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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93화 (59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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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원래라면 사흘동안 낙양의 생존자를 구출하고 인간을 구하는데 힘썼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너무나 급격하게 반전하고 있었기에 그 일에 신경쓸 여력은 없었다. 결국 모든 구조활동과 사후 정비는 연종휘에게만 맡겨둔 채 우리는 빠르게 낙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망량선사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군...'

천계와 나인교의 대전이 낙양에서 일어나고, 심지어 낙양에서 대규모 인신공양과 대결계 파괴의식이 치러져도 망량선사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단지 대결계를 지키는 것 이외에는 자신의 관심밖이라는 듯 아무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망량선사 정도의 신격이라면 어떻게든 나인교를 사전에 물리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그 무관심을 드러내는 증거 중 하나가 망량이 애타게 망량선사를 찾았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던 점이다. 심지어 내게도 현몽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갈사는 망량선사의 무반응을 보자 간결하게 정리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한계가 찾아온 거겠지."

"한계?"

"그는 처음부터 대결계를 유지하는데 대부분의 힘을 쓰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이정도로 흉신이 발호한 상황에서는 대결계 유지 외에는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되었단 거겠지."

"......"

"현재 망량선사는 없는거나 다름없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단 다두왕국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서문혜의 상세를 살피기 위해, 다두왕국에 이미 머물고 있던 천하오대의원들을 불러왔다. 내 기억을 이어받은 동료들은 앞으로의 전투에 뛰어난 의원들이 필수적이라 생각했으므로 50년 전에 하나하나 찾아가서 다두왕국으로 피신시킨 것이다. 그래서 현재 다두왕국에는 의성 상관혁을 제외한 모든 천하오대의원들이 머무는 상태였다.

가면을 쓴 천상괴의 동방무결이 기절해 있는 서문혜의 상세를 진단하더니 말했다.

"아주 멀쩡한데. 그냥 기절했을 뿐이다. 내장에도 뇌에도 이상 없다."

"정말이오?"

"내 이름을 걸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창상이 어딨다는 거냐? 상처가 없는데."

"음..."

동방무결은 천하오대의원 중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의술이 뛰어난 자였다. 그가 이름을 걸과 확신할 정도면 서문혜는 현재 무사한 게 틀림없다. 나는 문득 그가 가면을 쓴 게 의아하게 느껴져서 물었다.

"가면은 왜 쓰고 있소?"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하나?"

동방무결이 배배꼬인 목소리로 내게 반문하자, 옆에 서 있던 제갈사가 진득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섬에서 추방당하기 싫으면 말하는 게 좋을걸. 이 멍청하게 생긴 놈이 실질적으로 우리의 주군이니까."

"끙."

"지옥같은 중원대륙에서 괴물들과 쉴새없이 싸우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어."

"알았다. 제기랄!"

동방무결은 '추방'이라는 말에 흠칫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스윽

"......!!"

나는 그의 가면 밑에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어... 어인? 해신족(海神族)."

그랬다.

그의 얼굴은 아직 인간의 형태가 3할 정도 남아있긴 했지만 전형적인 어인족이자, 내가 전생하며 적대해 왔던 이족인 해신족과 아주 유사했다! 보통 인간의 심미관으로 보면 누가 봐도 괴물이라고 할 정도였다. 원래는 교활한 인상이긴 하지만 꽤 준수한 장년인이었던 동방무결이었기에 심각한 외모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동방무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 와서 이 정도가 어떻다는 거냐? 다두왕국 바깥의 중원본토에서는 이족과의 혼혈이나 이족과 융합한 자들도 부지기수인데... 수신류의 비법에 따라서 안정적으로 그들의 피를 받아들였으니 나는 문제 없다. 인간의 형질을 잃을 일은 없단 소리다."

"수신류의 비법? 무슨 소리요?"

"... 이젠 교주도 호법사자도 없으니 말해도 별 상관은 없겠지."

동방무결은 뺨 뒤편에 나 있는 조그마한 아가미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수신류의 비법을 전해받은 자들은 모두 서서히 어인의 외모로 변해가게 된다. 희석시킨 어인의 피를 장시간 정기적으로 주입받으며 주술으로 기와 영혼을 보전해서 이족의 힘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인족의 강력한 생명력과 그릇을 손에 넣고, 나아가서는 천령단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되며, 불로불사에 가까운 수명을 지닌다."

"......"

"왜 그런 눈으로 보지? 나를 동정하는 건가?"

나는 그를 바라보며 힘겹게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소. 나중에 당신의 목소리조차 어인처럼 변하는 게 아니오?"

"그렇게 되겠지. 아직은 거기까지 변이하기 싫어서 나 스스로 억제하고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동방무결은 나중에 독고준이나 수신류의 고수들처럼 인간의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육합전성이나 전음으로 대화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과거에 대했던 수신류 인물들을 생각하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형질을 일부 보존한다고 하지만 어쨌든 당신은 인간을 버린 셈이나 다름없잖소."

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그에게 이야기하자 동방무결이 비직 웃음을 흘렸다.

"인간으로 남아있으면 뭐가 좋지?"

"뭣..."

"인간의 육체는 약해빠졌고 불편하고 빨리 죽어버린다. 그에 반해 이 육체는 생명력이 넘치고 물에서 반영구적으로 살 수도 있으며 굉장히 오래 살 수 있고, 무엇보다도 천령단을 운용하기 쉽지. 왜 인간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하!"

"......"

그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괜히 잘 살고 있는 남에게 딴지걸지 말고 니 일이나 잘해라."

동방무결은 약간 화가 난듯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옆에 앉아있던 다른 오대의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기색이었다. 광명신의 화서명이 말을 꺼냈다.

"하필이면 저 자의 역린을 건드렸구려."

"역린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저 자는 종종 자신이 어인족으로 변화한 걸 한탄하고 후회하곤 했소. 술자리에서 역정을 내는 일도 꽤 있었지. 원하는 걸 손에 얻었으나 자신이 잃은 걸 늘 아쉬워하는 듯 했소."

"으음."

"아무튼 우리가 진단하기에도 서문혜 소저의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소. 단지..."

"단지?"

50년 전과 달리 완연히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세고 늙은 화서명이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몸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오."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낸 형태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말도 안될 정도로 튼튼하고 완벽하다고 할까. 쉽게 말하자면 모든 충격에 대해서 엄청난 내성과 회복력을 지니고 있고 기경팔맥의 순환도 일반인보다 수백 배나 복잡하고 강렬하오."

"이족의 몸이라는 뜻입니까?"

"그게 아니라..."

화서명은 뭔가 답답한지 입을 오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수백 배로 강화된 인간. 굳이 표현하자면... 현재의 인간보다 진화된 인류라고 해도 될것이오."

"......!!"

"이족의 몸이 아니냐고? 물론 우리도 오십 년간 이족의 시체를 많이 해부해 봐서 그 예시와 강도를 알고 있소. 그러나 그녀의 몸은 그런 이족들보다도 훨씬 튼튼하고 강인하오. 무예가가 수십 년간 단련해도 이루기 힘들다는 강기일식(?氣一息)의 경지보다 훨씬 강해보이는군."

그는 뭔가 부러운 눈으로 기절한 서문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용암을 맨발로 걸어가도 멀쩡할 것이고 무예수법을 쓰지 않아도 맨주먹으로 절벽을 박살낼 수 있을거요."

"그런 게 가능합니까?"

"당연히 원래는 불가능하지."

화서명 옆에 있던 강전길이 꼬부라진 장침을 여러 개 꺼내더니 말했다.

"보시오. 진맥을 하려고 우리가 시침을 했는데 침이 피부에 박히지 않았소. 침이 죄다 부숴졌소. 그래서 방금 여기서 뛰쳐나간 동방무결이 자신의 초절정 공력을 침에 불어넣어서 간신히 시침했었던 거요."

"헉..."

그 정도란 말인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녀의 의식이 언제쯤 돌아올까요?"

"잘 모르겠소. 허나 지금도 호흡이 정지되어있는데도 혈류가 고요하게 안정되어 있는 걸 보면 머지 않아 깨어날지도. 어쨌든 생명엔 아무런 이상 없소."

"알겠습니다."

일단은 서문혜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나는 바깥으로 나와서 제갈사, 망량과 의논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은 사흘 후 제천대성이 부르는대로 태산으로 가야겠지. 그리고 그 전에 해야할 일이 하나 있다."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백웅. 넌 이제 절대지경이나 투선의 경지에 오른 게 확실하냐?"

"......"

단번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자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진소청, 당산과 더불어 싸울 때는 절대지경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면서?"

"그건 선검술을 일으켰을 때 뿐이었어. 선검술을 거두니 천둔검법 월공투계의 경지도 함께 사라졌다고."

"흐음."

제갈사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망량이 말했다.

"그 선검술에는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군. 백웅, 뭔가 짚이는 건 없소?"

망량은 내 직감에 뭔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예전에 초상기인의 부활의식을 막을 때는 내 직감이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부터 꽤 시간이 지났기에 지금도 내 감이 또렷할지는 알 수 없었다.

' 이유... 여동빈이 선검이 된 이유...'

나는 여동빈이 그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아직은 충분한 증거가 없는데도 그대보다 커다란 문제가 산적해 있기에 내버려두고 있으나, 곧이어 천제단이 내려오면 그대를 토벌할 자들이 찾아올 것이다.]

[ 허나 그대가 스스로의 정의에 자신이 있다면 천계와 대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 천제단이 내려오기 전에 내 스승님이신 화룡진인을 깨워 각성시킬 수 있다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 우선 스승님을 깨워 사정을 설명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주실 것이다.]

그랬다.

여동빈은 삼청이 나를 천계의 적으로 지목할 분위기로 흘러가자, 연자인 나를 믿고 선검이 되어서 도와주길 자청했었다. 그와 동시에 화룡진인을 깨워줄 것을 부탁했는데, 그 자세한 사정은 내게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여동빈은 천계 소속의 대라신선이 되면 나를 토벌할 수밖에 없었기에 대라신선의 위를 버리면서까지 선검이 되어 나를 돕기로 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인지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망량이 의혹을 제기한 것이리라.

여동빈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나는 생각 끝에 말했다.

"확실한 건 그때 여동빈이 말했던 대로, 이 화룡신검에 잠들어 있는 화룡진인을 깨우는 게 우선인 것 같소. 화룡진인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오."

"화룡진인을 깨우려면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이 필요한데, 현재 화요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소. 현 시점에서는 화요의 결계를 뚫을 방법조차 없소. 게다가 보조대책인 화신류의 호법사자 한백령은 얼마 전에 전사(戰死)해 버렸소."

"젠장!"

일이 정말 꼬여버렸다.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뭐... 지금 화요를 얻을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칠요를 탐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얻고 나면 그 원숭이에게 주자."

"뭐? 그 말은... 제천대성에게 칠요를 갖다바치자는 말이냐?"

제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놈은 늘 칠요에 경각심을 세우고 뺏으려 들지만, 하지만 정작 우리는 놈이 어째서 칠요를 뺏어가려는지 잘 모르지."

나는 제갈사가 말하려는 바를 알아차렸다.

"놈이 칠요를 뺏으려는 이유를 알아내자는 말이냐?"

"그 이유와 배경사정을 확실히 알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거다. 덤으로 그 놈은 천계에 별로 소속감이 강하지 않고 의리에 충실한 놈이다. 우리 쪽에서 먼저 칠요를 내놓는다면 더 큰 호감을 살 수도 있을 거다. 그 놈은 의리가 좋은 상대에게는 대가 이상의 일을 해 주는 부류라고 본다."

"흐음..."

"어차피 이 상황에서 해방도 불가능한 칠요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 진소청이 남겨준 유일한 도우미인 제천대성과의 협력은 불가피하다는 거다. 게다가 그 놈이 화안금정으로 우리를 탐색하기 시작하면 칠요를 숨겨봤자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야."

"큭."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까지 상황이 몰렸는데 기껏 칠요를 찾더라도 제천대성에게 아부용으로 갖다바쳐야 한다는 소리인가?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뺏길 처지라면 차라리 먼저 바쳐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나는 결국 마음을 정하고 말했다.

"알았어. 화요를 탐색해 보자."

화요의 수호자, 공공이 지금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험을 할 수밖에 없다.

화요는 둘째치고 화룡진인을 깨우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화요를 둘러싼 결계를 뚫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개기일식이 다가오기 전에는 열리지도 않는 결계였다. 사실상 화요를 얻기보다는 화요를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수준이었다.

설혹 결계가 열려있다 하더라도 수호자에게 정면도전은 현실적이지 않다. 공공의 힘은 음양의 균형이 파괴된 탓에 과거보다 몇 배나 강해졌을 확률이 높았다.

여러모로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파앗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예전에 갔던 남쪽 대륙의 칼투카자라의 유라라 지역으로 향했다. 일단은 주변상황부터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바로 들어가려 하면 결계 때문에 튕겨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울루루 근처의 대결계를 찾았는데, 나는 잠시 후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근처에 수목(樹木)이 우거져 있군."

원래 울루루 근처는 황량한 사막에 가까웠는데 신록이 우거졌고 나무들이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게다가 꽤 거대한 거목도 많았기에 생명력이 넘치는 대지라는 게 느껴졌다. 본디 기후에 따라서 환경이 결정되는 걸 생각하면 아무리 오십 년의 세월이라지만 사막이 울창한 숲으로 쉽게 바뀔 수는 없었다.

잠시 후 나는 결계가 온존해 있는지를 확인했다.

"......!!"

파괴되어 있다!

원래 삼황오제의 의지로 수호되며, 비상시에는 투선이 소환되면서까지 지켜지는 울루루의 결계가 부숴져 있었다. 그것도 단시일에 부숴진 것이 아닌 듯했다. 결계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지라 무수한 파괴활동이 있었다는 걸 짐작하게끔 했다.

' 음... 이대로 물러나기보다는 일단 들어가 볼까?'

나는 천천히 거대한 바위산의 위로 올라가서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를 찾았다. 다만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서 여기저기를 만져봤지만 바로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 제길... 역시.'

울루루의 넓이는 십여 리가 넘는데, 그 중에서 통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 장도 되지 않는 범위의 출입구에 손을 대어야 한다. 예전에는 운이 좋아서 찾았지만 여기서 찾아내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진 않다. 직접 출입구를 찾지 않아도 나는 예전에 한 번 화요의 봉인실에 들어가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비등을 써서 들어가면 된다.

나는 심호흡을 한 채 각오를 다졌다.

' 최단시간에 용화수의 씨앗을 챙기고, 화요의 화기로 화룡신검을 깨우고, 화요를 갖고 탈출한다.'

파앗!

비등의 순간이동이 이뤄지자마자 나는 재빨리 화룡신검을 화요에 대어 수천년 분의 화기를 흡수시키려 했다. 화요의 수호자 공공과 일대일로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전투를 피하고 필요한 일만 하고 탈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앗..."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뭔가가 화요의 봉인실에 서 있었다.

[ 또 흉신의 수하가 칠요를 강탈하고자 찾아온 것인가? 질리지도 않는가?]

"......"

[ 결계를 파괴했다 해서 전부가 아니다. 내가 있는 한 결코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인간과 비슷한 키와 체형을 지니고 있으며 외관도 그러했다. 키는 나보다 조금 크지 않을까? 전신에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으며 거검(巨劍)을 들고 있는 그 존재의 모습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공공(共工)!"

설마 대놓고 봉인실 안쪽에서 화요를 감싸듯이 지키고 있다니!

이건 반칙 아닌가?!

[ 인간인데 나를 알고 있는가?]

"원래 거인이었을텐데 왜 크기가 줄어들었..."

내가 의아해하자 공공이 말을 끊었다.

[ 쫑알쫑알 시끄럽구나. 침입자놈은 죽어라!]

콰과광

"으윽."

나는 공공의 거검이 휘둘러지는 찰나지간에 선검을 소환해서 그의 공격을 막았지만 뒤로 크게 튕겨나갔다. 양 팔이 마비되는 느낌과 함께 나는 암울한 기분을 느꼈다.

' 이길 수 있을까?'

하필이면 이런 자리, 이런 때 화요의 수호자와 정면대결을 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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