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592화 (59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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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검마의 딸이자 내 동료 중 한 명이 어째서 나인교주가 되어있는가?!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가 나인교주로 나타나자 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녀는 분명 정체불명의 고열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인교주는 재밌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나와 동족(同族)인가? 그건 인간의 껍질인가? 아니... 잘 보니 전혀 다르군. 너는 무엇인가?"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인교주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신께서도 네게 흥미를 갖고있구나. 살려서 데려갈까?"

"잠깐! 넌 서문혜냐?"

내 질문에 나인교주가 대답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은 그런 이름이었지. 그리고 지금은 내가 이 몸의 주인... 나는 인간의 육체를 빌리고 있으나 위대한 흉신의 후예이다."

"흉신의 후손? 너는 이족인가?"

"......"

나인교주는 냉소를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황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저 끔찍한 냉소에 인간의 감정따윈 조금도 섞이지 않은 걸 즉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눈 앞에 있는 건 정신체 이족!

결코 서문혜가 아니며 서문혜의 의식은 없다.

그것도 저 이족놈은 [흉신의 후예]라고 불리는 강력한 흉신의 부하였다. 그런 놈이 자신의 정신력만으로 서문혜의 몸을 지배해서 '나인교주'로서 발현한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흉신의 후예]라고 하면 손꼽히는 강력한 이족이긴 하지만 천계의 대라신선이나 투선을 몰살시킬 정도로 강력하진 않다. 게다가 준 [지배자]로까지 꼽히는 강력한 존재가 어째서 하필이면 인간, 그것도 서문혜의 육체를 굳이 지배하고 있단 말인가?

서문혜의 육체를 꼭 차지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내가 머리를 굴리고 있자, 잠시 후 나인교주가 중얼거렸다.

"지금 신께서 말씀하셨다. 너를 살려서 데려오라고..."

"......"

"나머지는 다 죽일까."

나인교주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진소청이 벼락처럼 앞으로 나서더니 나인교주에게 달려들었다.

꽈과광!!

폭음이 터져나오며 엄청난 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뭔가 수를 나눌 겨를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강맹한 격돌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속도가 빠른 게 아닌, 진소청의 무수한 의념절기와 무예가 나인교주를 휩쓸어가는 광경이었다.

퍼벙

찰나의 순간, 나인교주는 진소청의 공격에 대응해서 엄청난 속도로 손을 휘두르며 맞섰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내가 보기에도 딱히 무예의 묘리를 담고 있는 게 아니었고, 그저 압도적인 육체능력으로 의념절기를 찍어누르는 것에 불과했다. 다만 인간과는 타고난 육체능력의 차이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인지, 용인보다 수십 배는 되는 신체능력으로 보였다.

' 미친... 피하거나 막는 게 아니라... 저거 그냥 맞아서 버티는 거잖아!'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경악했다. 아무리 신체능력이 좋아도 문외한의 손속으로는 진소청의 의념절기에 맞아서 다치고 꿰뚫릴 수밖에 없는데 선천적인 방어력이 너무나 높아서 흠집도 가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을 정련해도 저정도는 될 수 없을 게 분명했기에 도저히 생명체의 방어력이 아니었으며 차라리 달기의 방어막에 비견될 정도였다.

생긴 것만 인간일 뿐 저 놈은 확실한 우주급 괴물이다. 되려 저런 괴물이 반격을 할 수 없게끔 몰아붙이는 진소청의 무위가 굉장하다고 해야하리라.

독왕 당산이 그 격돌을 보더니 외쳤다.

"나도 간다!!"

파앗

그의 신형이 푸른 쪽빛처럼 변하더니 진소청과 더불어 나인교주를 합공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절대지경 두 명의 초고수가 합세해서 나인교주를 공격하니 무시무시한 기파가 천둥처럼 터져나오며 반경 백여 장에 진동이 울렸다.

나는 그 격돌을 관전하다가 끼어들 틈을 찾으려 했으나 그 때 망량이 앞으로 나서서 진소청을 보조하며 술법을 전개했으며, 제갈사가 내 팔을 끌었다.

내가 뒤로 끌려나오다시피 제갈사에게 잡혀가자 제갈사가 급히 말했다.

"백웅. 비장의 수단이 있나? 해신이라 할지라도 쓰러뜨릴만한 비장의 수단을 지금 갖고 있냔 말이다."

"그건..."

"진소청과 당산은 힘이 반감된 나인교주를 상대로 시간을 끌고있을 뿐이다. 저 놈이 만전의 상태였다면 십 초 안에 다 죽었을 거다. 안되면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 빨리 선택해라!"

"큭."

"내가 마도서를 이용해서 자살희생하는 방법은 이 판국에 안 먹히니까 신중하게!"

아무래도 제갈사 또한 마도서를 이용해서 [옛 지배자]를 소환하는 방법에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현재 흉신이 인과율을 획득해서 지상을 제패한 상태에서, 굳이 흉신에게 적대하는 위험을 감수할만한 [옛 지배자]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흉신이 '계시'를 지닌 한 다른 지배자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걸 육안으로 목격한 상태다.

제갈사의 요청에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내게 있는 비장의 수단이라고 해도 무창의 탑의 무기는 이미 사용했고, 내게 남은 거라고는 선검술을 끌어올려 싸워보는 것 뿐이다. 칠요를 써보려 해도 수요는 미해방 상태라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였고 화룡신검은 회복조차 되지 않아 일개 명검에 불과했다. 그나마 전국옥새의 영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면 일시적으로 강해지긴 하겠지만 나인교주쯤 되는 상대에게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 이 정도 힘으로 해신급의 존재를 쓰러뜨리는 건 역부족이야...'

눈 앞에 있는 나인교주는 힘이 반감되었다고는 하지만 홀로 천계의 군세를 패퇴시킨 괴물으로서 해신과 동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진소청이 시간을 벌고 있다는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때였다.

우우웅

"......!!"

마음속에 있던 검(劍)이 울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머릿속에서 검명(劍鳴)이 진동하며 내게 전의(戰意)를 북돋아주었다. 나는 그 검명이 혼란스러운 머리를 맑게 해 주며 마치 내면에서 거대한 불꽃을 일으켜주는 기분이 들었다.

할 수 있다.

나는 제갈사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 그래. 여기까지 와서 도망치는 건 말도 안 돼!'

처음부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인교주와 결판을 내기 위해 온 게 아니었던가? 게다가 힘이 반감되었다 해도 나인교주가 언젠가 회복하면 오늘과 같은 참상이 또 벌어질 것이다. 차라리 나인교주가 약해졌을 때 당장 치는 게 옳다.

' 잡스러운 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 필요한 건 용기!

그리고 여동빈이 내게 맡긴 의지를 지금 불태울 뿐이다!

"이야압!!"

고오오오

내가 전장에 뛰어드는 순간이었다. 내 손에 들려있던 화룡신검이 갑자기 거대한 불꽃을 토해내며 화룡(火龍)처럼 변하더니 내 팔에 휘감겼고, 그 불길과 함께 내 왼손에 또 하나의 검이 솟아올랐다.

선검(仙劍)은 실재하지 않았으나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내 손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윽고 전국옥새의 영력을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며 전방으로 일 참(一斬)을 날렸다.

꾸궁!!

내 일격에 나인교주가 공수입백인의 수법으로 화룡신검을 끊어내려 했으나, 이윽고 검기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흐음!"

"대단한데."

내가 장내의 합공에 가세하자 진소청과 당산은 놀라워하면서도 꽤 여유가 생긴 듯 했다. 지금까지는 그들 둘이 합공하면서도 약 팔대 이의 기세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인교주의 압도적인 신체능력 때문이었다.

진소청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백웅! 선검술로 절대지경의 싸움을 읽어낼 수 있겠소?]

[ 할 수 있소!]

나는 양손의 검을 꽉 말아쥐며 말했다.

[ 잘 모르겠지만 여동빈이 내게 힘을 주고 있소.]

선검술을 쓰는 순간 여동빈이 강림할 줄 알았는데 여동빈은 그저 한 자루의 검이 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선검을 손에 잡는 순간부터 절대지경의 진소청과 당산의 움직임, 그리고 그걸 상회하는 나인교주의 속도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찾아온 이 상태가 뭔지를 깨달았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월공투계(越空透界)!

여동빈이 수백 년간 싸워왔던 초월적인 전투경험의 결정체이자, 무조건적인 후발선제로써 적의 기습을 막아내는 초능력! 선검은 월공투계의 영역을 내 안력(眼力)에 부과하면서 내 전력을 평상시보다 몇 배나 향상시키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보인다.

마치 거미줄처럼 칭칭 얽혀있는 절대고수들의 결계와, 수십 겹으로 걸쳐있는 의념절기의 조합을!

카가가강

나는 잠시 후 진소청이 찔러들어가는 공격에 보조를 맞춰서 선검과 화룡신검을 동시에 휘둘러서 나인교주를 추가로 공격했다. 그러자 나인교주는 정면에서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냈는데, 이윽고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지상에 아직 투선에 버금가는 인간들이 남아있었을 줄은 몰랐군."

투웅!

"크악."

"한 놈 수준미만이긴 하지만."

하지만 나인교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절대지경의 독술사인 독왕 당산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튕겨날아갔다. 피범벅이 된 당산은 금세 전투불능 상태가 된 듯 했다. 나는 그 지공(指功)에 백련교주의 심천무량에 못지 않은 거력이 담겨있음을 깨닫고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나인교주가 양손에 혼돈의 힘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백련교주라는 인간은 혼돈과 근원의 융합을 시도했지만, 진정으로 혼돈을 다루는 자라면 그런 건 필요하지 않지. 순수한 혼돈을 흡수하기만 해도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뭐?"

"잠시 쉬겠다..."

파지지직!

파지직!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시꺼먼 번개가 나인교주의 몸을 흑암으로 휘감더니, 잠시 후 그의 힘이 단번에 몇 배나 강력해진 듯 했다. 혼돈을 가득 끌어올려서 순식간에 방금 무창의 탑에 당한 피해를 회복한 것이다! 놈만이 지니고 있는 [흉신의 후예]의 고유한 능력으로 보였다.

' 빌어먹을! 역시 지금 치는 게 정답이었어!'

저 놈을 가만 놔뒀으면 며칠 내로 원래 힘을 회복했을 게 뻔하다!

스스스스

하지만 회복의 대가로 잠시동안 움직일 수 없는지 놈은 시꺼멓게 굳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도 진소청도 바로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서 나인교주를 쳤다.

퍼엉!

"윽."

진소청이 튕겨나가며 신음성을 냈다. 그는 신창합일의 기세로 날아갔지만 나인교주를 보호하는 방어막을 뚫지 못한 듯 왼쪽 팔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나 또한 방어막을 마주하자 전신에 혼돈이 나를 집어삼키려는 듯 날아오는 걸 느꼈다.

망량이 고통스러운 외침을 터뜨렸다.

"급급여율령!"

그러자 망량이 걸어준 보호막이 나를 즉사의 위기에서 구해줬다. 혼돈에 전신이 침식되면 인간의 몸으로는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급히 몸을 뒤로 빼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 저 방어막을 뚫지 못하면 안되는데...'

문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이자 술법이기에 뚫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버리거나 술법 자체를 해주하는 수밖에 없다. 나인교주가 몸에 두르고 있는 혼돈의 껍질이 마치 계란처럼 서서히 깨지는 광경이 보였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 때였다.

진소청은 차분하게 자신의 몸을 추스려서 창을 상대방에게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눈을 반개하며 모든 힘을 창 끝에 모으는 듯 했다.

느껴진다.

저 공격이 '50년 후'의 진소청이 깨달은 최대의 진경이라는 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진소청이 처음부터 저 절기를 쓰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경지라서 펼치려면 여유가 필요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의 순간 -나는 마치 그 고요한 흑백의 세계에서 진소청이 나를 향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인만이 느낄 수 있는 심적권청의 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전해듣는 건 줄곧 있는 일이었으나, 진소청은 그 찰나의 우연조차도 통제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듯 했다.

[ 백웅. 보시오.]

내 눈에는 진소청의 창끝만이 태산처럼 커 보였다. 내 모든 정신이 그의 창에 집중되어 있을 때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 궁극의 경지에서는 시간(時間)이 곧 거리(距離). 이 수천억 가지의 조합 속에서 흐름을 읽어내는 궁극의 거리를 감으로 터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소. 그래서 나는 흐름의 아래위로 축이 있고, 또다시 연속되는 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소. 원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간단하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흐름을 거슬러서 움직이면 그만인 것이오. 나는 오십 년 동안 궁극의 무(武)를 궁구(窮求)하던 중 이 원리를 깨달았소.]

진소청의 창이 서서히 회전(回轉)하기 시작했다.

[ 잘 보시오. 허(虛)가 기(氣)를 낳았소.]

끈 같은 게 허공에서 뭉치더니 자연으로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창술의 응용수법인 전사경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묘예를 해석하는 듯한 장중한 움직임이었다. 진소청은 아직까지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으나 이 공간에서 진소청의 존재감이 더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 백웅 그대가 무예의 한계에 도달할수록 무한의 시간 속에서 아라야식(阿賴耶識)이 발현하고, 태허(太虛)가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오. 결국 무(武)란 혼돈에 반하는 태허(太虛)의 정수라고 할 수 있소. 무를 궁구함은 궁극적으로 태허, 궁극의 끈을 손에 넣어 인과율을 돌파하는 것... 그 신의 경지를 인간이 이해가능한 형태로 묘사한 것이 도가의 태극(太極)이오.]

기혈(氣穴)은 통합되고, 경락(經絡)은 이어진다. 떠오르는 수면 위의 공처럼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이 저절로 그려지고, 다시금 인체 외부의 기(氣)를 정제해서 몸에 끌어모은다.

순간 내가 착각한 것일까?

마치 진소청이 신(神)처럼 보였다.

무언가 무(武)의 원리를 설파하던 진소청이 순간 씁쓸하기 그지없는 감정을 내비쳤다. 거대한 한탄의 감정이었다.

[ ... 이 절대적인 순환, 금기를 거스르는 궁극의 흐름은 인간의 능력으로 본디 알아내기 힘든 것. 다만 이것은 인간에게만 허용된 힘... 삼천세계에 오롯이 무신의 영역.]

그것은 모순이 아닌가?

인간의 능력으로 쉬이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흐름이지만 인간에게만 허용되었다고?

[ 심대한 모순이지만 그렇기에 무혼(武魂). 무신은 그 모순을 해갈할 수 있는 자에게만 자신의 인연을 남겼다고 생각하오...]

내가 의문을 느끼자 그걸 느낀 듯 진소청이 뇌까리는 게 들렸다.

[ 그리고 나 또한 무혼의 밑거름에 불과할 뿐... 그렇더라도 난...]

슬픔으로 목소리가 잦아든다.

찰나의 시간이 더더욱 쪼개졌고, 내 시야가 갈수록 새하얗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미친 불꽃처럼 뛰어다니는 수억 개의 조합이 하나의 변화로 귀일(歸一)하는 게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느껴진다.

시간이 쪼개진 틈새로 의식이 되돌아왔을 때 진소청이 내지른 일섬(一殲)이 나인교주의 가슴을 관통하는 게 보였다.

[ 이 영혼을 걸고 백웅 그대에게 무신(武神)의 길을 보여줄 뿐!]

신역절기(神域絶技)

위신일경(爲神一境)

은하섬(銀河殲)

섬광이 잠시 흩날리더니,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혼돈의 방어막이 쩍하고 갈라졌다.

콰과과광

방어막이 사라짐과 동시에 진소청의 창이 그의 가슴에 박혔고, 나인교주는 갑자기 엄청난 초재생력을 발휘하며 되려 그의 창날을 옭아매려 들었다. 그는 여유작작하게 진소청을 쳐죽이려는 듯 손을 휘두르려 했으나 그 순간 움직임이 멈추며 당혹해했다.

[ 아니... 이건... 성좌의 연결이 끊어졌...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말도 안...]

푸콱!

초재생능력이 갑자기 멎어버리고 나인교주의 얼굴에 더할 수 없는 경악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또다시 뭔가 초능력을 발휘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자 비명을 질렀다.

[ 어떻게 인간의 힘이 신의 영역에...!!]

쿠구궁

진소청은 그대로 돌격창을 내지르듯 땅아래로 나인교주를 내리꽂으며 낙양에 커다란 지진을 일으켰다. 삽시간에 그의 몸과 창 전체가 빛덩어리처럼 변하며 진소청의 거대한 외침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 하아아아아!! ]

진소청의 의지는 마치 신의 포자구름을 연상시키듯 광대하게 퍼져나갔다. 혜광심어를 직접 전달받는듯 진소청의 투지와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깎여나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진소청은 은하섬의 전개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광량(光量)이 그의 창극에 모이고 있었다.

투두두두

"......!!"

빛이 빨려들어가는 그 엄청난 광경 속에서, 나는 진소청의 몸이 마치 섬광처럼 변한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저건 뇌신지혼이 아니라 그의 힘이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창이 되어버린 듯 갈수록 위력을 더해가며 나인교주를 꿰뚫고 있었다.

쿠구궁...

잠시 후 소리가 잦아들며 진동이 멈췄다. 반경 백여 장이 넘는 거대한 구덩이가 장내에 만들어져 있었고, 진소청은 폭심지 중앙에서 나인교주의 가슴에 창을 꽂은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나인교주는 의식을 잃었는지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 대신 나인교주의 정수리에서 시꺼먼 기운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서문혜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흉신의 후예가 빠져나오려는 것 같았다. 그 말은 진소청이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마물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줬다는 소리였다.

진소청이 나인교주를 거의 혼자서 토벌한 것이다!

"진소청!!"

내가 그를 부르며 다가가자, 진소청은 꿇어앉은 채 전에 없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하섬을 펼칠 수 있는 건 딱 한 번... 펼치고 나면 나는 끝장날 거라는걸 예감했소. 아직 내 깨달음은 신역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그래서 예전에 나인교주가 쳐들어왔을 때는 쓰지 못했소."

그의 표정이 서글프게 흔들리고 있었다.

"뭣...!!"

"백웅 당신이 언젠가는... 돌아올거라 생각했기에..."

내가 멍하니 굳어 있자 진소청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제천대성이여. 와 주시오."

파앗 -

진소청에게 새겨져 있던 술법의 인(印)이 빛나더니, 갑자기 장내에 빛의 파도가 일렁였다. 잠시 후 근두운을 타고 제천대성 손오공의 모습이 나타났으며 그는 나타나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진소청! 넌 정말 고집불통이군... 다 죽을때가 되서 날 불러서 어쩔 생각이냐?"

"......"

"나인교주가 너희 본거지에 쳐들어왔을 때 인(印)을 통해서 날 부르라고 말했잖나. 네게 부름을 받아서 인과율을 얻지 못하면 천제단의 한계 때문에 저 괴물을 쓰러뜨릴 자신이 없었고, 지금도 할 수 없이 나인교주가 천계 본거지에 쳐들어올 걸 대비하고 있었는데."

진소청은 피를 쿨룩 토해냈다.

"... 아껴둬야 했으니까... 백웅을 위해서..."

아무래도 제천대성조차도 만전의 상태에서 나인교주를 이길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낙양 방어에서도 힘을 못 쓴 걸 보면 나인교주의 힘은 제천대성을 넘어섰던 듯 했다. 그러자 진소청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천대성 당신의 호의에 기댄 마지막 부탁이오. 있는 힘껏 백웅을 도와주시오..."

"... 정말 그걸로 되겠냐?"

제천대성은 답답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역사상 순수한 무의 깨달음으로 투선을 넘어선 유일한 인간일 것이다. 그런 네가 저놈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었느냐?"

투선을 넘어섰다!!

진소청의 마지막 비기인 은하섬은 나인교주를 토벌할 정도이니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제천대성의 말에 진소청이 대답했다.

"... 나는 50년간... 줄곧... 믿고있었소... 그가... 돌아올 거라고..."

투욱

진소청의 손목이 떨어졌다. 파리한 안색으로 숨을 거둔 진소청은 완전히 사망한 게 틀림없었다.

"......"

나는 멍하니 진소청의 시신을 내려다보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철혈의 천재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나인교주 토벌이라는 거대한 위업을 달성하긴 했으나 나는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러자 제천대성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더니 나인교주의 정신체로 손을 뻗어서 술법을 시전했다.

"봉인!"

파지직

"크으으... 엄청 강력하군 역시. 이걸 천계의 감옥에서 가둘 수 있을라나? 못 할 거 같은데..."

잠시 후 봉인술로 정신체를 거둬들인 제천대성은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아니나 다를까 봉인술을 펼친것에 불과한데도 그의 오른팔은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흉신의 후예가 지닌 능력이 준 [지배자]급이란 건 헛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천대성이 힐끔 나를 보더니 말했다.

"백웅이랬냐? 진소청의 유지를 이은 게 너라면 할 말이 있다."

"......"

"지금 당장 할 이야기는 아니니까 사흘 후에 태산으로 와라."

파앗

제천대성은 이윽고 근두운을 타고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가 사라진 것도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진소청의 죽음에 충격받아 있었고, 그저 그의 시신을 멀거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 진소청.'

그는 50년 동안 강대한 나인교와 이족에 맞서서 버티면서 줄곧 나를 기다렸단 말인가?

그리고 동료가 죽어나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내가 귀환할 때를 대비해서 초필살기와 제천대성의 소환권을 아껴뒀단 말인가?

그가 그 동안 겪었을 엄청난 고통과 인내를 생각하자 절로 죄책감이 들었다.

' 내가... 창힐 때문에 50년간 허망하게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면...'

내가 무력감 때문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자, 망량과 제갈사가 다가왔다. 제갈사는 차가운 눈으로 진소청의 시신을 보다가 말했다.

"아쉽게도 그의 영혼은 뭔가 우주적인 존재에게 저당잡힌 모양이군. 이혼대법으로 끌어다 쓸 수가 없어. 초상기인에 넣어서 재활용 할 순 없겠는걸."

"제갈사!!"

진소청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하는 제갈사의 말에 울컥해서 내가 버럭 소리를 치자, 제갈사가 냉담하게 말했다.

"백웅. 감동적인 자기희생에 취해서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 뭔가 달라지나? 지금 네가 해야할 일이 감성에 취해서 고인을 기리는 거냐, 아니면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거냐?"

"......"

"넌 이미 우리에게 50년의 빚이 있어. 네가 원한 건 아닐지라도."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어!"

제갈사의 일침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난, 포기 안 해."

그래, 지금 멈춰있을 때가 아니다.

진소청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인 것이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 발악하듯 텅 빈 허공에 외쳤다.

"신들의 파멸을 볼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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