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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46화 (64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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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백련교주는 이미 우리가 어떤 무공을 갖고 있는지 파악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전생경험으로 얻어낸 칠대절학과 팔선신공, 그리고 뇌신류 절예 전반일 것이다.

구체적인 이름은 모를테지만 여기까지 진심을 다한 초수를 나누었다면 어떤 성격을 가진 무공인지는 대충 파악했으리라.

하지만 백련교주에게 복종은 결코 할 수 없는 선택이다. 백련교주는 당연히 우리 모두를 제압해서 일단 조사할 것이고, 그 와중에 예전처럼 보패와 마도구를 모두 빼앗길 확률이 컸다.

게다가 정말로 교주에게 내가 가진 무공을 다 전해준다면 예전처럼 참극이 또다시 일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방금 전 질문해서 확인했다.

' 백련교주 스스로를 개심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돼.'

늘 백련교주에게도 흑요석이나 기억전송을 할까말까 하다가 하지 않게 되는 건 그런 이유였다. 백련교주는 자신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취해 있으며 그걸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 그의 주관이 바뀌지 않는 한 결코 동료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 기억을 준다고 한들 자기 마음대로 할 게 뻔했기에!

나는 백련교주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려 했지만 그 때 검마가 입을 열었다.

"교주!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 생각할 시간이라... 그러긴 힘들군. 그대만한 실력자들이 이 자리를 벗어나면 이후에 내 힘으로 억누르긴 힘들다.]

어리광을 부리는 듯 했으나 놓아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러자 검마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많은 시간을 달라는 게 아니오. 반 시진만 생각할 여유를 주시오."

[ 안 된다.]

"정말로 끝장을 보려고 하시오? 우리가 죽을힘을 다 한다면 당신도 몸 성할 수는 없을 거요."

[ 그대들은 나에 대해 다 알고 찾아온 것 같지만 나는 달리 아는 게 없지. 이 상황에서 그대들이 의견을 나눌 시간까지 넉넉히 주란 말인가? 염치없군.]

스으으

교주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저게 호법사자까지 참전시키려는 표시라는 걸 깨달은 검마가 급히 외쳤다.

"잠깐..."

틀렸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이렇게 된 이상... 이번 생은 버릴 수밖에!'

교주에 호법사자까지 합공하면 절대 살아나갈 수가 없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으나 지금이라도 풀어낼 방법은 있다. 바로 내가 삶을 포기하고 대라멸진을 써서 교주에게 한 방 먹이는 것이다. 나는 반드시 죽겠지만 교주도 아마 죽을 것이다.

그 때였다.

후우웅

한 줄기 광풍(狂風)이 장내에 밀어닥치는 듯 했다. 그 광풍 속에서 수백 줄기의 빛이 풍랑을 따라 쏟아져 내려왔는데, 그 공격은 명백히 교주를 노리고 있었다. 교주는 심천무량을 발동해서 기습공격을 걷어냈으나 공격의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바람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더니 이윽고 호법사자들이 서 있는 장소까지 휩쓸어버리는 게 아닌가?

[ 이건...]

교주가 자신의 힘을 크게 끌어모아 충격파를 내뿜었으나 광풍은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발동되었다.

쿠구구구...

광풍의 와력이 격렬해지면서 바깥에서 내부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 순간 의문의 백색 기운이 나를 둘러싸더니 어디론가 이동시켰다.

쉬쉬쉭!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익숙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장령곡?"

"그런 것 같군."

내 옆에는 진소청과 검마가 서 있었다. 그들도 함께 이동해온 듯 했고, 그 주변에는 이광, 신승, 명룡자 등의 고수들도 있었다. 대결을 관전하던 후기지수들은 오지 못한 듯 장내에 달리 다른 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갈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참, 역시 지켜보기를 잘 했군."

"제갈사!"

층계참 위에서 천천히 걸어내려오던 제갈사는 짜증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이래서 계책은 사람이 짜도 성패는 하늘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 건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고 말고가 아니라 준비한대로 구출한 것 뿐이지. 거기 있는 제갈부를 움직여서 말이다."

그러고보니 장내에는 무표정한 제갈부가 서 있었다. 흡사 인형처럼 무감정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진소청이 상황을 이해하고는 말했다.

"제갈사 당신이 제갈부를 조종해서 술법을 쓰게 했구려."

"뭐 자동명령이긴 했지만!"

가볍게 대꾸한 제갈사가 제갈부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광, 신승, 명룡자를 제압해라."

뭐?

내가 뭐라고 반응할 새도 없이 갑자기 호명된 세 사람의 몸 위에 주박(呪縛)의 문양이 떠올랐다. 신승은 빠르게 법력을 모아서 주박을 깼고 명룡자는 제운종을 펼쳐서 술법의 범위를 벗어났으며 이광은 되려 뇌명을 써서 제갈부를 공격했다.

까앙!

하지만 제갈부가 검을 휘두르자 이광이 되려 튕겨나갔고, 다음 순간 허공에 부적이 떠올라서 세 사람을 동시에 공격했다. 셋은 빠른 신법으로 피하면서 제갈부에게 반격하려 했으나 가면 갈수록 술법이 공간에 중첩되듯 뿌려지면서 종래에는 움직일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풀썩

"크흑..."

"대체 무슨 짓을."

신승과 명룡자는 결국 제갈부의 저주에 걸려서 몸을 떨며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이광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 너무 쉽게 잡는군...'

아무리 백련교주와 싸워서 피폐해져 있다고는 해도 저들은 현 무림에서 최정상급 고수들이었다. 나라고 해도 그들 셋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 제갈부는 마치 야생동물을 몰아잡듯 손쉽게 그들을 무릎꿇린 것이다.

제갈사가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 동안 영약도 잔뜩 먹이고 무공지식과 경험도 주입하고 술법의 전술 전략도 새로 효율적으로 배치했지. 하는 김에 뇌의 잠재력도 좀 건드렸어. 가진 능력을 10할 쓸 수 있게끔 했으니 지금의 제갈부는 무공, 술법 모두 최강의 경지에 이른 전투인형이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능력을 더 증폭시키면 백련교주도 암살할 수 있을걸."

"저들을 왜 붙잡은 거야?"

"그럼 이 상황에서 알아서 하라고 놓아주리? 신승은 그렇다 치고 명룡자나 이광이 강호에 소문 낼 것만 생각해도 끔찍하군."

"......"

"특히 저 놈은 그냥 죽여버리는 게 낫겠군."

제갈사의 사나운 살기가 담긴 시선이 이광을 향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번 실패는 전적으로 난데없이 끼어든 이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이광의 굴욕에 마음이 꺾인 진소청이 대항하기를 결정했고 그 여파로 나를 포함한 다른 고수들까지 졸지에 백련교주와 전투를 벌이는 지경에 간 것이다.

그러자 진소청이 이광 앞을 막아서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만둬 주시오."

제갈사가 싸늘하게 말했다.

"진소청. 넌 나한테 할 말 없을텐데? 넌 어떤 의미로는 우리 모두를 배신한 거나 다름없어. 같잖은 스승놈의 목숨 때문에 백웅이 그 자리에서 붙잡혀서 고문당했다면 어쩔 셈이었지? 자포자기하듯 대라멸진 써서 그냥 죽어버렸다면?"

"......"

"진소청... 지금 넌 네 스승과 함께 죽여도 얌전히 목을 내놓아야 할 처지 아닌가?"

나는 제갈사를 말렸다.

"진정해. 일이 벌어진 걸 어떻게 하겠어? 진정하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의논해 보자."

"크크... 진정 못하겠는데? 그냥 네 녀석을 암천향에 보내면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전생경험을 쌓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진소청의 제안 하나때문에 시간을 지지부진 늘였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저놈의 뇌신류 사제놈들 때문에 시간은 시간대로 날려버렸고 백련교주가 우리를 주목하게 되어버렸어!"

제갈사는 보기 드물게 성을 내며 외쳤다.

"저리 비켜! 저 개병신같은 뇌신류의 맥을 오늘 끊어줄 테니까."

"......"

결국은 검마가 제갈사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진정하게. 자네답지 않네."

"나다운 게 뭔데 그러지?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적어도 이런 일로 진심으로 흥분해서 냉정을 잃을 자가 아니라는 건 알지."

검마의 투명한 눈이 제갈사를 직시했다.

"지금 이 순간도 그저 계책의 일부에 불과하지 않은가? 짐짓 격정에 빠져서 진소청과 이광을 몰아붙이고, 그들에게 앞으로 무리한 역할을 맡기려는 첫 걸음이라던가... 혹은 자네

스스로 악역을 자처해서 백웅이 쓸데없는 책임소재나 동료의 신뢰로 갈등하지 않게 하려는 작전이라던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갈사는 한참 후 히쭉 웃었다.

"하, 역시 내가 한때 주군으로 모시려 했던 자 답군. 그래 장난은 그만 하자고."

맥이 빠질 정도로 쉽게 돌변한 태도였다.

' 과연...'

역시 제갈사는 진짜 화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다 생각해놓은 대로 진행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사람 심리에 달통해있는 검마만이 방금 전 제갈사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으니, 그의 연기력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제갈사가 말했다.

"진소청. 그 세 사람을 지하뇌옥에 직접 가두고 네 내공으로 혈도를 찍어서 금제해라. 그리고 지금부터는 네가 그들을 하루종일 감시하도록."

"알았소."

"고문을 할때도 직접 나서라. 네 스승을 심문할지라도."

"... 알았소."

진소청은 군말하지 않고 제갈사의 지시에 따랐다. 자신의 실패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소청이 셋을 데리고 지하뇌옥으로 가자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진소청의 계획은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네가 암천향에 가는 길만 남았어."

"음... 하지만 이대로라면 백련교주에게 강호가 초토화될 거야. 특히 검마 어르신의 무영문은..."

백련교는 지금까지 강호통일을 못했던 게 아니라 안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백련교주가 뇌신류의 후계자인 진소청의 힘과, 칠대절학의 가능성 등을 확인한 이상 당장이라도 천하를 지배하려고 들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검마는 직접 눈에 띈 만큼 제일 먼저 백련교의 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제갈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바보야. 뭘 그렇게 진지하냐? 대국에서 한 수 잘못 뒀다고 바로 지는 건 아니다. 좀 어이없게 실패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국면이 아니야."

"그러면?"

"상책, 중책, 하책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하책부터."

제갈사는 근처의 탁자에 앉으며 말했다.

"하책은 바로 백련교주에게 흑요석이나 은봉황을 줘서 기억을 준 후 그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모험을 하는 거다. 이른바 도박이고, 성공한다면야 상책보다 훨씬 낫다. 한번 성공하고 나면 이후에도 백련교주를 동료로 할 수 있을테니."

"그... 그건."

그가 대놓고 이죽거렸다.

"니가 생각해도 좀 무모하지? 백련교주가 널 제압해서 세뇌고문할 가능성이 너무 높지? 지난번처럼 운이 좋을지도 모르겠지? 내가 백련교주라면 네 전생능력을 뺏으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지?"

"......"

"나중에 너 혼자 하고싶다면 말리진 않겠어. 다만 우리한테까지 피해를 주지는 말아 줘. 이딴 식으로 끝내고 싶진 않으니까."

"중책은?"

"검마의 무영문 세력을 전부 네 목갑에 넣고 장령곡과 진랑곡의 본거지 모두를 남쪽 대륙이나 남만으로 이전하는 거다. 그리고 강호 일에서는 완전히 손떼고 백련교주가 강호를 제패하든 말든 암천향에 도전하는 거지. 이번 전생목적의 본질에 충실하게 가는 거다."

"......?"

어라?

방금 제갈사가 중책이라고 말한 게 내게는 상책으로 여겨졌는데?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제갈사에게 반문했다.

"중책보다 좋은 게 있어?"

"딱 하나 상책이 있지."

"뭔데?"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얼굴이 크게 굳어졌다.

"3일 내에 제갈부와 네가 2인 1조로 백련교에 잠입해서 백련교주를 암살하는 거다. 내가 생각할 때 성공할 확률은 8할이 넘으니 시도해봐도 좋아. 백련교주만 죽고 나면 지상의 번거로움은 대개 해결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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