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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본거지로 돌아온 후 화룡신검의 힘이 얼마나 돌아왔는지를 알아보았다. 검에 실려있는 잠력을 끌어내며 선검과 함께 양 손에 들었는데, 가볍게 기합을 넣는 것만으로도 기의 폭풍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후우웅
그리고 나는 검을 휘두르며 한차례 뇌신류의 검술을 시전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전신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던 독왕 당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역시 절대지경은 아니구만. 다만 한 발을 내딛기 직전."
현재 아군측에 절대지경의 고수는 거의 전멸한 상태이지만 유일하게 당산이 우리편으로 영입된 상태였다. 그는 나인교주와의 일전에서 치명상을 당해서 기절했었지만 천하오대의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난 것이다.
또한 당산은 절대지경의 고수이기에 현재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거라고 판단해서 현재 내 무공을 시연해본 것이다. 당산은 차가운 녹안(綠眼)을 뱀처럼 번득이며 말을 이었다.
"진소청의 말 그대로야. 내가 딱히 더 해줄 말은 없겠군."
"그렇게 퉁칠 일이 아니오. 뭐라도 조언해줄 게 없겠소?"
"거참 징징거리는..."
"징징거린다 해도 좋소. 난 지금 하나라도 더 얻어가야 하오."
수치심 따윈 필요없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당산이 히죽 웃었다.
"내일 제천대성을 만나면 죽을까봐 그러나?"
"그렇소."
"하긴 나같아도 그러겠군. 당신 입장에서 나라는 존재는 50년동안 기다린 후에야 볼 수 있는 독공의 절대고수니까 흔히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겠지. 조금이라도 더 얻어가고싶은 게 맞을거야."
당산이 자신의 손가락에 걸려 있던 소홍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지금 전력을 다해서 조언해준다고 한들 당신의 여정이 그다지 단축될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소리요?"
"만에 하나 내가 조언해준 덕에 깨달음을 얻어서 절대지경에 올랐다 치자.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그래봤자 절대지경 초입에서는 투선급 강자의 백초지적에 불과해. 내가 진소청에게 당했던 걸 보면 알 수 있겠지."
"... 그렇소."
"그런데 지금 남은 적들은 그 투선조차 짓뭉개는 절대자에, 그 절대자를 또 손가락으로 죽여버리는 괴물들 뿐..."
"......"
그는 킬킬 웃었다.
"너무나 무의미해. 그리고 백웅 당신 정말 제정신이 아냐. 아무리 무한으로 전생한다지만 진심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마신들을 쓰러뜨리려 한다는게."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런걸 일일이 생각했으면 나는 예전에 포기했을 거요. 그런건 당신이 걱정해줄 일이 아니오."
"크크... 나도 당가핏줄으로써 광기를 타고나서 그런가 당신이 그리 싫지는 않아."
당산이 갑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말했다.
"뭐 그럼 당신이 내일 죽는다 치고 아주 중요한 비밀과 조언을 몇 개 말해주도록 할까. 사천당문 사상최강의 고수로써."
"... 사상최강이라니 너무 오만한 거 아니오?"
"오만하다니? 나 이전에 사천당문에서는 절대고수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고 무형지독을 이룬 것도 역사이래 나 뿐이다. 나 정도면 5천년 무림역사로 쳐도 스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걸? 독술사만 친다면 나보다 뛰어난 자는 없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
틀린 말이 아니다. 당산이 유독 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지만, 그런 당산을 손쉽게 쓰러뜨린 진소청과 나인교주가 너무나 괴물이었을 뿐이다. 당산은 충분히 무림역사상 최강의 독공고수라 불릴 만 했다.
당산의 말이 이어졌다.
"먼저, 전에 말했던 대로 내 최종절기이자 최강의 독술인 무형지독은 실존하는 독이 아니며 그렇기에 물리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오. 존재하지 않는 걸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그동안 중원의 모든 독술사가 무형지독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무형지독은 의념으로 형성하는 궁극의 독. 그렇기 때문에 개념적이고 무형적인 것조차도 중독시킬 수 있는 거다. 또한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해독조차 불가능해. 같은 절대지경의 고수가 의념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지."
"으음!"
"물론 확고부동한 의념의 천주(天柱)를 만들어내려면 엄청난 용독 수련이 필요하다만. 어쨌거나 천년지주에 버금가는 독령단(毒靈丹)도 단전에 형성해야 하고."
나직이 설명한 당산이 말했다.
"아무튼 이 무형지독의 요령은 지금의 백웅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내게 도움이 된다고?"
당산이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의념은 뭐든 할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이며 세계에 대항하는 인간의 의지다. 신념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최강의 형태를 만드는 게 절대지경이지. 하지만 진소청이 말했듯이 당신은 지금 육체와 정신이 따로 놀고있기 때문에 그 궁극의 신념을 얻을 수 없다. 이미 수련치는 웬만한 절대지경 고수를 뛰어넘었음에도..."
"......"
"그럼 방법은 간단해. 정신에 어울리는 육체를 형성하는 거야."
"환골탈태를 하라는 건데 지금 전제부터가 틀린 거잖소. 그게 안 되서 부조화가 생기는건데..."
내 말에 당산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독술사인 내가 볼 때 육체를 변형시키는 방법은 환골탈태만 있는 게 아니야. 이를테면... "
이윽고 당산이 설명한 '방법'에 나는 기가 막힌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쓰란 말이오? 그건 미친 짓이야."
"어차피 당신은 죽음이란 게 없는거나 다름없지 않나? 나같으면 한 열 번 죽어도 해보겠는데."
"으윽."
"사실 부작용만 없으면 내가 직접 해볼까 하던 방법들이야. 내가 워낙 천재라서 그런 방법을 쓰기도 전에 초고수가 되어서 안해본 거 뿐이고."
"......"
이 새끼도 제정신이 아니다.
아무튼 참고할 만 했기에 나는 당산의 조언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솔직히 미친 방법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번 해보는 게 좋을 듯 했다.
당산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백웅 당신, 이번 생에서 인간을 구하니 어쩌니 하는 허울좋은 명분은 집어치웠으면 좋겠는걸."
"무슨 소리요?"
"나는 오십 년 동안 이 중원에서 살아왔지만 이미 인간은 멸망한거나 다름없어.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모든 윤리와 정의, 도덕, 문명체계가 파멸한지 오래라고. 이제와서 인간을 구해봤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거다. 생존자들은 거의 대부분 광기와 파멸에 순응해 버렸으니까."
"......"
"어차피 당신이 마지막에 이겨야 모두가 이기는 게 아닌가? 필요하다면 큰 국면에서 인간종족 정도는 가볍게 버리라고."
평소의 나라면 절대 그럴수 없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시 입을 우물거리다가 대답했다.
"생각해 보겠소."
진소청의 죽음을 생각하니 내가 어설프게 지금의 인류를 다 구해내겠다는 게 위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결국 지금 내가 지킬 수 있는 건 내 손이 닿이는 범위 내의 동료들 뿐이다.'
오십 년 동안 모든 인생을 버리고 나를 위해 뭔가를 남겨준 진소청을 생각하면 도저히 '모두'를 구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갈수록 현실과 타협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찝찝한 기분을 떨쳐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더 흔들리게 되면 동료들의 죽음을 모욕하는 게 된다.
잠시 후 나는 당산에게서 정보를 더 전해듣고나서 망량과 제갈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망량의 표정이 침통하게 변한 것을 깨달았다.
"망량, 왜 그러시오?"
"후..."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망량이 입을 열었다.
"천계의 신선으로부터 사제의 소식을 알아냈소."
"천우진의?"
"사제는..."
망량은 결국 주름진 노안에서 눈물을 주륵 흘렸다.
"천계반역죄로 극형에 처해졌다 하오..."
"......?!"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놀라서 망량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냉정하게 말했다.
"사실 정보는 그것 뿐이야. 현이가 천계에 공양을 올리면서 간절하게 비니까 툭 던져둔 선언이나 다름없지."
나는 제갈사의 말에서 낌새를 눈치채고 말했다.
"천계쪽에서 반역죄로 극형을 받게 된 상세한 사정을 설명받지는 못했다는 건가."
"그래. 너도 눈치챘겠지만 상당히 구리군."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천우진이 현재 살아있든 죽었든간에 천계에서 뭔가 큰 사건에 엮인 건 틀림없어."
"......"
나는 망량에게 질문했다.
"혹시 미호의 이야기는 들은 게 없소?"
"미호 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하더군. 사제와는 달리 아예 천계에 오지 않았다는 식이오."
"하지만 미호는 도중에 천계로 올라갔다 하지 않았소?"
"천계 측에서 잡아떼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소."
나는 이를 으득 악물었다.
동료들이 천계로 갔다가 실종됐는데 이렇게 답답하다니!
나는 각오를 다지고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가 어떻게든 해 보겠소."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약속한대로 태산으로 향했다. 당연히 동료들을 대동하고 가면 위험하기 짝이 없었으므로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었다.
파앗
나는 태산으로 오라는 말만 들었을 뿐 어디로 오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태산에서 가장 중대한 장소는 천제단이 틀림없었으므로 나는 천제단으로 차분하게 걸어갔다.
'마물은 없다.'
중원 곳곳에서 마물과 요괴들이 횡행하고 있었지만 이 곳에는 거의 없었다. 중요한 장소인만큼 천계에서 강력한 결계를 펼쳐서 태산의 천제단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만큼 나는 도중에 천계의 신선들과 충돌하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다행히도 천제단에 올 때까지도 천계의 신선이나 신장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천제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반가워."
옆을 쳐다보자, 숲속에서 천천히 원숭이처럼 생긴 괴인이 걸어나왔다.
"제천대성."
제천대성 미후왕은 이전보다 훨씬 인간에 가깝게 변신한 듯 했다. 그는 천제단 위에 가볍게 걸터앉고는 무릎에 턱을 괴며 나를 쳐다보았다.
"진소청의 뜻을 이어받았다기엔 너무 맹하게 생긴 놈일세."
"위대한 제천대성께서 나같은 인간에게 무슨 볼일이신지?"
"당연히 볼 일이 있으니까 불렀지."
제천대성이 나를 멀뚱멀뚱 보다가 말을 이었다.
"아, 역시 좀 못미더운데. 너를 믿어도 되는 거냐?"
나는 제천대성에게 냉랭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내 힘은 당신에 비하면 벌레나 다름없으니 어딘들 써먹을 수 있겠습니까?"
"크크크, 잔뜩 성이 나 있군. 하긴 진소청이 죽은 건 나도 충격이었어."
다소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긴 제천대성은 도리어 내 대답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다소 풀린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걱정 마라. 오늘 할 얘기는 중요하긴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끼어들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애초에 힘이 부족하면 얘기조차 성립하지 않는 일이야."
"무슨 일입니까?"
"뭐... 간단하게... 요점만 얘기하자면."
제천대성의 이어진 말에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곧 세상이 멸망할거다."
세상이 멸망한다고?
나는 난데없이 규모가 큰 일이 나타나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참을 허우적대겠지만 워낙 봉변에 익숙하다보니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큰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순 없는 것이다.
"왜 멸망하는 겁니까?"
"어라 별로 안 놀라네."
"이미 인간세상은 반쯤 망한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이제 와서 멸망한다는 얘기를 들어봐야..."
내 말에 제천대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인간 입장에서는 그렇겠군. 근데 이 일이 문제가 되는건... 천계 쪽에서 아주 확실하게 지상, 그러니까 지표상에 있는 모든 걸 쓸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이거든. 그렇게 되면 너희 인간들은 씨알 하나 남지 않게 돼."
"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제천대성의 말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천계가 대군을 움직여서 생존자를 하나하나 척살하려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뭐가 문제겠어? 그런 거라면 내가 신선을 하나하나 때려잡는 한이 있어도 막아내겠지. 그렇게 뻔한 일이 아니야."
칠요를 모으려는 자에게 적대적이긴 하지만 제천대성은 인간을 좋아하는 대라신선인 듯 했다.
"그럼..."
"일의 발단은 나인교주가 낙양의 천계군세를 패퇴시키고 낙양을 장악하게 된 거야. 그 때 천계는 역사상 최대의 위기상황을 느꼈고 수뇌부의 회의가 소집되었지. 또한 그 때 결정되어버린 거지."
제천대성이 씹어뱉듯 말했다.
"반고(盤古)의 주(呪)를 시전하기로."
"반고의 주?"
"창세신 반고의 힘을 빌려와서 세계를 멸망시키는 주문이다. 이 주문을 쓰면 흉신의 권속이나 인간, 그리고 동식물 따위가 싸그리 하루 내에 멸절하게 되지. 세상이 모조리 뒤집히는 거다."
"......!!"
"천계는 나인교와 나인교주를 없애고 흉신의 흉계를 차단하기 위해서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한 셈이지. 나인교가 낙양을 차지한 순간부터 천계는 행동에 들어가 있었어."
천계가 창세신의 힘을 빌어서 세계를 멸망시키려 한다니!
난데없이 이야기가 커지고 있었지만 나는 가까스로 당황을 가라앉히며 의문점을 물었다.
"세계를 멸망시키는 주문이라니, 그런 걸 천계가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세상은 무수한 인과율과 약속으로 묶여있어서 결코 그렇게 독단적인 횡포를 저지를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맞아. 세계를 멸망시킬만한 주문은 상위존재라면 쓸 수 있지만 인과율때문에 보통은 못 써. 하지만..."
제천대성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어찌된 일인지 삼청이 의결하고 서왕모가 상신하자마자 삼황오제는 49일의 유예도 없이 바로 허락했고, 나조차도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반고의 주문이란 걸 천계에서 외우기 시작했다. 신과 천계가 합심해서 세상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거다."
"......"
"지금 천계에서는 총 108명의 신선들이 달라붙어서 주문영창을 하는 중이다. 이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지."
수상쩍다.
너무나 수상하다.
제천대성이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런 어이없는 대주문은 외우기도 전에 인과율의 역풍을 맞아서 무너져야 해. 하지만 내가 천계에서 지켜보니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가더군."
"그게 말이 됩니까?"
"나는 그게 주문영창의 중심에 서 있는 서왕모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녀가 뭔가를 하고 있어."
서왕모!
천계 대선 중에서도 으뜸이며 삼청과 동급 이상으로 치부되는 존재! 지속적으로 내 전생에서 흑막처럼 행세하던 그녀가 전면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내가 긴장된 안색으로 제천대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대로라면 반고의 주문이 발동해서 모든 게 멸망해버릴 거다. 그 전에 막아야만 해."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서 진소청의 도움을 받으려 하신 겁니까?"
"그래. 진소청이 도와준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죽어버렸지. 진소청 녀석은 싸우면서 진화하는 투신(鬪神)같았는데."
제천대성이 팔짱을 꼈다.
"뭐 아무튼 반고의 주문은 어이없을 정도로 거대한 주문이야. 보통 인간술법사가 외우려 하면 1만년도 넘게 걸리는 주문이야. 그래서 아무리 천계신선들이 달라붙었다 하더라도 주문이 발동하려면 앞으로 적어도 십 주야는 넘게 걸리겠지만 언제 완결될지 모른다."
"그렇군요."
"하지만 나 혼자서 서왕모를 공격하는 건 무리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너희가 정비할 때까지 사흘의 시간을 준 거다."
"......"
"나와 함께 반고의 주문을 멈추러 가겠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제안이다.
반고의 주문이 발동하는 순간 아무것도 못하고 동료들은 다 죽고 나만 전생하게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제천대성이 도와준다면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껄끄러운 점을 느끼고 말했다.
"제천대성 당신조차도 힘들다는 건... 반고의 주문을 수호하는 자들이 만만치 않다는 소리겠군요."
"뭐 그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투선들이 지키고 있겠지만 나보다 센 놈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 다만..."
"다만?"
제천대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난 별로 서왕모를 이길 자신이 없어. 예전에 혼자서 천계에 쳐들어갔을 때 화난 서왕모한테 한 대 얻어맞은 적이 있는데 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도 있거든."
"......"
"서왕모는 격이 다른 존재야. 삼황오제조차 그녀를 특별시하고 존중하지. 그래서 이기는 것보다는 주문을 방해하는데 초점을 둬야한다."
제천대성의 힘만 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데 서왕모는 그것보다 더 강하다는 건가?
나는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 아니, 낌새는 있었어...'
서왕모는 과거 내 전생에서 홀로 지상에 강림해서 가볍게 이자나기노미코토를 때려잡은 적이 있었다. 그건 투선이라고 해도 결코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서왕모가 다른 대라신선과는 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는 것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혹시 그 전에 제가 구천현녀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 왜?"
"꼭 만나봐야 합니다. 이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다면 모든 힘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제천대성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장 준비해."
"지금 갑니까?"
제천대성이 씨익 웃었다.
"물론! 바로 구천현녀를 만나게 해 주지. 그녀 또한 내 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