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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07화 (60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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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서왕모는 여와 -

'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 것은 바로 망량이었다. 과거 미호가 서왕모의 청조를 죽이고 천계에서 추방되었을 때의 증언을 들었을 때, 망량은 그 후 진랑곡에서 나와 의논을 했다. 그리고 망량은 대번에 서왕모가 여와의 화신체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때는 그저 가능성의 하나일 뿐이었고 확실한 증거는 없었으나, 이번 전생에서는 가면 갈수록 그녀가 여와의 화신체라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왔다. 무엇보다도 반고의 주문을 외우며 인과율의 역풍을 감당하고 심지어 삼황오제의 허락을 즉시 받아낼만한 존재는 그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제갈사의 계책대로 공공에게 서왕모가 여와의 화신체라는 걸 알리며, 동시에 치우가 현재 봉인되어 있는 장소를 알려줬다. 2개의 정보는 하나같이 공공에게 있어서는 귀중하기 짝이 없는 정보였기에 그가 나를 사도로 삼는 걸 허락한 것이고, 또한 나아가서는 협력해서 서왕모를 죽이자는 모의가 시작된 것이었다.

서왕모가 공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그렇다. 내가 여와이자 서왕모! 감히 공공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공공이 훗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 보통 화신에는 큰 힘을 불어넣지 않고 개별인격을 주거늘... 여와 그대는 서왕모라고 하는 '분신'을 만들어냈구나. 스스로 '서왕모'라고 하는 흉수의 몸을 직접 조종하는 셈이겠지...]

[ 후후, 눈썰미는 있구나.]

[ 어지간히도 지상세계를 관리하고 싶었나 보군.]

[ ......]

[ 그렇다는 건, 지금 널 없애기만 하면 삼황의 일좌가 크게 실각한다는 뜻.]

공공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애초에 공공이 위험부담이 가득한데도 날 사도로 받아들이고 천계소환에 응한 이유는, 바로 여와의 화신체를 죽여서 여와를 약화시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현재 삼황 염제를 가두고 있는 봉인에는 여와의 힘이 많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여와가 약해져야만 염제가 풀려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자 서왕모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으며 흉수(凶獸)의 시꺼먼 눈을 번들거리며 웃었다.

[ 이 서왕모의 몸이 여(余)의 분신이라고 함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느냐? 네게 절망을 일깨워 주마.]

쿠구구구

불길한 짐승의 등 뒤에서 시꺼먼 기운이 번져나오더니,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건 단지 느낌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시간이 정지된지라 잠시동안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서왕모의 반인반수의 외형에서 표범의 꼬리가 슬며시 치켜들어지며 공공을 가리켰다.

파지직

공공의 전신이 오그라드는 듯 했다. 무언가 살벌한 공격을 가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나는 그 공격이 뭔지 알 수 없었고, 공공이 씹어뱉듯 내뱉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 내게서 이름을 뺏아 죽음에 이르게 하려는가?]

갈(喝)!

공공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자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 해제되면서 서왕모의 술법이 튕겨나갔다. 서왕모는 흉측한 웃음을 흘리며 공공을 조롱했다.

[ 생각보다 더욱 힘을 되찾았구나. 허나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 ......]

공공은 침묵하면서도 서왕모에게 곧장 반격을 가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공공은 이윽고 마음을 결정한 듯 목갑에서 화요를 꺼내었고, 칠요를 발견한 서왕모가 경계하듯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고오오오

인간이 화요를 든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서왕모였겠지만 공공이 화요를 든다는 건 의미가 다른지 상당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윽고 공공이 화요에 이어서 슬며시 다른 쪽 손에 금요를 들어올리자 힘이 더욱 강해졌고, 서왕모는 그 모습을 보자 깜짝 놀라서 외쳤다.

[ 금요를 네놈이...]

[ 정말 끝까지 가 볼까? 흐흐.]

공공이 엄포를 놓듯 히죽거리자 서왕모가 크게 화가 난듯 자신의 발톱에 힘을 주며 대꾸했다.

[ 경고하겠다. 네가 만일 칠요의 봉인을 푼다면 결코 가만두지 않으리라!]

[ 칠요의 봉인을 푸는 게 뭐가 그리 무섭지?]

[ 닥쳐라.]

[ 흐흐. 결국 너 자신도 거대한 계획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뿐 아닌가?]

서왕모가 공공을 노려보았다.

[ 나는 너와 그런 이야기를 논할 생각이 없다. 다시 한 번 경고하겠지만 칠요를 푸는 순간 나는 모든 인과율을 감수하고 거인족을 멸망시킬 것이다.]

[ 그래...?]

공공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손에 힘을 주었다.

[ 네가 싫어하는 짓을 하고싶구나.]

뿌드드득

뿌드득

마치 양손에 들려있던 화요와 금요가 쥐어짜내지듯이 기음(奇音)을 토해냈다. 그리고 전면에 알 수 없는 기괴한 문자가 빛을 내며 떠올랐고, 그 봉인이 마치 계란껍질처럼 서서히 깨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공공이 강제로 칠요의 봉인을 해제하고 있는 게 분명했기에 서왕모가 악을 내질렀다.

[ 끝내 내 경고를 무시하는구나!!]

콰과광

다음 순간 서왕모가 술법도 쓰지 않고 직접 짐승의 몸으로 뛰어들어 공공을 앞발로 후려쳤다.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너무나 빠르고 강한 움직임이었고, 시간을 조작했는지 전조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거대한 신력이 실려있으니 보통은 투선이라 해도 서왕모의 일격에 즉사하리라.

그러나 공공은 자신의 주변에 방어막을 쳐서 막아내었고, 서왕모는 화가 났는지 다시 한 번 발을 들어 방어막을 후려쳤다.

콰광

[ 크으으.]

공공은 약간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렸다. 나는 공공이 괴로워하자 내심 충격을 받았다. 공공은 전욱의 현손 팽조조차 가볍게 사지를 뽑아죽일 정도로 강한데 고작 서왕모의 공격 두 방에 못 버티는 기색이라니? 괜히 제천대성조차 서왕모를 두려워한 게 아닌 듯 싶었다.

[ 카핫!]

하지만 공공은 서왕모의 세 번째 공격이 날아들기 전에 갑자기 목갑에서 내 수요를 꺼낸 후 곧이어서 입에서 시꺼먼 기운을 토해내었다. 수요와 시꺼먼 기운은 허공에 둥실 뜨더니 화요와 금요에 신령스러운 빛을 연결했는데, 총 4개의 신기(神器)가 떠 있는 것을 본 여와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 수... 수요... 그리고 토요...]

공공이 입에서 뿜어낸 시꺼먼 기운은 토요 팔괘도!

그는 그 짧은 시간에 암천향에 가서 토요를 가져온 것이다.

[ ......]

서왕모는 세 번째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 흐하하하.]

공공은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앞에 떠올라 있는 4종의 칠요(七曜)를 뽐내듯이 내세웠다. 서왕모가 다시 한 번 움츠러들자 공공이 히죽 웃었다.

[ 상황을 이해했나 보군. 내가 이 4개의 칠요를 한꺼번에 억지로 해방시키면 어떻게 될까?]

[ 그만! 그만둬라.]

[ 삼황오제 모두가 발바닥에 불이 나겠지.]

서왕모는 크게 분노한 듯 몸을 부들거렸다. 그리고 부들거리는 동안에 그녀의 신력이 더더욱 증폭되어, 이제는 마치 해신조차 넘어설 듯한 힘이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의 서왕모는 계속해서 힘이 강해지고 있어서 마치 무한대로 강해지는 괴물과 같아 보였다.

나는 그제서야 서왕모가 한없는 오만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 단순한 화신체가 아니라 화신이자 분신... 그래... 그렇기 때문에 서왕모는 저 모습으로 변신하면 본체 여와의 힘을 무한정 끌어올 수 있는 거야!'

보통은 저런 방법을 쓸 수 없지만, 자신의 힘에 엄청난 자신감이 있는 여와이기 때문에 가능한 편법이 아닐까?

아직은 인과율 때문에 정해진 만큼만 끌어올 수 있는 모양이지만, 서왕모가 위협을 느끼면 느낄수록 여와의 힘이 더욱 채워지게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지모신이자 삼황인 여와 본체의 힘이 다 옮겨올 경우 아무리 공공이 칠요를 쓴다고 해도 승산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왕모는 공공을 더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공공이 칠요해방을 인질로 여와를 협박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왕모가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 공공. 원하는 게 무엇이냐? 나와 협상을 하고싶다면 일단 얘기는 들어주겠다.]

[ 조건은 두 가지다. 그걸 들어주면 오늘은 천계에서 순순히 물러나 주마.]

[ ... 말해봐라.]

공공은 으스대듯이 말을 이었다.

[ 첫 번째. 나의 왕께 걸어놓은 봉인을 풀어라. 그 봉인의 8할 이상은 네 힘으로 이뤄져 있을터이니 그것만 사라지면 염제께서 부활하시리라.]

[ 또 하나는?]

[ 이 자리에서 자살해라. 그 정도는 해주지 않으면 안되겠지.]

[ ......]

나는 공공의 조건을 듣자 기가 막혔다.

' 들어줄 리가 없어!'

저 성격 더러운 여와가 서왕모의 몸을 조종하면서 전투력이 우위에 있는데 뭐하러 공공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인가? 나는 공공의 요구가 과하다는 걸 느끼자 절로 긴장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싸우는 도중에 자해해서 자살하라는 말을 순순히 들어줄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서왕모는 포효를 뿜어내며 말했다.

[ 네 이름을 걸고 약속하라! 네 조건을 따르면 결코 칠요를 해방하지 않겠노라고.]

[ 크흐흐... 약속한다.]

[ 인과율은 성립되었다.]

쿠궁

다음 순간, 서왕모의 괴물같은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그 몸에서 완전히 생명력과 신기가 빠져나가서 금세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진짜?!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깜짝 놀라서 공공에게 말했다.

[ 공공!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설마 정말로 서왕모가 자살했단 말입니까?]

[ 여와가 움직이는 분신이니 당연한 일이지.]

[ 하지만 어떻게...]

[ 흐흐흐. 여와가 내 협박에 굴복한 것이다. 내가 그딴 약속을 지킬 것 같으냐 바보같은 년!]

공공이 유쾌하게 웃으며 외쳤다.

[ 크하하하. 이걸로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었다. 이제 월요와 목요만 손에 넣으면, 일요로 향하는 문이 열릴 것이다.]

나는 공공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멈추는 것 같았다.

일요(日曜)!

그것은 최강의 칠요이자 황제 공손헌원이 직접 만들었다는 신기!

일요를 제외한 나머지 육요(六曜)를 모두 모아야만 손에 얻을 수 있다는 최후최강의 칠요가 어느 새 눈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공공의 말을 듣자 크게 혹하며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 잠깐... 그렇다면 그냥 공공을 도와서 일요까지 얻어버린 다음에 칠요와 거인족의 힘으로 삼황오제를 물리치고 인간의 생존권을 보장받으면...'

내 전생여정은 끝나는 게 아닌가?

영 가능성없는 소리도 아니었다. 칠요를 모두 얻은 거인족이 치우와 염제를 부활시켜서 진격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고, 게다가 치우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듯 했다. 비록 내 의지대로 모든 신적인 존재를 멸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지만 어쩌면 이게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아직까지 남겨뒀던 제갈사의 '그 방법'을 써서 자멸하지 않고도 이번 생으로 모든 걸 끝낼 수도...'

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을 때 공공이 말했다.

[ 크흐흐. 그럼 서왕모의 죽은 몸에서 힘을 흡수해 보실까...]

[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 물론이다. 여와의 신력이라 군침이 도는구나.]

저벅 저벅

공공이 내 몸을 움직여서 서왕모의 시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서왕모에게서 신력을 흡수하려는 순간이었다.

투웅!

[ 아니?!]

공공의 손이 크게 뒤로 밀려나며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반고의 진 내부가 아니라 전혀 다른 혼돈의 이공간(異空間)인 듯 했다. 요천군의 낙혼진과 마찬가지로 땅도 하늘도 없었으나 다른 점이라면 순도높은 혼돈으로 공간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었다.

[ 이건 무슨 술법이지...]

공공은 이런 술법을 전혀 본 적이 없는 듯 당혹해했다.

"거인족."

그리고 공공을 방해한 자는 혼돈 내부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인간의 형체가 혼돈 속에서 점토처럼 주물럭거리며 변화하다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도관을 쓰고 대라신선의 옷을 입고 있는 그 모습은 내가 전생할 때마다 봐 오던 모습이라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주게."

싱긋 웃으며 공공에게 말을 거는 그 자는 바로 태허천존(太虛天尊)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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