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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06화 (60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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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서왕모가 나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나라도 반고의 주문을 지키려고 방어막을 쳐뒀을테니 예상했던 바였고, 침착하게 이 결계를 뚫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봤다. 어찌됐든 내가 해야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 일단 힘으로...'

파칭!

선검술을 끌어올리며 화요를 손에 들자 쌍검술의 형이 갖춰졌다. 비록 지금까지 우여곡절이 많아서 쌍검술을 제대로 수련한 적은 없지만, 내가 펼치는 합은 일격필살이었기에 충분히 일검류의 감각으로 소화해낼 수가 있었다. 두 명의 대라신선이 내 양수에 머물며 최대의 힘을 보내주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할 수 있을까?

' 아니, 해야 해!'

나는 약한 마음을 접어두고 명경지수의 상태로 들어갔다. 나도 그동안 무예를 수련해 온 가락이 있기 때문에 잡념을 없애고 신검합일의 태세로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었다. 정신을 집중하자 시간이 멈춘 듯 했고 내 몸은 어느 새 뛰어올라서 일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뇌신류(雷神流)

일섬(一殲)!

번개같은 베기가 차례로 결계에 꽂혔다. 먼저 화룡진인이 끌어낸 화요천염의 힘이 일점에 집중되어 결계를 크게 타격했고, 진동이 은은하게 울리는 사이에 빈틈으로 여동빈의 선검이 꿰어뚫었다. 여동빈의 검극이 동시에 천둔검법의 풍결(風決)과 운결(雲決)을 운용하며 격렬하게 요동쳤고, 대라신선 최고의 투기가 결계를 찢어버렸다.

촤아악

"......!!"

하지만 베인 듯 하던 결계는 겨우 절반쯤 갈라졌을 뿐이었다. 다행히 수복되지는 않는 듯 했으나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칠요 화요천염의 힘에 여동빈 필생의 검력을 동원했는데도 뚫을 수가 없다니?

곤륜십이대선의 결계보다 몇 배나 강력한 게 바로 이 결계라는 뜻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렇게 강력한 결계가 있다니! 내가 당혹해하는 사이에 서왕모의 말이 결계 내부에서 들려왔다.

[ 여동빈... 화룡진인... 무릇 역량있는 뛰어난 신선들이 내게 반기를 들다니 슬픈 일이군. 그리고 칠요를 가져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허나 미해방 상태에서 기술만을 이끌어내 봤자 격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

"......"

[ 반역은 끝났다. 그대들은 고개를 조아리고 물러서라. 지금의 죄과는 곧 반고의 주문이 끝나고 나면 묻겠노라.]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말투로, 서왕모는 담담하게 내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그도 그럴것이 방금 전에는 거의 최대급의 힘을 쏟아부었으므로 당분간 방금 전같은 힘은 뿜어낼 수 없고,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에 아군이 전멸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여동빈의 선검에서 흐르고 있던 영기는 크게 떨어져 있었고 화룡진인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모든 힘을 쏟아낸 탓에 당분간은 힘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서 외쳤다. 지금까지의 울화가 고스란히 터져나왔다.

"반역? 네가 뭔데 반역이니 뭐니 하는 거냐?! 씨발년아!"

[ 음...?]

서왕모는 뜻밖이라는 듯 대꾸했다. 나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는데 깜박했다는 태도였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버럭 욕을 내질렀다.

"개같은 년! 죄없는 신선을 잡아먹으니 맛있더냐? 흉계를 꾸며서 천상을 농락하니 즐거워? 고매한 척 호박씨나 까는 호로잡년아!"

[ 이놈...]

나는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꼼짝말고 기다려라. 그 돼지같은 목을 베어서 소금에 절여주마."

[ ......]

서왕모가 황당하다는 듯 침묵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 후후후... 그래, 벌레같은 놈이 짖어대는구나.]

아직까지 격차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가 욕을 먹고도 태연히 나를 비웃었지만 나는 투지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 때가 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말로 쓰고 싶지 않았던 방법이다. 선검술과 화요천염으로 뚫을 수 있다면 그냥 반고의 주문만 깨고 서문혜만 구출해서 지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아무리 오늘 죽을 것을 각오했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안 죽고 살아남는 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량이 부족함이 드러난 이상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내 죽음을 전제로 한 아수라장을 이 곳에 소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계획을 시작하기 전에 여동빈과 화룡진인에게 말을 걸었다.

[ 두 분.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쓸 방법은 도리에는 맞지 않지만... 이 방법을 쓰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내 말에 여동빈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 연자여. 그대가 그 마도사에게서 어떤 방법을 언질받았는지 알고 있다. 나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으니. 확실히 그 방법은 결코 천계의 대라신선으로써는 용인할 수 없는 방법이다.]

[ ......]

[ 허나 서왕모는 천계를 버렸다. 그리고 천계의 정의도 버려졌다. 그렇다면 나 또한 천계를 버리고 나 자신의 정의를 추구할 뿐...]

[ 여동빈.]

[ 연자여. 용기를 내라. 나 여동빈은 그대가 어디까지 가든 따라가겠다.]

그에 이어서 화룡진인이 말했다.

[ 역시 내 제자구나! 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니 못된 제자군.]

[ 화룡진인.]

[ 가거라! 오늘 천계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그대가 가는 길이 옳다고 믿어라. 그것이 바로 진정한 도(道)이리라.]

[ ... 고맙습니다.]

나는 두 신선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이걸로 더 이상 망설일 것은 없는 것이다. 나는 마음을 정하자마자 오른손을 들어서 천천히 목갑을 꺼냈다.

"여기에 제물이 있나이다."

나는 제갈사에게서 배웠던 마도의 비술과 제물공양방법을 생각하며 주문을 읊었다. 비록 약식이긴 하지만 이만큼 영력이 충만한 천계에서는 인간계보다 훨씬 공양의식이 성립하기 쉬우리라. 이윽고 주문이 빠르게 완결되자 나는 목갑에서 '제물'을 꺼내서 하늘에 퍼부었다.

"이 식토(息土)를 받으시고 이 땅에 강림하시옵소서!! 공공!!"

콰르르륵

콰르르르르

다음 순간, 내가 황산에 가서 대량으로 모아넣었던 식토가 마치 살아있는 듯 조그마한 목갑에서 터져올랐다. 이것은 바로 전욱이 인간에게 하사하여 홍수를 제어하게끔 했던 신의 은혜, 식토(息土)! 당연히 영약과 신물을 재배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영력을 머금고 있었고 나는 그 식토를 짧은 시간동안에 최대한 퍼와서 목갑에 넣었던 것이다.

허공에 떠오른 법진(法陣)이 식토를 빠르게 집어삼켰다. 그리고 식토가 회오리치며 모두 빨려들어갔을 때, 갑자기 허공에서 얼음과 화염이 교차하며 한 줄기의 빛이 떨어졌다.

콰과과광

[ 인과율은 성립했다. 나 그대에게 강림할지니!!]

공공의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내 몸에서 푸른 번개가 번쩍거리며 뻗어나갔다. 동시에 내 의식이 잠시 뒤로 밀려나면서 엄청난 영적 존재가 내게 강림하는 게 느껴졌다. 거신(巨神)의 영혼이 내 몸을 잠식하는 것이다.

후오오오

이윽고 내 몸에 공공이 강림을 마치자, 그는 양손에 들려있는 선검과 화요를 한번씩 쳐다보더니 히쭉 웃으며 목갑에 얌전히 집어넣었다. 두 대라신선의 영혼은 공공의 힘에 저항할 수 없는 듯 그의 뜻에 따랐다.

[ 고작 이따위 결계를 깨는 데 거창한 물건이 필요없다.]

그리고는 공공이 내 몸을 움직여서 다짜고짜 발 밑의 결계에 발을 굴렀다.

투쾅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무리 반쯤 뚫었던 결계라지만 공공의 주먹 한 방에 결계가 통째로 분쇄당했고 그 후폭풍 때문에 반고의 주문을 외우고 있던 신선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크아아악."

"으악."

신선이라 해도 고통은 느끼는 법이었고 하물며 공공의 신력으로 발생한 돌풍은 신선에게 치명적이었다. 날려가던 신선들은 더러 죽기도 했고 의식을 잃고 영체화 되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쿠구구구

공공은 팔짱을 끼며 천천히 아래로 하강했고, 진의 중심에 있던 오색구름을 휘감은 존재와 대치했다. 오색구름을 휘감은 서왕모는 정말로 당혹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뭣...? 공공, 네가 어떻게...]

[ 하하하. 내가 나와있는 게 그리도 신기하느냐?]

공공은 잔인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 나 또한 그대처럼 고매한 존재가 수천 년간 어린애 연극을 하고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노라.]

공공의 몸 주변을 떠돌던 화염과 빙령(氷靈)이 뭉쳐서 수백 개의 창날으로 변했다. 공공은 고개를 까닥이며 빙염의 창을 서왕모에게 발사했고, 그 공격은 예전 전욱이 긴나라를 공격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삭제된 듯 피할 수가 없어보였다.

퍼버벅

공공의 공격은 순식간에 오색구름을 꿰뚫어서 서왕모를 꼬치처럼 만들어 버렸다. 설마 일격에 결판이 나 버린 것인가 생각했지만 역시 그게 아닌 듯, 서왕모의 오색구름이 씻은듯이 사라지며 빙염창 또한 소멸되었다.

스스스

오색구름이 거둬지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서왕모였다. 그녀는 수기공양의식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어딘가 어두운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녀 주변의 공기만 새까맣게 칠해진 것 같았다. 서왕모는 천천히 공공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 잘 됐구나. 어차피 칠요가 해방되는 때 너 또한 죽을 명이었으니 지금 처리해 주겠다.]

[ 크흐흐! 말은 잘 하는군. 치우를 감당치 못해 황제 뒤꽁무니에 숨어있던 게 그대 아닌가?]

[ 그래서? 네 힘은 치우의 일 할에도 미치지 못하지 않느냐.]

태연하게 대꾸한 서왕모가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를 이었다.

[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죽고싶어 환장했구나, 공공. 죽고싶은 게 소원이라면 그리 해 주마.]

[ 반고의 주문이 깨져서 힘이 반감되었을 텐데?]

공공이 조롱하자 서왕모가 큭하고 웃었다.

[ 공공이여. 태초부터 너와 나는 격이 달랐거늘. 이깟 주문 정도 깨졌다고 여(余)가 그리 쇠해졌다 생각하느냐?]

키기기긱

서왕모의 손에 보랏빛의 구체가 다섯 개 떠올랐다. 그러자 공공이 꽤 당황한 기색으로 내면에서 관전하던 내게 말을 걸었다.

[ 백웅이여. 수가 남아있다면 빨리 써라.]

[ 서왕모와 정면대결해서 이길 수 없는 겁니까?]

[ 미친소리 하지 마라. 천려오잔(天?五?)을 맞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즉사한다. 벌써 동귀어진할 때는 아니다.]

천려오잔?

아무래도 서왕모가 지금 전개한 술법을 일컫는 말 같았다. 아무튼 공공이 괜히 우는 소리를 할 리는 없었기에 나는 별 수 없이 아껴두었던 술수를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잠시 공공에게서 몸의 통제권을 넘겨받고는 목갑에서 무명제사서를 꺼냈다. 그리고는 무명제사서를 들고 주문을 외쳤다.

"나 이 서(書)를 대가로 부르노니 북풍의 사자, 바람을 타고 걷는 자여! 이 자리에 나를 도와주십시오."

화르륵!

그 순간 무명제사서가 불타버렸다. 그와 동시에 과거에 보았던 북극의 [옛 지배자]가 난데없이 이 자리에 소환되었고, 그는 나를 바라보며 다소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말했다.

[ 나를 왜 천계에...]

퍼버벅

[ 크아아아.]

해골같은 형상의 [옛 지배자]는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날아온 서왕모의 천뢰오잔을 맞자 신체(神體)가 산산조각나서 터져버렸다. 그래도 그 또한 신이기 때문인지 금새 자신의 몸뚱이를 복구한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북극의 [옛 지배자]는 고통스러워하며 나를 크게 노려보았다.

[ 감히... 나를 방패로 쓰다니! 네놈을 저주해주마.]

그랬다. 제갈사는 어차피 세상이 멸망할 판에 필요도 없다면서 내게 무명제사서를 넘겨주면서 무명제사서를 대가로 수요와 연결된 [옛 지배자]를 소환하는 주법을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비록 일회용이긴 했지만 최상급 마도서인 무명제사서를 마다할 [옛 지배자]는 거의 없는 게 분명했고, 놈은 화신체를 보내서 나를 도와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서왕모의 천려오잔을 막기 위한 방패용이었다.

그러자 공공이 다시 내 몸을 차지하며 그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 내 사도를 저주해봤자다. 맞은 놈한테 화풀이해라. 마도서를 받아먹었으면서 그것도 못 해주나?]

[ 공공!]

아무래도 저 놈도 공공을 알고 있는 듯 알아보는 기색이었다. 잠시동안 분을 삭히던 북극의 [옛 지배자]는 서왕모에게 시선을 돌리며 이를 갈았다.

[ 당신. 날 공격하다니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닌가.]

그러자 서왕모 또한 의외라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 네가 나올지는 몰랐구나. 그런데 뭘 노려보는 거지?]

[ 뭐라고...]

[ 꺼져라. 이 곳은 나의 영지. 남의 일에 간섭치 마라.]

나는 그 광경을 보며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저 북극의 [옛 지배자]는 저래봬도 과거에 내게 빙의했을 때 천계를 뒤집어엎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그런데 서왕모는 그 힘을 모르는 건가?

하지만 더 뜻밖인 건 다음 순간, 북극의 [옛 지배자]가 분을 삭히듯 대꾸하는 말이었다.

[ 아무리 당신이 대단해도 화신체로 위세를 부리는가? 어차피 그대들 삼황오제는 계시 이후에는 별볼일 없어질 텐데 과하게 오만을 부리는구나.]

그대들.

삼황오제.

그 말을 들은 서왕모가 태연하게 말했다.

[ 스스로 꺼지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구나. 오늘 좀 무리를 하는 수밖에.]

서왕모의 영체가 스스럼없이 일어나더니 서쪽을 향해 커다랗게 포효했다.

그 외침은 총 세 번 - 연등도인이 말했던 횟수와 같았다.

쿠르르릉

서왕모의 모습이 갑자기 거대하게 변했고 인간의 형태를 잃었다. 그리고 산발한 머리카락에 비녀를 올리고 표범 꼬리와 호랑이 이빨을 가진 반인반수(半人半獸)가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매한 여신선이 아니라 차라리 [옛 지배자]에 가까운 가공할만한 흉수(凶獸)의 모습이었다.

서왕모는 오연하게 북극의 [옛 지배자]와 공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이 세계는 대지모신(大地母神)인 나의 것. 쓰레기는 여기서 다 치워 주마.]

퍼벅

다음 순간, 북극의 [옛 지배자]는 그대로 흉수 서왕모의 발톱에 후려맞고 소멸되어 버렸다.

비록 화신체이긴 하지만 세상에 저런 게 가능한 걸까?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내가 어리벙벙한 사이에 공공이 긴장하며 말했다.

[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 여와(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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