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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20화 (61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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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검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제갈사에게 전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진소청을 백련교주의 제자로 만드는 걸텐데? 내가 보기에 신의 무덤을 조사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니."

"음 그런가..."

"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나 보자."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제갈사에게 말했다.

"흑요석을 이용해서 최대한 진소청의 역량을 올려준 다음에 백련교에 데려다주면 어떨까?"

"그건 결과적인 얘기일 뿐이지. 백련교주의 의심을 사지 않고 자연스럽게 침투시킬만한 방법을 말하는 거다."

"흠..."

"백련교주가 순수한 무공광 기질이 있어서 잘 될 수도 있지만, 그는 동시에 천하의 종주를 논할만한 패주이자 계략가이기도 하다. 어설픈 시도를 하면 진소청만 잃게 될 거다."

제갈사의 일침에는 뼈가 있었다. 확실히 백련교주는 언뜻 호의적으로 다 베풀어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 내가 그를 잘 이용해먹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제갈사의 말에 고민하자 제갈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중요한 건 만일의 경우 진소청을 구출해내고 확실하게 접선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거다.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진소청이 제자로 들어갈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거지."

"방법이 있을까?"

"일단 순어구를 진소청에게 줘야만 해. 그리고..."

제갈사는 자신의 계략을 내게 설명해 주었다. 그건 확실히 그냥 백련교에 진소청을 데려다놓는다는 내 주먹구구식 생각보다는 훨씬 그럴듯했다.

나는 먼저 진소청을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은봉황을 이용해서 그에게 자세한 지식경험을 전달했다. 은봉황은 일반 흑요석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정보전달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나는 따로 거대 흑요석 암반을 캘 필요가 없었다. 잠시 후 진소청은 한꺼번에 큰 경험을 받아들여서인지 비틀거렸지만 이내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 같소."

진소청이 저렇게 말한다면 그는 곧 강해질 것이다. 나는 극호에게도 마찬가지로 기억을 전송해 주었고, 그들에게 기억을 전해주는 게 끝나고 나자 성련과 흑백련을 복용시켜서 내공을 강화시켰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한 후 은봉황을 가지고 다시 검마에게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은봉황과 영약을 이용해서 강화를 시켰다. 다만 영약을 아무리 많이 캐두었다 해도 지금까지 꽤 소모해서였는지 이제 슬슬 성련과 흑백련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 망량이 식토를 이용해서 영약을 재배해주길 바랄수밖에 없겠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검마에게 말했다.

"요동에 조사하러 가는 건 저도 조만간 같이 가고 싶습니다. 그 전에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무슨 일인가?"

"제갈사의 계략입니다. 진소청을 백련교주의 제자로 침투시키기 위해서 그를 자연스럽게 무림세계에 부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제갈사의 계략을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검마는 흐음, 하고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군... 그럼 내가 명룡자와 협력할 필요가 있겠군."

"네?"

"무림의 일은 내가 잘 알고 있지. 제갈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테니 걱정말게."

검마는 제갈사의 계략을 한층 심화시킬 생각인 듯 했다. 하긴 무림 사파의 주인이자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검마라면 실패할 리가 없을 것이다. 검마는 내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낙양에서 화룡신검을 꺼냈는데 봉인은 제대로 해 두었는가?"

"음 그게, 음신지력에 전국옥새의 영력을 이용해서 여동빈이 임시로 막아두었습니다."

성유물이나 나인성본전 등의 기물을 이용하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음신지력과 전국옥새를 이용하면 어떻게든 막아졌다. 왜냐하면 음신지력도 신의 힘에 이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러자 검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낙양의 봉인을 확실히 막아둘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을 듯 싶네. 제갈사는 아마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을테니 자네에게 딱히 말해두지 않았겠지."

"네? 무슨 말입니까?"

"제갈사에게 있어서 그 봉인이 풀려서 낙양이 지옥도가 되는 건 신경쓸 일이 아니라는 말일세. 그래서 자네가 스스로 신경써야 하는걸세."

"......!!"

"아니, 도리어 그게 풀리는것도 괜찮다 생각하지 않을까? 이번 생에서 자네의 목표는 암천향으로 가는 거니까 옛적에 만들어진 통로가 열려버리면 낙양은 지옥도가 될 지언정 자네는 손쉽게 암천향에 진입할 수 있겠지."

"그건 말도 안되는..."

나는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그럴듯 했기 때문이다.

낙양에 봉인되어있는 암천향의 문을 열면, 거기에서 수많은 괴물과 이족들이 쏟아져들어와서 하루아침에 낙양이 멸망할 수도 있다. 수백만 명의 인간이 학살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제갈사에게 알 바 아니다. 도리어 이번 생에서 내 목표가 암천향으로 진입하는 것인 이상 인간이 죽든말든 내가 그 통로로 들어갈 수 있게끔 수를 쓸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위험부담이 큰 방법에 비해서 이미 열린 통로로 들어가는 건 안전하기 때문이리라!

' 그... 그렇군. 암천향에 가는 방법은 3가지가 아니라 4가지였어.'

꿈의 세계를 통하는 방법.

직접 차원계를 넘는 방법.

비등의 소환에 응하는 방법.

지금까지는 3가지를 차례대로 시험해보려 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지상계에 열려있는 통로가 있었던 것이다!

낙양의 인간들을 몰살시키는 대신 열리게 되는 안전한 암천향의 통로!

제갈사는 그 통로를 얻기를 원했기에 내 실수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하고 통로가 열리기를 기다렸던 게 아닐까?

"......"

내가 내심 오싹해하고 있자 검마가 말했다.

"제갈사와 당장 얘기해봤자 자네의 비효율적인 인성추구에 대해서 타박이나 듣겠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자네가 의(義)와 협(俠)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저 멀리 아라사제국의 성유물을 얻어와서 안전하게 봉인하기를 추천하겠네. 제갈사와는 그 후에 얘기해도 될 것일세."

"알겠습니다."

"자네 스스로도 땜빵이라고 느낄 정도면 봉인의 해제는 일각을 다투는 일일 것이야. 서둘러 움직이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비등을 이용해서 이동했다.

파앗

나는 아라사 제국에 도착해서 아라사 황제에 대항하는 저항군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러자 동방정교회의 대주교좌이자 뛰어난 수도사인 벨로프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벨로프를 찾아가서 대뜸 말했다.

"벨로프! 나는 동방에서 온 백웅이라 하오. 당신이 갖고 있는 성상(聖像)을 원하오."

"......?"

벨로프는 이 장소에 와 있는 서방의 기사단과 병사들과 함께 나를 포위한 채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명 제국의 소년... 기인인 건 알겠으나 다짜고짜 우리에게 찾아와서 무슨 행패지? 그대는 왕의 자객인가?"

하긴 대뜸 성유물인 성상을 달라고 하면 누구든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마음을 침착하게 다스린 후 그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아마 이반 4세를 토벌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 루마니아에서 [용]의 시체를 가져와서 되살리려 하고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웅성

내 말에 일반병들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벨로프를 포함해서 대기사나 간부들은 깜짝 놀라는 듯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기사들 중 세 명이 갑작스럽게 삼지창과 거검, 창을 휘두르며 나를 습격했다.

까가강!

나는 손쉽게 그들의 공격을 한 칼로 튕겨내 버렸다. 그러자 기사들은 주춤거리다가 땅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동시에 사방을 둘러싼 병사와 기사들이 병장기를 뽑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벨로프가 고함을 질렀다.

"그만!!"

그러자 병사들이 뛰어들려는 기색이 멎었다. 벨로프는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랍군. 어떻게 우리의 극비정보를 알고 있지?"

"그건 중요치 않소. 하지만 내가 왕의 자객이었다면 굳이 당신네 진영에 와서 미주알고주알 불지는 않을 것이오."

"원하는 게 뭐요?"

"나는 그 용을 부활시킬 술법을 가지고 있소. 그 용을 부활시키는 걸 성공한다면 내게 성유물을 주시오."

벨로프는 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믿지 않아도 좋소."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벨로프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따라오시오."

나는 그를 따라서 기사들과 함께 용의 시체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역시 예전에 미호와 함께 보았던대로 얼음 속에 갇혀서 얼어있는 거대한 용이 눈에 보였다.

거대하고 강력한 형상이다. 또한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진다! 거대한 날개는 홰를 치면 천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것 같고, 사나운 파충류의 얼굴과 강력한 앞발과 두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미호가 말했던 걸 기억해 냈다.

[ 그것은 동방의 용과 달리 굉장히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힘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재앙(災殃)일 게 뻔한데 굳이 깨워야겠느냐?]

[ 본녀가 천계에서 보았던 용들은 모두 강력하기 그지없는 신통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모두가 질서를 중시하는 선(善)한 존재들이었다. 또한 지상에 나올 일도 없으므로 저렇게 봉인을 당할 일도 없지.]

[ 동방의 용과 사촌뻘인 것 같긴 하지만 그 서방의 용은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인 놈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벨로프라는 수도사가 그 용을 제어할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구나. 강력한 존재인 건 사실이니.]

미호는 저 용이 동방의 용과 다르게 사악하고 잔인한 존재이기에 봉인을 당했다고 단정지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용을 부활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슬며시 빠져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단 저 용을 부활시키는 공적으로 벨로프에게서 성유물을 얻을 생각이었다.

' 가능할 거야.'

우우웅

나는 한쪽 손에는 내공, 한쪽 손에는 음신지력을 응축시킨 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수십 장 크기의 얼음에 가까이 다가가서 기합을 모았다.

"하아아아..."

쿠구구구...

음신지력과 내 거대한 내공이 얼음에 스며들기 시작하자 별안간 얼음이 통째로 진동하는 기분이 들었다. 음신지력은 순수한 '힘'이기 때문에 따로 주문이나 술법을 외우지 않아도 결계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거대한 봉인이 내 힘에 의해서 뒤틀리는 게 느껴지자 한층 고양되어서 힘을 밀어넣었다.

쿠구구구구!!

진동이 강렬해졌다. 벨로프는 내 몸에서 솟아오르는 기운이 기둥의 형태를 이루자 경악하며 외쳤다.

"세, 세상에 이런!! 정녕 무시무시한 프라나...!! 그저 내부의 프라나(prana)만으로 고대의 결계를 깨려 하다니... 동방의 수련자가 어찌 이토록 강하단 말인가."

동방정교회에서는 기(氣)를 프라나라고 일컫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썰미로는 내 엄청난 내공만을 알아봤을 뿐 음신지력의 정체까지는 꿰뚫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삼황오제의 신력을 알아볼 정도면 신화적 생물이 아니라면 힘들지 않을까?

' 껍질이 부숴지고 있군.'

투둑 투두둑

아직 제대로 부수려면 멀었지만 조금 더 착실하게 밀어붙이면 이 용의 봉인이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흥이 나서 한층 강하게 힘을 돋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 두 종류의 음성이 동시에 메아리쳤다.

[ 그만두게. 세상에 재앙을 풀어놓지 말게!]

[ 흐으... 흐으... 나를 풀어주려는 건가?]

명백히 서로 다른 의도를 지닌 음성이었다. 아무래도 결계가 어느 정도 파괴된 게 사실인 듯 [봉인을 제작한 자]와 [용]이 동시에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그 둘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봉인을 깨는 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 그만두라고!! 이 자를 풀어놓으면 이 시대에는 다시 봉인할 수 있는 자가 없다. 이 존재는 강대한 지배자의 사도일지니.]

[ ... 강력한 사신(邪神)의 힘이 느껴지는군... 흐으... 흐으... 나와 동류인가?]

머리속에 한층 강한 소음이 몰아쳤다.

[ 그대가 필요한 게 무엇인가? 무엇이든간에 나, 왕의 마법사이자 성검의 안식자, 성배의 수탐자가 원하는 보물을 주리라! 봉인의 해제를 멈춰라.]

보물?

내가 멈칫거리며 봉인을 깨는 걸 멈추자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계속 하라... 날 풀어준다면... 나는 네 적수를 핏빛 말뚝에 꿰어죽이리라.]

"......"

봉인자와 갇힌 용, 둘 모두가 내게 간청하는 상황이었다.

' 이거 어떻게 하지?'

한 쪽의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한 쪽의 대가를 받을 수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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