군인 척 하고 있으리라는 가정이 맞은 것이다. 나는 시치미를 떼면서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그에게 말했다.
"...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공양물을 바쳤으니 확인해 주십시오. 그리고 명계에 출입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명계의 출입권... 그대가 그것을 원하는가.]
"그렇습니다."
북두성군은 뭔가 마뜩찮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무엇때문에 명계에 가려 하는가? 그저 죽으면 누구든 가는 곳일진대.]
"죽은 후에 알아봤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죽고 나면 어떤 곳에 가는지 직접 알고싶을 뿐입니다."
[ 어리석은 지식욕인가... 흐음...]
그 때였다.
휘리릭
북두성군 옆에 뭔가 희뿌연 형체가 나타났다. 그 형체는 이내 제관을 쓴 존재로 변하더니 북두성군에게 말했다.
[ 북두성군. 알아보니 저 자는 구천현녀의 선검을 쓰고 있다 하여 유명한 자일세. 그리고 얼마 전에는 그 원숭이에게 공양물을 바쳤네.]
[ 뭐라고...? 남두성군, 진실인가?]
[ 내가 왜 거짓을 말하겠는가?]
[ 으음.]
북두성군의 시선에 의심이 섞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 수상쩍구나. 뭘 노리고 천계의 대존재들에게 섣불리 공양을 거듭하는 것인가?]
"수상쩍은 일이 아닙니다. 정 원치 않으신다면 지금이라도 의식을 무르겠습니다."
나는 망량에게 들었던 대로 담백하게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북두성군이 말했다.
[ 과거에도 우리의 힘을 빌려서 염라대왕을 만났던 술법사가 있었지. 그 자는 자신의 수명을 엄청나게 늘려서 지상으로 되돌아왔다... 허나 그 자에게는 납득할만한 실력과 천명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의 수명을 용납했다.]
"......"
[ 네 녀석도 수명을 늘리고자 명계에 가는 것인가?]
"그렇습니다만."
[ 흐흐... 어리석긴. 명계의 출입권은 줄 테니 맘대로 해 보아라.]
화아앗
다음 순간 천우진의 강신이 풀리고 북두성군과 남두성군이 동시에 사라졌다. 옆에서 의식을 지켜보고 있던 망량이 천우진을 부축했고, 내게 말했다.
"어쨌든 의식이 성공했구려."
"이제 북망산으로 가서 명도를 통과합시다."
우리는 북망산으로 이동했다. 북망산 아래쪽에 도착했을 때 천우진이 말했다.
"백웅. 화안금정을 써라."
"알았어."
"가장 색조가 어두운 세계가 명계다."
화르륵
내가 의식해서 화안금정을 발동시키자 나는 왠지 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시선을 이동시키자 같은 풍경의 색깔이 여러가지고 변해 보였고, 나는 그 이면의 세계 중에서 가장 어둡고 음침한 색깔을 골랐다.
' 화안금정은 겹쳐있는 이면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군...'
우우우
화안금정을 통해서 명계에 걸쳐있는 북망산을 보자, 확실히 지형은 그대로지만 여기저기에 저승사자와 법관, 저승무사 따위가 돌아다니는게 두 눈에 보였다. 놀랍게도 북망산에는 저승사자가 떼거지처럼 많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산 정상에 있는 거대한 '문'을 수호하는 걸로 보였는데 저게 아마 저승으로 통하는 명도일 게 분명했다.
내가 뚫어져라 북망산을 보고 있자 천우진이 말했다.
"이제 명계도 쉽게 볼 수 있겠지. 전시안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화안금정은 아마 전생해도 이어질 테니 초반의 선택지가 더 늘어났을 것이다."
"흠... 명계의 출입권을 받았으니 그냥 정면으로 가면 되나?"
"아니... 그건 멍청한 짓이지.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태산부군제를 하는데 그렇게 큰 준비가 필요할 리가 없잖냐."
"그럼?"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보나마나 명계의 출입권은 그저 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권한일 뿐이고, 저 명계의 권속들은 우리가 명계로 가려 하면 막으려 할 게 뻔하지."
"......"
"그리고 저 뻔뻔한 놈들 좀 봐라."
"어디?"
"저승문 바로 앞에 서 있는 놈들."
나는 화안금정의 안력을 크게 돋우어서 저승문 앞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완전무장한 채 서 있는 두 명의 형체를 볼 수 있었다.
"......"
북두성군과 남두성군이다.
나는 놈들의 모습을 보자 기가 막혀서 외쳤다.
"아니 지들이 출입권 줘놓고 왜 직접 막고 있대?!"
"저 놈들이 음흉한 건 지난번 전생에서 서왕모의 앞잡이 노릇할 때 이미 봤던 거 아니었나?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지."
"어떻게 해야하지?"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저 저승권속 떼거지를 힘으로 때려눕히고 진입하던가 아니면 명계행을 포기하던가."
"제길!"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애매하게 명계행을 포기하면 찝찝해서 잠도 못 잘 것 같았다. 내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뭔가 이상하오."
"뭐가 말이오?"
"......"
망량은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렇게 낙양 인근에 명계의 권속이 진을 치고 있는데도 그들은 제갈유룡의 사악한 행위를 모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소. 제갈유룡은 시시때때로 인신공양의식이나 사법(邪法)을 연마했을 터인데."
"흐음..."
"백웅. 이건 중대한 문제요. 어쩌면..."
그 때였다.
위잉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망량은 말하다 말고 시간정지에 걸려서 그대로 굳어버렸고, 천우진은 결계로 시간정지효과를 막아낸 듯 했다.
그리고 근처에서 한 차례 들은 바 있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치챌 건 다 챈 것 같군."
"넌..."
"그럼 내가 좀 시주들을 도와드릴까?"
풀숲 너머에서 시간을 멈추고 표표히 나타난 고대 법의를 입은 승려 -
팔부신중 천인 삼장법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