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18화 (61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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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뭐라고?

나는 진소청의 말이 뜬금없어서 약간 놀랐다. 그리고는 되물었다.

"그건 무슨 말이오? 당신이 왜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려 하는건지..."

진소청이 말했다.

"나는 당신의 기억을 읽고 '전생'의 내가 당신에게 빚을 지웠다는 걸 알게 되었소. 하지만 그 빚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지. 내가 당신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고 준 적도 있는 것이오."

"그렇긴 하오만..."

"하지만 그 모든 교환에 대해서 일일이 대가를 정확히 따질 수는 없는 것. 나와 당신은 이미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정진하는 동료가 아니겠소?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마음이 동하여 당신을 도와주려는 것이니 깊게 생각진 마시오."

진소청이 지금 하는 말은 자신이 생각하는 '동료'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 내 마음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건가?'

진소청의 말을 듣자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서 내가 침묵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려는 이유는 간단하오. 그의 기술을 훔쳐배워서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오."

"음...!!"

기술을 훔쳐배운다!

확실히 그건 할 만한 발상이었다. 나 또한 과거 전생을 하다가 기회가 생기자 백련교주의 제자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마 오래지 않아 암천향에 도전할 것이오. 길어도 석 달이면 떠날 채비가 다 될 것 같소. 암천향에 처음으로 도전해서 내가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려는 건 무의미할 가능성이 높소."

"그렇기 때문에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려는 거요."

"응?"

"당신의 흑패는 만일의 경우를 위해 아껴두어야 하고, 이번 생에 이청운을 살리는데 쓰는 건 아까운 짓이오. 그렇다면 내가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천하제일의 무공을 지닌 백련교주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 뿐이지."

과연.

나는 진소청의 말이 비교적 이치에 맞다는 걸 알아차렸다.

' 십이율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이니 이용당할 가능성이 너무 높겠지만, 뇌신류의 무공에 집착을 갖고 있는 백련교주는... 진소청을 제자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하물며 백련교주가 진소청의 재능에 경탄하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도 있다. 교주는 무공에 관한 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진소청의 계획은 꽤 그럴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진소청에게 말했다.

"석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일텐데 그래도 뭔가를 얻을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진소청이 말했다.

"자랑할 생각은 없으나 내 재능은 썩 괜찮은 편이오. 죽을 각오로 도전한다면 백련교주에게서 뭐라도 얻을 수 있겠지."

"음..."

보통은 석달만에 기술을 훔쳐온다고 하면 개소리라고 하겠지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게 바로 진소청의 무서운 점이다.

"당신의 기억을 살펴볼 때 교주는 무(武)에 관한한 상당한 열정과 순수함을 지니고 있소. 진심을 다해서 그에게서 수학하고자 하면 뭔가를 내려줄지도 모르오."

아무래도 진소청은 진심으로 이 순간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든 나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자 새삼 용기가 났다. 진소청같은 천재가 의리있게 나를 도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과거에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어서 칠대절학 연구만 줄창 했지만, 진소청이 그의 제자가 된다면 뭔가 다른 걸 얻지 않을까?

칠대절학이 아닌 교주만의 절기.

현겁과 심천무량에 대한 단서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 알았소! 그러면 암천향에 도전하는 걸 미루는 한이 있어도 당신을 반드시 백련교주의 제자로 만들어 주겠소."

"고맙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안될 일도 아니다. 게다가 어차피 이번 생은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는 전생과정이므로, 성장한 백련교주로 인한 후환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뇌신류의 후계자인 진소청에게 교주의 제자로 들어가게 한다는 걸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진소청이 스스로 나서준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단기간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테니, 나 스스로도 수련을 한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좀 더 미룰까...'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무영문에서 서문혜의 외가 핏줄에 대한 조사를 빨리 끝낸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나는 암천향에 도전하는 시기가 생각보다 멀어질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럼 갑시다."

나는 진소청과 의기투합한 후 곧장 극호에게 찾아갔고, 진소청을 통해서 극호를 쉽게 설득해서 그에게 흑요석을 내밀었다.

우웅

"으... 으읏."

극호도 기억을 얻고 나서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봐 백웅. 그래서 난 지난 생에 풍신류 용비천에게 복수를 한 거야?"

"그렇다고 들었어."

"그렇다고 들었다니 이봐..."

극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약속이 틀리잖아. 난 용비천의 목을 베는 걸 꿈에서도 갈망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지나가듯 얘기해주면 어떻게 하냐? 인생 다 누설당한 기분이야."

"윽 미안..."

그러자 극호가 낄낄 웃었다.

"크크크! 농담이야. 난 되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만."

"어?"

"만일 네가 생생하게 내 복수가 성공한 기억을 보여줬다면 잠깐 기분은 좋겠지만 난 허탈해졌을 거다. 평생의 목표를 예전에 이미 이뤄버렸다는데 더 살아갈 의욕이 나겠냐? 그렇다고 지금 내가 복수를 한것도 아니고."

"......"

맞는 말이다.

' 잠깐. 그럼 앞으로 극호의 숙업을 성취해주면 되려 현생의 그에게 독이 된다는 소린가?'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난데없이 모순을 느낀 내가 머뭇거리자 극호가 말을 이었다.

"뭐... 용비천을 죽이는 것 말고도 내가 하고싶은 일은 꽤 많으니 그렇게 쉽게 허탈함을 느끼진 않을거라 생각해. 지금으로서는 너무 어려워서 문제지."

"내가 도와주면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거다."

"신나는구만!"

그는 크게 기지개를 뻗더니 활기차게 말했다.

"자 그럼 셋이 모인 기념으로 술이나 마실까? 오늘은 내가 쏜다!"

"술? 야 지금 그럴 여유가..."

내가 황당해서 반문하자 극호가 킬킬댔다.

"어차피 너, 되지도 않는 수련한다고 낑낑대거나 뻘짓이나 하고 다닐 거 아냐? 보아하니 할 일도 대부분 해놓은 거 같은데 하루쯤 술 먹는다고 해서 뭐가 어떻다고 그래."

"......"

"괜히 열심히 한다고 유난떠는 녀석들이 될 일도 안되더라고~"

왜 정곡을 찔린 기분이지?!

내가 관자놀이를 짚자 옆에 있던 진소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축하하는 의미로 다같이 술 다섯 병만 마시고 갑시다."

"윽, 다섯 병? 그걸 누구 코에 붙여?"

"기분만 내는 거요, 사형."

"쳇..."

"......"

진소청은 가볍게 죽엽청 다섯 병이라고 했으나, 결코 만만한 양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세 병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져서 고꾸라질 텐데, 진소청도 술을 엄청나게 잘 마시는 것이다.

' 젠장. 뇌신류는 술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거냐...'

결국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술을 퍼 마시고는 닭고기를 좀 먹고 장령곡에 되돌아왔다. 그러자 제갈사가 나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술냄새를 풍기며 오는 거냐?"

"... 마지막 한 병은 내공으로 주정을 없애면 안된다고 해서..."

고수 나름대로 술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해야할까?

진소청이든 극호든 내공으로 얼마든지 주정을 없앨 수 있는 고수들이었지만 암묵적으로 마지막 한 병은 내공을 안 쓰고 순수하게 취하자고 합의하고 있었다. 의식하고 마시면 잘 취하지 않는 게 무림고수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합의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제갈사에게 설명하고는 흑요석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제갈사가 흥미로운 듯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흐음. 다른 것보다 제일 큰 문제는 네 기억력의 누수... 인가."

"그래. 천우진도 술법으로는 해결을 볼 수 없는 것 같더라고."

"그건 당연한 일. 뇌도 장기의 일부니까 일정한 용량이 차면 기억력이 감퇴될 수밖에. 그건 술법을 써도 원천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당연스레 대꾸한 제갈사가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건 나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 같군."

"이제 난 뭘 하면 될까?"

"뭘 하긴. 아직 화룡신검도 얻지 않았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제갈사가 갑자기 숨을 멈췄다.

그러더니 탁하고 자신의 무릎을 치며 외쳤다.

"바로 그거야!"

"뭐... 뭐?"

"백웅! 지금 당장 움직여라. 네 녀석은 이미 반쯤 정답을 찾아냈던 게 아닌가 싶다."

"......?!"

"일단 화룡신검의 봉인부터 해제한 다음에 내가 말하는대로 움직여라."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자 과연 그게 현재 상황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나는 제갈사에게 말했다.

"놈과 교섭을 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할텐데 백금 정도면 충분할까?"

"충분하고도 남겠지. 그럼 당장 움직여."

파앗!

나는 화룡신검이 봉인된 상관가문의 지하로 갔다. 그리고 단말을 통해 여동빈을 부른 후 이 장소에 화룡신검이 있다는 걸 알렸고, 여동빈은 스승을 구하기 위해 즉시 내게 힘을 빌려주었다. 화룡신검이 이윽고 부활하자, 나는 바로 화룡신검을 목갑에 넣은 후 다두왕국으로 이동했다.

나는 다두왕국에서도 서양인들이 머물고 있는 위치로 바로 이동한 후 큰 소리로 외쳤다.

"마테오 리치, 있소?!"

내가 내공을 담아서 우렁차게 외치자 이윽고 서양인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테오 리치가 병사들과 함께 내 앞에 서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유창한 중원어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난 백웅이라고 하고, 당신과 보물을 교환하러 왔소."

"보물이라고요? 하지만 당신은 검 외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것 같..."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갑에서 백금괴를 덥석 집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백금괴의 휘황찬란한 빛이 장내에 비치자 병사들이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는 백금괴의 가치보다는 다른데 흥미가 생겼는지 놀라워했다.

"작은 목갑에서 큰 물건을 꺼내다니. 이것은... 마도구! 당신은 마도사입니까."

"아니오."

나는 자리를 옮겨서 마테오리치에게 전후사정설명을 대충하고 그에게 은빛 봉황조각과 백금괴를 바꾸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마테오리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물건의 가치를 알고계신 분 같은데... 설마 왕조의 후예입니까?"

"그런 건 당신이 알 필요가 없지 않겠소? 다만 이 교환은 당신네가 이득을 보는 거라 생각하오."

"......"

마테오리치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받아들이지요."

나는 곧이어 빈양남동의 동굴에 있던 백금괴 덩어리 모두를 마테오리치에게 건네주고는 은빛 봉황조각을 받았다. 그리고 이미 가지고 있던 태경촌 화씨집안의 은빛 봉황조각과 맞춰보자 한쌍이 되었다. 나는 한 쌍의 봉황조각이 갖춰지자마자 발해의 옛 수도로 향했다.

파앗

그리고 봉황조각을 문에 끼워넣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열왕의 묘역에 도착한 나는 끝자락에 와서는 열왕의 영혼들에게 내가 봉황조각을 손에 넣어 정당하게 들어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는 말했다.

"... 그러니, 제가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발해의 멸망원인을 알고싶다는 말로 교묘하게 속이자 그들은 그런 줄 아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대인선 왕이 품에 들어올만큼 커다란 은봉황을 소환하여 내게 내밀었다.

[ 부디 도움이 되기를...]

"물론입니다."

나는 발해열왕의 묘역에서 나온 후 장령곡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제갈사에게 은봉황을 내밀었다.

"가져왔어."

"... 너도 참 대단한 놈이다. 보통 인간이 은봉황을 얻으려면 평생동안 개지랄을 해도 불가능할 텐데 뚝딱 가져와 버리는군."

"응? 뭐, 전생하면서 미리 얻은 정보라서..."

"크크크."

제갈사는 괴소를 흘린 후 천천히 은봉황을 양 손으로 들어올렸다. 그는 은봉황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네 기억누수의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은 답을 낼 수 없겠지만 연구해 보지."

은봉황!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흑요석보다 훨씬 상위단계의 기억저장장치로써 역대 발해왕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전승하는데 사용했었다. 기억전승에 관한 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보다 뛰어난 보물이므로 제갈사는 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갈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 그리고 현재 네 상태를 의술로도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겠군. 하는 김에 화서명에게 가서 의료진단을 받고 와라."

"알았어."

나는 고려로 가서 화서명에게 접촉해서, 그의 일족을 고려로 데려올만한 자금을 지원해줬다. 다만 이번에는 진찰을 받아야 했으므로 비교적 솔직하게 내 사정을 설명했고, 내가 반로환동은 하지 않았으나 나이가 꽤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에게 내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는 걸 밝히며 진단해 달라고 요청하자, 화서명은 흔쾌히 승낙했다.

"좋네. 본격적으로 자네의 몸을 들여다보려면 삼 주야가 걸리니 마폐탕을 먹고 내부의 기운을 정갈하게 하게나."

"네."

이윽고 나는 얇은 옷가지 하나만 걸친 채 화서명에게 침술, 탕약 등을 포함해 화씨의술의 모든 정수가 담긴 진찰을 받았다. 그렇게 사흘 동안 화서명에게 계속 진찰을 받다가 마지막 날의 저녁에 화서명이 나를 불렀다.

"음... 이걸 뭐라해야할지 모르겠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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