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27화 (626/1,615)

627====================

암천향(暗天鄕)

여동빈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검류(劍流)의 가능성이 갈수록 커져가는 걸 느끼고 있었고, 그 완성형을 임의로 육의성천도(六意聖天圖)라고 칭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초식이 없는 완성형이었기에 어떤 기준으로 완성도를 판단해야할지 애매했고, 그 사실은 또한 여동빈이 아직까지 육의성천도를 진정으로 얻으려면 지난한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여동빈의 부탁에 팔선은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철괴(李鐵拐)와 남채화(藍采和)는 지금까지 하던대로 마물을 토벌하며 인간을 구하는데 주력했고, 조국구(曹國舅)와 장과로 (張果老), 하선고(何仙姑)는 대도시 인근에 대결계를 펴서 그들의 토벌행을 도왔다. 지금까지도 마물을 토벌하는 일은 줄곧 하던 일이었으나 팔선 중 다섯 명이 한꺼번에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력의 소모가 극심했기에 그들에게는 강한 정신적 피로가 새겨졌지만 그들은 참아냈다.

그리고 여동빈은 폐관수련에 들어갔고, 그런 여동빈이 사특한 마물이나 요괴에게 습격당하지 않도록 종리권(鍾離權)과 한상자(韓湘子)가 호법을 섰다.

폐관 첫날,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엄숙하게 말했다.

"동빈아. 지금의 너는 천계에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대선(大仙)이 많은데도 지상에서 우리 팔선이 주도적으로 요괴와 이족을 토벌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스승이었다. 여동빈은 그의 눈을 마주 쳐다보며 대답했다.

"인과율 때문이지요."

"그렇지. 이족과 마도사 놈들은 늘 그걸 계산하며 천계에서 끼어들기 힘들게끔 공작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같이 등선을 앞둔 도인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지."

종리권이 씁쓸하게 말했다.

"어찌보면, 세상에 혼돈이 덮쳐오고 이족이 활보하는데도 여태껏 대당 제국이 명맥을 유지했던 건 그때문이기도 하지. 이족이 더 난리를 쳤다면 인명피해는 컸을테지만 강력한 대라신선들이 여럿 강림할 수 있었을테니..."

"......"

"동빈아. 우리 팔선은 모두 대라신선이 될 소양이 될만한 술법의 기재들이라고 도맥에서 평가받은 자들이다. 허나 너만은 예외로, 오로지 무(武)만을 연마하여 이 자리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팔선 중에서 네가 최강이라는 건 그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종리권은 그를 자부심 넘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너는 이족과의 전투에서 줄곧 기적을 일으켜 왔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여동빈의 말에 종리권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따금 생각할 때가 있다. 어쩌면 네가 추구하는 검의 길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고..."

그 때 옆에 있던 한상자가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스승님은 제게 검술을 거의 가르쳐주지 않으세요."

한상자는 여동빈이 퇴마행 도중에 거둔 제자로, 본격적으로 술수를 익히기 시작한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타고난 절세천재인지라 금세 다른 팔선과 대등한 위치에 서서 퇴마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말에 여동빈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각자가 잘하는 게 다른 법. 네게는 무공보다 술법이 맞는지라 다른 분의 제자로 들이려했는데 네가 억지로 내 제자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냐?"

"사부님은 저희 마을의 은인이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구요."

"그건..."

여동빈이 뭐라고 말하려 할 때 종리권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한상자, 이 녀석은 무술밖에 못하는지라 술법을 못 가르쳐주는 게 미안해서 늘 무뚝뚝하게 구는구나."

"......"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터 나와 한상자가 술법으로 네 호법을 서 주겠다. 벌어줄 수 있는 시간은 일 년! 그 동안에는 그 누구도 너를 습격하거나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스스

종리권과 한상자의 신형이 서서히 옅어졌다. 이 자리에 와 있던 것은 그들의 염체로써 본체는 여동빈이 서 있는 공동의 외곽에서 술법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고요함이 사방에 퍼져나갔고 여동빈은 자신을 지켜주는 호법결계가 생성된 것을 알 수 있었다.

' 지금까지는 요마의 습격 때문에 내 검술을 차분히 되짚을 시간이 없었다.'

여동빈 정도 되는 고수라면 그 어떤 기습에도 대처할 수 있긴 하지만, 강력한 상위이족이 은신해서 습격해올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리고 중원에 명성을 떨치는 팔선이라면 그렇게 암살을 시도할 가능성도 충분했기 때문에 여태껏 여동빈은 실전 이외에는 개인수련을 거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동빈은 이윽고 자신의 검을 통찰하기 시작했다.

검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란 무엇인가?

여동빈은 어느새 자신이 '흐름'을 다루기 위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 세상에 셀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세계의 흐름이 장구하게 흐르며 만물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흐름]을 제압하는 완벽하기 짝이 없는 무결의 집합체!

'필살의 각오'가 수천만 번 새겨지면서 만들어진 경지!

이 경지를 손에 넣는다면 육의성천도도 자신의 것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지만 여동빈은 수련 사흘째에 그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그는 자신의 검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그건 또 다른 절대지경이었군..."

여동빈의 검경이 고절하여 다른 극지(極地)을 일순간 체험한 것이었을 뿐, 만물의 흐름을 통찰하여 자신의 것으로 다루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절대지경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 여동빈이었다. 불합리할 정도의 수련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여동빈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동빈 또한 수십 수백년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면 천의무봉을 얻을 수 있겠으나, 그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여동빈은 이미 육의성천도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다른 경지를 얻어봤자 잠재력만 깎아먹을 뿐 딱히 더 강해지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절대지경이란 술법마냥 하나둘씩 추가해서 응용해먹는 편리한 소모품이 아니었다. 그 무인이 살아온 생애(生厓) 그 자체라 할 수 있었기에 하나 이상 익히는 건 무의미했다.

여동빈은 그 후로도 하루내내 검을 휘두르기를 매일 반복했다. 단순한 휘두르기가 아니라 지금껏 쌓아왔던 수백 수천번의 실전경험 속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취합하여 상승경지로 이끄는 수련과정이었다.

그러던 중 여동빈은 알 수 있었다.

절대지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절대지경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진실!

현재 여동빈이 알고 있는 절대지경의 경지는 서너 가지가 존재했으나, 또 다른 무(武)의 종사가 나타나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유파를 보여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생을 통찰하여 벼려낸 궁극의 한 수이기 때문에 인간마다 모두 다를수밖에 없다.

타인의 길을 좇아 같은 절대지경을 성취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에도 파고들면 무류(武流)와 방향성이 명백히 차이가 난다. 그리고 쓸 수 있는 기술의 성향도 달라진다.

이 변화무쌍한 천무(天武)의 길을 연구하고 있던 여동빈은 전율에 휩싸였다.

' 그렇다면... 도대체 무(武)의 궁극은 무엇일까?'

자신만의 길을 파고들어서 절대지경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다면 어떤 게 보이게 될까? 여동빈은 그걸 생각하자 까마득하기 짝이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현재 무림에서 절대지경 이상의 경지는 정의되지 않았고 정의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절대지경이라고 불리는 자들도 강호를 제패해서 일인자가 되고 나서야 자신이 성취한게 절대지경이었다고 깨닫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한 시대에 한 명 나오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경지였고 본인들도 비교할 대상을 거의 찾지 못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대개 무림지존이 되어서 유유자적하다가 투선이 되곤 했다.

그러나, 절대지경의 '위'가 존재한다면?

그건 과연 뭐라고 불러야 할까?

"초절대지경..."

여동빈이 중얼거리자 화룡진인이 말했다.

[ 너무 작명이 유치하구나.]

"스승님."

여동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화룡진인이 웃었다.

[ 하하하! 농담이다. 헌데 역시 너는 대단하구나. 여태 절대지경 이상을 생각하는 자도 없었던 것 같은데.]

"아마 무림역사상 절대자의 위치에 도달했던 고수들은 다들 한번씩 생각했을 겁니다."

[ 하지만 무의미함을 깨닫고 천계로 올라갔지.]

"그랬지요..."

[ 절대지경 내에서도 격차는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격차를 벌려도 같은 절대지경이면 종이 한장차이로 늘 역전이 가능하다. 절대불변의 격차가 나지 않는다면 그건 역량의 차이일지언정 경지의 차이라고 할 수는 없지.]

화룡진인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화룡진인 또한 여동빈과 마찬가지로 검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고민하는 걸 상담해줄 수가 있었다.

[ 절대지경은 의념의 천주로 세상의 법칙을 바꿔버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경지다. 본디인간의 무공경지로 불가능한 대기적을 일으킬 수 있지. 아무리 대단한 경지라 해도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느냐? 나 또한 답이 보이지 않아서 그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거늘.]

"하지만 저는 절대지경을 초월해야 합니다."

여동빈의 눈에는 결연한 의지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정체를 모르는 그 여인... 상관완아와 새로이 나타날 종말의 거룡은 큰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룡을 상대하려면 대라신선 이상의 힘이 필요한데 제게는 그 정도의 힘이 아직 없습니다."

[ 그래서 육의성천도를 완성시키려는 거냐? 그걸 완성시키면 종말의 거룡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 그건 모르겠습니다. 해 보는 수밖에요."

[ ......]

여동빈을 잠시 쳐다보던 화룡진인이 말했다.

[ 우선 수련을 해 보자꾸나. 만일에 네 진척이 나아가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그렇게 여동빈은 일 년 동안 육의성천도를 다듬고 수련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육의성천도는 노력하면 할수록, 형태를 가지면 가질수록 약해졌다. 오로지 뜻만을 머금고 있는 절학은 섣불리 인위적인 수련을 가할수록 도리어 퇴보하려는 성질이 있었다. 여동빈은 단순한 노력으로는 도저히 육의성천도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한탄했다.

"어찌 육의성천도를 이룰 수 있을까...!!"

일 년의 기한이 닥쳐왔을 때, 종리권과 한상자는 결계를 해제하고 여동빈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여동빈의 성취를 물었으나 그는 결국 육의성천도를 얻지 못했고, 자잘한 기술의 완성도만 높아졌을 뿐이었다. 종리권이 말했다.

"동빈아. 일 년 동안 대당 제국에 퍼져 있던 이족들의 숫자는 더 크게 줄었고 이제 천계 일각에서는 이족사태가 끝나간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나머지 팔선들이 불철주야 이족들을 때려잡은 덕분이지."

"스승님."

"내 생각에 네가 더 이상 수련에 매달릴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우리 셋이 탕마행을 시작하면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

"......"

"그 거룡인지 뭔지는 마도사 단체부터 때려잡고 생각하자."

여동빈은 회의감에 휩싸였다.

과연 이대로 폐관수련을 끝내도 옳은가? 정말로 괜찮은 걸까?

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세상의 평화가 눈 앞에 있는 이상 거절할 수도 없었다. 별 수 없이 여동빈이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였다.

화르륵!

갑자기 화룡진인이 환영을 내보내서 호통을 쳤다.

[ 종리권! 여동빈을 놔둬라.]

"진인!"

[ 눈에 보이는 평안에 만족할 거라면 수련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말의 거룡이란 놈은 반드시 온다! 섣불리 천계에 등선하고 싶은 공 때문에 제자를 닦달하지 말란 말이다.]

그러자 종리권이 우물쭈물했다.

"아, 아니 딱히 등선을 빨리 하고싶어서가 아니고..."

설득력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던 종리권을 곱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던 화룡진인이 말했다.

[ 내가 알고있는 한 가장 위대한 존재께 여동빈을 데려다주겠다. 천계에는 그리 보고하도록 하라.]

"네? 그게 누굽니까?"

[ 망량선사.]

"......!!"

그 말을 들은 순간 종리권의 안색이 새파래졌고 다리를 후들거렸다. 그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무, 무슨!! 제망량이라니... 그 무시무시한 존재를 어찌..."

[ 그 분이라면 여동빈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지.]

"말도 안 됩니다. 그런 짓을 하시면 저는 물론이고 팔선 모두가 목이 달아납니다. 제망량에게 접촉하는 건 천계의 금기입니다."

[ 걱정 마라.]

종리권이 사색이 되어서 그녀를 말렸으나 화룡진인이 말했다.

[ 인간에 관심이 없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지. 그리고 망량선사의 경우는 좋은 의미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 여동빈은 화룡진인과 함께 망량선사가 거하는 마을로 향했다.

망량선사가 머무는 마을에 도착한 여동빈은 곧장 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마을의 사당으로 향했는데, 그 순간 망량선사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 여동빈.]

여동빈은 크게 긴장해서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망량선사시여."

천계의 모두가 두려워하며 경원시하는 존재 - 망량선사.

한때 대라신선을 일격에 소멸시키고 천계의 일각을 송두리째 없애버렸다는 그 가공할 존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옥황상제조차 그를 아래로 다루지 않으며 동격 이상으로 취급하는 절대적인 신격이 여기에 있었다.

[ 이 마을 뒷산에 2천 년 묵은 이무기가 있으니 잡아와라. 네 말은 그 후에 들어주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