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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55화 (65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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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제갈사는 내게 이계로 이동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로 한 후 마법으로 한 생물을 소환했다. 나는 그 생물을 보자마자 말했다.

"지난번의 그..."

"그래. 이 놈은 빛보다 수백 수천배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족(異族)이자 마도생물. 단지 인간은 이 놈을 타고 갈 때 몸이 못 견디기 때문에 벌꿀술을 먹어야 해."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이계를 이동하는 방법은 사실 이 놈을 소환할 수 있으면 끝이야. 다른 여러가지 편법이 있으나 모두 하위호환. 이게 가장 안정적이고 편하고 빠른 이동법이지. 대부분의 마도사들은 이 방법을 쓴다."

"이 놈을 소환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어렵지."

그가 실쭉 웃었다.

"마도식이 어렵거나 한 게 아니라 이 놈과 정신파장을 맞추는 게 정말 빡세거든."

"파장?"

"이 놈은 독특해서 '말' 대신에 파장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데 이 파장형태의 의사교감은 전 우주를 통틀어도 극히 희귀한 방식이라서 어지간한 종족은 따라할 수가 없어. 그래서 파장을 이해해서 이 놈과 계약을 맺으려면 진짜로 보통 인간은 평생 노력해도 못 한다."

"......"

정신파장이라고?

나는 눈 앞에 있는 이족생물을 쳐다보았다. 꾸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얌전히 허공에 떠 있는 놈은 언뜻 새처럼 날개가 달렸지만, 동시에 도마뱀같은 비늘이 있었으며, 얼굴은 새나 도마뱀조차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기괴함 그 자체였으며 나는 놈이 파장을 내뿜는걸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모르겠어. 파장을 어떻게 맞추지?"

"흐흐. 소나 돼지한테 사람의 말을 가르치는 거나 다름없어...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 그래서 보통은 마도의 비술을 이용해서 네 녀석의 몸을 저 생물로 변신시킨 후 매일 파장을 공명시키기를 연습한다."

"변신?"

"이런 방식이지."

퍼엉

큰 소리와 함께 제갈사의 몸이 변화했다. 그의 몸에서 어깨까지가 갑자기 이족생물과 똑같이 변했으며, 그 모습은 기괴하고 흉칙했다. 내가 깜짝 놀라자 이족생물처럼 변한 제갈사가 소환된 놈을 길게 응시했고, 지금껏 아무 반응도 없던 생물은 뭔가 화답을 하는 듯 했다.

뀨르르륵

제갈사는 변신을 끝내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나는 이 녀석과 일상대화를 나눴지."

"무슨 대화?"

"배 고프냐고 물었더니 송아지의 생간을 먹고싶다고 하더군."

"......"

이족생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은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족 변신술 자체는 어렵지 않아. 마도각인만 새겨놓으면 쉬워. 하지만 파장의 가짓수가 수십만 개나 되어서 그 중에서 적절한 파장을 찾아내서 저 종족 특유의 '말'으로 얽어내는 게 까다롭지."

"그래서 어려운 건가."

"언어학에는 나름대로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나조차도 이 술수를 터득하는데 일 년 가까이 동안 고련했다고."

제갈사가 일 년 가까이 고생했다면 내게 있어서는 20년이나 3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나는 각오를 다진 채 말했다.

"가르쳐 줘."

퍼엉

나는 제갈사가 가르쳐준 마도각인을 새겨서 이족괴물로 변신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 송아지의 생간을 먹고싶다니깐여. 언제 주는 거에여?]

어라?

나는 변신하자마자 이족괴물이 날개를 팔락거리며 투덜거리듯 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상태에서는 흉측하기 그지없던 모습이 왜인지 귀엽게 보였다.

' 내가 미쳤나?'

왜 이족이 귀엽게 생긴 거 같지?

또한 저 놈이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라는 것도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파장을 내뿜는다고 의식하지 않고 '말'해보았다.

[ 업써 ]

뭔가 조악하긴 하지만 내 의지가 전달된 듯한 느낌이다. 이족괴물도 알아들은 듯 날개를 파닥거리며 대꾸했다.

[ 너무 짠돌이같다 아저씨들. 생간 아니면 심장이나 소대가리 먹고싶네여 ]

[ 송아지 말고 돼지는 안될까?]

[ 전 돼지 싫어해여 ]

[ 알았어 소 갖고올게 ]

뭐지?

엄청나게 대화가 잘 된다. 나는 변신상태로 뒤편으로 날아가서 축사에서 키우던 송아지를 한 마디 데려왔다. 그리고 인간으로 변해서 송아지를 도축한 후 다시 이족으로 변신해서 놈에게 생간과 심장, 머리통을 차례로 내밀었다.

그러자 이족괴물이 크게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 와!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골라주시는구나!]

[ 계약은 어떻게 하는 거야?]

우적우적

이족괴물은 생간을 맛있게 씹어먹더니 대꾸했다.

[ 제 친구 불러드릴게여 ]

파아아앗

잠시 후 옆에 이족괴물과 똑같이 생긴 종족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난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 놈이 암컷이 아니라 수컷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환된 수컷 괴물은 날개를 팔락거리면서 말했다.

[ 송아지 심장 주시면 계약 해드릴게여 ]

[ 알았어 여기 있어 ]

우적우적

수컷 괴물도 맛있게 공양물을 먹어치운 후 갑자기 몸에서 빛을 발했다.

[ 계약했어여 또 봅시다 ]

파아아앗

잠시 후 이족괴물은 두 마리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진심으로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뭐, 뭣?! 즉석에서 바로 계약했다고...? 저 어려운 족속들을..."

"어?"

그가 당혹한 듯 내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백웅. 저 이족의 말과 파장을 알고 있었나?"

"알 리가 없잖아. 그냥 변신하니까 들렸어."

"말도 그냥 나오는대로 한 거고?"

"응. 뭔가 잘못된 건가."

내가 솔직히 대답한 후 머리를 긁적이자 제갈사는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갈사가 저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한참동안 침묵하고 있던 제갈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네 녀석은 마도(魔道)를 추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실실 웃었다.

"헤헷, 나도 쫌 재능이 있는 분야가 있는건가?"

"야..."

제갈사는 잠시동안 엄청난 개소리를 들은 듯 썩은 표정을 지었다. 차마 욕만 못할 뿐인 표정이라서 나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

제갈사가 약간 화가 난 게 느껴졌다.

' 또 내가 말 실수 했나?'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표정을 풀었다.

"... 멍청한 놈. 그 정도라면 재능 수준을 넘었어. 유사 이래 그 어떤 인간 마도사도 너보다 빠르게 이족의 말을 배우진 못했다. 마왕 시몬 마구스도 서방 영지주의의 종주이자 연금술의 신 헤르메스의 제자였으며 신령을 기만한 천재마도사였지만 너보다 빨리는 못 배웠어."

"재능이라 할 수 없다고?"

"천품(天品)이 아닐까 싶군. 후... 네가 뭔 차인지 깨닫지 못하는게 다행일지도."

광기가 제어된 채 허탈하게 말하는 제갈사의 눈에는 의혹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무튼 즉석에서 소환술 습득이 끝나버릴줄은 몰랐군. 그럼 소환술법을 발동하는 방법과, 벌꿀술을 제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마."

"그것도 어려운 건가?"

"쉬워. 말했듯이 저 놈들과 파장을 맞추는게 더럽게 어려울 뿐 나머지는 다 범재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거니까..."

제갈사의 말대로였다. 나는 하루만에 그 방법을 다 배울 수 있었고, 몇 번 연습함으로써 내 것으로 완전히 만들 수가 있었다. 수십 년을 각오했던 수련이 한순간에 끝나버리자 나는 크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제갈사! 그럼 내가 마도를 연마하면 지금보다 수십 배는 빨리 강해질 수 있는 거겠지?"

제갈사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왜 회의적이야?"

"내가 네 기억을 보기로, 지금까지 이족과의 의사소통에는 엄청난 재능을 보였지만 정작 나와 연금술이나 마도비술을 수련할 때는 진도가 범재 그 자체였지. 마술(魔術)이나 각인술은 하나도 못 하고."

"......"

"뭐, 이걸로 이족의 소환계약에는 절대적인 재능을 지닌 걸 알게 됐으니 네 수련법도 확고해졌군. 앞으로는 소환술 위주로 수련하면 돼."

"음 그런가."

"네 재능은 굉장히 편중되어 있다. 마치..."

뭔가 말하려던 제갈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말했다.

"아무튼 마도 또한 술법과 마찬가지로 높은 단계로 가려면 많은 수양이 필요하다. 만만하게 여기지 말고 꾸준히 습득하는 게 중요해."

"알았어."

나는 제갈사에서 사나흘 동안 추가로 수련을 더 받았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다 생각하자 제갈사에게 질문했다.

"제갈사. 이제 이계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계가 몇 개나 있는 거야?"

"이계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내가 설명했었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리적인 이계와 개념적인 이계가 있다고 했잖아."

"그래. 그게 중요한 거지."

제갈사는 몸을 편하게 뒤로 뉘이며 말을 이었다.

"물리적인 이계라는 건 쉽게 말하자면 인류문명의 기술력이 발달하면 물리적인 방법으로 어떻게든 갈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마차를 타고 다른 도시에 도착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물론 그 거리가 최소한 10광년을 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거리이며 그렇기에 이계라고 부르는 거다. 이 물리적인 이계에는 외계의 성단(星團)이나 외행성, 외은하 등이 포함된다."

"흠... 선지자 놈도 물리적인 이계에 사는 건가?"

"그렇겠지. 그 종족은 최소한 여기서 수백만 광년 떨어진 곳에 살 거다."

제갈사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개념적인 이계는 이것과는 다르지. 설령 눈깜박할 사이에 수십만 광년을 이동하는 우주선에 탄다고 하더라도 개념적 이계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차원(次元)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특수한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어. 몽계(夢界)나 혈계(血界)같은 건 모두 여기에 속하지."

거기까지 설명한 제갈사가 손깍지를 꼈다.

"9할에 속하는 대부분의 이족은 물리적인 이계에 거주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그 놈들은 외계인이고 우리는 지구인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고위 이족일수록 개념적 이계에 거주하고 있고, 삼황오제쯤 되면 물리적 방법으로는 아예 그 거취를 찾을 수도 없어."

"이해했어."

"네가 습득한 벌꿀술의 이동술법은 물리적 이계라면 대부분 갈 수 있지만 개념적 이계는 갈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손에 얻은 건 물리적 이계의 탐색권이라고 할 수 있다."

"개념적 이계는 갈 수 없는 거군."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그리 실망할 일도 아니야. 개념적 이계는 그 숫자가 아주 적어서 웬만한 마도서에 모두 그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고위 이족의 은신처이거나 신족의 터전인 경우가 많겠지만... 어차피 네 녀석은 시간이 썩어나니까 나중에 하나하나 찾아가면 돼."

"......"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 내가 제일 먼저 찾아봐야 하는 건 항우의 애첩인 우희야. 우희가 있을 거라고 제일 의심되는 장소는 일단 명계(冥界)인데..."

제갈사가 대꾸했다.

"명계는 개념적 이계에 속하지. 술법을 써서 찾아가려면 너무 번거롭고 위험해. 하지만 물리적으로 찾아갈 방법이 없진 않아."

"뭐?"

나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명계가 사실 물질세계에 있단 소리야?"

"정확히는 거기로 향하는 특수한 통로가 있다고 들었다. 그건 아마 천우진이 잘 알 거다."

"불러야겠군."

나는 잠시 후 망량과 천우진을 모두 불러와서 내가 소환술을 습득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망량이든 천우진이든 왜인지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천우진이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를 듣고는 말했다.

"이 세상의 영혼들이 죽고 난 후 명계로 향하게 되는 길인 명도(冥道)가 있다. 그 명도가 열리는 시기를 맞추면 명계로 갈 수 있다. 가장 커다란 명도는 낙양 인근에 있는 북망산(北邙山)이다."

"그런 게 있었군... 그럼 북망산의 명도를 통해서 명계로 가자!"

내가 호쾌하게 외치자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 그리고 그 명도에는 저승사자와 저승의 법관, 장수 등이 한 시도 쉬지 않고 포진해 있지. 놈들 중에는 대라신선급 존재도 심심치 않게 섞여 있는데 참 잘도 생자로써 들어갈 수 있겠군."

"......"

"항우나 제천대성쯤 되면 그놈들을 힘으로 무찌르고 명계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런 짓은 힘이 남아도는 변태들이나 하는 거다. 정상적으로 들어가려면 태산부군(泰山府君)의 허가를 얻어서 명계에 진입해야겠지."

"태산부군?"

"태산을 관장하는 대라신선이자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존재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놈이 어딨어?! 그런 놈이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전생에서 태산에서 봉선의식이 일어나고 난리를 치는데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잖아."

"그건 나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다만 내가 추측하기로는...."

천우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태산부군은 형식상의 직함이고 그 권능을 가진 존재가 따로 있을거라 본다. 천계에서 일부러 전승을 왜곡시키는 일은 심심찮게 있으니까. 하물며 명계처럼 민감한 사안이면 인간술법사들이 멋대로 명계를 돌아다닐 수 없게 통제하려 했겠지."

"그게 누군데?"

"천계에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놈은 딱 두 놈 있지 않냐?"

그 말을 듣자 나는 퍼뜩 생각이 났다. 내가 침묵하자 천우진이 말했다.

"투선(鬪仙) 남두성군과 북두성군. 그 놈들이 아마 진짜 태산부군일 것이고, 명계의 출입권을 갖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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