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40화 (63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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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대필이라니!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아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기 제가 그렇게 글을 못 씁니까..."

그 동안 밤낮없이 열심히 다독 다작 다상량을 반복했다. 글자도 그 동안 수만 자는 연습한 것 같다. 그런데도 전혀 먹힐만한 실력이 아니라는 것일까? 내 질문에 풍몽룡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어... 그렇게 못 쓰는건 아니네. 웬만한 문사(文士) 수준이야. 근데 자네가 말하는 그런 수준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십 년 동안 문예에 용맹정진해야겠지... 지금 단기간에 인기를 얻을 소설을 원한다면 대필밖에 답이 없다는 소리일세."

"그렇습니까... 대필작가는 잘 씁니까?"

"그러니까 낙양에서 찾겠다는 거 아닌가. 거기에는 기인이사와 재사가 넘치니."

내가 망량을 돌아보자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풍몽룡 님 말씀이 맞소."

"이럴거면 내가 글쓰기 연습을 할 필요도 없었잖소."

"... 당신에게 재능이 있을거라 생각했었소."

"......"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게 글쓰기 재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저 범상한 수준인 듯 했다. 그렇다면 대필을 해서라도 제천대성을 만족시키는 게 옳을 것이다. 내 목표가 뛰어난 소설을 쓰는 거라면 절대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겠지만 그게 내 인생목표는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파앗!

우리는 낙양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풍몽룡이 이끄는대로 웬 커다란 건물으로 갔는데, 그 곳에는 여기저기에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문사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신기해서 주변을 둘러보자 망량이 중얼거렸다.

"여긴 오랜만에 와 보는군."

"망량. 여기 와본 적 있소?"

망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여긴 칠현각(七賢閣)이라고 불리는 곳이오. 낙양에서 아직 벼슬을 얻지 못하거나 입신양명하지 못한 문사들이 모여서 서로 재주를 연마하고 학문을 수련하는 장소지. 서로 정보교환을 하기도 하고..."

"당신도 예전에 여기 있었단 말이오?"

"과거를 보기 전에 내게 도움이 될 게 있을까 해서 왔었소.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

옆에 있던 풍몽룡이 말했다.

"허... 그나저나 백웅 자네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군. 강소성(江蘇省) 오현에서 낙양까지는 수천리 길인데도 순식간에 도착하다니... 전설의 술법사 같은건가? 축지법?"

"... 대필작가라는 건 어디서 찾을 수 있지요?"

일반인에게 마도구나 비등에 대해서 말해봤자 무의미하기에 나는 말을 돌렸다. 그러자 풍몽룡이 어깨를 으쓱했다.

"칠현각주한테 추천을 받는게 제일 나을 걸세."

"이 칠현각의 주인이 따로 있습니까?"

"원래 돈없는 재인(才人)은 빈궁하기 짝이 없지. 헌데 칠현각주는 그런 재인들이 궁핍한 걸 좋지 않게 여겨서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이 칠현각을 건립했다네. 그는 시서화는 물론이고 각종 예술에 높은 소양을 가지고 있는 자일세."

"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릴없는 재인이라는 놈들이 최소한 한 층에 30여명은 되었고, 다른 층까지 합하면 백수십 명은 될 것이다. 이런 놈들이 아무 일도 안하고 먹고놀며 창작하게 만든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 아주 돈이 많은 자인가 보군...'

우리는 칠현각주를 찾아갔다. 풍몽룡이 칠현각주와 안면이 있었기에 쉽게 그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칠현각주라고 불린 중년사내가 말했다.

"대필작가를 구하고 싶다라... 그게 도의적으로 어긋난 일이란 걸 알고 하시는 말씀인지."

"딱히 부와 명성을 구해서가 아니오. 여기 백웅이라는 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재밌는 얘기를 낙양 전역에 퍼뜨려서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하시는 거요."

풍몽룡이 칠현각주를 설득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뭘 원하는 거요?"

"무슨 말이지?"

"보통은 부와 명성을 원하여 소설을 쓰기 원하는 편이오. 통속소설이 잘 팔릴 경우 상당히 괜찮은 돈이 들어오는데다, 활자를 찍어내는 기술과 제지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헌데 당신은 뭔가 이상한 걸 원하고 있군."

"나야말로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은 이렇게 돈도 되지 않는 칠현각을 뭐하려고 큰 돈을 써 가며 운영하는 거요? 돈이 남아도는 거요?"

내가 반박하자 칠현각주가 훗하고 웃었다.

"내가 내 돈을 어떻게 쓰든 상관할 바가 아니지."

"그 말 그대로 돌려주겠소.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걸 이루고 싶을 뿐이오."

"재밌는 사람이군. 당신은 틀림없는 기인(奇人)이오."

칠현각주가 내게 뭔가를 던졌다. 그 두루마리를 받아들자 칠현각주가 말했다.

"그 두루마리에는 이 낙양에서 글 좀 쓴다고 하는 재사 문인들이 백 칠십여 명 정도 적혀있소. 그 두루마리를 보여주기만 해도 그들은 웬만하면 당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요."

"이 두루마리가 뭔데 그러시오?"

"그들이 벼슬도 안 하면서 이 칠현각에서 놀고먹는 대가로 무조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하지. 그 두루마리는 그 부탁을 강요하는 의미가 있소."

"흐음."

상당히 괜찮은 두루마리였다. 물론 이 두루마리 자체가 영험한 힘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그 상징성만으로도 능력있는 재사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두루마리에 적혀있는 문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그리고 대필제안을 하기 시작했는데 한 사내가 급격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하겠어!"

"당신은 누구요?"

"내 이름은 오승은(吳承恩)이오! 제발 내가 쓰게 해 주시오."

"......"

그는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술 값이 없소! 매문(賣文)할 곳을 찾아다니던 중이었는데 잘 됐군 제발 나 좀 시켜주시오! 대필 잘 하오."

오승은!

' 뭐야? 그러고보니 이 녀석 예전에 제천대성이 변신했던 것과 외모가 같은데...'

예전에 십이율주가 있는 마을을 찾아갔을 때 제천대성이 인간인 척 변신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제천대성은 자신을 사양산인이라고 소개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눈 앞에 있는 서생 오승은과 외모가 똑같았던 것이다. 나는 그를 경계하며 쳐다보았다.

"당신... 혹시 자칭 사양산인이오?"

"어? 날 아시오?"

"제천대성 미후왕과는 무슨 관계요?"

"응...? 뭔 소리요."

"따라와."

"으아아악."

파바박

나는 인적없는 뒷골목으로 오승은의 뒷덜미를 잡아 데려간 후 그의 혈도를 찍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혼대법을 걸어서 최면상태에 빠뜨린 뒤 그가 제천대성과 어떤 관계인지 소상하게 들으려 했다.

하지만 오승은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들을 수 있었던 정보라고는 그가 현재 40여 세이며, 어렸을 때는 시문에 재능이 있어서 기대받았지만 벼슬길과 인연이 없어서 칠현각에서 놀고먹는 신세이며, 술값이 없어서 자신의 글쓰는 재주를 팔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 한 마디로 나이먹고 세월 축내는 서생이군...'

무공도 술법도 익힌 게 없다.

옆에서 내 심문과정을 함께 지켜보던 망량이 말했다.

"과거 전생에서 제천대성이 그의 모습을 취한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오. 별호와 이름이

모두 똑같소.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는 건 틀림없소."

"하지만 이혼대법에 걸리고 나서 거짓말을 하는 건 불가능한데."

망량이 빙긋 웃었다.

"내 생각인데, 오승은이 아무 일 없이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제천대성과 마주치게 되는 인과가 존재하지 않겠소?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있었을 거요.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그가 제천대성을 만나기 전에 먼저 만나버린 것이오."

"... 허어."

그런 가능성도 있는가?

내가 신기해하자 망량이 말했다.

"마침 잘 됐소. 이것도 인연이니까 그에게 대필을 시킵시다."

나는 망량의 말에 언짢게 대답했다.

"이 자가 글을 잘 쓰는지 어떤지는 검증된 바가 없잖소. 이 두루마리에는 이 낙양에서 내로라하는 재주꾼이 많이 적혀있는데..."

망량은 고개를 저었다.

"흠, 보통 이 정도의 우연은 존재할 수가 없소. 우리가 미래의 인과를 미리 마주쳤다면 뭔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오. 어쩌면 이 만남 자체가 백웅 당신의 운일지도 모르오."

"흠... 어쩔 수 없군."

나는 망량의 말도 옳다고 생각하며 오승은의 혈도를 풀고 이혼대법으로 지금 심문한 기억을 지웠다. 그리고 오승은에게 대필을 맡기며 그에게 금을 주며 말했다.

"부디 좋은 글을 써 주시오."

오승은은 자신의 손에 들린 금을 보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보통 서생이 20년은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돈이니 그럴 만 했다.

"알겠소. 근데 글의 제목은 뭐라고 하지?"

"당신 알아서 정하시오."

오승은이 골똘히 생각하다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치며 말했다.

"삼장전(三藏傳)이 어떻소?"

"뭐, 그렇게 하시오."

나는 오승은에게 글쓰는 걸 맡기고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오승은이 갑자기 나를 멈춰세웠다.

"잠깐!"

"왜 부르시오?"

그가 헛기침을 했다.

"어... 돈을 좀 더 주면, 당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추가로 써 줄 수도 있소."

지금 나랑 흥정하자는 건가?

내심 헛웃음이 나왔지만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란 말에 약간 흥미가 생겼다. 하긴 강호에서 무명(武名)이 높지는 않은데 돈은 많은 강호인들이 자신을 군담소설 주인공으로 쓰는 소설이 유행이기도 했다. 나는 오승은 옆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이렇게 못생긴 놈인데 나를 갖고 재밌는 소설을 쓸 재주가 있소?"

"하하! 소설에서야 그대를 절세미소년으로 꾸밀수도 있소."

"딱히 그럴 필요는 없소만..."

전생하면서 성형술을 써서 내 외모를 좀 더 낫게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시간이 아까워서 굳이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해야할 일에 외모가 좋아봐야 별로 필요도 없기 때문이고 내 동료들은 외모때문에 나를 차별하거나 하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오승은이 말했다.

"자기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잘나고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든 있지. 타고나길 잘나지 못했으니 대리만족을 하고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가 바라는 만큼 타고나지 못했으니."

"... 흐음."

"천재나 영웅이나 미남미녀는 극히 드문 존재라오. 보통은 아무리 노력해도 현생에는 그들처럼 살 수 없지. 그저 꿈만 꾸면서 후생을 기약할 뿐 아니겠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마음에는 공감한다. 그래서 내가 무협소설이나 군담소설을 좋아했던지도 모른다. 오승은이 히죽 웃었다.

"지금은 별 생각이 없어보이지만 나중에라도 말해주시오. 이래봬도 난 꽤 잘 쓰는 편이라서 멋진 소설을 하나 써 드리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됐소. 나처럼 못난 놈으로 소설을 쓰는게 무어가 재밌겠소? 사람이 대리만족을 하려면 잘나고 멋진 자를 주인공으로 해야 할 거요."

"엥. 그렇게 꾸며주겠단 소린데..."

"그건 이미 내가 아니오. 그런 걸 보고 내가 스스로 만족할 수도 없소. 너무 말도 안되게 꾸며서도 말이 안 되지."

오승은이 헐레벌떡 말했다.

"글쎄? 음... 아 잠깐! 그럼 그렇게 써 보겠소. 의외로 수요가 있을지도... 인기소설이 될지도 모르오. 한번 맡겨보시구랴."

오승은은 아무래도 금을 보고 마음이 혹했는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막 하는 것 같았다. 하긴 금을 더 받으면 부자가 되어서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테니 당연한 일 아닐까? 나는 오승은의 헛소리를 더 듣기 싫어서 손사래를 쳤다.

"아무튼 마음이라도 고맙소. 다음에 봅시다. 언제쯤 찾아오면 되겠소?"

"넉넉잡아 반 년 후에 오시오."

"알았소."

파앗

나는 망량과 함께 황산으로 되돌아 왔다. 망량이 내게 말했다.

"백웅. 그러고보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무엇이오?"

"천신경의 술법은 고대의 유물에 맺힌 인연을 매개로 영혼을 소환할 수는 없소?"

"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천신경의 술법의 사용법을 곰곰히 되새기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는 안 되오."

"흠, 그런가..."

"왜 물어본 거요?"

"다른 게 아니라 당신이 일전에 내게 관씨가문의 후예를 찾으라 하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황산에서 영약을 재배하는 동시에 내 세력을 움직여서 그들을 찾고 있었소. 그러던 중 당신이 갖고 있던 쌍고검이 생각나더군."

"쌍고검...?"

"그건 관우의 의형제인 소열제 유비의 전용검이었소. 그걸 매개로 소열제 유비를 불러낼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소."

"아!"

확실히 그런것도 가능하다면 굉장히 편할 것이다. 전설의 유물만 모으면 그 유물의 원주인을 바로 불러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천신경의 술법은 그런 기능까지는 지원하지 않으니 아쉬운 일이었다.

"관씨 가문의 후예는 일단 사천쪽에 사는 걸로 확인이 되었소. 조만간 찾아내면 연락하리다."

"알았소."

나는 망량을 데려다주고 장령곡에 돌아와서 진소청, 극호, 당산과 함께 무공수련에 돌입했다. 사실 지금은 이것저것 계획을 많이 세워두긴 했지만 모두가 하루아침에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최소한 수 개월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묘한 대기시간에 내가 할 것은 수련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 달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에 가장 실력이 가장 급성장한 것은 다름아닌 당산이었다.

퓨뷰븅

그의 손 끝에서 침 다섯 개가 날아서 십여장 밖에 있는 과녁을 맞췄다. 과녁은 장침에 맞자 침투경의 영향으로 마치 걸레처럼 터져나갔다. 그는 씨익 웃으며 자랑했다.

"이게 바로 당가절기인 비폭회선침(飛暴廻線針)이라고. 다 터득했다."

"......"

나는 당산이 무공시연을 하는 걸 보자 어이가 없었다.

' 저건 당가의 직계에게만 전하는 비밀스러운 절기일텐데... 저 나이에 곁눈질로 한번 보고 다 깨우쳐서 터득했다고? 세 달 만에?'

보통은 제대로 된 사부 밑에서 용맹정진해도 최소한 십 년의 시간이 걸릴텐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성장속도였다. 당산은 이미 절정의 벽을 뚫었으며 뇌신류 무공도 기초를 모두 익혔고 응용절기에 진입했다. 또한 지금까지 당가에서 괄시받으면서 어깨너머로 배웠던 절기를 가볍게 습득한 것이다. 나는 그가 진실로 어마어마한 천재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미래의 십대고수!

아마 현재의 당산은 이십대 이전의 소년무림인에 한해서는 중원최강의 경지에 올라있을 것이다. 십 년 이내에 초절정에 오르겠다고 말했던 게 결코 헛소리가 아닌 것이다. 내가 전율하고 있을 때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제갈사가 불렀소. 한 번 가 보시오."

"무슨 일이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소설에 관한 얘기 같았소."

나는 제갈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제갈사가 나를 보자마자 대뜸 얘기를 꺼냈다.

"백웅. 서역에 한 번 갔다와 줘야겠다."

"왜?"

그가 씨익 웃었다.

"제천대성을 빠르게 만족시키려면 좋은 기계가 필요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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