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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19화 (61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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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혹시 제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화서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리가! 자네의 몸은 상상을 초월하는 내공으로 인해 늘 자연적으로 강대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인(神人)이라 불러도 무방한 상태일세. 중화역사상 자네보다 체력좋고 건강한 이는 아마 없었을 게야. 환골탈태를 이룩하지 않고도 이렇게 엄청난 신체와 건강을 지닐 수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이런 내공을 지닐 수 있는 거지? 최상급 영약을 수십 개씩 먹은 게 아니라면 도저히..."

감탄을 하던 화서명의 안색이 돌연 굳어졌다.

"허나 자네 말대로 뇌 쪽에서는 약간 문제가 느껴졌네. 내가 어제 쓸데없는 질문을 수십 수백개씩 하지 않았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장침으로 찌르는 것보다 더 귀찮았던 일이었다.

"그랬죠."

"자네는 그 모든 질문에 또렷이 대답하는 듯 했으나 종종 헷갈릴 필요도 없는 중복질문에서 머뭇거렸네. 그 머뭇거림은 지능이나 순발력 탓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기억의 혼재가 일어나서 발생하는 거라 생각했네. 그래서 오늘 자네가 마폐탕을 먹고 잠든 사이에 잠시 두개골을 절제해서 뇌 안쪽을 들여다봤다네."

"... 네?"

아까 탕약을 줘서 편하게 잤다가 일어났는데 설마 내 머리가죽을 쨌단 말이었던가?! 내가 당황해서 반문하자 화서명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뭘 그리 놀라나? 뇌에 문제가 있으니 뇌를 보는 거지. 우리 화씨 일족은 화타 때부터 외과수술 전문이었네."

"......"

"자, 이 해부도를 보게. 뇌 속에 이렇게 둥글게 말려있는 부위가 있지? 우리 화씨 일족은 이 부위가 인간의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라는 걸 수천 년의 의술과 수만 번의 외과수술로 알아냈지. 그리고 자네의 뇌는 놀랍게도 이 부위가 상당히 크게 팽창해 있었고 동시에 꽤 닳아있었다네."

"닳아있었다고요?"

화서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외견 나이는 십대 소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네만 실제 나이는 훨씬 많겠지... 몇 살 정도인가?"

나는 머뭇거리다가 솔직히 말했다.

"백 살을 조금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번째 삶을 포함해서 여태껏 모험하고 수련해 온 기간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다만 전생할 때마다 정확하게 내 나이를 측정하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른다. 내 대답에 화서명이 말했다.

"역시 그렇군. 자네의 기억담당부위... 음, 해마와 닮아서 임의로 해마(海馬)라 부르겠네. 자네의 해마는 보통 인간에 비해서 굉장히 발달해 있네. 머리 깨나 쓴다는 지식인들의 뇌보다 훨씬 발달해 있어. 뭐라고 해야하나? 단순히 비대해져 있는게 아니라 효율을 위해서 몇 세대는 진화해 온 듯한... 아무튼 이미 보통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별개의 기관이 되어있네."

"... 뭐죠 그건."

"하지만 발달해 있는 만큼 닳아 있는 흔적이 발견되었네. 물론 본격적인 손상이 아니라서 뇌의 다른 부분이 가소성을 발휘해서 문제없이 보조하고 있네만."

"닳았다니..."

화서명이 내 미간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자네의 뇌는 굉장히 발달해 있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건 하나의 가설로밖에 설명할 수 없네. 자네는 백 세 정도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 동안에 자네의 뇌를 출입한 정보와 처리량은 그걸 몇 배나 뛰어넘는다고 볼 수 있네. 보통 지식인이 평생동안 얻게되는 정보량을 적어도 열 배는 뛰어넘는다 생각해."

"음..."

"보통인간은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해마가 팽창하거나 하지는 않네만... 이것 참... 도대체 어떤 용량의 기억이 자네에게 존재하는 건지. 무슨 천년 내내 책만 들여다 본 것도 아니고."

그가 믿기지 않는 듯 떨떠름하게 말했다.

"하여간 굉장하군... 자네의 몸은 요괴도 아니고 인간인 게 분명한데도 너무나 이상한 점이 많아. 무림인이라서 뇌가 굉장히 천천히 늙어서 그런가? 자네가 말한 나이 치고는 뇌의 나이도 매우 젊고 팽팽했네. 다만 유독 해마만 엄청나게 소모된 흔적이 있다는 거지."

"......"

해마가 발달해 있고 동시에 닳았다고?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 기억전송술 때문이구나!'

지금까지 나는 흑요석을 이용해서 자주 기억을 복사해 넣거나 전송했다. 그 술법을 쓰면서 점차 기억용량도 향상되고 용적도 넓어짐을 느꼈지만, 거기에는 해마의 발달과 팽창을 보조해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내가 지금까지 모험하며 얻었던 기억이 보통 양이 아닐 뿐더러, 기억이란 굉장히 용량이 크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는 쓸데없이 과다한 정보가 들어차있을 확률이 높았다. 뇌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정보부터 삭제하는 성질이 있기에 나는 점차 기억력이 감퇴하고 사소한 걸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기억능력을 향상시키는 걸로 버티는 건 인간의 몸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 뇌정경 말고 다른 기억술법을 구할 때가 아닌 것이다.

식은땀이 난다.

내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때 화서명이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진단을 내리자면, 향후 치매의 위험이 있네. 허나 치매라고 확정하기도 어려운게 자네의 몸이 너무 특수해서..."

"치매라고요? 그럼 전 조만간 기억력이 감퇴해서 일상생활이 불가해진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앞서나가지 말게. 이건 단정지을 수가 없다네. 자네의 해마가 조금 손상된 건 사실이지만, 웃기게도 그만큼 발달해 있어. 커다란 왕족용 팔륜마차의 바퀴에 구멍이 난 게 아니라 그저 재질이 닳아서 승차감이 좋지 않다고 가정하세. 그 경우 바퀴 자체를 꼭 갈아야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으음."

화서명은 진단이 끝났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수술도구와 침구를 정리하기 시작하며 말했다.

"아직은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고 보네. 뇌의 피로를 줄이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삼시세끼 잘먹고 즐겁게 살면 상태가 나아질지도 모르겠군."

"......"

아주 정석적인 진단이고 옳은 소리였지만 나는 지금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물며 앞으로 힘을 키워나가다 보면 더 큰 기억용량이 필요할텐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인가?

나는 제갈사에게 돌아와서 화서명에게 받은 진찰결과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은봉황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말했다.

"그럴 줄 알았지."

"무슨 소리야?"

그는 염세적인 어조로 뇌까렸다.

"인간이란 애초에 [옛 종족]에 의해 식용으로 만들어진 맛좋은 육류 정도였는데 폐기처분 될뻔한 걸 삼황오제가 재활용한 쓰레기 종족이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른 이족에 비하면 나약하기 짝이 없지. 네 녀석이 지니고 있는 [인간]이라고 하는 종족적 한계 때문에 무한전생이 불가하다는 건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예전에 제갈사가 '빨리 끝내야 한다'라고 말했던 이야기에는 지금 이 상황도 포함되어 있었던 건가? 나는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잖아."

"흐음."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거의 다 됐다."

뭐가 다 됐다는 걸까?

잠시 후 제갈사가 은봉황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이제 다룰 줄 알 것 같군. 지금부터 요령을 알려줄 테니까 임시처치를 하자."

"뭐? 무슨 소리야?"

그는 은봉황의 머리를 매만지며 설명했다.

"나는 네게서 흑요석을 받으면서 네가 전생에 얻어냈던 은봉황의 사용방법을 알아냈다. 방금 전까지 그걸 이용해서 이 기물을 어떻게 해야 잘 다룰 수 있을지 사흘 내내 연구했지."

"아!"

"화서명의 진단을 볼 때 네 기억용량은 아직 한계까진 아니지만 한계가 다가오고 있지. 아마 이혼대법으로 정신을 둘로 나눠서 수련효과를 누렸기에 더 빨리 찾아올거다. 이 한계를 미루기 위해서는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억을 정리한다고?"

제갈사가 말했다.

"흑요석의 기억전송술은 어쨌든간에 네 뇌를 경유해서 정보를 전달하지. 그래서 네 뇌 속에 쓸데없는 잔류정보를 축적하는 부작용이 있어. 게다가 기억이란 건 4차원적인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본래 인간이 느끼는 용량보다 훨씬 크게 저장되는 경향이 있지. 그래서 모르긴 해도 지금 네 뇌 속에는 기억이 비효율적으로 산재되어 있을 확률이 크다."

"......!!"

"해결책은 그 쓸데없는 기억을 이 은봉황으로 완전히 전송해서 잊어버리는 거다. 그리고 네가 차후에 정리해서 효율적으로 기억을 관리한다면, 적어도 치매를 백 년은 뒤로 미룰 수 있을 거다. 쓸데없는 정보를 정리하고 압축하는 게 가능하니까."

"그게 가능해?!"

그러자 제갈사가 한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애초에 은봉황에 포함되어 있는 기능이다. 위대한 종족처럼 꼼꼼한 놈들이 그런 설명서 하나 첨부하지 않았겠나? 이런 기능이 없었으면 발해열왕이 은봉황으로 기억전승을 제대로 쓸 수 있었겠어? 네가 기억 전송과 읽기밖에 관심이 없어서 고급설명과 응용지식을 안 읽은 거 뿐이지."

"......"

"나는 사흘동안 다 습득했으니까 이제부터 네게 가르쳐 주마."

나는 제갈사에게서 은봉황의 고급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쉬울거라는 제갈사의 말과는 달리 어째 기억을 다루는 술법은 가면 갈수록 어려워졌고, 종래에는 내가 배웠던 연금술보다 몇 배는 어려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머리에서 쥐가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칠 주야 내내 잠도 자지 못하고 이혼대법으로 2배의 수련까지 응용하면서 공부를 해야했고, 그러고 나서야 간신히 터득할 수가 있었다.

우우우웅

나는 은봉황에 내가 가진 대부분의 지식과 경험을 다 쏟아넣어버렸다. 흑요석으로 복사할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머릿속 내부에 있는 걸 통째로 들어서 옮긴다는 기분이었다. 물론 은봉황의 특성상 일시적으로 생기는 기억의 공백은 은봉황의 마력으로 때울 수가 있었다.

잠시 후 은봉황에 기억이 모두 전송된 후 나는 다시 은봉황에서 기억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주문을 외우면서 머릿속에 차분히 정보를 효율적으로 쌓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일일이 기억을 보고 선별하는 게 아니라 은봉황에 탑재된 자동기능이었고, 일련의 작업이 끝나자 나는 머릿속이 크게 맑아지는 걸 느꼈다.

"오오!"

지금까지는 머리속에 너무 많은 게 들어있어서 헷갈리는 기분이 강했는데 지금은 첫번째 전생때의 기억, 표사 시절에 고구마 먹으면서 야숙했던 밤의 별빛까지 세밀하게 기억날 정도로 기억이 선명해졌다! 마치 꽉꽉 들어차있던 짐을 정리해서 절반 이하로 줄인 느낌이 들어서 내가 흥분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이걸로 백 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이번 생이든 후생이든 선지자에게 가서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물어봐라."

"알았어."

나는 제갈사를 동료로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사가 딱히 동료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회차를 쌓으면 힘이 강해졌겠지만, 이렇게 내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위기에는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다.

혼자서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 각인시킨 후 검마에게로 갔다.

파앗

검마는 내게 그 동안 서문혜의 외가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역시 내 외가인 서가(徐家)에는 아무런 문제도 발견할 수 없었네. 성(城)에 있는 모든 문서와 정보를 뒤졌으나, 서가의 핏줄은 평범한 관료의 핏줄이었네. 심지어 무림과도 관련된 적이 없었어."

"음..."

"다만 좀 이상한 게 있긴 했네."

"어떤 겁니까?"

검마가 무겁게 대답했다.

"좀 더 시일을 두고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그녀의 아주 먼 선조가 유명한 존재였다는 문서를 딱 하나 발견했네."

"네?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주 먼 선조라는 게... 서씨 가문의 시조보다 훨씬 윗대이며 그저 소문에 불과한 걸 몇 줄 적어놓은 거라서 말일세."

"으음."

"최소한 오백년 전, 아니면 그 이상의 기록인지라 쉽게 알 수가 없네. 이걸 알아내려면 다른 성의 문헌과 씨족가문까지 다 뒤져서 물어봐야 하는지라."

"그 기록을 저도 보고싶군요."

"알았네."

검마는 이윽고 그 '수상한' 문서를 가지고 내게 보여줬다. 정말 오래된 책인지 잘못 건드리면 책이 부서질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집게를 가지고 책장을 넘겨야 했다. 나는 그 문서를 차분하게 들여다보다가 검마가 말했던 문제의 언급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증조부 서필(徐畢)이 요동에 여행갔다가 돌아오며 말하기를, 나의 먼 선조가 만천하에 이름을 떨쳤거늘 나는 왜 이런 꼴이냐고 했다. 무슨 일인지 집안사람들이 놀라서 질문했는데 선조가 말하길, 선조가 발견한 신의 무덤이 요동에서 유명한데 다같이 요동으로 이사하자는 말이었다. 터무니없는 말인지라 마을사람들이 서필을 모두 비웃었다.]

이건 무슨 언급일까?

내가 고개를 갸우뚱해서 문헌을 쳐다보자 검마가 말했다.

"서필은 서씨 가문의 시조인데 그 이상의 기록은 책으로 남아있지 않네. 서필 본인도 자신의 부모나 조부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니 그리 될 수밖에. 아무튼 서씨 가문에서 굳이 수상한 점을 찾아내자면 이 문헌 뿐일세."

"요동에 있는 신의 무덤이라는 건 무슨 말일까요?"

그러자 검마가 팔짱을 꼈다.

"이 문헌을 발견한 건 바로 어제의 일이라서 나도 잘 모르겠네. 지금부터 무영문의 힘을 동원해서 그 [신의 무덤]에 대해서 조사해 볼 생각일세."

신의 무덤이 요동에서 유명했다.

그리고 서필은 자신의 선조가 그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지금 서문혜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서문혜가 의문의 괴력을 발휘하는 것과 [신의 무덤], 그리고 서씨 가문의 시조는 무슨 관계로 이어져 있는 걸까?

아직까지는 단서가 너무 적어서 알쏭달쏭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검마에게 말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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