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53화 (65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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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항우의 말에 나는 흐름이 순탄하게 내 쪽으로 불어온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은 왠지 뭘 해도 될 것 같은 날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올바른 선택이 연속되자 운명이 내 손을 들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약간 자신감을 갖고는 항우에게 말했다.

"저에게 성좌의 힘을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부하로써 그 힘을 휘둘러보고 싶습니다."

성좌의 힘!

그것은 신선들조차 경외하는 강대한 천상의 대력으로써 [옛 지배자]의 권능에 가까운 힘이었다. 그 힘을 내가 손에 넣는다면 전생과정이 크게 단축될 수 있으리라.

"......"

항우는 이번에야말로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가 중얼거렸다.

"안될 건 없지만 내게 어떤 대가를 줄 셈이냐."

됐다!

완전히 거절했다면 방법이 없었겠지만 항우는 조건부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 셈이다. 내가 뭘 공양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제천대성이 말했다.

"내 일은 아니다만 너 정말 괜찮겠냐?"

"네?"

"그..."

제천대성이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니다."

"......?"

뭔가 찝찝한 반응이었다. 그건 아마 제천대성의 호감도가 약간 내려가고 그가 내게 조금 의심을 품었기에 대답을 해주려다 만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일부러 경고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으므로 나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 뭐지? 뭐가 문제지?'

항우가 지닌 성좌의 힘을 빌리면 뭔가 문제가 생기는 건가?

내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항우가 말했다.

"네가 어떤 공양물을 생각하고 있든 솔직히 본왕에게는 그리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와서 이 곳에서 뭔가 더 이룰만한 생각도 의미도 없으니까..."

"무슨 그런 말씀을."

"사실이다. 난 더 이상 뭔가 더 하고싶은 게 없다."

항우의 얼굴은 극히 권태로워보였다. 그는 진심으로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저 강력한 힘을 가지고도 세상에 관여하는 걸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허나 네가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준다면 조건을 크게 완화해 줄 생각이 있다. 성좌의 힘을 전해받을만한 단말을 직접 이어주지."

"어떤 부탁입니까? 반드시 해 내겠습니다."

성좌의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수단방법 가릴 이유가 없다. 내가 들뜬 기색으로 항우를 바라보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희(姬)의 영혼을 찾아와서 내게 데려와 다오."

"... 네?"

"본왕은 두 번 말하지 않는다."

항우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항우가 말하는 희라는 인물은 내가 알기로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희(虞姬)!

우미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전설의 초한지 기록에서 항우의 유일한 연인이자 애첩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녀로 인해 사면초가 라는 성어가 생길 정도로 유명한 존재였기에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당시 천하제일의 미녀로 이름높았으며 서역 출신이라는 소문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떻게?

' 죽은지 천 년이 훨씬 넘었어! 환생을 했어도 진작 했을거고... 게다가 도대체 무슨 수로 천계의 항우가 있는 구선산의 궁궐까지 다시 데려오지?'

제천대성의 도움을 받아도 여기까지 조심스럽게 오는게 꽤 힘들었다. 그런데 우희의 영을 데리고 안 들키게 온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인게 분명하다. 아니 애초에 천 년 전의 영혼을 찾아낸다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나는 당황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단서가 너무 없는데 뭔가 도움이 될만한 건..."

"성격이 시원시원한 줄 알았더니 별로군."

"......"

핀잔을 준 항우가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내 천괴성(天魁星)의 힘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 그걸 찾아보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항우는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물어볼 게 있는데."

"네."

"여와를 왜 죽이고 싶은거지?"

한 순간에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쏠렸다. 제천대성도 내 대답을 듣고 싶은 듯 눈을 반짝이는 걸로 봐서는 피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나는 크게 망설이다가 나중에 제천대성한테 계속 질문당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그녀가 천계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서왕모가 천계에서 큰 권력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옥황상제와 삼청의 이야기를 무시하지는 못한다고 들었다. 게다가 설령 여와가 서왕모를 내세워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 해도 그게 그녀를 죽이고 싶어할만한 일인가? 인간과는 상관없지 않나?"

"......"

나는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그녀가 천계를 기망(欺罔)함으로써 피해를 보는 게 천계 신선뿐이라면 상관 없겠지요. 하지만 미래에 그녀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인간을 파멸시키는 걸 관망하고있을 뿐이라면, 그게 과연 옳은 일이겠습니까?"

"흐음."

"제게 힘은 없으나 그게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여 그녀를 쓰러뜨리고 싶은 겁니다. 그녀가 고의적으로 인간이 살아남을 기회를 없애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항우가 비직 비웃음을 흘렸다.

"지금 넌 하위투선한테도 못 이길텐데 꿈만 크군."

"윽..."

"알았다. 본왕은 더 이상 캐묻지 않을테니 이만 돌아가도 좋다."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만일 제가 공양의식으로 뵙고자 한다면 나와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항우가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공양의식이란 공적인 의식이라 천계 고위존재에게 모든 대화내용과 동향이 알려진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공양의식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

"아..."

아무래도 예전에 항우를 불렀던 건 운이 좋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항우를 예고없이 지정소환하려 해도 성공확률이 불확실할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네가 만일 공양의식으로 우희의 일을 언급하거나 한다면 난 널 때려죽일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구선산을 다시 찾아와라. 임무를 성공시킨다면 보상은 확실히 해 줄테니."

대화가 끝난 후 나는 제천대성과 함께 항우의 궁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구선산을 나가기 전, 제천대성이 내게 말했다.

"어이. 거기 앉아 봐."

올 게 온 건가? 나는 긴장하며 바위에 앉았다.

제천대성은 자신의 귀밑머리를 긁적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말했다.

"넌 왠지 '종말'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야... 결국 네 목표도 종말을 막는 거냐? 그리고 삼황오제가 그 종말을 막을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

"야, 너무 긴장하지 마. 이 자리에서 널 죽일 생각은 없어."

긴장을 풀어준답시고 한 말이었지만 나는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제천대성이 보기보다 훨씬 머리가 좋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항우와 몇 마디 말을 나눈 것에서 바로 내 목표를 추론해 낸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종말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 역시. 칠요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 때문이군.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으니 칠요를 해방시켜서 인간 이상의 힘을 얻겠다는 거겠지?"

"... 뭐, 그렇습니다."

"대충 감이 잡히는군..."

제천대성은 팔짱을 끼고 뭔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난 백웅 네 녀석이 꽤 맘에 들고 동생처럼 여기고 있다만... 그래도 네가 칠요를 모으려 하면 널 죽일 거다. 죽이진 않아도 어디 봉인해둘 수도 있어."

단호한 말투였다. 그는 장난스러운 성격이지만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지도 않고 양보하지도 않았다. 나는 익히 알고 있었던 성향을 재확인했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제천대성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뭐. 너처럼 세계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 인간도 드물거라고 생각해. 사실 서왕모는 나도 의심은 하고 있었는데 여와까지는 생각이 닿이지 않았거든? 네 말을 듣고보니까 꽤 그럴듯했다구.'

"......"

"그래서 말인데, 네 녀석 등선(登仙)을 노려보는건 어떻냐?"

"등선이요?"

뜬금없는 말에 내가 반문하자 제천대성이 히죽 웃었다.

"네 생각대로 인간으로써 얻을 수 있는 힘은 한계가 있어. 그럼 신선이 되어서 영혼의 격을 한단계 올리면서 힘도 올리는 편이 낫지. 네가 만일 신선이 되고자 한다면 내가 아낌없이 도와주마."

"하지만 제천대성 님이나 항우 님은 딱히 신선이 되기 전후로 힘에 변동이 없는데..."

"뭐 그렇긴 하지만 내 경우는 천계 신선으로 임명되면서 추가적으로 몇 가지 능력이 더 생겼어. 나쁘다고만은 생각 안 해. 네가 신선이 되면 지금보다 적어도 두 배는 강해질 거라고 확신해."

제천대성이 내 등을 팡팡 쳤다.

"생각 좀 해 봐. 알았어?"

"네."

"마음이 끌리면 여의봉에 있는 허유를 통해서 내게 연락해라."

제천대성이 신선이 되는 걸 도와준다 -

새로운 제안에 흥미가 생기는 걸 느꼈다. 그러고보니 신선이 되어도 내 전생능력은 여전히 작동할까? 그리고 작동한다면 신선의 힘을 고스란히 가진 채 전생하는 게 가능할까?

' 시험해 볼 가치는 있겠어.'

내가 여의봉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제천대성이 말했다.

"아, 그리고."

그가 문득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구천현녀가 너한테 꽤 열받아 있는 것 같던데 그 일은 내게 맡겨둬. 사정설명을 해 둘테니 당분간 그녀가 네게 해꼬지하는 일은 없을 거야."

"......"

"그럼 슬슬 지상으로 데려다주마. 천계에 너무 오래 있으면 네게 부작용이 올 수도 있으니."

파앗

나는 오래지 않아 근두운을 타고 다시 천계 뒷문으로 왔고, 뒷문을 통해서 천계를 빠져나갔다. 지상에서 나는 제천대성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흐흐, 뭘. 만일 삼장법사란 놈이 다시 시비 걸어오면 나한테 연락해라. 때려잡아주마."

"알겠습니다."

나는 제천대성과 헤어진 후 남쪽 대륙으로 곧장 향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은봉황을 이용해서 제천대성과의 교섭에서 겪었던 일을 모두 보여주었다. 기억의 공유가 끝난 후 망량이 말했다.

"백웅, 대단하구려. 설마 그 상황에서 항우를 만나려 하다니..."

그가 탄식하듯 말했다.

"나라면 그 선택지를 떠올릴 수는 있을지언정 선택할 배짱이 없었을 것이오. 대단한 직감과 용기구려."

"하핫."

내가 기분이 좋아져서 웃고 있자 제갈사가 말했다.

"이래저래 암천향에 도전하기 아까운 상황이 계속되는군. 원래는 암천향에 대충 꼴아박아서 단서나 얻을 작정이었는데 뭘 자꾸 얻어오는구만, 우리 주군."

"뭐 나쁜 일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된 거 항우의 의뢰를 일단 수행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지금 당장 전국옥새를 이용해서 우희의 영혼을 찾아 봐."

"알았어."

우웅 -

나는 전국옥새를 발동시켜서 정령을 통해 우희의 영혼을 검색했다. 그러자 전국옥새의 정령이 빛을 발하면서 말했다.

[ 우희의 영혼의 검색결과는 0건입니다.]

"또야? 쳇... 이 세상엔 없다 이거지?"

나는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전국옥새는 다 좋은데 이 세상에 있는 것밖에 검색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검색결과를 책사들에게 말해주자 망량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백웅. 다시 전국옥새를 켜시오."

"응?"

"천괴성의 기운으로 검색해보는 게 어떨까 싶소."

나는 망량의 말대로 해 보았다. 그러자 뜻밖에도 전국옥새의 정령이 말했다.

[ 천괴성의 기운 검색결과는 총 129건이 있습니다.]

"어?! 뭐 그렇게 많아."

[ 검색결과를 보시겠습니까?]

"보여줘."

파앗

잠시 후 세상의 전면을 펼친 듯한 거대한 전도가 눈 앞에 나타났다. 그 전도는 마치 이 세상의 대양과 대륙을 모두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도 여기저기에서 수백 개의 흔적이 붉은 빛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그 중 가장 커 보이는 걸 선택해서 눌렀는데, 그러자 전국옥새가 그 주변을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우웅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고성(古城)의 옛 터가 보였다. 나는 그 위치를 잘 살펴보았지만 뭔가 그럴듯한 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해서 말했다.

"기운을 검색하면 그게 머물렀던 장소를 보여주는 거냐?"

[ 그렇습니다. 강한 성좌의 기운이 머물렀던 자취를 좇아서 보여드리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인물도 함께 검색합니다.]

"인물이라... 천괴성의 힘을 가진 인간을 보여줘!"

[ 총 14건이 있습니다.]

파바밧

14개의 서로 다른 창이 떴다. 창 하나하나에는 남녀노소,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간들이 비춰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게도 별로 특이한 능력자같지 않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보였다. 나는 의아해서 중얼거렸다.

"성좌의 힘을 가진 거 맞아? 별로 세 보이지 않는데."

[ 성좌의 기운 보유량은 모두 극미(極微)합니다.]

"어느정도 수준 이상 가지고 있어야 대단한 위력을 보인다는 건가?"

[ 그렇습니다.]

성좌의 기운을 가진 인간은 드물지 않으나, 초인적인 위력을 보일 정도로 가진 인간이 드문 듯 했다. 이 정도라면 현재 천괴성을 타고났다고 자처할 만한 인간은 전 세계에 한 명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전국옥새를 닫고는 망량에게 검색결과를 말해줬다.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아마 그 고성은 예전에 사면초가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일 것이오."

"항우가 유방의 대군에 포위당해 있었던 성 말이오?"

"그렇소. 우희의 자취가 가장 크게 남아있으며 중원에 있는 고성이라면 거기밖에 없소. 우선 그 곳으로 가서 천신경의 술수를 써 보시오."

그가 무겁게 말했다.

"그것도 안 된다면 최후의 방법을 써야겠지."

최후의 방법 -

그것은 아마 명계로 직접 넘어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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