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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종말의 시기가 앞당겨졌다!
여동빈은 언뜻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량선사에게 물었다.
“종말의 시기가 정해진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종말의 거룡이 부활하는 게 그 시기를 천 년 이상 앞당기는 결과가 된다는 말입니까?”
[종말의 거룡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능력 때문이다. 놈은 굉장히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지.]
“어떤 능력입니까?”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능력이다.]
망량선사가 새까만 눈을 빛내며 설명했다.
[그 놈은 말 그대로 모든 걸 먹어 치울 수 있다. 혼돈의 중심에서 태어나 무질서에서 무형(無形)으로 떠돌고 있던 괴이한 생명체일 뿐이었으나 창힐이 놈을 거두어 용의 형태를 하사했지. 그리고 혼돈에 귀속되는 모든 존재를 먹어치우는 능력을 얻게 되었는데, 사실 혼돈은 모든 속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전제는 무의미하지.]
“…뭐든 먹어치우는 요괴나 이족과는 몇 번 싸워봤습니다.”
없는 유형이 아니었다. 포식가나 탐식자의 속성을 가진 강대한 요괴들은 꽤 있었고, 여동빈은 놈들의 강대한 이빨과 뛰어난 소화력을 피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해야 했다. 그러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보통이라면 뭐든 먹어치운다는 능력이 그다지 의미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모든 것’에는 인과율 또한 포함된다는 게 문제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종말의 거룡이 물리적으로 먹어치운 것들은 두 번 다시 윤회재생할 수가 없다. 놈은 순수한 혼돈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놈이 먹어치운 건 회복되지 않아. 그렇다면 그 능력으로 영혼과 육체를 뜯어먹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잡아먹힌 자들은 어떤 술법으로도 부활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 동시에 놈이 ‘먹어치우는’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의 인과율 또한 사라지고 만다.]
망량선사가 말을 이었다.
[이 세계는 정교하게 짜여있는 신의 놀이판이며 총량도 한계가 있다. 지금 표면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삼황오제의 가호 아래 성립하고 있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풀 한 포기, 땅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삼황오제가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인과율과 매질로 이루어져 있지. 거룡은 그 모든 가호를 먹어치워서 이 행성을 무(無)로 되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
[물론 그게 세상의 끝을 뜻하지는 않는다. 설령 종말의 거룡이 중원대륙을 다 먹어치운다 해도 삼황오제가 권능을 발휘하면 대륙 하나 정도는 뚝딱 만들어낼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세상에 쏟아 부은 삼황오제의 힘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아.]
“그 말은….”
[삼황오제는 세계를 위해 스스로 손해 볼 자들이 아니야. 차라리 종말이 빨리 오는 걸 감수하고 세상이 멸망하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왜냐 하면 종말의 거룡 때문에 삼황오제가 힘을 소모하는 상황조차도 창힐의 계략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여동빈은 망량선사의 말을 알아듣고 전율했다.
‘그럴 수가…!!’
종말의 거룡이 부활해서 중원 대륙을 다 먹어치우게 되면 거기에 깃들어있는 삼황오제의 가호는 모두 소멸되고 만다. 그 때문에 예정된 종말의 그 때는 천 년이나 앞당겨지고 만다. 하지만 삼황오제는 다시 세상을 재창조할 의리가 없기 때문에 그 만행을 그저 쳐다보기만 한다는 것이다!
여동빈이 말했다.
“천계의 강력한 대라신선이나 사어(四御)가 나서서 종말의 거룡을 처치할 수는 없습니까?”
[안 된다. 왜냐하면 종말의 거룡을 부활시키려는 자가 굉장히 교묘하게 인과율을 조정해서 그렇게 할 수 없게끔 전말을 짜 두었다. 삼황오제조차도 개입이 힘들 정도로. 아마 지상의 권력자인 측천무후의 도움을 많이 받았겠지. 수많은 요괴의 창생부터 암천향의 문이 열린 상황까지 모든 게 정교하게 짜여 있다.]
“…….”
상관완아의 계략인가.
여동빈은 또 한가지 궁금한 걸 질문했다.
“백련교의 제사장이 측천무후를 베면 거룡을 막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예언이 빗나갔습니다. 그녀의 능력은 가짜입니까?”
망량선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그 예언은 진짜였다. 그녀 또한 보기 드물 정도로 강력한 예지능력의 소유자가 맞다. 하지만 창힐이 예언으로 생겨난 미래의 줄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바꿔버렸지.]
“창힐…!!”
[놈은 이번 계획에 굉장히 큰 기대를 걸고 있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인과율의 부담을 무릅쓰고 예언을 바꾸는 것 정도는 그놈도 신이니까 간단하지.]
여동빈은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창힐은 굉장히 높은 신격같은데, 이 세상을 파멸시키려고 그토록 노력하는 자가 있단 말인가?
[삼황오제가 모든 걸 무시하고 깽판을 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놈들은 스스로 불리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상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삼황오제가 직접 현신해서 종말의 거룡을 잡는 순간 힘과 인과율이 크게 소모될 테니까.]
속으로 침음성을 흘리는 여동빈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은근히 강력한 군으로 생각하고 있던 천계, 삼황오제조차도 등을 돌린 상황인 것이다. 여동빈이 물었다.
“그럼 종말의 거룡이 세상을 먹어 치우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종말의 거룡이 모습을 드러낼 때 최대의 힘을 집중해서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다. 혼돈이 이 세상에 강림해서 형체를 만들때까지는 약간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순간이 가장 약한 때이다.]
“제게 그 때를 알려 주십시오. 제가 종말의 거룡을 처치하겠습니다.”
“…….”
“선사.”
망량선사가 말했다.
[그렇군…. 설마 무신이 변덕을 부려서 네게 인연을 닿게 한 건 이 상황을 예측한 것이었던가?]
“……?”
[설마 그 놈은… 종말과 계시 이후의 세계를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망량선사는 그답지 않게 뭔가를 한참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여동빈. 네게 종말의 거룡이 강림하는 시기와 장소를 알려주겠다. 그러나 대신에 너는 내게 제물을 바쳐라.]
“제물! 어떤 제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가에 어울리는 제물이지. 거룡이 강림하는 인과율에 대항할 정도의 제물이 필요해. 너는 어떤 제물이 어울릴 거라 생각하느냐?]
“…….”
[무엇이든 좋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제물을 구해와라.]
파앗
여동빈은 다음 순간 마을 바깥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제물!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여동빈의 머릿속에는 인신공양(人身供犧)이라는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망량선사가 비록 악한 존재가 아니라고는 하나, 선과 악으로 잴 수 없는 존재라는 게 훨씬 맞는 말이었다. 설령 인신 공양을 원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냐. 망량선사께 어떤 제물을 바치든….’
해야만 한다.
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을 내가 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동빈은 결사의 각오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팔선을 만나서 자신이 알게 된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과 논의했다. 그리고 팔선들과 의논한 결과 자신들의 보패를 모두 바치기로 결의했다. 보패가 무려 여덟 개나 된다면 충분히 값어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망량선사에게 보패를 가져가자 그는 싸늘하게 거절했다.
[이런 건 받지 않겠다.]
“네?”
[부족해. 이런 것보다 더 값어치 있는 걸 가져와야 한다.]
“…….”
팔선 모두는 경악했다.
그들은 등선을 앞둔 최고의 선도들로써 그들이 가진 보패 8개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로도 부족하다니?
마을 밖에서 종리권이 조그맣게 말했다.
“칠요(七曜)라도 갖고 와야 들어주실 기세군. 까탈스러우셔.”
그 말을 들었는지 마을 안쪽에서 망량선사의 말이 들려왔다.
[칠요? 칠요를 갖고올 거면 해방해서 갖고 와라. 최소한 2개는.]
“…….”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은가!
그들이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망량선사에게서 물러나온 후였다.
여동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백련교주 이군악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군악이 난처한 듯 말했다.
“보패 8개로도 안된다면 설령 우리 백련교의 보물을 다 준다 해도 안 될 거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있어야 선사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소. 뭔가 없겠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 흠…. 그런 건 세상에서 제일가는 도둑놈이 잘 알겠지.”
“도둑놈?”
이군악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핫하, 그냥 해 본 소리요. 농담인 데….”
문득 여동빈은 과거 측천무후를 벨 때 자신이 마주쳤던 의문의 괴인이자 육걸이었던 신투지존을 떠올렸다. 그 자는 자칭 최고의 도둑이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자칭할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곧장 신투지존을 찾아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탐색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여동빈은 낙양에 있던 신투지존과 접촉할 수 있었다. 신투지존은 귀찮아 죽겠다는 기색으로 전각의 옥상에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천하의 팔선이자 검선 여동빈께서 나 같은 도둑놈한테 또 무슨 볼일이실까??”
“신투지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뭐라고 생각하오?”
“앵?”
여동빈은 솔직하게 신투지존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신투지존은 믿을 수 없어하다가 이내 여동빈의 진실한 태도에 호감을 느낀 듯 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팔선의 보패 8개를 합친 것보다 더 귀한 보물… 그런 거라면 내가 알기로 딱 하나 있소! 내 명예를 걸고 이건 확실하다고 장담한다구.”
“그게 무엇이오?”
“생각해 보시오. 인간의 최고의 욕망이 뭐겠소?”
신투지존이 히죽 웃었다.
“흐흐흐…. 절세미녀도 좋고 돈도 좋지만 바로 불로불사(不老不死)란 말이지. 사람이란 건 영원히 힘을 갖고 휘두르면서 즐겁게 살고 싶은 거야.”
“…망량선사는 이미 신이시오. 신이 또 그런 걸 원하지는….”
“어허, 끝까지 들어보셔. 물론 당신 같은 신선들이야 불로불사가 하찮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걸 이루는 방법이거든….”
“방법?”
신투지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봉선의식(封禪儀式)! 인간이 신에게 직접 소통해서 자신의 소원을 빌 수 있는 의식이지!”
“……!!”
여동빈은 깜짝 놀랐다.
“그건!! 인간으로서는 의식을 따라 할 수는 있어도 권리를 결코 얻을 수 없는 신성한 의식…. 그걸로 불로불사를 얻는 건 이론상 능하지만 시행할 방법이 없소. 권리가 없는 자는 천벌을 받아 죽을 뿐.”
“흐흐흐. 나도 그놈의 ‘권리’인지 뭔지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한때 포기했었소. 어딜 가서 뭘 해야 그 빌어먹을 봉선의식 권리를 얻을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거든. 천지중원은 물론이고 서역까지 갔다 온 나인데도 알 수가 없었는데….”
신투지존이 손을 살살 비볐다.
“권리가 없어도 봉선의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가문이 딱 하나 있었던 거야? 진짜 운이 좋았지.”
“뭣?! 정말인가!”
“정말이오. 그리고 그 방법을 시행 하려면 딱 한 가지 보물이 필요하지.”
“그게 무엇이오?”
“헌원검 (軒轅劍)!”
그가 씨익 웃었다.
“황제(黃帝) 공손헌원(公孫軒轅)이 치우(蚩尤)와 겨룰 때 사용했다는 전설의 신검(神劍)! 그게 있으면 권리든 시든 때든 아무것도 필요 없고 그냥 신과 바로 거래할 수가 있다고 하오. 판천의 대전이 끝난 후 황제가 인간에게 내린 후의(厚意)라던 가?”
“…….”
“내가 옥룡신군의 후임으로 육걸에 들어가서 황궁을 탐색했던 것도 다 그 헌원검을 찾기 위해서였소. 헌원검은 명실공히 천하제일의 보물일 터이니 그걸 얻는 순간 난 천하제일의 대도(大盜)가 될 터!”
여동빈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게 존재했다니.’
망량선사가 뭔가를 봉인하기 위해 엄청난 힘을 쓰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힘을 나눠주는데 제약이 심하다는 건 이미 화룡진인에게 들은 바 있다. 그런 망량선사에게 헌원검 정도 되는 전설의 보물을 제물로 바친다면, 어쩌면 종말의 거룡을 퇴치하는데 힘을 빌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여동빈이 내심 흥분하면서 질문했다.
“멋지군!! 그 헌원검은 어디 있소?”
“나도 모르지. 그래서 지금도 내가 낙양 암흑가를 통일해서 정보나 모으면서 찾고 있잖소.”
신투지존이 혼란의 시대에 낙양 암흑가를 통일한 것도 그저 보물찾기의 일환일 뿐이었던 것이다.
“으음…. 그렇다면 헌원검의 정보를 준 그 가문은 대체 어디요?”
“공손세가(公孫世家)의 가주였던 공손벽이었소.”
“앗….”
“지금은 공손세가가 멸문했고 생존자도 찾을 수가 없지.”
신투지존이 아깝다는 듯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제기랄! 나는 당시에 놈과 헌원검의 정보를 거래하기로 약속했었소. 그걸 위해서 온갖 보물과 절세미녀를 준비했었지. 그런데 놈이 헌원검의 정보를 주기 전에 패왕의 무덤에서 뒈져버릴 줄이야.”
“…….”
“누군지 몰라도 공손벽을 죽인 놈은 저주받을 거요.”
여동빈은 내심 그 헌원검이란 걸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말했다.
“신투지존. 부탁이 있소. 나와 함께 태산으로 가 주시오.”
“태산? 설마 봉선의식의 단서를 그 곳에서 찾으려는 거요?”
“그렇소.”
“흠…. 어차피 낙양에서 더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없는 것 같으니 한 번 같이 가 봅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태산으로 향했다. 최초로 봉선의식을 치른 최초의 통일군주인 진시황이 태산에 갔다는 전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산 인근에 도착했는데 순간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마기(魔氣)?’
엄청나게 농밀하고 강력한 마기가 태산 정상에 고여 있었고, 어두운 구름이 피처럼 줄줄 새며 산을 뒤덮었다. 절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으므로 여동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그는 이내 화살처럼 날아서 태산을 향해 뛰쳐나갔다.
태산의 정상에 도착했을 때 - 여동빈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상관완아!!”
그 곳에는 상관완아가 있었다. 상관완아는 어둠의 비가 내리는 태산 정상에서 천천히 여동빈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여동빈. 여긴 웬 일로 왔느냐?”
“여기서 또 무슨 사악한 짓을 저질렀느냐!”
“사악한 짓이라니. 그저 측천무후와 한 약속을 지켰을 뿐이다.”
“약속…. 설마 그녀를 암천향의 신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잘 알고 있군.”
“그녀는 그 때 내가 베어서 죽였으니 결코 그럴 수 없을 텐데.”
여동빈이 외치자 상관완아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영혼이 명계로 가기 전에 내가 보관했다가 서역의 연금술로 육체를 줘서 다시 정신을 집어넣었을 뿐이다. 육신의 죽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어째서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한 거냐? 그때 너라면 날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
“이족으로 변이시키지도 않은 이유가 뭐냐.”
여동빈의 질문에 상관완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농염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봉선의식으로 하급신이 될 수 있어도 이족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육체 정도야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일일이 경호하기도 귀찮았고.”
“뭐라고…!!”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동안 재밌었다, 여동빈. 본디 당나라의 종말은 200년은 더 있어야 벌어질 일이었지만 측천무후가 스스로 만당(?唐)을 이끌었으니 이제 그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대당제국의 인과율 200년을 통째로 거룡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
“그럼 나는 종말 이후를 느긋하게 구경하도록 하지….”
파앗!
상관완아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여동빈은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다가 문득 제단을 목격했다. 그 천제단은 막 봉선의식이 끝난 듯 신력(神力)과 혼돈의 기운이 아직까지도 휘몰아치고 있는 중이었다.
막 새로운 암천향의 하급신이 탄생한 여파로, 엄청난 신의 기운이 고여 있는 상태.
“…….”
여동빈은 천천히 그 앞으로 걸어갔다.
“봉선의식은 신에게 직접 거래를 하는 행위….”
그리고 제단 위에 손을 뻗었다. 그것은 무모한 시도였으나 여동빈이 세계를 구하려는 의지가 빚어낸 행동이었다.
“내 손이 그대에게 닿기를, 무신(武神)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