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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04화 (60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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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구천현녀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총 33개의 보탑은 하나하나가 보패입니다. 보통 방법으로는 뚫기 힘들겠군요."

"방법이 있으십니까?"

"......"

구천현녀는 왠지 슬픈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천계의 대선(大仙)끼리 상잔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

스스스스

구천현녀의 전신에서 비단이 물결처럼 흔들리며 떠 다녔다. 그리고 맑은 은빛을 흘려내며 사방에 기운을 흘렸고, 그녀는 이윽고 허공에 알 수 없는 주술문자를 수백 개나 만들어내며 뭔가 강대한 주술을 쓰기 시작했다.

시해지술(尸解之術)

[원컨대 그 힘은 무(無)로 회귀하리라.]

쩌저적

구천현녀가 주문을 외치자마자 갑자기 삼십삼천영롱보탑이 조각나며 깨지기 시작했고, 타들어가는 것도 있었다. 그러자 보탑의 주인이 황급히 삼십삼천영롱보탑을 거두었고, 결계 너머에서 누군가가 기다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쿨럭! 쿨럭..."

결계의 안쪽에는 연등도인이 있었다. 연등도인은 벌써 상당한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으며 한쪽 손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며 은은한 방울소리를 내는 보탑이 들려 있었다. 그는 다른 손에 전용보패인 건곤척과 자금발우마저 들고 있었지만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크흐흐... 과연 구천현녀의 시해지술은 굉장하군. 설마 한 번의 주문으로 내 보탑결계를 깨다니... 그대는 이미 전신(戰神)의 힘을 거의 상실했을텐데 이 정도의 힘을 아직도 갖고있단 말인가."

"연등도인이여. 길을 비키십시오. 서왕모는 삼청을 시해한 범인이니 필히 그녀를 벌해야 합니다."

"... 무리요."

연등도인은 탄식하더니 말했다.

"나도 얼마 전에야 수상함을 느꼈으나, 이제 와서 어찌한단 말이오. 서왕모가 진짜 힘을 드러내면 무고하고 힘없는 하급신선들이 학살당할 것이고, 천계 그 자체가 멸망할 것일진대."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고쳐야 합니다. 도와달라고는 하지 않겠으니 길을 비켜주십시오."

"알았소. 어차피 그대의 시해지술에 맞서봐야 내 최후만 비참하겠지..."

연등도인이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구천현녀여! 서왕모가 서쪽으로 세 번 울부짖기 전에 도망치시오..."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천현녀는 무심하게 대꾸하며 지나쳤다. 나는 연등도인을 지나치며 짜증이 나서 중얼거렸다.

"그냥 도와주면 될 것이지 무슨 자존심을..."

그러자 옆에서 함께 뛰어가고 있던 화룡진인이 말했다.

"자존심이 아니다, 백웅."

"네?"

"연등도인은 자신이 돕든 돕지않든 우리가 서왕모에게 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패했을 때 자신이 서왕모에게서 하급신선을 대피시키려 하는 거지. 연등도인은 선량한 대라신선이다."

"무슨 그런 어이없는... 그냥 우리를 돕는게 훨씬 낫지 않습니까!"

"가세해봤자 무의미할 정도로 서왕모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

연등도인은 곤륜십이대선에 못지않은 강대한 상고의 대라신선이다. 그런 연등도인이 대적조차 포기할 정도라면 서왕모는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걸까? 내가 섬찟함을 느끼고 있을 때 전방에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화르륵

화룡진인이 그 구체를 노려보았다.

"운중자의 통천신화주로군."

운중자 또한 내가 설명을 듣기로는 결계술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대가였다. 통천신화주는 화룡의 숨결을 무한히 내뿜으면서 침입자를 계속해서 불로 지져버린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갖고 있어서 이 또한 본래 인간으로서는 돌파하는 게 불가능한 결계였다.

화룡진인이 화요를 치켜들며 말했다.

"이 곳은 내가 돌파하겠다. 너희들은 힘을 아껴라."

쿠구구구...

그녀가 검을 치켜들며 정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화요와 동조해서 염력(炎力)을 크게 끌어올리더니 기합을 내질렀다.

[화요여. 나 응룡의 화신이 명하나니 진실된 힘을 해방하라!]

파칭

신염(神炎)이 구슬처럼 변해서 화룡진인의 몸 근처를 맴돌았다. 그리고 화룡진인은 화룡을 전방으로 돌격시키며 크게 횡으로 화요를 휘두르며 외쳤다.

[천염(天炎)!]

화요천염이 펼쳐짐과 동시에 화룡진인의 몸 또한 한 줄기 불꽃으로 변해서 전방으로 날아갔다. 화요천염이 통천신화주에 부딪히는 순간 격렬한 소리와 함께 영력이 파장처럼 변해서 주변을 진동시켰고, 천지가 한 차례 일렁이는 듯 했다.

꾸콰콰쾅

하지만 통천신화주가 아무리 강한 보패라고 해도 응룡의 화신이 이끌어낸 칠요의 화염에는 대항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통천신화주의 불길이 통째로 화요천염에 먹히면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글거리던 폭염의 결계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천신화주의 결계 한가운데에는 운중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결계가 부숴진 충격으로 기절한 게 분명했다.

슈우욱

화요천염의 전개를 끝내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화룡진인은 싸늘한 눈으로 운중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연등도인보다 훨씬 약하군. 하긴 곤륜십이대선 중에서도 영력이 약한 편이니..."

"죽이실 겁니까?"

"무의미하니 지나가자. 어차피 도움이 안 되는 자다."

화룡진인은 운중자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그 때 여동빈이 외쳤다.

"잠깐!"

운중자를 등지고 지나가던 일행이 일순간 여동빈을 쳐다보았다. 여동빈은 무섭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함정에 걸렸습니다. 곧이어 따라갈테니 걱정 마십시오, 스승님."

"무슨 말이냐?"

"그 자가 저를 적수로 지목했습니다..."

슈르르륵

"......!!"

다음 순간 여동빈의 모습이 어둠에 먹히듯이 어디론가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먹히는 듯한 모습이라 내가 깜짝 놀라고 있을 때 여동빈이 선검으로 변신했고 내 오른팔에 나타났다. 그러자 의문의 어둠은 나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하는 듯 했다.

슈르르륵!

어둠을 걷어내려고 해보고 피해보았지만 어떻게 하든 어둠은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여동빈이 내게 말했다.

[연자여, 부탁한다. 내가 곧이곧대로 싸우면 이기기 힘들지도 모르니 그대가 선검을 잘 이용해서 싸워 다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건 공격술법이 아니라 시공간 전이의 술법이다. 구천현녀의 제자들을 암살한 자가 나와 결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파앗

다음 순간, 나는 영문모를 이공간에 나타나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에는 수천 수만개의 부적들이 흩어져 있었고 땅이 존재하지 않는 허공 그 자체였다. 다만 나는 천상제와 허공답보를 쓸 수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 멈춰설 수 있었다.

잠시 후 부적으로 가득 찬 팔괘의 이공간에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스스

그 존재는 아주 기괴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음양과 팔괘를 상징하는 듯한 문양이 전신에 부감되어 덕지덕지 달라붙은 상태였으며, 인간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는 있으나 모두 저마다 다른 생물의 것을 갖다붙인 듯 했다. 등 뒤에는 마치 새하얀 날개같은 게 달려서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얼굴처럼 보이는 부분에는 시꺼먼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제일 특이한 건 그의 몸 주위를 떠 다니는 청홍(靑紅)의 옥(玉)이었는데 그것들은 나선운동을 하며 크고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봐도 인간은 아니었다.

'저 놈이 여동빈과 나를 이 공간으로 데려온 건가?'

내가 놈을 노려보자 그 놈은 영언으로 말했다.

[검선(劍仙) 여동빈. 천하에 이름높은 팔선의 필두... 크흐흐... 50년 전에 너와 일대일로 싸우고 싶었는데 난데없이 모습을 감춰서 실망했었다.]

"당신은 누구요?"

[흐흐흐. 내 정체가 뭔지는 이미 짐작했겠지. 내가 두려워서 얄팍하게 선검으로 모습을 변화시킨 것이냐?]

"누군지 물었잖소."

스스스스

"......"

[검선의 연자(然者)여, 네가 결투를 대행한다는 걸로 받아들이겠다.]

가공할 살기가 나를 덮쳐왔다. 초절정의 극을 넘어가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 살기 한번에 전신이 빳빳이 굳었을지도 몰랐다. 상대가 엄청난 실력자라는 걸 즉시 직감한 나는 더욱 더 감각을 예민하게 가다듬었는데 이윽고 상대가 말했다.

[나는 금오도(金鰲島)의 십천군(十天君) 중 요천군(姚天君)! 널 죽이고 금오도가 곤륜천계의 자존심을 짓밟으리라.]

"......!!"

금오십천군?!

그건 천계와 대비되는 또 하나의 선계이며 요괴신선들이 가득하다는 금오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 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나는 십천군과 두 번 맞닥뜨린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달기가 소환했던 적이 있었고 다른 한 번은 금오도에 갔을 때 손천군(孫天君)의 화혈(化血)과 싸웠던 일이었다.

예전 경험에 따르면 금오십천군은 하나하나가 팔선에 버금가는 능력자들이었으며 과거 내 역량으로는 정면승부가 불가능한 자들이었다.

'여동빈! 왜 나한테 승부를 떠맡긴거지...'

게다가 요천군이라면 예전에 전해듣기로는 십천군 중에서도 필두의 위치에 가까운 자로써 음양술법의 달인이라고 들었다. 금오십천군 중에서도 손꼽히는 무투파 요괴신선과 내가 싸우면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으나 일단 요천군에게 질문했다.

"요천군! 당신은 왜 서왕모의 뜻대로 구천현녀의 제자들을 암살했소? 당신네 금오도와 천계는 서로 적대관계가 아니오!"

[ 크흐흐흐... 내가 그걸 왜 알려줘야 하나?]

나는 짜증이 나서 버럭 외쳤다.

"알려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소!"

[... 뭐?]

요천군이 황당해했지만 나는 빈말이 아니었다. 저깟 놈은 흉신의 언령만 한번 쓰면 날려버릴 수가 있다. 아까워서 못 쓰는 것 뿐이지 못 죽이는 놈이 아닌 것이다. 요천군은 내 말을 허세로 판단했는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 패기는 좋구나. 네가 이 결투에서 나를 이긴다면 말해 주겠다.]

"그 약속 지키시오."

이렇게 된 이상 하는 수밖에 없다. 여동빈의 선검의 능력을 믿고 저 놈과 싸워 이겨서 이 공간에서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앗!

나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요천군에게 달려들어서 찔러들어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검을 든 지금은 여동빈의 전투경험과 무공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상태였기에 승산은 그리 낮지 않았다. 내 무시무시한 기세를 담은 찌르기에 요천군은 즉시 이공간에서 팔괘의 결계를 소환해서 막아냈다.

쩌정

[하하하... 이공간을 겹쳤는데 일개 검공으로 뚫을 수 있겠느냐.]

요천군은 내가 방어를 뚫지 못하는 걸 보자 기고만장해서 웃어제꼈지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전의 결계, 내가 아니라 여동빈이었다면 뚫었을 텐데...'

아무리 내가 지금 여동빈을 선검으로 써서 전투경험과 능력을 전해받는다 해도 한계가 있다. 진짜로 여동빈 본인이 싸우는 것에 비하면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절대지경에 이르지 못해서 절대지경의 무공을 겉핥기로밖에 쓸 수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투콱 투콱

이윽고 사방 천지에서 수천 수만개의 부적이 빛처럼 쏟아졌지만 나는 월공투계를 써서 그 모든 걸 피하고 흘려냈다. 그러자 되려 요천군이 짜증을 냈다.

[잘도 피하는군!]

'저긴가?'

나는 피하던 중에 왠지 틈이 보이는 것 같아서 요천군의 목을 베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그 모습이 환상이었고 나는 재차 부적의 홍수가 내게 밀려들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앗!

그 때였다. 나는 요천군의 진짜 위치가 어디인지 왠지 알 것 같아서 그대로 허공의 한 점을 찔러갔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여동빈의 수만 번에 이르는 초월적 투선의 전투경험이 내린 결론인 듯 했다.

푸콱

[크악! 이 놈...]

요천군은 크게 당황했는지 목줄기에서 청혈(靑血)을 터뜨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더니 눈에 흉흉한 기운을 떠올리며 외쳤다.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지... 내 저주를 받아랏!!]

"뭐?!"

[수천 년치 수행이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

저주?!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 난데없이 검붉은 기운이 요천군의 입에서 토해지더니 내게 날아왔다. 이건 저주라서 그런지 여동빈의 신법으로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고 내 몸은 이내 검붉은 저주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파지직

"크으윽!"

나는 전신이 끓어오르는 느낌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천군 또한 저주를 토해내고 나서 움직일 수 있는지 그 자리에서 몸이 크게 줄어든 상태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내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여동빈의 외침이 들려왔다.

[잘 했다 연자여! 이제 정신을 모아서 천둔검결에 집중해라.]

[여동빈... 어떻게 된 겁니까?]

여동빈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50년 전부터 구천현녀의 제자를 해친 흉수가 십천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놈이 내게 호승심이 있어서 언젠가 승부를 걸어올 것도 예측했다. 하지만 십천군과 맨몸으로 싸우면 나는 공멸(共滅)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십천군 개개인의 역량은 내가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들은 수천 년 먹은 요괴선인이기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명력을 담아서 악독한 저주를 쓸 수 있다. 그 저주를 받으면 대라신선이라도 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하물며 나는 술법에 익숙치 않으니 해주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선검술을 응용해야만 했다.]

금오십천군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니?

여동빈이 강하게 외쳤다.

[천둔검결을 외우며 이 저주를 흡수하라! 그대와 나의 정신력을 합하여 이겨내는 것이다.]

[네!]

나는 천둔검결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선검의 힘을 강하게 끌어올렸다. 신(信)의 요결이 신기를 끌어올리며 내 몸에 퍼져있는 저주의 힘을 정화하기 시작했고, 해(解)로 풀어헤치며 염(念)으로 기경팔맥을 강화했다.

'굉장해...'

나는 천둔검법이 저주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내 몸에 미처 소화되지 못하던 내공을 올올이 일깨우는 것을 느꼈다. 이것만으로도 가용할 수 있는 내력을 급격히 증대되었으며, 이제 내 내공은 신승이나 등곽에 비해서도 몇 배나 높다고 할 수 있는 지경이 된 것이다. 단기간에는 호법사자와 별 차이도 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마음에 걸려 있는 선검의 묘(妙)가 뇌신류 검술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해주는 게 느껴졌다. 이건 아마 여동빈과 감응하면서 그의 전투경험이 대신해서 수련성취를 갖다준 덕일 것이리라.

'으... 근데 아직 뭔가... 부족한 느낌...'

한 걸음 나아갔지만 절대지경에는 아직 발을 디딜 수가 없는 기분이다.

그렇다.

뭔가 가장 중요한 게 결여되어 있어서 다른 걸 다 충족했는데도 들어갈 수가 없다 -

슈우욱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여동빈이 선검에 크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한 방에 끝장내라는 신호와 같았다. 그러자 맞은 편에 있던 요천군이 크게 당황했다.

[마... 말도 안 돼! 내 저주를 맞고 어찌 살 수 있단 말인가.]

"요천군. 약속을 지킨다면 이 자리에서 살아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 크으윽...]

요천군은 강대한 저주를 토해낸 후유증 때문인지 몸이 크게 쪼그라들어 있었고 힘이 없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전혀 싸울 수 없는 상태로까지 보였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 십천군이 서왕모에게 협력한 이유... 그건 달기 때문이다.]

"뭐? 무슨..."

[달기를 묶고 있는 결계를 풀어준다고 약속한 게 서왕모였다. 그냥 그것 뿐이다.]

달기를 묶고 있는 그 엄청난 쇠사슬과 결계는 나도 본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서왕모는 그걸 풀어주는 조건으로 비밀리에 금오도의 십천군을 고용해서 자신의 뜻에 방해되는 구천현녀의 제자들을 암살한 모양이었다.

[흐흐... 그럼 나는 이만 물러가겠다... 오늘은 내가 진 걸로 해두지...]

바로 그 때였다.

퍼버벅!

[크아아아악.]

갑자기 여동빈의 선검이 스스로 공중에 떠오르더니 요천군의 이마를 관통해 버렸다. 너무나 예상치 못한 빠른 기습이었기에 요천군은 막거나 피할 방법이 없었다. 요천군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소멸해 버리자 여동빈이 내 손에 되돌아오며 말했다.

[이만 물러가겠다는 말이 어딨는가. 십천군의 십절대진은 펼친 자가 죽지 않으면 깨지지 않거늘.]

"......"

[사마외도는 모두 쳐죽여야 한다, 연자여.]

그러고보니 요천군과 약속을 한 건 나 뿐이었다.

여동빈도 은근히 인정사정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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