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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목요가 명계에 있다니?
나는 전시안의 말에 다소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반문했다.
"뭐야? 명계에 있다니 무슨 뜻이야?"
[명계에 있습니다.]
"... 그래, 있다고 치고 정확한 위치는?"
전시안은 잠시 대답하지 않다가 검색을 끝내고는 대답했다.
[지옥시왕(地獄十王)의 관문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소는 불명입니다.]
"그런 말이 어딨어? 대체 어디라는 거야?"
[이 장소는 명계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탐색은 불가능합니다. 명계의 경계면에 진입해야 상세한 검색이 가능합니다.]
"....."
지옥시왕이란 명계를 담당하는 10인의 존재를 뜻했다. 그 존재들은 죽어서 저승에 간 영혼을 심판하여 벌을 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왠지 지선 망량의 지식에 따르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른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지옥시왕의 관문은 명계의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나는 전시안의 대답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시안과의 문답을 제갈사에게 이야기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십이율주의 짓인 것 같군."
"... 말도 안 돼! 아무리 놈이 술법에 정통하다지만 칠요신기를 명계로 가져갈 수 있다는 건가?"
나는 황당해서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제는 술법에 관한 지식이 꽤 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명계로 간다는 건 영혼이 다른 세계로 날아간다는 뜻인데, 영혼 자체에 인력을 달아서 매달아놓는 술법의 수준이란 건 가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영혼에 힘을 유지해서 명계로 가는 것조차 상위술법으로도 힘든 판에 칠요까지 가지고 가는게 말이 되는가?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우리는 십이율주에 대해서 자세한 건 아무것도 몰라. 그렇게 따지면 놈이 고작해야 이삼십대의 나이에 무공과 술법 모두를 절대자의 수준으로 성취한 건 설명할 수가 없어. 인간의 재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
"놈에게는 비밀이 있다. 도리어 나는 놈을 신적인 존재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난 예전부터 놈을 때려잡아서 고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차분하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목요는 포기해야 하겠군. 아쉬워."
"제길."
나는 분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제갈사의 말대로 목요를 찾자고 촌각이 아쉬운 이때 명계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생을 유지한 채 명계까지 가는 술법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고 제때 목요를 찾아서 귀환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그럼 신시에 살던 단의 일족 놈들은 어디 간 거지?"
"글쎄? 마을은 멀쩡히 유지되어 있으니 어디론가 이동했겠지."
"신단수를 놔두고 어디로..."
"신단수를 지켜야 할 필요가 사라진 거겠지. 언제 사라진지도 모르는 놈들을 찾아다닐 시간은 없어. 더 이상은 억측에 불과하니 돌아가자."
"... 알았어."
제갈사는 더 파고드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제갈사가 빠른 머리회전으로 경우의 수를 이미 다 재어본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제갈사 말대로 여기서 미적거리는 게 손해인 것이다.
파앗
우리는 일단 본거지로 되돌아왔다. 제갈사는 내게 말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수요를 해방시켜서 날뛰는 게 가장 쉽게 깽판을 치는 방법이지."
"맞아. 그렇게 하려는 거 아니었어?"
"흐흐. 백련교나 십이율 정도가 상대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이번 상대는 서왕모. 수천 년 전부터 천계의 흑막으로 활약해 왔고 삼청을 홀로 소멸시킨 괴물이지. 해신보다 더 강할지도 몰라. 수요해방 정도로는 안 통할거고 네 몸만 빼앗길 뿐이다."
"......"
"전욱 이래로 최악의 적수라고 해도 될걸. 게다가 너는 그 전에 수십 명의 대라신선과 투선과 싸워야 해."
제갈사의 말을 듣자 내가 얼마나 까마득한 존재들과 싸우고 있는지가 실감났다. 해신을 쓰러뜨릴 때도 전력차가 어마어마해서 우연끝에 간신히 쓰러뜨렸는데 서왕모는 놈보다 더 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침묵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잘 들어, 백웅. 거대한 존재를 불러들여서 폭주하는 방법도 한두 번이지 계속 통하진 않아. 말이 좋아서 폭주지 결국 불러낸 놈의 힘이 상대보다 약하다면 미친개가 날뛰는 꼴에 불과할 뿐 아닌가? 전술전략이 아무것도 없는 미친개는 결국 몽둥이로 때려잡히게 마련이야."
"......"
"수요와 연결된 북극의 [옛 지배자]가 서왕모를 이길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아. 내가 예상하는 대로라면 서왕모가 되려 놈을 이겨버릴지도 몰라. '진심'이 되어버린다면 말이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제갈사가 말을 돌리는 게 왠지 답답해서 반문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한다는 거야?"
"말했지. 뒷일을 생각 안하면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그건..."
이윽고 제갈사의 작전이 그의 입에서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듣는 동안 너무 막가는 것 같아서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얼떨떨해서 말했다.
"그거... 정말 통할까? 아니 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나한테 무슨 이득이야? 그냥 아수라장일 뿐인데."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어차피 죽는 거잖아? 되면 어떻고 안되면 어때? 정 안되면 백웅 니 목에 칼꽂고 죽어버리라구."
"... 개소리 좀 하지 마."
나는 투덜거렸지만 지금으로서는 제갈사가 말한 방법밖에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수요를 폭주시킨다는 1차적인 방법밖에 생각하지 못했지만 제갈사는 몇 단계나 나아간 미친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잘 들어. 네가 전생(轉生)했을 때 인과율은 이어질 지언정, 너와 이어진 신격은 어째서 그 관계가 설정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흠..."
"그래, 모르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삼황오제 전욱이 너를 건드리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설명 안 돼."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제갈사가 눈빛을 강하게 번득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는 인과율을 섣불리 건드리는 건 가장 어리석은 일이므로 그 누구도 너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지. 알아내려는 행위 자체가 인과율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해. 격이 높으면 높을 수록 더더욱! 그래서 전욱이 사도의 능력이 이어져 있음에도 여태껏 너를 건드리지 못했던 거다. 네가 사도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흠..."
"네가 전생과 모험을 반복하며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세운 계획이니까 부작용은 별로 없을 거다. 단지 결과를 예상할 수 없을 뿐이야."
그렇게 설명해 준 제갈사가 중얼거렸다.
"... 사실 이게 가능한 시점에서 그건 사상최강의 마도서라고 할 수 있지만."
"......?"
"아무튼 이제 남은 건 공공을 기다리는 것 뿐이겠군."
나는 제갈사와 계속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은 앞으로의 계획과 죽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만 나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죽는다는 전제하에 대화하는 게 참 진이 빠지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도 점점 미쳐가는군...'
죽고 나면 꼭 뭘 해야겠다고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 내 자신이 어이없다. 이렇게나 죽음에 익숙해진 인간이 유사 이래 나 말고도 있었을까?
그렇게 대략 두 시진이 지났을 때였다.
쿠우웅!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뭔가가 떨어지며 환한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급히 그 빛이 떨어진 장소로 향했는데, 그 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공공이 서 있었다. 공공은 우리를 보자 씨익 웃으며 한쪽 손에 뭔가를 치켜들었다.
[크흐흐. 금요(金曜)를 손에 넣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해낸 듯 했다. 나는 공공에게 질문했다.
"그 곳에는 수많은 대마도사와 팽조가 있었을텐데 그들을 모두 쓰러뜨리셨습니까?"
내 질문에 공공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반문했다.
[그런 쭉정이들은 모두 내게 피떡이 되었다만? 팽조는 감히 내게 반항하길래 사지를 뽑아죽였다. 내가 금요를 얻는데 시간이 걸린 건 서방의 수호자가 쳐 둔 결계가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
[결계를 부수고 나니 일사천리더군.]
팽조는 죽은 듯 했다. 서방의 흑막 치고는 너무 허망한 죽음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서방의 마도사들은 힘을 되찾은 공공에게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 수호자의 굴레를 벗은 공공은 확연히 대라신선을 초월한 존재로 보였다. 공공의 강력함에 할말을 잃고 있자 공공이 손을 열어 내게 금요를 보여주었다.
[자, 보아라. 이것이 바로 금요다.]
생전 처음 보는 금요.
파아아앗
'엄청난 빛이군...!!'
지금까지 신령스런 빛은 많이 보아왔다 생각했지만, 막상 금요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하니 엄청난 광량(光量) 때문에 직시조차 할 수 없었다. 태양빛을 지근거리에서 봐도 이 정도로 눈이 아프지는 않을텐데, 내 내공으로 눈을 보호해도 금요의 빛을 보기 힘들었다. 이 정도면 보통 인간은 금요를 보는 순간 시력을 잃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제갈사는 금요를 인지하는 순간 눈을 감고 아예 시력을 보호하는 주문을 외운 듯 했다.
내가 눈을 잘 뜨지 못하자 공공이 껄껄대며 다시 금요를 손 안에 거두었다. 그러자 공공의 힘으로 빛이 수그러든 것 같았다.
[크하하하... 이것이 바로 태초의 빛을 담은 신기이며 새벽의 명성(明星)이라고도 불리는 신물. 소호금천이 금성의 힘을 고스란히 담아서 벼려낸 칠요다. 샛별 그 자체인 것이다.]
공공은 금요를 얻은 게 매우 기쁜지 자랑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금요가 뭔가 특별한 힘이 있다는 걸 짐작했다.
'설마 칠요에도 상성이 있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금요를 해방하신 겁니까?"
[흐흐. 지금 해방해 버리면 삼황오제의 이목을 끌겠지. 더 모을 때까지는 자제할 것이다.]
"......"
역시 제갈사의 예상대로다. 칠요를 해방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데 안 하는 게 분명했다. 공공은 삼황오제에 준하는 존재답게 완력으로 칠요를 해방하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나는 공공에게 말했다.
"공공이여. 이제 토요를 얻으러 가실텐데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냐?]
"사실은 천계에서 반고의 주문을 발동하려 합니다."
[......]
나는 공공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공공은 팔짱을 끼며 듣고 있다가 대꾸했다.
[ 미안하지만 나는 도와주기 힘들겠군.]
"왜입니까? 반고의 주법이 발동하면 이 세상이 싹 다 쓸려가는데..."
[슬픈 일이군. 하지만 내게는 거인족을 되살리고 왕의 귀환을 보전할 의무가 있다.]
공공의 말이 이어졌다.
[거신인 내가 널 도와서 천계 놈들과 싸우면 당연히 삼황오제가 강림할 인과율이 생겨난다. 왕을 부활시키지도 못한 상황에서 삼황오제와 정면으로 싸우게 되면 내 목적을 달성하는 길과는 영영 멀어지는거지. 애초에 너와 내가 약속한 것은 칠요를 모으도록 협력하는 거였을텐데?]
"하지만..."
[그럼 안녕이다. 의리상 화요는 너희가 멸망한 다음에 회수해 가겠다.]
소름끼칠 정도로 냉정한 태도였다. 하지만 이건 제갈사가 예상한 바였기에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면 삼황오제의 인과율에 위배되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라고?]
나는 지체없이 화요를 잡아서 공공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 화요를 당신께 공양하겠습니다. 그 대신에 저를 사도로 만들어 주십시오."
[......]
공공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 거절하겠다. 너처럼 약한 놈을 내 사도로 할 순 없다.]
"제가 약한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멸망하는 걸 두고보실 생각이십니까?"
[후... 난 바보가 아니다. 네가 사도로 만들어달라는 의미 정도는 알고 있다.]
공공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너와 나 사이에 그 정도 의리가 쌓여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구나. 네가 사도가 되어서 죽었을 때 내가 힘을 잃어버릴 위험이 얼마나 큰지는 알고 있을테지. 난 그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나는 공공의 말을 들으면서 살짝 기가 막히는 걸 느꼈다. 물론 그건 공공의 말이 사리에 맞아서가 아니라, 공공이 하게 될 반응을 다 예상해버린 제갈사의 지력 때문이었다. 나는 제갈사가 짠 계책대로 말을 이었다.
"그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정보를 알려드려야겠군요."
[호오, 어떤 정보냐?]
"그건..."
이윽고 내가 몇 마디를 하자, 공공은 크게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었다.
[... 그게 정말이냐?]
"거의 확실합니다."
사실 확실하지는 않다. 거의 제갈사의 뇌내추측에 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공공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좋다! 위험을 감수할 만 하군. 너 백웅을 나 공공의 사도로 임명하겠다.]
파아앗!!
잠시 후 거대한 빛이 내게 내려오는 듯 했다. 나는 공공의 사도가 된 증표로 손에 세 개의 빗금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공공은 나를 사도로 만들자마자 몸을 서서히 투명화시키며 사라졌다.
[나는 토요를 가지러 가겠다. 나중에 보자.]
슈르륵...
공공이 사라지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기초준비가 다 끝났군."
"정말 이걸로 될까?"
"안되면 또 어때?"
제갈사는 히죽 웃었다.
"난 차라리 네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 낡아빠진 몸에서 얼마나 힘들게 버텼는줄 아냐? 삶이 차라리 고통이라고."
"제갈사."
"크크! 마왕과 계약이 되어 있어서, 나는 이혼대법으로 반영구적으로 수명을 늘릴 수 있는데도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였다. 50년 전에 진작 죽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마왕 놈에게 억지를 써서 버티는 바람에 여태껏 인형으로 몸을 옮기지도 못했다."
넋두리를 하던 제갈사가 휘적휘적 뒤돌아서 걸어갔다.
"이제 와서 이런 소리 해봐야 어쩌겠냐마는. 그럼 다음에 보자."
제갈사의 모습이 점차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
나는 '다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두 손을 꾹 쥐었다.
이번 생, 절대 그냥 죽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