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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88화 (58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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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50년 후라고?!

내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진소청에게 갑자기 눈짓을 했다. 그러자 진소청은 갑자기 벼락처럼 뛰쳐나와서 나를 공격했다.

나는 진소청의 일 장을 마주 받았지만 연이어서 진소청이 창으로 두 초식을 추가로 더 찔러서 내 약점을 공략해 왔다.

쿠궁!

나는 빠르게 칠대절학을 응용해서 진소청의 절격을 흘려내었고 반탄강기로 그를 멀리 튕겨내었다. 진소청이 땅에 착지하자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그러자 진소청이 나직이 말했다.

"마지막에 봤던 백웅의 무공이 확실하군. 그가 가짜인 것 같지는 않소."

"뭣..."

"역시 그런가?"

제갈사가 어이없다는 듯 툴툴거렸고 옆에 있던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찌 이런 일이..."

"망량."

"머리로는 당신이 진짜 백웅이란 걸 알고 있으나,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수십 년의 간극이 크오. 허나 아직 완전히 믿고있는 건 아니니 양해해 주시오."

"......"

나는 망량의 늙은 목소리와 외모, 다소 차가워진 태도를 보자 약간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나는 잠시 후 그들에게 내가 창힐의 팔부중을 따라가서 겪은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흑요석을 통해서 그들에게 기억을 넘겼다.

흑요석으로 기억을 읽은 제갈사가 히쭉 웃었다.

"축융족이 아닌 이상 천하에 흑요석의 술수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건 네놈뿐이지. 이제 의심은 풀어도 되겠군."

나는 침묵하다가 질문했다.

"난 창힐에게 50년 동안 잡혀있었던 건가?"

"그렇다고 생각되는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제갈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네가 오십여 년 전, 갑자기 팔부신중을 따라서 실종되고... 우리는 모두 혼란에 빠졌지. 무엇보다도 네가 우리의 주군이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졌다. 다만 네가 사라지기 전에 백련교와 맹우지간이 되었으므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두왕국으로 복귀했었다."

"으음."

"참고로 나나 망량은 네가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뭔가 이야기하려던 제갈사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그 때부터 우리의 과제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살아남는 거였지. 원래 그게 목표였고. 그래서 다두왕국을 거점으로 지속적으로 중원의 정세를 살폈는데..."

"살폈는데?"

"흠, 꽤 이야기가 길어지겠군. 그래서 수십 년의 과정을 말하기 전에 현재 상황부터 간단하게 말해주마."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모든 얘기를 순리있게 듣는 것도 좋겠지만 집중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다. 제갈사가 염세적인 미소를 띄며 말했다.

"현재 중원은 나인교(羅湮敎)와 천계가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인간 중에서 제정신박힌 생존자들은 광동성에 터를 잡고 우리 반천맹과 백련교의 지원을 받으며 버티고 있는 중이었으나... 다 망했지. 중원도 곧 결판이 날 거다."

"......?!"

나는 너무 황당한 소리를 듣자 그만 입을 벌렸다.

나인교와 천계가 싸우고 있다고?!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내가 당황해하자 옆에 서 있던 망량이 제갈사의 말을 보충해줬다.

"50년 전, 흉신은 인과율을 얻었으나 직접 나서려 하지 않았소. 대신에 그의 영향력을 강화시켜서 인간 중에서 자신의 추종자와 교단이 발호하게끔 했소. 천지가 재액에 휩싸인 상황에서 중원의 인구는 고작 3년만에 삼 할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그 혼란상황에 대명제국은 사실상 붕괴하고 사교가 중흥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지."

그는 꺼지듯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나인교는 최대규모로 발흥한 사교였소. 또한 그들을 이끄는 건 주교(主敎)라고 불리는 의문의 괴인들이었고, 이 괴인들은 인신공양과 사악한 의식을 주도하면서 인간들을 광신으로 더욱 타락시켰소. 결국 생존자들의 다수가 나인교를 믿는 사태가 벌어지고 세상은 야만에 불타올랐고, 천계의 신선들이 나인교에게 공격받는 일까지 벌어졌소."

"나인교가 천계를 선제공격했단 말이오?"

"그렇소."

"......"

당초 제갈사의 예상은 인간이 구 할 이상 사멸하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흉신이 불러온대재앙은 크고 강력했다.

하지만 인간계를 보호하려는 천계의 결단으로 천제단이 내려왔기 때문에 중원의 인간들이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았으리라. 왜냐하면 천계에 있는 강력한 대라신선과 신령들이 직접 인간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인간 스스로가 나인교에 타락해서 천계에 맞서다니!

너무나 역설적인 상황에 내가 할 말을 잊자 제갈사가 킬킬대며 말했다.

"웃긴 건 그 이후의 상황이었지. 나인교의 주교란 놈들이 하도 강력해서 대라신선까지 놈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투선이 나서서 주교 몇을 죽였으나, 나인교는 그 후에 간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광신도와 마물을 내세워서 끈질기게 천계와 전쟁을 했지."

"그게 말이 돼?!"

나도 모르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대라신선이 어떤 존재인가!

보통의 지선조차도 인간으로서는 거의 따라잡을 수 없는 강력한 술수를 부리는 존재였고, 대라신선은 본격적인 천선(天仙)으로써 고위정신체에 가까웠다. 나인교 주교의 힘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기에 내가 황당해하자 망량이 말했다.

"우리는 그런 천계를 지원하면서 중원 각지에서 생존자를 구출하고, 인간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 광동과 다두왕국 근처에서 활동해 왔소. 백련교 또한 현재 다두왕국으로 근거지를 옮겼지. 그렇게 오십여 년간 지지부진하게 전쟁이 이어오던 게 지금까지의 상황이었소."

"지금까지... 라면."

"상황이 얼마 전부터 급변했소. 안 좋은 쪽으로."

망량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나인교의 주교가 강력해도 일개 사교일 뿐이었으므로 천계가 압도적으로 우위였는데, 갑자기 나인교에 교주(敎主)라는 존재가 탄생했소. 나인교주가 전선에 나서니 천계의 대라신선들이 일패도지했으며 현재는 막상막하의 추세로 변했소."

"나인교주..."

생전 처음 듣는 놈이다.

초상기인 유신이 흉신의 사도로 각성하면 대주교가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유신은 각성을 거부하고 소멸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나인교는 그 동안 대주교 없이 주교만 나서서 운영해 왔으리라. 그런데 교주라는 직책이 따로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 가능하긴 하지만...'

설마 흉신은 자신을 모시는 새로운 사도를 만들어냈단 말인가?

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소청이 내게 말했다.

"백웅. 잠시 할 말이 있으니 나를 따라올 수 있겠소?"

"무슨 일이오?"

진소청은 대꾸하지 않고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하며 그를 따라갔는데, 이윽고 사람이 없는 공터가 나왔고 조그마한 비석이 몇 개 세워져 있었다.

설마...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 비석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진소청의 말이 내 귀에 날아와 꽂혔다.

"피하지 마시오.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당신의 눈으로 보시오."

"......"

나는 이윽고 이빨을 질끈 깨물며 비석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후 충격 때문에 전신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아... 아아..."

내가 아는 이들의 이름이 묘비명에 새겨져 있다.

다 죽었다.

정말 다 죽었다.

세 명 빼곤 정말 다 죽은 것이다...

"검마 어르신은 10년 전, 주교 한 놈을 죽이고 동귀어진하셨소. 그 분이 주교를 해치운 덕에 5만 명의 무고한 양민이 인신공양에서 구출되었소. 그리고 극호 사형은 3년 전에 나인교의 마물 수천 마리와 싸우다가 전사(戰死)했소."

"......"

"극호 사형은 죽기 전 용비천과 결투해서 놈을 저세상에 보냈으니 여한은 없었을 것이오."

담담한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뇌신류 벽력삼존은 이청운 종사의 싸움에서 며칠 전에 함께 죽었소."

"며칠 전에?"

"나인교 주교가 한꺼번에 네 명이나 몰려와서 우리를 공격했었소. 그 때 우리 측의 최고수인 백련교주와 이청운 종사, 호법사자 등이 모두 나아가서 놈들을 대적했으나... 나인교주에게 전원 살해당했소."

".......!!"

"나 또한 참전했지만 도저히 나인교주의 상대가 될 수 없었소."

나는 슬픔을 순간적으로 잊을 정도로 놀라서 번쩍 일어섰다.

"도대체 무슨..."

백련교주와 호법사자들이 모두 당했단 말인가?

그것도 이청운이나 진소청이 합세했는데도?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위력이었기에 내가 진소청을 되돌아보자 그는 태연하게 나를 마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진소청의 표정을 처음으로 제대로 관찰한 기분이 들었다.

무덤덤하다.

하지만 저 태연함은 - 너무 큰 슬픔을 등에 지고 있기에 스스로를 자책한 끝에 나오는 감정이었다. 진소청이 수십 년간 짊어져 왔던 감정이 내게도 번져나왔고, 나는 진소청에게 뭐라고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소청이 입을 열었다.

"나인교주는 인간 생존자의 거주지인 광동성을 모조리 장악했고 우리쪽에 절대적인 피해를 안겨줬소. 그리고 그는 조만간 천계에 도전해서 천계의 모든 대존재를 말살하겠다는 포부를 우리에게 밝히고 갔소."

"... 그럴수가."

"우리는, 더 이상 싸울 여력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소. 그러던 중에 백웅 당신이 찾아온 거요."

"......"

방금 전 제갈사나 망량이 대략적인 걸 설명할 때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렇다. 이미 반천맹과 백련교의 연맹은 불쑥 나타난 나인교주에게 대파당하고, 인간은 멸망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접어들어버린 것이다. 이보다 더 절망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나타났으니 내 동료들도 나를 마냥 반갑게 맞이할 순 없었으리라.

나는 무력감 때문에 몸을 떨었다.

' 빌어먹을...!!'

동시에 창힐에 대한 거대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오십 년이나 이계에 붙잡아뒀단 말인가?!

내가 갖고 있는 힘과 수단이라면 더 좋은 상황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도대체 왜!

어쩌면 나 때문에 동료들이 몰살당한 거라는 자책감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그 때 다가와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나인교주라면 천계를 몰살시킬 수 있다. 며칠 전 우리가 봤던 놈의 힘은 제천대성에 비해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상이었지."

"어떻게 인간이 그 정도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지?"

"큭큭..."

제갈사는 쿡쿡 웃으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흉신은 오십 년 동안 인간과 천계를 갖고 논 것에 불과했어. 자기가 만들어낸 나인교라는 장난감으로 모든 걸 농락하면서 주물럭거리다가 싫증이 난 거지. 그래서 유신에 버금가는 자신의 사도, 나인교주를 새로이 창조해서 결판을 내게 된 거다."

"......"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침묵했다.

그 때 망량이 내게 말했다.

"백웅. 지금이라도 되돌아 와줘서 고맙소."

"... 밉지 않소? 내가."

"당신 또한 창힐의 흉계에 휘말렸을 뿐이니 무슨 원망을 품겠소."

"고맙소..."

나는 이를 악물었다.

' 아직 안 끝났어.'

다 죽었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절망해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 내겐 '다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있는 내가 주저앉아버린다면 기회가 없는 다른 이에 대한 기만이며 모독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크크크... 그럼 다같이 발버둥을 쳐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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