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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구천현녀!
그녀는 천계의 모든 대라신선 중에서도 단연 수좌에 가까운 존재로써, 나는 과거에 구천현녀를 직접 한번 본 일이 있었다. 아름답다 못해 경외심을 느낄 정도의 절세미모의 자태로써 모습을 드러냈던 그녀는 시해술의 대가이며 과거 지선 망량의 스승이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서왕모의 오른팔로 일하고 있지만 서왕모의 모순에 대해서 늘 괴로워하고 의문스러워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와 부하들에게 서왕모의 진의를 탐색하게끔 시켰으나 대부분이 의문의 존재에게 암살당했다. 그 때문에 지선 망량은 전생능력을 지닌 내게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넘겨서 서왕모의 진실과 천계의 흑막을 밝히기를 원했었다.
내가 과거 구천현녀에 대해서 모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에 화룡진인의 말이 이어졌다.
[구천현녀는 현재 등용문을 오른 신선들을 관리감독하며 술수를 교육시키는 대라선감(大羅仙監)의 직책을 맡고 있으나 고대에는 거인족과 직접 싸웠던 전신(戰神)이었다. 그녀는 천계에서 가장 전투용 술법에 능한 존재 중 하나이며 천하제일의 병법대가이기도 하다.]
"음... 그랬죠."
지선 망량은 직접 그녀에게 가르침받았으니 구천현녀의 술수를 많이 배웠다. 구천현녀는 인간계의 술법사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다양하고 강력한 술법을 알고 있었고, 그 숫자는 무려 36만 9천가지에 이르렀다. 보통의 인간술법사는 스무 개도 배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구천현녀는 애초부터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것이다.
[선검술이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술법의 근원이 구천현녀와 인과율이 이어져 있는게 느껴진다. 그녀가 만든 술법이 틀림없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선검술이 어떤 술법인지 자세히 아실 수 있겠습니까?"
[... 자세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구천현녀의 의도를 추측해보자면, 그녀는 여동빈과 천계의 인연을 끊으면서 전투력을 보존시키려 한 것 같다. 선검이 된다는 건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천계의 인연을 끊는다고요? 그럼 현재의 여동빈은..."
화룡진인이 다소 슬픈 눈으로 선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라신선의 성격을 잃고 선검 그자체로 변해있을 뿐. 천계소속이 아닌 일개 선검이 된 것이다. 이 경우에는 검선 여동빈의 능력을 가진 검에 불과하다고 봐야한다.]
"......"
[나로서는 잘 모르겠구나. 대라신선으로서의 여동빈은 매우 강력한 존재라서 굳이 이런 편법을 쓰면서까지 천계와 인연을 끊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위험부담만 클 뿐 여동빈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술법이다. 물론 연자인 너는 선검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겠지만.]
"그건..."
여동빈과 구천현녀는 대체 무슨 계획을 꾸민걸까?
또한 왜 선검술이라는 편법을 써야했던 걸까?
나는 머릿속에서 오만 생각이 떠돌았지만, 이건 나 혼자서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책사들과 의논하면서 증거를 찾아서 추론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니 당장 해결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깔끔하게 마음속을 정리하고는 화룡진인에게 말했다.
"... 축융의 불꽃은 혼돈의 성질인데 그걸 흡수하고도 괜찮으신 겁니까?"
[후후. 여동빈의 연자라서 나를 걱정해주는 것인가?]
왠지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 화룡진인이 대답했다.
[괜찮다. 사실 혼돈의 속성은 내게 위협이 될 수 없다. 그저 좀 과식을 한 기분이 들 뿐이다.]
"위협이 될 수 없다고요?"
[나는 태초부터 살아온 대존재, 응룡(鷹龍)의 화신. 응룡은 태초에 사방천지에 가득한 혼돈을 먹으며 살았으니, 그 성질은 화신인 내게 이어진다.]
"그렇군요. 힘은 다 회복되신 겁니까?"
[8할 이상 회복되었다. 조만간 완전해질 것이다.]
화룡진인의 회복력이 빠른 걸 보면, 축융의 불꽃이 그만큼 강대한 저주였다는 뜻이리라.
나는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질문했다.
"화룡진인께서는 응룡의 화신이지만 그 의지는 본체와 별개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
단언하는 걸 보면 화신의 경우는 대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대표적으로 창힐의 화신인 팔부신중 또한 본체 창힐과 다른 개별의지를 갖고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응룡의 의지나 현재상황은 알지 못하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화룡진인은 가볍게 대꾸했다.
[본체인 응룡이 원할 때, 내킬 때마다 내게 정보와 조언을 준다. 그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
[현재 응룡은 지상세계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갖고있지 않다. 황제의 만신전 또한 조용하다고 한다.]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굳이 그에게서 느껴지는 의지라고 한다면... 흠... 삼황오제가 맺어 창힐이 증거한 태초의 '약속'이 끝까지 지켜질지 궁금해하고 있다.]
"약속?"
[그게 뭔지는 말해주지 않는구나.]
삼황오제의 약속?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게 이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내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화룡진인이 말했다.
[응룡은 황제의 오른팔로써 오제와 동격의 존재로 치부되고 있다. 우리 수준에서 그의 의지를 가늠하는 건 무리이니 너무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 알겠습니다."
화룡진인의 말대로다. 황제를 제외한 삼황오제조차도 만신전이 어딨는지 모르고 들어갈수도 없는데, 거기서 직접 기거하며 황제의 오른팔 노릇을 하고 있는 응룡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드높은 존재였다. 그 자의 의지를 지금 추측해봐야 무의미한 일인 것이다.
나는 마지막에 여동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천제단이 내려오기 전에 내 스승님이신 화룡진인을 깨워 각성시킬 수 있다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천계 전체가 저를 인류의 배신자로 낙인찍은 상황에서 어찌 화룡진인 하나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선 스승님을 깨워 사정을 설명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주실 것이다.]
이미 천제단은 내려와 버렸다. 그래서 화룡진인을 깨워서 무엇을 하려 했을지는 현재로서는 의문이다. 그리고 여동빈은 어째서인지 화룡진인만 깨어나면 천계 모두가 적이 되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화룡진인에게는 뭔가 다른 게 있는 걸까?
"화룡진인이시여. 사실은..."
나는 방금 전 간략히 설명하던 걸 넘어서서 내가 창힐에게 50년간 유폐당했던 일, 그리고 여동빈이 내게 선검술을 전해주며 화룡진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일 등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그러자 화룡진인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걸 진작에 말했어야지... 앞뒤 맥락없이 그냥 여동빈이 선검으로 변했다고만 하면 내가 어찌 상황을 추측하겠는가!]
"죄송합니다."
화룡진인이 응룡의 화신이라는 게 신경쓰여서 탐색에 들어갔던 것 같다. 화룡진인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냈다. 아마도 구천현녀는 네가 여동빈의 선검을 들고 자신을 찾아오기를 바란 것이 분명하다.]
"구천현녀를 찾아가라는 말씀이십니까?"
[여동빈의 선검술이 그 자신이 터득한 술수가 아니라 인과율을 읽어내 구천현녀의 술법이란 걸 알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여동빈은 내가 자신의 의도를 읽어주기를 원한 듯 하구나.]
곰곰히 생각하던 화룡진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여동빈은 누군가에게 감시당해서 말과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게 분명하구나. 그래서 그대에게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감시라구요?"
[잘은 모르겠지만 팔선인 여동빈을 감시할 정도라면 최소한 삼청(三淸)이나 그에 준하는 자가 술법을 부려야 한다. 여동빈은 그 압박과 견제를 벗어나기 위해서 구천현녀의 도움을 빌어 선검으로 변화한 듯 하구나.]
"그게 대체 누구일까요?"
[그걸 알아내려면 구천현녀를 찾아가야겠지.]
"으음."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여동빈이 원하는 건 천제단이 내려오기 전에 파멸을 방지하기 위해서 화룡진인을 깨워서 단서를 찾아 구천현녀를 찾아가는 거였으리라. 하지만 천제단은 옛날옛적에 내려와 버렸고 세상은 반쯤 파멸에 접어들었으며 천계는 나인교에게 한차례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지금 그녀를 찾아가도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나는 여러모로 일이 어렵게만 되어가는 걸 느꼈지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구천현녀를 찾아가겠습니다."
[그대를 나 또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
꼬였더라도 할 수 없다.
여동빈이 남긴 단서가 뭔지 일단 찾아내지 않으면 같은 짓을 반복할 뿐이므로 일단 행동부터 하고 봐야 한다. 일이 어려워서 입안이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의지력으로 버텼다.
"그나저나 공공이 갑자기 화요를 들고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혹시 짐작가십니까?"
[공공은 왕을 알현하러 갔다. 공공의 왕이라면 단 한 사람밖에 없지.]
"그건..."
화룡진인은 하늘 너머를 보며 팔짱을 꼈다.
[삼황오제 중 삼황(三皇)인 염제(炎帝) 신농(神農). 그는 고대에 황제 공손헌원과 정면으로 맞섰던 대존재이며 거인족의 왕이다.]
염제 신농!
나는 염제 신농에 대한 과거의 정보를 떠올렸다.
[남만 월국에서 더 내려가면 있는 남쪽 섬나라 군도에서 더더욱 밑으로 내려가면 대양(大洋)이 나오는데... 거기서 더욱 몇천 리를 남쪽으로 가면 신농씨가 황제에게 패해서 유배되었다는 전설의 대륙이 나올 것일세.]
[염제(炎帝) 신농(神農)의 계파 때문이지. 판천에서 최초로 황제와 염제가 격돌한 전쟁 이래로, 두 개의 거대한 무리가 지속적으로 신화시대에 충돌했다. 염제의 후예인 공공이 또다시 전욱과 전쟁을 벌여 거대한 파괴가 일어났고, 결국 치우(蚩尤)가 정점을 찍고 말았다.]
[내가 알기로 현재 세상에 퍼져있는 인류는 삼황(三皇)이 한번 손을 본 작품이다. 여와, 신농, 복희가 힘을 합쳤다고 알려져 있지. 반고가 어쨌든 저쨌든간에 최초로 인류를 창조한 게 이종족인 [옛 존재]이며,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의 원형을 삼황오제가 다듬은 거지. 그래서 반고라는 존재가 실존하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유폐되신 몸 아니신가? 당신 의견은 이제 와서 중요치 않소. 갈테면 가시오, 염제(炎帝).]
삼황이며 거인족의 왕인 염제 신농은 판천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남쪽 대륙에서 지속적으로 유폐당해 있었다. 게다가 인간의 창조주 중 한 명이기도 했으며 거인족의 우두머리로써 신들과 지속적으로 대립해온 모양이었다.
그 힘의 크기는 알 수 없지만 황제 공손헌원이 다른 삼황오제와는 달리 압도적인 격이 있다는 걸 미루어 보면, 염제 신농 또한 초월적 존재로써 [옛 지배자]에 가까울 것이리라. 나는 하늘 너머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공공은 유폐당한 염제 신농을 구해주려 하는 것입니까?"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아마 화요의 힘을 사용해서 봉인을 풀려 하겠지.]
"위험하지 않을까요?"
[... 글쎄... 안 될 것 같은데.]
화룡진인이 말을 흐렸다.
이건... 굉장히 큰일이다!
나는 마음이 다급해져서 뭐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장 전시안을 써서 공공의 위치부터 찾으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서둘러서 될 일인가?'
지금 나는 마음만 너무 앞서나가는 게 아닐까? 공공이 염제의 봉인을 깨려한다면 굉장히 중대한 일이긴 하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달려가서 될 일일까? 도리어 중요한 일이니까 한번 머릿속을 정리하고 가야하지 않을까?
내가 주도적으로 모든 행동을 해야하는 건 맞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책사들의 의견을 구해야 해.'
파앗!
나는 곧장 다두왕국으로 이동해서 망량과 제갈사에게 흑요석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는데,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잘 했소. 아주 냉정한 판단이었소. 곧장 공공을 찾아가는 건 악수(惡手)였을 거라 생각하오."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공공이 자기 입으로 한 약속을 어길 자는 아닐거라 생각하오. 그리고 공공은 자기 일족의 왕이 유폐되어있는 장소나 근거지를 들키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겠지. 섣불리 찾아가서 자극할 필요는 없고, 가만히 있으면 그가 당신에게 화요를 돌려주러 올 것이오."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중요한 건 바로 그 때요. 섣불리 공공의 뒤를 캐려는 모습을 들키지 말고 당당하게 그에게 요청하시오. 염제의 봉인을 푸는 데 최대한 협력해 주겠다고. 내가 볼 땐 그렇게 하는 게 공공과 제대로 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이오."
"... 망량."
"왜 그러시오?"
"어쩐지 염제의 봉인이 풀리지 않을거라는 전제하에 얘기하고 있는 것 같소만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라도 있소?"
"흠 그건..."
망량이 설명하려 할 때 옆에 있던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굳이 망량이 아니더라도 다들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왜?"
"화룡진인이 안 될 거라고 했잖냐? 우리 중에 화룡진인보다 신격과 봉인에 대해서 잘 아는 놈이 있냐?"
"......"
"삼황 염제를 봉인하려면 최소한 동격이거나 그 이상의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건 같은 삼황오제 뿐이지. 삼황오제가 직접 설치한 결계를 칠요 한두개로는 못 깰 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할 수 있지 않냐?"
"아, 그렇군..."
제갈사의 말대로다. 내가 감정을 못이기고 섣불리 행동했다면 괜히 공공만 자극해서 불신감을 심어주고 일이 꼬였을 것이리라. 제갈사가 말했다.
"그래도 네 녀석 치곤 잘하고 있으니까 일단 화요의 봉인지로 돌아가라."
"알았어."
파앗
다시 봉인지로 되돌아가서 대략 한 시진을 기다리자, 하늘에서 커다란 점이 떨어졌다.
쿠구궁!!
하늘에서 떨어진 건 바로 공공이었다. 그는 이제 수신(水神)으로서의 힘을 많이 되찾았는지 엄청난 위용의 음기(陰氣)를 뿜어내고 있었다. 파르스름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는 공공이 내게 화요를 던져주었다.
[받아라.]
타앗
내가 허공에서 화요를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받아내서 손에 들자, 화요는 거인족의 크기에서 인간이 한손에 들만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약속을 지키셨군요."
[당연하다.]
"방금 전에는 어디를 갔다오셨습니까?"
[나의 왕이 계신 장소...]
"설마 염제 신농이 유폐된 결계를 화요로 깨려고 하신 겁니까?"
[그렇다.]
"염제께서는 깨어났습니까?"
내 질문에 공공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혹시 했는데 역시나 안 되더군. 역시 그 결계는 '그녀'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녀?"
[여와(女?)가 특히 왕을 싫어하여 직접 자신의 힘을 쏟아부으며 설치한 결계다. 여와를 죽이지 않는 한 그 결계를 깨는 건 힘들겠군...]
여와!
나는 그 말을 듣자 책사들의 예측이 옳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과연 삼황을 봉인하려면 같은 삼황이 힘을 써서 만든 결계가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대지모신(大地母神)이자 중원대륙을 창조했다는 전승이 있는 여와의 결계라면 말도 안되는 신의 능력이 깃들어 있으니, 칠요 하나로는 부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내가 해야할 일은 확실해졌다. 나의 왕께서 내게 지령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염제 신농께서는 결계에 갇혀도 외부에 의사를 전달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아무리 여와라 해도 그분의 모든 것을 가둘 순 없다.]
"흐음."
공공은 자신의 거대한 오른팔을 들며 내게 말했다.
[백웅이여. 너도 칠요를 지금부터 모아라. 너와 내가 칠요를 최대한 모은 다음에 그걸 한꺼번에 제물로 바쳐서 결계를 깨고 거신왕(巨神王)을 현세에 귀환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칠요의 힘이 왕께 귀속된다면 그 분께서는 황제도 이기실 수 있겠지.]
내가 미쳤냐?!
칠요 모아서 남 좋은 일만 시켜주게?!
나는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애써 참고는 말했다.
"모으는 건 당연히 모으는 거지만 어떻게 모으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서방에 있는 금요(金曜)를 가지러 가겠다. 너는 동방에 있는 월요나 목요를 손에 넣어라. 그 다음에는 암천향으로 가서 토요를 가져오면 될 것이다.]
"... 계획은 좋습니다만... 토요를 얻는 건 좀 어렵지 않을지..."
[크흐흐흐!!]
공공이 광소를 흘리며 말했다.
[내 힘을 지켜보기나 하거라.]
쿠구구구
공공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딘가로 홀연히 날아가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가 사라진 먼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혼자서 서방의 금요를 찾아오겠다고?'
그게 될까?
서방의 금요는 현재 서방 최강의 사교집단인 [검은 형제단]이 얻으려 하고 있었고 수호자가 목숨걸고 봉인하고 있었다. 게다가 검은 형제단의 마도사들은 하나같이 대마도사였으며 그 중에는 전욱의 후손이며 대라신선급 이상인 팽조까지 속해 있었다. 하도 쟁쟁한 놈들밖에 없어서 나는 그 동안 금요를 얻으러 갈 생각조차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공공이 강해졌다고 해도 혼자서 금요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비등을 써서 본거지로 돌아갔다.
'내 걱정이나 해야지.'
목요를 얻으려면 십이율을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월요를 얻으려면...
'태산에 갈 준비를 해야겠군.'
죽든 살든 진소청의 뜻을 이어서 제천대성을 만나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