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16화 (61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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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인격을 새걸로 갈아치운다고?

나는 놀라서 제갈사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인격이란 걸 마음대로 갈아버릴 수가 있는건가?"

통상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그러나 제갈사는 당연하다는 듯 그 논리를 확정짓고 있었다.

"크크크. 인격이란 게 뭐라고 생각하냐?"

제갈사는 킬킬 웃다가 말을 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단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어. 외적인 인격과 내적 태도로 구분됨은 물론이고 무의식에 접할 때 심혼의 단층이 수백 겹으로 쌓이는 것도 보통이지. 필요에 따라서 분열하기도 하고 피상적인 외부관찰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그렇게 복잡한 인격이라는 객체를 임의대로 덮어씌우는 건 사실 웬만한 정신술법으로는 불가능해. 하지만..."

그가 혼절해있는 제갈부의 이마를 쿡 누르며 말했다.

"밑바닥에서부터 뒤집어버리면 상관없지. 그래... 갈아치운다기보다는 날려버린다는 게 맞겠군."

"......?!"

"천천히 한다면 구속한 후 약물투입과 세뇌 순서로 진행될거다.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절망을 심어줄 테니. 빠르게 한다면 뭐 이혼대법과 연금술 기타등등."

나는 약간 제갈사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아서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니까... 놈의 정신과 인격을 송두리째 붕괴시켜버리겠다는 소리냐? 무의식에서부터?"

"물론! 그렇지 않으면 써먹을 수가 없으니까."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 안 돼! 그건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아."

나는 오랫동안 제갈사 밑에서 이혼대법과 연금술과 같은 고급지식을 성취해 왔기 때문에 제갈사가 말하는 게 무슨 의도이며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었다.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제갈부의 인격, 그 표상이나 인격의 각인 등등을 모조리 파괴해버리겠다는 소리 - 그것은 [제갈부]라고 불렸던 인간이 죽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자 제갈사가 싸늘하게 말했다.

"오 그러냐? 그럼 쓸모도 없는 이 새끼를 당장 칼로 죽여버리지 그래? 그냥 칼로 쳐 죽이는 건 되고 정신적으로 죽이는 건 왜 안 되는데? 뭐가 달라?"

"어..."

"나한테 도움을 구해놓고 대체 뭐 하자는 거냐?"

"......"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생각해도 모순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차리고 잘 들어. 지금 인간세상의 도덕이나 윤리갖고 따질 때가 아냐. 이 놈의 인격을 날려버릴 경우에 얻게 되는 이득을 지금부터 설명해 줄 테니까."

제갈사는 제갈부를 쳐다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너도 예전에 선지자에게 설명을 들었겠지만, 인간의 [재능]이란 인격과 큰 관련이 있다. 재능이란 정신력의 편린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는 부산물이므로, 둘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어."

"그랬지."

나는 과거에 선지자에게 내 재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선지자가 했던 답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 재능 그 자체를 상승시키는 축복은 매우 드물다... 방법도 매우 한정되어 있지...]

[ 재능이란 건... 노력할 수 있는 재능을 포함해서... 직감... 유연성... 창의성... 선천적인 소질... 발전가능성... 그 모든 걸 의미하지... 하지만 그렇다면... 재능을 올린다는 건... 인격(人格)이 바뀐다는 의미가 되지 않겠나?]

[ 그렇다... 인격...]

[ 인격이 바뀌지 않는데... 재능이 상승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신의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는 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뭐... 그 역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기에 재능을 향상시키는 술식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여차하면 대상자에게 심대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지...]

선지자의 종족은 우주에서 가장 정신적인 초능력이 뛰어난 일족 중 하나라고 들었으므로 정신에 관련된 이론은 모두 진짜배기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선지자의 답변을 떠올리고 있을 때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제갈부는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재능이 너무 뛰어났다. 이 놈은 십대 초반 시절에 이미 절정의 무예이론을 깨달았고 사서삼경을 독파했고 술법의 꽃이라 불리는 부신술에 입문했지. 뭘 하든 쉬웠으니 더 이상 발전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거다. 문제는 그 때 생긴 인격적인 오만함이 이 놈이 나이 서른 넘게 먹도록 재능을 붙잡고 늘어진 거지."

그는 다소 차가운 눈으로 제갈부를 내려다보았다.

"향상심이 없으면 인간은 정체될 수밖에 없어. 이 놈은 원래대로라면 무공으로는 절대지경, 술법으로는 대라신선급에 이를만한 잠재력이 있었지만 스스로 무화시킨거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좀 이해가 안 가는게... 이 놈은 천재니까 자신이 절대적 경지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강해질지도 알고있지 않나? 그 이득을 무시하고 귀찮아서 포기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

그러자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천재니까 더 빨리 포기하지 멍청아. 네 녀석이 지금까지 아무리 재능이 없다고 해도 23번 죽을 동안 절대지경 문턱이나 두드리고 있지 않느냐? 중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무공천재라고 해도 절대지경은 그리 간단히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소 이십여 년은 자기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련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래도 얻을까말까겠지. 그건 고될 수밖에 없는 여정이고, 제갈부는 그렇게까지 강해져야 할 이유도 없었어."

"아."

"머리가 좋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지. 늘 쉬운 길만 골라가다 보니 어렵고 고된 왕도(王道)는 걷지 않으려는 거다."

제갈사가 제갈부를 차갑게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타고난 재능이 있으니 삼사십 년 후에는 자기가 뭐라도 성취해있을 줄 알았겠지. 궁극의 경지라는 건 시간때우기로 얻을 수 있는게 아닌데 말이다."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말했다.

"잠깐. 그럼 제갈유룡은? 그 자는 제갈부와는 달리 강해질 이유나 열의도 충분하지 않은가?"

제갈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흠... 형은 아마 제갈부와는 다른 이유일 거다. 형이 노리는 건 천계 전체의 파멸일진대 개인적인 무력이 절대지경이나 대라신선급이 된다 해도 무의미하지. 네가 이번 생에 계약한 원숭이놈을 이기려면 수백 년동안 수련해도 모자라니까."

맞는 말이다.

제천대성의 무력을 생각하면 보통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 수련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의 어마어마한 격차 - 그건 반신반마와 인간이라는 종족적 차이에 가까웠다.

"게다가 내 생각이지만 형은 이미 천계 서왕모의 정체와 강함을 알고있을 가능성이 높다. 너같으면 인간이 서왕모같은 존재와 대적하려 하는데 절대지경갖고 될 거라 생각하느냐?"

"......"

"너같이 무한히 전생하는 미친놈이 아니면 형처럼 일신의 무력향상을 포기하는 게 정상이야."

너무 설득력이 있어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형은 천계를 진심으로 파멸시키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수련을 할 시간도 아껴가면서 계략을 꾸미고 있는 거겠지. 그걸 실제로 이룰지도 모른다는 게 형의 무서운 점이지만..."

그렇게 설명해 준 제갈사가 목이 마른지 옆에 있던 차를 잠시 따라 마셨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이 놈의 경우는 인격적인 나태함과 냉혹함, 이기심이 자신의 재능을 방해하고 있다. 우리가 이 놈의 인격을 완전히 날려버려서 백지로 만들어버리고 나면 거기에는 순수한 재능만이 남게 된다. 이해했냐?"

"... 정말로 그게 될까? 인격만 날아가고 재능도 아예 사라질 수도 있잖아."

내가 반박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래서 이혼대법의 정밀한 사용이 필요한 거다."

"이혼대법?"

제갈사는 고개를 끄덕인 후 양 손을 들어서 손바닥이 보이게 했다. 그는 이윽고 이혼대법을 시전해서 손에 혼을 끌어당길 준비를 한 후 말했다.

"이혼대법을 극성으로 연마하면 백의 힘으로 혼을 끌어당김은 물론이고 자신의 백을 상대에게 침투시켜서 상대의 정신과 육체를 장악할 수 있지. 동시에 상대가 무의식에 잠재적으로 품고 있는 표상(表象)과 지각(知覺)을 복사해서 내게로 잠시 옮겨오는 게 가능해."

"뭐?!"

"혹시 모르니 놈의 기억과 인격을 잠시 저장해놓은 후 이혼대법의 백을 움직여서 인격의 내연과 외연을 송두리째 완전히 지워버린다. 이 방법이면 부작용은 없을거라고 확신해. 왜냐하면 복사하는 과정에서 놈의 정신이 갖고 있는 저항본능을 잠재울 수 있거든."

"아니 물론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이혼대법을 꽤 익혀왔기 때문에 제갈사가 말한 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이혼대법은 백(魄)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기법이기 때문이다. 백을 이용하면 상대의 영혼과 정신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실제로 백을 다뤄본 내 경험에 따르면 그저 상대의 혼을 끌어당기는 단순한 작업에도 고도의 감각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상대의 정신 자체를 지워버리고 동시에 기억의 표상을 복사해오는 건 엄청난 숙련도가 필요했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이혼대법의 극성에 도달하는 건 요원한 길일지도 모른다. 내가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제갈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방금 전 말했지. 내가 제시하는 방법을 하려거든 딴지 걸거나 개소리 하지 말라고."

"음..."

"난 더 이상의 계책을 줄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이 놈을 멀쩡히 살려서 부린다는 건 개소리고 어불성설이야. 설령 이혼대법으로 백을 제압한 채로 조종한다 해도 이렇게 교활하고 능력좋은 놈이면 언제든 틈을 찾아내서 네 녀석의 뒤통수를 칠거다. 아마 제갈유룡이랑같이 뒤통수 치지 않을까? 암 걸리는 상황이 올게 뻔한데 난 그 꼴은 못 봐."

으르렁거리듯 말한 제갈사가 말했다.

"선택해! 이 놈의 정신을 날리든가 아니면 그냥 이 자리에서 죽여버려. 무명제사서는 그냥 잃었다고 치면 되니까."

나는 고민했다. 제갈사의 말이 사리에 맞았고 이번 일이 내 실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동안 죽으면서 쌓인 피로감을 풀고 내 강함을 확인하기 위해 제갈부와 겨뤄본 셈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손해였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더 억지를 부려봐야 남는 것은 없으리라.

하지만 - 어쨌든간에 정신적으로 살해하는 것 또한 죽이는 건 마찬가지다.

과연 제갈부를 다짜고짜 쳐죽일 정도로 놈이 지금까지 현저한 악행을 했는가?

"......"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아니다.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백성의 아픔따위는 모르는 능력좋은 개새끼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해적놈들처럼 극악무도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손이득에 따라서 영합했을 뿐이다. 물론 이런 놈이 향후 아무렇지도 않게 사악한 짓을 저질러버린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제갈부는 아직까지는 극악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미안. 망량하고 조금 얘기해 볼 시간을 줘."

"그래라. 난 이 놈을 이혼대법으로 금제해 두지. 할 거 다 하고 다시 찾아오도록."

제갈사는 망량과 대화하는 게 나쁘지 않다 생각하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와서 황산에서 식토를 다루고 있을 망량에게 찾아갔다.

파앗!

나는 망량에게 흑요석을 줘서 그동안의 경과를 보여주었다. 망량은 흑요석을 받아든 후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형님을 어찌 생각하냐면, 착잡한 정도요. 당신 생각대로 형님 본인은 그리 선악을 나눌 수가 없고 그저 머리가 아주 좋은 사람이지만... 비정한 사람이지. 허나 나는 술법의 재능이 없는지라 형님에게 열등감이 있었고 그의 단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황궁 내황각에서 나와버리고 말았소."

그는 먼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 난 근래 당신의 기억을 통해서 그동안의 기밀정보를 얻게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고 있소. 어쩌면, 그조차도 내 아버지에 의해 의도된 게 아닐까 하는."

"......?"

의도된 거라고?

내가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자 망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은 추측일 뿐이오. 하지만 당신이 형님께 품은 일말의 온정은 틀리지 않다 생각하오. 형님은 개심이 불가할 정도의 사악한 인간은 아니니 개선시켜줬으면 하는 생각이오."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의 이혼대법으로 일단 인격을 날리는데는 찬성이오. 다만 인격을 날리고 나서는 그를 동료로써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대해줬으면 하오. 그리고 그가 충분히 선한 마음을 가지게 된 다음에 그를 원래대로 되돌려주면 되지."

"아..."

설마 제갈사가 무의식의 표상과 지각을 복사한다는 건 그런 의미도 담고 있었던 건가?

내가 뒤늦게 이해하고 고개를 주억거리자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숙부의 말마따나 다른 방법은 없소. 내가 생각해도 제갈부 정도 되는 책사를 이혼대법으로 안전하게 부려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의외로 망량 또한 제갈부를 일단 정신적으로 없애야 한다는데는 찬성인 것 같았다. 다만 그가 접근하는 방향은 일시적으로 제갈부를 혼내주고 그를 개심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나는 궁금해져서 망량에게 질문했다.

"망량. 만일에 제갈부가 온전히 재능만을 발휘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잠재력을 지니게 될 거라고 생각하오?"

"음..."

망량은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그는 진정한 중원지보로 거듭날 것이오. 나는 형님을 꽤 싫어하는 편이지만 그의 재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소."

"그렇군..."

나는 망량의 말을 듣고서 마음을 결정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제갈사에게 돌아가려 할 때 망량이 나를 불러세웠다.

"백웅."

"왜 그러시오?"

"그리고 그 관우 운장의 후예를 찾는 일은 비교적 쉬울테니 그 일도 내게 맡기시오. 대신 그 언월도는 잠시 내게 맡겨두시오."

"음, 알겠소. 그런데 쉬울거라니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라도..."

내가 질문하자 망량이 피식 웃었다.

"맙소사... 백웅 당신 글공부를 한지 오래되어서 잠시 까먹은 듯 싶군. 관우 운장은 삼국시대 소열제 유비의 의형제이자 그 시대에 투신(鬪神)으로까지 불렸던 위대한 명장이오. 기억나지 않소?"

"아!"

나는 그제서야 기억해내고 탄성을 흘렸다.

' 내가 왜 그걸 까먹고 있었지?'

관우는 아주 유명한 건 아니었으나 삼국시대의 역사에서 빠질 수가 없는 인물이었고 민간에서의 인지도도 상당했다. 내가 당황하자 망량이 말했다.

"무리도 아니오. 당신은 글공부를 한지 수십 년도 넘었고 그동안 온갖 신비와 모험을 거듭하면서 과거사에 신경쓸 새도 없이 구르고 또 굴렀으니 잠시 까먹을수도 있지."

"흠, 다시 공부를 해야하나..."

"그럴 필요는 없고, 관우 정도 되는 위인의 후예라면 추적하기가 쉬울 것이오. 반천맹을 운용해서 내가 찾아보겠소."

"부탁하오."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약간 불안함을 느꼈다.

' 뇌정경으로 얻는 암기력도 완전하지 않아...'

지금까지 나는 중요한 암기를 해야할 때마다 뇌정경을 운용하면서 내 암기력과 뇌의 활용도를 높여서 기억해 왔다. 이 방법으로 지금까지 전생하면서 기억이 누수되는걸 최대한 막아왔지만 지금 헛점이 드러난 것이다. 왜냐하면 암기력이 아무리 높아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억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문제군!'

뭔가 다른 방법으로 내 기억을 저장하는 게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50회차나 100회차가 되었을 때는 이런 사소한 정보가 아니라 중대한 정보나 단서를 까먹을 가능성이 높았다. 관우를 모른다고 해서 내게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 신의 약점이나 비밀을 알아내고 나서 까먹으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기억과 인생경험만 해도 보통인간으로 치면 수백년 치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겪은 모험과 정보만 해도 보통 인간이 결코 일생에 얻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다. 단순히 흑요석에 기억을 저장하는 술수는 얼마든지 부릴 수 있지만, 이건 근본적으로 내 기억력의 누수를 막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흑요석은 내가 전생할 때마다 전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천암비서의 전생능력이 어떤 원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기억을 전승한다는 말인가?

' 어떻게 하지...?'

전생할 때마다 기억을 계속해서 저장할 수 있는 단말장치.

나는 그게 굉장히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까지는 뇌정경으로 버텨왔지만 이제 슬슬 그게 안될 조짐이 느껴진 것이다.

' 일단 머리를 식히자.'

나는 고민하다가 천우진에게로 향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일단 할 일은 해야했으므로 천우진을 통해서 전국옥새부터 얻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천우진은 나와 마주치자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난번에 결계 값도 못 받은 걸로 아는데... 염치없이 전국옥새의 결계를 공짜로 뚫어 달라고?"

"......"

"대가를 당장 내놔. 안 그러면 일하지 않겠다."

역시 이 놈은 대가를 계산하는 데 아주 철저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 선지자에게 성련과 흑백련을 꽤 퍼줘서 이제 남아있는 건 거진 중요한 보물밖에 없었다. 나는 인면지주의 내단을 놈에게 줄까 생각했지만, 이건 당산한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므로 망설이게 되었다.

나는 고민하던 중 말했다.

"음... 여기 백변신투의 비급은 어떻냐?"

천우진이 짜증을 냈다.

"내가 도둑놈 무공을 익혀서 뭐하라는 소리냐? 너희 강호인한테야 그런 게 쓸모있겠지만 난 필요없어!"

"... 그럼 백금이나 좀 가져갈래?"

"일단 내놔 봐."

내가 백금을 약 열 덩어리 꺼내자 천우진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말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이것도 별로야. 좀 술법쪽 보물은 없냐?"

"보패를 달라는 소리냐?"

"주면 좋고."

아무래도 이 녀석은 은근슬쩍 백우선이나 순어구 같은 보패를 주기를 원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전국옥새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줘도 되긴 하지만 나는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천우진을 본격적으로 흑요석을 주고 동료로 받아들였으니 좀 보물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음... 암천향에 갈 때 준비가 많이 필요하니 되도록 보물을 아껴야 할 텐데... 다른걸로 대체할 수 없을까... 아!'

나는 고민하다가 천우진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빚이 있잖아!"

"무슨 소리냐?"

나는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50년 후의 네가 환신지경의 단서를 준 걸 흑요석으로 읽었잖아. 넌 왜 그걸 생으로 받아먹고는 입을 닦고 앉아있냐?"

"......!!"

천우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받을 생각만 하고 있다가 내가 역습을 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그건 빚이라 할 수 없잖아. 어차피 내가 찾아서 내가 전달한 건데."

"내가 흑요석으로 기억을 전달하지 않았으면 네가 얻을 수 있었을까? 엄연히 내가 전생하면서 얻어낸 성과야!"

"윽!"

"염치없는 녀석일세!"

내가 천우진을 공박하자 놈은 크게 당황한 듯 했다. 그러더니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제길... 알았다! 공짜로 전국옥새 결계를 깨러 가 주면 될 거 아냐!"

"하하하."

"대신 앞으로 이 빚은 없는 걸로 해라. 이번 생으로 끝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는 없지."

"뭐라고?"

"환신지경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보통 빚인 줄 알아? 넌 앞으로 계속계속 날 위해서 노예처럼..."

천우진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고 내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순간이었다.

' 어어...'

졸린다.

갑자기 엄청난 수면욕이 쏟아지면서 나는 눈 앞이 흐릿해짐을 느꼈다. 눈 앞에 있던 천우진도 마찬가지인지 놈의 신형이 허물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수면욕에 기절하듯이 잠들고 말았다.

꿈의 세계.

나는 오솔길이 있는 마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내 옆에는 천우진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우리 두 명의 앞에는 새까만 고양이가 앉아서 자신의 발을 핥짝거리고 있었다.

새까만 고양이, 망량선사는 대뜸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 3회 무료다.]

"응?"

망량선사는 하품을 했다.

[ 넌 정말 공짜를 좋아하는군. 남의 제자 너무 등쳐먹지 마라.]

파앗

나는 잠에서 깨어났고, 이윽고 찝찝한 눈빛으로 천우진과 눈을 마주쳤다.

천우진 또한 기분이 더러운 건 다르지 않은지 우울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다만 놈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정도 짓고 있었다.

"야, 가자."

"... 알았어."

나는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 망량선사가 끼어들다니...'

망량선사가 중재해버려서 천우진의 힘을 공짜로 계속 쓸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대신 앞으로 3번의 전생 동안은 천우진에게 대가를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될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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