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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96화 (59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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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제갈사의 계책을 듣고나서 곧장 공공에게 되돌아갔다. 공공은 여전히 화요의 봉인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웬 촉수괴물들의 시체가 널려있는 게 보였다. 공공이 눈에서 불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왔는가. 굉장히 빠르군.]

"네. 헌데..."

나는 주위에 있는 괴물시체를 보며 질문했다.

"이 괴물들은 무엇입니까?"

[흉신의 후예다.]

"아!"

[놈들은 시도때도 없이 화요를 얻으러 쳐들어오지. 잠들어 있는 흉신의 영지에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음... 그런데 쉽게 잡으시는군요. 이 놈들은 원래 굉장히 강대한 종족인데."

나는 내심 감탄했다. 흉신의 후예가 나인교주로서 보였던 힘을 생각하면 이 놈들은 이족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의 강대종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공은 이 놈들과 싸우면서 거의 다친 기색도 없었고 여유롭게 잡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공공이 대꾸했다.

[ 이 놈들은 반쪽짜리니까 못 잡으면 이상하지.]

"반쪽짜리?"

[흉신은 칠요를 찾으려고 인간을 통해 수태시킨 반마(半魔)를 떼거지로 보내고 있다. 진짜 흉신의 후예는 아무래도 고급에 속하니 거의 보내지 않더군.]

"수태라고요..."

[흉신의 악취미이면서도 인과율을 거의 소모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내 힘을 갉아먹으려는 생각이겠지.]

"......"

나는 공공의 말을 듣자 현재 어떤 생지옥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흉신은 칠요를 찾으려고 전세계에 자신의 권속을 보내고 있지만,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자신의 직계후예는 거의 보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흉신이 인과율을 얻었다고는 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껴쓸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 대신에 중원대륙이나 세상 각지에서 납치한 인간에게 이족을 수태하게끔 시켜서 자신의 영향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고 칠요를 탐색하는 게 분명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이 흉신의 후예를 수태하는 건 그 자체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었고, 그 일은 현재 곳곳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는 중이리라.

' 뭐지... 교활해.'

하지만 나는 그 행동에 대해서 분노보다는 꽤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얼핏 잔인하게만 보였지만 흉신은 강대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힘에 자만하지 않고 냉철하고 교활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판을 짜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자기 할 일은 다 하면서도 천계까지 무너뜨리게 된다면, 종래에는 삼황오제마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리라.

[잡설은 됐다. 내가 원하는 걸 가져왔는가?]

공공이 내게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룡신검을 들었다.

"방법은 이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소리지?]

"화룡신검에 혼돈의 화염을 흡수시키는 겁니다."

[......]

공공은 잠시 어이없다는 듯 우두커니 서 있다가 팔짱을 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 검이 대체 뭐라고 축융의 불꽃을 흡수할 수 있다는 거냐?]

"이 화룡신검에 잠들어 있는 건 천계의 대선 화룡진인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그녀는 만신전에 거하는 응룡(應龍)의 화신(化神)입니다."

[......!! 응룡이라고?!]

"네."

나는 공공이 흔들리는 걸 직감하고 연속해서 말했다.

"그녀는 보통의 대라신선보다 훨씬 위격이 높은 존재입니다. 게다가 용의 화신이라 불을 제압하는데 훨씬 익숙하겠지요. 그게 설령 거신 축융의 불꽃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흐음... 응룡...]

공공은 침음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굉장한 존재였다. 황제조차 응룡을 신임할 정도였으니, 응룡의 화신이라면 과연...]

공공이 한참을 침묵하며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게는 그 검이 진짜 화룡신검이라는 증거가 필요하다. 증거를 내놓아라.]

여기까지도 예상했다. 나는 제갈사의 계책을 떠올리며 대꾸했다.

"싫습니다만?"

[뭐... 라고?!]

"전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확실한 방도를 모두 내놨습니다. 확실한 방법을 손에 쥐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님의 억지를 다 들어드릴 이유는 없다는 소리입니다. 굳이 공공님을 지금의 주박에서 풀어드릴 이유도 부족하고요."

[네놈...]

나는 공공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아쉬운 건 제 쪽이 아닙니다. 공공님께서는 거만한 태도를 조금 접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올바른 거래가 가능할 테니까요."

공공이 화가 났는지 천천히 거검을 들려는 기색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노기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내게 뭔가를 더 바라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이대로는 공공님께만 너무 유리하니까요."

[뭘 원하는가?]

"공공님의 주박을 풀어드리는 대신 저희와 함께 칠요를 찾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향후 적과 싸울 때 저희를 진심으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배신 따위는 해서는 안 되고요."

[거신인 내가 너희 인간들을 도와서 싸우라는 소리냐?]

"공공님께 인간족의 생사 따위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일이겠지만 저희에게는 큰 문제라서 말입니다."

[......]

"어차피 칠요를 찾더라도 당장은 할 수 있는게 없지 않습니까? 공공님의 목적은 향후 힘을 키워서 삼황오제에게 복수하는 게 아닙니까? 저희와 손을 잡는다면 그 때까지 저희가 모은 정보를 공유해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공공은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좋다. 그렇게 하지.]

"약속이 성립되었군요."

[네가 만일 나를 속인 것이라면 세상 끝까지 찾아가서 너와 네 동료들을 찢어죽일 것이리라.]

공공이 피부가 에릴 정도의 살기를 뿜어내며 엄포를 놓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룡신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시던가요."

[......]

삼황오제나 [옛 지배자]한테도 할 말 다 하던 나다. 이제 와서 두려운 것도 없는데 공공이 저 정도 협박을 한다고 쫄 이유가 있을까? 나는 심드렁하게 그의 압박을 넘겨버린 후 정신을 집중했다.

'불필요한 동작 없이 노린다.'

전시안(全視眼) 발동

전국옥새여, 내게 공공의 봉인을 구성하는 가장 취약한 부분을 보여다오!

위이잉

내가 전국옥새 전시안의 힘을 끌어내자, 확실히 축융의 불꽃이 시꺼먼 색깔의 가시덤불처럼 공공의 몸 여기저기를 쑤셔판 모습이 보였다. 본래 저런 저주는 육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으니 전시안은 개념적인 저주마저도 가시화시켜주는 것이다. 나는 혼돈의 가시덤불 중에서도 가장 두꺼워보이는 부분을 찾아내서 곧장 찔러들어갔다.

뇌신검무(雷神劍舞)

일섬(一殲)!

촤아악

한차례 저주를 크게 베어내자 가시덤불이 공공을 압박하는 능력이 약해진 게 느껴졌다. 공공은 직접적으로 그 영향을 느끼는지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 되었고 놀라운 듯 외쳤다.

[오오...!!]

아직이다. 화염의 저주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저 힘을 흡수해야한다!

나는 가시덤불의 기세가 약해지자 큰 줄기를 화룡신검으로 찔렀다.

고오오오

가시덤불로 보이던 저주가 갑자기 거대한 화염으로 변해서 크게 일렁였고, 갑작스럽게 내 전신을 불태워버릴 것처럼 덮쳐왔다.

"크으윽."

축융이 걸어둔 방어체계인가? 하지만 화룡신검을 잡고 있는 동안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화염에 대해서 저항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혼돈의 화염이라 해도 피부가 따가울 뿐 외상은 없었다. 그리고 화룡신검에 힘을 집중하며 외쳤다.

"깨어나시오, 화룡진인!!"

다음 순간 화룡신검의 검신(劍身)이 새하얗게 빛나면서 내 몸을 뒤덮고 있던 혼돈의 화염을 크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대신에 내 몸이 불타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불타는 게 아니라 화룡신검의 신염(神炎)이 내 몸을 혼돈에서 정화해주는 과정이었다.

쿠구구구!

지금까지 크게 힘이 쇠퇴해 있던 화룡신검의 내부에서 거대한 힘이 폭발하며 무언가가 눈을 뜨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본래는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깨어나야 할 화룡진인이 강대한 화염의 힘을 먹어치우면서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화룡진인이 환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외쳤다.

[이 사악한 저주를 물리치리라!]

화룡진인이 자신의 양손을 모으며 힘을 집중하자, 화룡신검의 검극(劍戟)으로 힘이 한층 더 강하게 빨려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화룡진인의 힘도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는데, 화룡진인은 잠시 후 버거운 듯 중얼거렸다.

[이 정도의 양일 줄은...]

[화룡진인이여! 힘들겠습니까?]

[그렇진 않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쿠구구구구

후오오오

[제압했노라!]

약 한 식경이 지났을까? 마침내 축융의 불꽃을 모두 흡수한 화룡진인은 완전히 화룡신검을 통해서 부활한 듯 했다. 동시에 공공 또한 모습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드디어 이 빌어먹을 저주가 풀렸구나...!!]

콰르릉

공공의 모습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보통 인간의 크기에 불과했지만 갑작스럽게 원래의 크기로 돌아갔고, 뿐만 아니라 본디 화염거인의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청량한 한기(寒氣)마저 느껴지는 음신(陰神)에 가까워 보였다. 단지 음신의 몸뚱이에 화염의 구체가 휘돌고 있어서, 공공이 음양의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화요가 마치 빨려들어가듯 공공의 손에 잡혔다. 그러자 원래 인간이 손에 잡을 크기이던 화요가 갑자기 커다랗게 변해서 거인족의 병기처럼 변했다. 칠요에게는 크기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 걸로 보였다.

공공이 화요를 치켜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나의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크하하하.]

빠지직

나는 공공의 외침 한 마디에 내 몸이 크게 바닥을 부수며 가라앉는 걸 느꼈다. 확실히 공공은 봉인이 풀린 순간 방금 전까지보다 최소한 열 배는 강해진 게 분명했다. 나는 그런 공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공공이시여! 이제 약속을..."

[약속... 그래, 지키겠다! 하지만 나는 그 전에 할 일이 있으니 먼저 실례하겠다.]

"뭐라고요?!"

[반드시 알현해야 할 분이 있다.]

쿠콰쾅

공공이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며 천지에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나의 왕이시여! 기다리십시오.]

후두둑...

"......"

공공이 사라져버린 장내에 나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제갈사의 계책대로 된 건가?'

확실히 화룡신검을 써서 축융의 불꽃을 흡수하며, 덤으로 화룡진인까지 회복한다는 건 일거양득의 계책이었다. 그러나 내가 제갈사의 계책에 회의감을 품은 것은 그게 잘 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며 내가 그냥 축융의 불꽃에 타죽을 확률도 농후했기 때문이다. 화룡진인이 깨어나지 않아서 계속 불타는 생지옥을 겪을 확률도 있었다. 게다가 방금 봤다시피 공공이 나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제갈사가 덧붙였던 말에 찝찝한 기분이 들었었다.

[뭐, 안 되면 그냥 봉인을 해제하는 척 찔러서 죽여버리라구. 그러면 공공의 영혼을 화룡신검에 흡수해서 어쨌든 너는 이득이니까.]

[그건 배신이잖아.]

[알게 뭐냐?]

[......]

그러나 어쨌든간에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나는 목숨을 건 도박이 성공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

'진소청이 결의를 불어넣어주지 않았다면 절대 도전 못했을거야...'

진소청의 희생과 결의를 본 이상 나는 이번 생에서 어중간한 태도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득을 얻어내서 최대한 성장하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고, 그걸 위해서라면 이악물고 모든 도박과 모험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 때 화룡신검에서 화룡진인이 환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대가 나를 깨워줬구나.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백웅이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전후사정을 얼추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화룡진인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선검술? 여동빈은 대라신선인데 선검으로 변신할 수 있단 말이냐?]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네? 모르십니까?"

[그렇다. 나는 여동빈의 스승으로써 천둔검법을 비롯한 각종 절예를 가르쳤으나, 그 아이에게 그런 술법을 가르친 적은 없느니라.]

"......!!"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가 당황하자 화룡진인이 말했다.

[일단 그 선검이라는 걸 끌어내 보거라.]

"네."

슈우욱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선검을 내 좌수에 소환했다. 그러자 화룡진인이 손을 뻗어서 선검의 날을 매만졌는데, 그녀는 이윽고 크게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럴수가...]

화룡진인이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전신(戰神) 구천현녀(九天玄女)의 술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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