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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23화 (62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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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여동빈이 내 몸을 움직임과 동시에 전국옥새의 영력이 전신으로 뻗어나가더니 고양감이 크게 일어났다. 그리고 한 자루의 어검이 여동빈의 의지와 함께 쏘아지며 찰나를 갈랐고, 그 일격은 말 그대로 투선의 위엄을 보여주듯 장중하게 밀어나갔다.

그 순간 팔부신중 야차 상관완아는 마주 낫을 휘둘렀으나, 그 움직임은 여동빈의 절초를 막아낸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되려 공격의 궤적을 무시하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움직임을 뿌리는 듯 했다.

쿠궁

그러나 상관완아의 그 어설픈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동빈의 어검은 무언가에 막혀서 큰 진동음을 내었다. 나는 여동빈의 의식 한켠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 방어술법인가?'

방금 여동빈의 일격에 담긴 잠재력은 설령 백련교주라 해도 쉬이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설령 절대지경의 고수라 해도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파괴력이었는데 상관완아가 유연하게 막아낸 것이다. 저게 만일 술법이라고 한다면 굉장한 경지임에 틀림없었다.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천우진이 수인을 모아서 외쳤다.

"급급여율령!"

파각

그러자 상관완아가 만들어낸 듯한 투명한 보호막이 깨졌고 상관완아는 꽤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여동빈은 그녀에게 여유를 줄 생각이 없는 듯 곧장 엄청난 속도로 뛰어들어서 육의성천결의 운결(雲決)을 운용해서 구름같은 검기를 내뿜었다.

콰과광!!

폭발음과 함께 상관완아의 몸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찢겨나가는 듯한 그 모습은 잠시 후 마치 나풀거리는 천조각처럼 바뀌었고, 차원을 뒤바꾸며 상관완아의 모습이 약간 떨어진 장소에 나타났다.

그 괴이한 상황을 보던 천우진이 침음성을 흘렸다.

"귀왕령(鬼王領)! 설마 저 고대술법이 아직도 남아있었다니..."

공격을 가볍게 받아넘긴 상관완아는 여동빈에게 말했다.

"여동빈. 진심으로 나와 싸우겠느냐?"

[ 그대가 싸우기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너 정도라면 화룡신검을 양보해줄 수도 있지."

어?

의외로 상관완아는 그다지 싸우고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 화룡신검을 안 내놓으면 습격할 것처럼 굴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으나 여동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투기를 꺼뜨리지 않으며 상관완아에게 검을 겨누었다.

[ 집어치우라!]

파앗 - !!

섬광같은 일섬(一殲)!

여동빈의 엄청난 발검속도와 함께 천지를 횡으로 베어버리는 듯한 거대한 베기가 전방으로 치솟았다. 그 궤적에는 당연히 상관완아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상관완아는 재차 귀왕령의 술수로 회피했다.

파캉!

하지만 뜻밖에도 여동빈이 베어버린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뭔가 시꺼먼 피를 흘리며 투둑거리며 떨어졌다.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는 그것은 요괴(妖怪)가 틀림없었다. 그 숫자는 굉장히 많아서 땅에 수북히 쌓일 정도였는데 여동빈이 중얼거렸다.

[ 또다시 사람을 기만하여 함정을 파는군. 마치 그 때와 같다.]

그러자 상관완아가 웃었다.

"확실히 천 년 전과는 다르구나. 그 때는 이 수법에 당했지 않느냐?"

[ 날 조롱하지 마라.]

"후후."

상관완아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듯한 반응이었기에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 도대체 여동빈과 상관완아는 무슨 관계지?'

여동빈은 천 년 전에 인간세상을 구원한 검선이자 투선, 그리고 상관완아는 팔부신중의 일원으로써 야차였다.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내가 곤혹스러워할 때 여동빈은 다시 검을 뽑아서 한 자루의 신검(神劍)처럼 쏘아져나갔다.

콰광

여동빈이 일검을 휘두르는 듯 하면 그건 이미 백검(百劍)이자 천검(千劍)으로 바뀌어 있었고, 변화하는 검영(劍影)속에서 만변하는 기운이 상관완아가 피할 곳을 없애버렸다. 그녀가 더러 반격하려는 듯 빠르게 술수를 시전했으나 그 기색을 알아챈 천우진이 옆에서 견제를 했다.

더욱이 상관완아가 낫을 휘두를 때마다 영롱한 소리가 나며 음공(音功)이 퍼져나갈 때마다 여동빈은 절초를 발휘해서 공격을 파해했는데 그게 또 장관이었다.

굉장히 화려하다!

하지만 나는 이 호쾌한 전투를 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 세상에... 상관완아는 두 사람의 협공을 받으면서 아직도 실력을 감추고 있단 말인가?!'

지금 여동빈은 전력을 숨기고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강신자인 나는 여동빈이 지금 전국옥새의 영력을 충천시켜서 마검 흐룬팅에 담아서 최고의 역량을 보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여동빈은 상대를 봐줄 생각이 결코 없는 듯 육의성천도의 최고절기를 연속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완아는 그 공격을 모조리 여유있게 낫이나 술법으로 받아내면서 전투를 장기전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잠력을 감추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으니 나는 내심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더 문제는 이렇게까지 상관완아가 선전하는데도 그녀의 진짜 능력이나 실력이 뭔지 잘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공의 고수라고 보기에는 어쩐지 허술해보이는 움직임이었고, 술법을 시전하는 게 어떤 흐름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콰과광

여동빈이 어검 수십 개를 띄워서 그녀를 한번에 몰아쳤으나 상관완아는 낫을 둥글게 휘두르며 막아내었다. 여동빈은 더 공격해도 헛수고라고 생각한 듯 잠시 멈추며 말했다.

[ 뭘 하고싶은지 모르겠군. 나와 장난을 치고싶은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니다. 화룡진인과 함께하지 않는 네 역량을 알고싶었을 뿐."

그녀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예상대로 그 때보다는 훨씬 실력이 좋아졌으나, 역시 용을 쓰러뜨렸던 그 순간의 잠재력은 없구나."

[ ......]

"지금의 네가 다시 용과 싸운다면 지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러나 여동빈은 순순히 인정하는 기색이다.

[ 그렇다. 내 힘을 탐색하려 했구나.]

"후후, 재밌는 여흥이었다."

그렇게 웃은 상관완아가 손을 이쪽으로 내밀었다.

"그 마검을 다오. 내가 알아서 이 봉인을 완전히 할 테니 앞으로 너희 일에 관여치 않겠다."

[ 그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팔부신중으로써 맹세하지."

[ ... 알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여동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검을 그녀에게 던져준 것이다! 마검을 받아든 여동빈은 고개를 홱 돌렸고 이내 천우진과 함께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슈욱...

한참 떨어진 낙양 외곽에 와서야 여동빈은 내게 몸을 돌려주었다. 나는 몸을 받은 상태에서 여동빈에게 당황해서 말했다.

"여동빈. 아무리 그래도 저 자는 팔부신중인데 믿을 수가..."

내 앞에 나타난 여동빈의 영체가 말했다.

[ 그 명예를 걸고 말했으니 믿는다.]

"아니 그건..."

내가 뭐라고 하려고 할 때 천우진이 옆에서 말했다.

"그만둬. 맞는 말씀이니까."

"뭐?"

"팔부신중 정도 되는 고위존재라면 스스로의 존재에 건 맹세가 굉장히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팔부신중으로써 맹세한 이상 그 약속을 어길 수는 없을 거다."

"......"

그런 의미였단 말인가?

여동빈이 내게 말했다.

[ 연자여. 그대는 앞으로도 저 마녀(魔女)와 부딪힐 생각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번 일은 그저 우연이었을 뿐입니다."

[ 그대의 역량이 최소한 지금보다 두 배는 강해지지 않는 이상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저 마녀는 중원의 역사 속에서 암약하며 많은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린 후 여동빈에게 반문했다.

"여동빈. 대체 상관완아와 무슨 관계였던 겁니까?"

[ ......]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저 자는 팔부신중으로써 창힐의 화신이니, 정보를 알아야만 앞으로 일어날 재액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간곡하게 부탁하자 여동빈은 약간 마음이 흔들린 듯 했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연자여. 그 전에 내게 말해줄 수 있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 어찌하여 그대와 나 사이에 강신이 가능할 정도의 인연이 존재하는지... 인연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내게 말해줄 수 있는가? 그리고 선검이 그대의 내면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유도...]

"......!!"

[ 그대가 말해주기 싫다면 내가 어찌할 방도는 없으니 의리로 받아들이겠다.]

나는 당혹했다.

물론 그 이유는 당연히 내가 전생을 하면서 과거에 여동빈에게 단말을 받은 적이 있고, 이후에도 인연이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천암비서의 전생능력은 인연의 고리를 다음 생으로 이어주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여동빈에게 내가 전생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과연 그래도 될까?

여동빈 스스로는 더할나위없는 의인이지만 그는 현재 천계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가 보고듣게 된 모든 게 천계 서왕모의 정보가 될 가능성도 있다. 금오도의 십천군을 천계에서 암약시킬 정도의 지배력이라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그리고 서왕모의 정체가 여와라는 걸 생각해보면, 여와가 내 전생능력을 알고는 나를 납치하거나 봉인하거나 능력을 뺏으려 들 게 분명하다.

그러나 - 동시에 이건 선택지가 따로 없는 상황이었다. 여동빈이 지금 내게 인연의 근거를 물은 이유는, 그가 품은 과거사 또한 내 전생능력만큼 그에게 있어서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리라. 비밀을 공유할 수 없는 상대에게는 결코 털어놓을 수 없는 과거! 여동빈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여동빈은 결코 내게 상관완아와 천 년 전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리라.

나는 크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때 옆에서 천우진이 끼어들어서 여동빈에게 말을 걸었다.

"검선이여. 상관완아라는 존재가 악(惡)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우진의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려고 한 모양이었다. 내가 내심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때 여동빈이 천천히 대답했다.

[ 그녀는 악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왜입니까?"

[ 비록 무수한 악행을 저질렀으나 그녀는 그만큼 선행 또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행동은 모두 상위존재의 의지가 강하게 개입했으니, 그건 신(神)의 의지. 나같은 대라신선이 선악을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선행이라... 그게 발해를 멸망시킨 것만큼 대단한 위업이었습니까?"

천우진의 반문에 여동빈이 말했다.

[ 그녀는 중원에 수나라가 세워지기 이전까지의 대혼란기에 무수한 인명을 구했다. 북위, 동진, 서위, 송, 제... 힘없는 민초들이 학살당하는 걸 구원하며 떠돈 성자(聖者)이기도 했다. 그 사실은 내 생전에 사실로 확인했으니, 그녀는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괴인이다.]

그런 선행도 했단 말인가?

천우진은 어이가 없는지 말했다.

"무엇때문에 선행과 악행을 가리지 않는 걸까요?"

[ 그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터무니없는 괴력의 소유자이며, 내 생전부터 만당시대의 혼란에 관심을 갖고 끼어들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고민하다가 여동빈에게 말했다.

"여동빈. 그럼 저 또한 한가지만 더 알고 싶습니다. 이걸 대답해주실 수 있다면 제 비밀을 여과없이 모두 밝히겠습니다."

[ 무엇을 알고 싶은가?]

"제가 알기로 검선께서는 무언가 미래의 사건에 대비해서 힘을 모으고 계십니다. 무엇 때문에 힘을 비축하며 인과율을 축적하고 계신 겁니까?"

이게 내가 제일 의문으로 생각하던 것이다. 그 동안 여동빈은 대라신선 특유의 권능을 발휘해서 더 엄청난 힘을 발휘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그 모든 인과율과 힘의 소모를 거부하며 자신의 힘을 아꼈기 때문이다. 그건 여동빈이 뭔가를 대비해서 힘을 쌓고 있다는 증거였다.

내 질문에 여동빈이 멈칫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정녕 신비한 자로다. 그 사실은 내 동료인 팔선조차 잘 모르는 일이거늘... 어찌 알게 되었는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게 마지막 지점이다.

여동빈이 내 질문에 대답을 해 주는 순간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동빈에게 흑요석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동료로 삼을 것이다. 이번 생에 여와가 나를 납치하거나 죽이려 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여동빈의 선택에 이번 생의 삶과 죽음을 맡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여동빈은 한동안 고민하듯 침묵했다.

그 장대한 침묵을 깬 것은 여동빈의 한 마디였다.

[ 내가 힘과 인과율을 모으는 이유는 말해줄 수 없다.]

그 순간 내 몸에는 상당한 탈력감이 감돌았다. 역시 아직은 그와 모든 정보를 공유할 때가 아닌 것이다. 다만 여동빈이 자신의 말을 덧붙이자 조금 진정되는 걸 느꼈다.

[ 허나 말해줄 수 없는 이유는 그 일은 거대한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의 의지로 비밀을 누설할 수 없는 까닭이다.]

"거대한 계획이라구요?"

[ 실낱같은 희망을 위한 계획이다.]

그렇게 말한 여동빈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 연자는 나에 앞서서 천계 자체를 불신하고 있구나.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그가 검을 곧추세우며 도가의 수인(手印)을 맺었다.

[ 허나 이 또한 인연. 연자가 천하의 정의를 지키려 하는 마음을 느꼈으니 나는 그대에게 과거의 일을 알려주리라.]

"저, 정말입니까?"

안 알려줄 줄 알았는데 여동빈이 크게 마음을 먹은 듯 했다.

여동빈은 잠시 후 내 이마에 손을 대며 말했다.

[ 보아라. 이것이 천 년 전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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