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36화 (635/1,615)

636====================

암천향(暗天鄕)

여동빈의 기억이 끝났다.

"... 하앗!"

나는 갑작스럽게 정신이 현실로 돌아오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여동빈 본인의 자아와 기억에 몰입되어서 완전한 일체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여동빈의 생애를 끝까지 지켜본 나는 마지막에 벅찬 기분이 들었다.

' 영웅이다.'

여동빈이야말로 진정한 영웅!

망량선사나 천계조차 손을 쓰지 못했던 팔부신중의 흉계를 홀로 막아내어 이 세상에 천 년의 시간을 지켜준 대영웅이었다. 민간에서 순양자 여동빈을 검선으로 숭앙한다지만 실제 그의 공적에 비하면 도리어 초라한 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태껏 그 어떤 대라신선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여동빈에게 거대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여동빈이 거룡을 물리치지 않았다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이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동빈은 그런 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 연자여. 보았으면 알겠지만 그대에게 무신(武神)에게 접하는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대략적인 건 전달되었을 것이다. 허나 나는 그대에게 아직 모든 걸 털어놓지는 않았다.]

"... 그렇군요."

여동빈은 자신의 기억을 선별해서 보여주었다. 그 예로 여동빈이 가지고 있던 발해와의 악연, 그리고 무신을 만났으되 현재까지도 계속 힘과 인과율을 모으는 이유, 그리고 봉신전쟁의 시대에 있었던 대멸종(大滅種)에 관한 것 - 여동빈이 굉장히 많은 걸 보여준 것 같았지만 여전히 나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정보를 공유한다면 무신의 정보를 좀 더...'

나는 순간 흑요석을 꺼내서 여동빈에게 주고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그 순간 천우진의 카랑카랑한 말이 내 뇌리를 뒤흔들었다.

[ 하지 마! 섣불리 결정하지 말라고. 여와한테서 확실히 달아날 자신이 있긴 있는거냐?]

"......"

[ 네가 삼황오제에게 영겁봉인당하면 너와 흑요석을 공유하는 우리 모두가 끝장이야. 신중하게 선택해.]

나는 천우진의 말에 주춤거렸다. 우유부단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확실히 감정만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가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자 여동빈이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 억지로 타인과 비밀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마음이 갈 때 행하라.]

"죄송합니다."

[ 상관완아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통로를 봉인했으니 그쪽은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동빈. 궁금한 게 세 가지 있습니다만..."

질문을 세 가지나 제시했으나 검선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 말할 수 없는 건 말할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질문했다.

"검선께서는 헌원검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알아서 환란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헌원검이란 건 결국 뭐였던 겁니까?"

[ 무슨 뜻인가?]

"그게... 실재하는건지 아닌지 의문이란 겁니다. 신투지존이 뻥친 걸지도..."

이게 나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이다.

헌원검!!

보패 여덟개를 합친 것보다 더욱 가치있다고 하는 전설의 보물이자, 황제 공손헌원이 인간에게 하사했다는 후의. 나는 여동빈의 기억 속에서 신투지존이 그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그런 게 있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신투지존이 어처구니없는 헛소문을 믿어서 떠돌았거나 혹은 허세를 부리며 거짓말했다는 결론일수도 있었다.

내 질문에 여동빈이 한숨을 쉬었다.

[ 후우... 솔직히 나도 그 사실이 못내 궁금하여 천계에 오른 후 위계가 오르는대로 헌원검에 대해서 물어보고 다닌 일이 있었다. 허나 헌원검에 대해 아는 신선은 단 하나도 없었고, 단 하나의 단서를 이상한 자에게서 찾을 수 있었지.]

"네? 그게 누구입니까?"

[ ... 그 자의 명예나 기휘를 범할 수 있으니 섣불리 말할 수 없다. 듣고 싶다면 내게 상응하는 대가를 다오, 연자여.]

여동빈이 그저 호의로 말해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대라신선과 관련된 정보는 천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인과율과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내게 대가를 받으려는 것이다. 여동빈은 확실히 힘을 아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흐음."

그리 나쁜 교환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으므로 나는 일단 뒤로 넘기면서 여동빈에게 말했다.

"그럼 또 한 가지... 백련교의 신기는 현재 어떻게 된 것입니까? 현재의 백련교에는 천 년 전의 백련교처럼 신기가 없습니다."

무신에 관한 질문을 해봤자 무시하거나 대답하지 않을 게 뻔하기에 나는 백련교의 신기에 관해 질문했다. 신기라고 함은 신의 보물을 뜻했는데 백련교의 신기는 그 이름에 걸맞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동빈의 회상에 나왔던 그 신기는 현재 백련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걸 누군가가 알고 있었다면 내가 수십 회 전생하면서 진작에 얻어들었을 것이리라.

그러자 여동빈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잘은 모르겠지만 짐작가는 건 있다.]

"어떤?"

[ 그 때 신기는 거룡의 몸뚱이에 직접 꽂혀서 쇠사슬처럼 놈을 옥죄고 있었다. 그리고 거룡은 쓰러지면서 혼돈의 육체가 성천을 통해 우주로 날아가 버렸다... 혼돈의 영역으로 신기가 함께 빨려갔을 가능성이 있다.]

"헉!"

나는 기겁을 했다.

우주, 혼돈의 영역!

그런 까마득한 이계(異界) 너머로 백련교의 신기가 실종되었다면 결코 찾을 수 없는 게 아닌가? 나는 기껏 얻은 좋은 정보가 물거품이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결국 외계도 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 하라.]

"검선께서 마지막에 거룡을 벨 때 무혼에 입문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혼이라 함은 뇌신류 최종오의와 이름이 같은데 무슨 관계인지요?"

[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검선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 우연은 아닐 것이다. 뇌신류 뿐만 아니라 사대무류에서 그런 이름을 지은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들 또한 무신(武神)과 인연이 닿은 게 틀림없다.]

"으음."

[ 신기(神器)가 사라진 것과 관련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신기라.

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옆에 있던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만 하고 이제 슬슬 돌아가자. 얻은 정보가 많은 만큼 책사들의 도움을 받아야되지 않겠냐?"

"아, 그래."

파앗!

나는 제갈사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얻었던 정보와 여동빈의 회상을 은봉황에 담아서 제갈사에게 보여주었다.

우우웅

제갈사는 정보를 듣고 나서는 히쭉 웃었다.

"크크... 검마가 쓸데없는 걸 가르쳐줬군. 뭐하러 쉬운 길 두고 차례대로 죽어봐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제갈사! 낙양 사람들은 죄가 없어."

"알게 뭐냔 말이지. 젠장. 효율을 추구하는 게 책사인데."

제갈사가 투덜거렸다. 역시나 일부러 내게 봉인에 관한 조언을 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씁쓸했지만 동시에 제갈사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나는 제갈사에게 말했다.

"제갈사. 뭔가 정보가 많아서 혼란스러워. 지금 내가 뭘 해야할지 조언을 좀 해 줘."

"흐음... 잠시 생각 좀 해 보고."

제갈사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옆에 있던 천우진에게 물었다.

"천우진! 너는 신의 제자인데 헌원검에 대해서 들은 거 없냐? 그건 나도 처음 듣거든."

"나도 처음 듣는 얘기다."

천우진은 팔짱을 끼며 보기 드물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게나 강력한 신보(神寶)가 있었다면 한번쯤 나도 들어봤을 텐데 이상한 일이군."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천우진은 신의 제자이며 현 중원의 모든 술법사 중에서 최고수준이었기에 보패나 술수에 대해서 가장 박식했다. 그런 천우진으로서도 헌원검을 모른다면 헌원검에 대한 정보가 뭔가 왜곡되어 있거나 정보 자체가 거짓일 가능성이 컸다.

제갈사가 잠시 후 말했다.

"우선, 지금 중요한 건 총 3가지가 있다."

"응."

"첫 번째. 백웅 네가 암천향에 도전하는 것. 이건 지금 당장이라도 시도할 수 있는거고, 네가 하루살이처럼 죽어버리면 빠르게 경험을 쌓을 수 있어. 물론 죽기도 쉽고 도전하기도 쉬우니까 지금은 굳이 성급하게 도전할 필요는 없지."

"흠..."

"두 번째. 방금 말했던 헌원검의 정보를 얻는 일이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실존하지 않을 것 같다만, 만일에 헌원검이 실존한다면 네 전생여정은 최소한 10번 이상 단축된다. 그래서 알아보지 않을 수 없어. 헌원검을 얻어서 그 주인이 된다면 너는 단숨에 사도급의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제갈사의 말이 지당했다. 보패 8개보다 더 가치있는 물건이라면 칠요보다 더 상위일지도 몰랐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마지막 중요한 점을 짚었다.

"세 번째. 요동에 있다는 신의 무덤을 찾아보는 것... 이건 지금 검마에게만 일임하고 있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검마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뭐?"

"요동이 어떤 세력권이냐? 중원무림과 십이율의 영향력이 충돌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유적탐사나 고대의 신비를 알아보자 한다면 십이율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

"......"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신의 무덤을 찾아서 서문혜의 비밀을 알아내려면 십이율과 협력하지 않을 수가 없어. 하지만 지금 당장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았던 거다."

나는 침묵했다.

' 십이율...과 협력이라.'

괜히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십이율주가 순순히 나를 도와줄 이유가 없을뿐더러 앞으로 그에게 주시당하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제약된다. 갑작스럽게 뒷통수를 맞은 적도 몇 번 있기에 십이율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제갈사가 손뼉을 치며 상황을 정리해 줬다.

"쉽고 차분하게 가자고. 일단은 전국옥새를 발동해서 탐색기능을 이용해서 이 세상에 헌원검이 존재하는지부터 알아봐라."

"아, 맞다!"

"그게 안 되면 여동빈한테 제물을 바치면 되는거고."

파앗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전국옥새의 내부 세계로 이동해서, 정령에게 부탁했다.

"전국옥새여! 헌원검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아다오."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파아앗

별빛이 넘실대는 듯 하다. 전국옥새의 내부에서 어둠과 빛이 휘몰아치며 엄청난 속도로 세계의 정보를 읽어내는 게 느껴졌다. 한참동안 정보를 모으고 있던 전국옥새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 헌원검의 검색결과는 0건입니다.]

"......"

[ 관련 검색결과를 보시겠습니까?]

나는 놈의 말 뜻을 생각하다가 반문했다.

"지난번에 창힐에 대해서 찾을 때처럼 관리자의 요청때문에 편집된 건 아니지?"

내 질문에 전국옥새의 정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 지난번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주인께서 검색기능을 사용하신건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아, 맞다... 별 거 아냐."

나는 황급히 말실수를 한 걸 깨닫고 얼버무렸지만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 나만 전생을 하는거고 다른 녀석들은 기억 못하는 거였지.'

당연한 일인데도 나는 전생하자마자 흑요석을 주어서 동료를 만들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그 이질감을 요즘 많이 느끼지 못한 듯 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정령의 대답을 기다렸고 이내 전국옥새의 정령이 말했다.

[ 네, 그렇습니다. 관리자의 편집요청이나 편집기록이 없고 타 사용자의 편집기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정말로 전국옥새의 능력으로도 헌원검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인가?"

[ 그렇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국옥새의 탐색기능은 다른 차원이나 이계(異界)도 찾을 수 있어?"

[ 그렇지 않습니다. 현 지상계이며 물질계, 주 차원만을 검색 가능합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 이거 의외로 허당이잖아?'

일단 이 세계에 있는 거라면 뭐든 찾을 수 있는 게 전국옥새지만, 달리 말하자면 다른 세계로 넘어간 물건일 경우에는 검색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헌원검이란 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질문했다.

"그럼 백련교의 신기(神器)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는지도 좀 찾아 줘."

[ 백련교의 신기의 검색결과는 0건입니다.]

"......"

[ 관련 검색결과를 보시겠습...]

"에라이 집어쳐!! 대체 찾을 줄 아는 게 뭐야?!"

나는 그만 성질을 내고 말았다. 그러자 전국옥새의 정령도 우거지상이 되어서 말했다.

[ 없는 걸 찾았다고 할 수도 없잖습니까.]

"아 몰라!! 다른 차원도 좀 찾을 수 있으면 어디 덧나냐."

[ ... 직접 만드시면 될 거 같습니다만.]

"응?"

[ 아뇨 혼잣말입니다...]

내가 뭐라고 반문하기도 전에 전국옥새의 정령은 모습을 감추었다.

' 말이 심했나?'

나는 괜히 신경질을 냈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소득이 있군."

"이 세상 어디에도 헌원검과 백련교 신기가 없다는 거?"

"아니. 우리한테는 이제 차원을 넘어다니며 탐색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거. 차후 해결해야 할 문제겠군."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새롭게 할 일이 생겼다."

"뭔데?"

"천신경의 술법을 쓰는 거지."

제갈사가 눈을 빛냈다.

"여동빈한테 보물을 하나 주고 거래한 다음 정보를 얻어. 그리고 공손벽이 뒈진 여산으로 가서 천 년 전의 공손세가 가주인 공손벽을 소환해서 놈한테서 헌원검에 대해서 알아내는 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