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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51화 (65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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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여의봉!

이게 정말 여의봉이라면 제천대성 투전승불 미후왕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보패가 아닌가? 게다가 전생하면서 그가 여의봉으로 해냈던 파괴행위를 생각하니 섬찟하기까지 했다.

' 칠요에 버금가는 최상위 전투보패...!!'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바닥만한 크기의 여의봉을 받아들었다. 여의봉은 내 손바닥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었는데 마치 장난감 같았다. 내가 물끄러미 여의봉을 보고 있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여의봉은 원래 천하정저신진철(天河定底神珍鐵)이라고 부른다."

"그게 뭡니까?"

"세상의 크기를 재는 물건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내 손에 들어왔지."

"으음... 손바닥만한데 이걸 어떻게 쓸 수 있습니까?"

"늘어나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해 봐. 반대도 마찬가지."

나는 제천대성의 말대로 했다.

주우우욱

"오오..."

늘어나라고 생각하자마자 여의봉이 거기에 반응해서 두께와 길이가 더욱 커졌다. 순식간에 내가 들어서 봉(棒)으로 쓸만한 길이가 되자 생각을 멈추었고, 여의봉이 온전히 내 손에 들어왔다.

쿠궁

"윽."

하지만 그 순간 무게가 확 무거워지면서 내 한쪽 팔에 강한 압력이 닥쳐왔다. 결코 일개 봉의 무게가 아니었으며 차라리 거대한 바위를 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내공을 모아서 여의봉의 무게를 버텨내자 제천대성이 낄낄 웃었다.

"하하하! 인간이 들기엔 쫌 무겁지? 내가 말을 안 했네."

아무래도 일부러 날 골탕먹이려고 말 안 한 듯 싶었다. 제천대성이 장난끼 많은 성격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크기와 길이에 비례해서 무거워지는 겁니까?"

"정답! 지금은 대략 일만 근 정도 무게 아닐까나?"

그 정도만 해도 크기가 2장에 이르는 거암(巨巖)을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제천대성의 말에 기가 막혀서 말했다.

"이, 이런 걸 어떻게 사람이 무기로 씁니까!"

"왜, 싫어? 무거우니까 남들이 잘 못 훔쳐가는 장점이 있는데..."

"......"

"농담이야."

나라면 내공과 의념의 힘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써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무게에서 한 10배만 무거워져도 제대로 휘두를 자신이 없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내공을 보유한 나조차도 이렇게 쓰기 힘들다면 병기로서의 효용가치를 의심해봐야 하는 수준이다! 무거운 만큼 파괴력은 절륜하겠지만 초고수들의 전투에서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넌 인간이니까 여의봉의 정령에게 인정받아야겠지."

"여의봉의 정령?"

"동해용왕 오광이 여의봉을 쉽게 보관하려고 태상노군의 도움을 받았지. 놈은 여의봉에 봉신전쟁 때의 죄인을 유폐했다. 그 놈이 인정해주면 너도 여의봉을 이쑤시개처럼 가볍게 휘두를 수 있을 거다."

휘익

제천대성이 손을 휘두르자, 갑자기 여의봉에서 금빛 광채가 뿜어져나오더니 웬 아름다운 동녀(童女)의 모습이 나타났다. 티끌 하나 없는 백옥같은 피부, 푸른빛 머리카락에 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서 이질적인 외모였다. 그 여자아이는 제천대성을 보더니 말했다.

[ 야만원숭이. 또 무슨 잡짓을 하려고 날 불렀느냐?]

"허유(許由). 툴툴거리지 말고 이 인간한테 잠시 힘을 빌려줘라. 기특한 놈이니까 잘 돌봐줘."

[ 음...?]

허유라고 불린 청발(靑髮)의 동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 알았다. 너처럼 욕심많은 원숭이가 자기걸 남한테 빌려주다니 별일이구나.]

"꼭 한마디씩 덧붙이는 거 봐."

쉬이익

여의봉의 정령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단숨에 여의봉의 무게가 크게 줄어드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여의봉의 정령이 본디 어마어마한 무게를 가진 여의봉을 조종해서 가볍게 만든 것이리라. 나는 신기함을 느끼며 제천대성에게 말했다.

"이렇게 강력한 보패를 빌려주시다니..."

"크하하. 내가 살면서 인간한테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은 건 처음이거든. 감동했어!"

제천대성은 호탕하게 웃더니 말했다.

"간만에 사바세상에 나왔는데 밥이나 좀 먹고 갈까?"

"제가 한 턱 쏘겠습니다."

"크하하."

나는 제천대성을 데리고 근처에서 가장 큰 주루로 갔다. 물론 나는 역용술을 더 꼼꼼히 했고, 제천대성은 말해봤자 입아플 정도로 변신술에 능한 자였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는 온갖 주루의 특급 별실에서 산해진미를 시키면서 그에게 술을 대접했다.

"어이~ 너 인간치곤 참~ 괜찮은 놈이구나~"

"아이구 잘 봐주십쇼~"

내가 열심히 손바닥을 비비면서 제천대성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자 그가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한껏 들떴는지 말했다.

"아까부터 뭐 하고싶은 말 있는거 같았는데 해 봐!"

"괜찮습니까?"

"고럼고럼~ 오늘 나는 백 년 내 가장 기분이 좋다구!"

"두 가지가 있는데..."

"말해봐~"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먼저... 칠요란 걸 다 모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혹시 아십니까?"

"... 흐음?"

순간적으로 빨개져있는 제천대성의 얼굴에 날카로운 빛이 감돌았다. 그가 태세를 바꾸기 전에 나는 급히 말을 이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제 동료들이 빨리 강해지려면 칠요란 걸 모으는 게 좋다고 하는데 막상 그걸 다 모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모르거든요... 마침 여의봉도 얻었겠디 귀찮은 짓은 더 하고싶지 않아서... 권력 잡는데는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아무렇게나 주절주절거리고 있자 제천대성의 눈빛이 약간 풀어졌다.

"어... 너는 인간세상의 황제가 되고 싶냐?"

"되면 좋겠죠."

"히히힛."

제천대성은 내가 황제가 되고싶다고 착각한듯 낄낄 웃더니 말했다.

"네 동료들한테 한마디 해줘. 어설프게 아는건 모르는것만 못하다고 말이야. 그리고 기껏 인간제국의 황제 정도는 칠요가 없어도 쉬운 일이니까 관둬. 무슨 그딴 일에 칠요씩이나..."

"칠요에 대해서 뭔가 알고 계신 겁니까?"

"알다마다... 내가 천계에 몸담고 있는게 그 빌어먹을 칠요 때문이니까..."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뻘소리는 그만하고 술이나 더 마실..."

"아 그러고보니!"

나는 막 기억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얘기했다.

"삼장법사란 자가 찾아와서 제천대성께 이야기를 전하라고 하던데요?"

"뭐?"

나는 삼장법사가 찾아와서 했던 얘기의 전말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제천대성이 얼굴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 개자식. 이제 와서 칠요의 진실 운운한다고? 위치만 알면 가서 쳐죽여버릴텐데."

"......"

"삼장 놈이 직접 찾아왔다면 이제 너도 고대의 인과율에서 무관하지 않겠군."

나를 힐끔 쳐다본 제천대성이 말했다.

"야... 내가 말하는 거 어디 가서 절대 말 안한다고 약속하면 몇가지 말해줄 순 있는데 말이야?"

나는 부리나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좋아좋아. 뭐 알려져봤자 난 괜찮고 너만 신선한테 맞아죽을테니까 그건 미리 알아둬."

"......"

태연하게 엄청난 소리를 한 제천대성이 말했다.

"칠요는 종말의 열쇠야."

"종말의 열쇠라구요?"

"동서양을 불문하고 암묵적으로 그 사실이 전해지고 있지. 칠요가 다 모여서 해방되면 전대미문의 재앙이 일어날 것이고, 그건 그 어느 때보다 참혹하겠지. 칠요의 힘에 혹해서 그걸 모으려 들면 이 세상은 망해."

"음... 어떤 재앙입니까?"

"열쇠란 게 뭐야? 어디에 쓰는 거지?"

나는 제천대성의 반문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야 문을 여는 거죠."

"그래 맞아. 문을 여는 게 열쇠지. [문]이 열리는 게 바로 재앙이야."

"......?"

"모든 칠요의 계약에는 삼황오제의 '짝'이 있지. 짝이 있는 이유는 고대에 삼황오제가 견제할만 했던 강력한 [옛 지배자]를 하나씩 점해서 계약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종말의 유예에 동의하면서도 유사시에는 우선권을 얻게 된다."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제천대성이 말했다.

"뭐 쉽게 얘기하자면 칠요가 다 해방되면 세상이 망해. 그래서 안되는 거야."

그의 말은 지금까지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아서 말했다.

"하지만 한두 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칠요가 봉인이라고 치면 7개나 있는데 한두개 쯤은..."

제천대성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니 몸에 장기가 그렇게 많은데 한두개 정도만 떼 가도 되냐? 콩팥이나 위장 좀 가져가도 되지? 7개씩이나 떼는게 아니라서 바로 죽지는 않을 건데 괜찮은 거 아냐?"

"......"

"술 맛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마."

"아, 예에..."

제천대성한테 핀잔을 듣자 다소 궁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제천대성과 가까워져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므로, 나는 반 시진동안 다시 비위를 맞춰주고 같이 술을 먹다가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신기(神氣)를 크게 잃고 힘을 회복중인 대라신선이 있다면 그 힘을 회복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어디일까요?"

"응? 웬 뜬금없는 질문이냐?"

"아 아는 대라신선 중 하나가 지금 아파서..."

"너 대라신선을 무슨 뒷집 아저씨처럼 얘기한다?"

황당해하던 제천대성이 말했다.

"뭐 됐고. 그런 장소라면 내가 제공해줄 수 있지."

"그게 어디입니까?"

그가 씨익 웃었다.

"천계 뒷문! 내가 지키는 곳이지만 너라면 특별히 거기서 쉴 수 있게 해주지. 천계보다 더 영력이 충만한 곳은 없으니까."

"... 고맙습니다!"

나는 세 시진 후 제천대성과 주연을 파하고는 그와 함께 근두운으로 이동했다.

파앗!

나는 제천대성이 이윽고 천계의 뒷문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술법으로 문을 열자 같이 들어갔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선계의 비경(秘景)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강력한 선기(仙氣)에 감탄했다.

' 과연...'

제천대성이 말했다.

"그 대라신선이란 놈 데려와 봐. 여긴 내 순찰지역이니까 편히 쉴 수 있게 해주지."

"네, 그럼."

우웅

나는 목갑에서 화룡신검을 꺼내었다. 그러자 제천대성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화룡신검을 쳐다보다가 이내 화들짝 놀랐다.

"에, 에에엥?! 그거 화룡신검 아니야?! 이건 뭔...!!"

그가 이내 경악해서 외쳤다.

"니가 말한 대라신선이 화룡진인이여?!"

"이 신검에 화룡진인께서 잠들어 있으신데 너무 힘이 소모되신 것 같아서..."

"아, 아니 그게, 음, 화룡진인은 그... 응룡의 화신... 끙..."

제천대성은 혼란스러워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에라이 씨! 내가 사고 한두 번 치나. 알았으니까 화룡신검을 저 신령한 산꼭대기에 꽂아. 다른 놈들이 화룡진인에게 해꼬지할 수 없게 보호해 주지."

"고맙습니다, 형님."

"나는 니 형님이 아닙니다. 제기랄."

제천대성이 투덜거렸다.

우우웅 -

그러자 화룡신검이 영기를 엄청난 속도로 빨아들이면서 회복하는게 육안으로 보였다. 인간세상에 있을 때의 자연회복속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선계의 기운이 지상보다 수십배는 충만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내심 망량의 계책에 감탄했다.

' 제천대성을 꼬셔서 화룡신검을 빨리 회복시키자는 계책이 적중했군...'

저 정도로 영기를 빨아들인다면 길어도 한 두 달 내에 화룡진인의 힘이 회복될 것이다! 내가 내심 싱글벙글하고 있을 때 제천대성이 말했다.

"너 멍청한 면상을 해갖고는 진짜 무서운 놈이구나. 능구렁이같아."

"네?! 아닌데..."

"참나, 그래도 기분 나쁘진 않아."

제천대성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기왕 호구가 된거 좀 더 호구가 되어볼까! 진짜 마지막 부탁 없어?"

"......"

제천대성, 너무 인심 좋은거 아니냐?!

나는 그의 제안에 놀랐다. 이렇게 호쾌한 성정일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책사들도 예상치 못한 영역이었기에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려 있었다. 이미 칠요의 정보를 얻는 일과 가호를 얻는 일, 화룡신검 회복까지 다 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말했다.

"... 그, 그럼 항우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항우... 라고라."

"네."

"어찌 된 게 들어주기 힘든 것만 골라서 부탁하는군."

곰곰히 생각하던 제천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근두운에 타라!"

"진짜요?!"

"천계에서도 가장 변두리이고 시시때때로 투선이 순찰하는 동네지만 뭐 나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

됐다!

나는 내심 뛸듯이 기뻤다.

제천대성의 변덕스러운 호의 덕분에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고 제대로 얘기해본 적도 없었던 서초패왕 항우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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