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587화 (586/1,615)

587====================

암천향(暗天鄕)

걸선이 창힐의 화신, 팔부신중의 일원이라니?!

그리고 그들이 모두 몰려왔다니!

난데없는 선언에 다들 당황해했다.

나는 걸선을 비롯한 팔부신중의 7인이 눈 앞에 있는 걸 보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모두가 인간형태를 띄고 있었으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다만 내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전 생에 팔부중의 한 명인 긴나라와 정면으로 싸워서 그 힘을 체감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화룡진인과 장삼봉 등의 힘을 빌렸음에도 긴나라와 싸워서 고전했고 질 뻔 했다. 이길수도 있었겠지만 싸움이 계속되었으면 어찌되었을지 모른다. 긴나라는 최소한 마왕급 존재였으며 그 정도의 강적이 고작해야 팔부중에서도 힘으로 하위서열이라는 걸 생각하면 -

' 이 상황은 재앙이군.'

팔부신중이 모두 덤빈다면 맞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해신토벌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극악한 전투가 될 것이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있을 때 교주가 말했다.

[ 창힐이라... 그게 어쨌다는건지 모르겠군. 그게 본교를 침입하고도 우쭐댈만한 이유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사앗

교주가 갑자기 태극을 소환하여 걸선의 머리 뒤편에 일 장(一掌)을 날렸다. 마치 공간을 제멋대로 격하는 듯한 저 한 수는 굉장히 은밀하고 빨라서 웬만한 자들은 일격에 목숨이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걸선은 그 순간 자신이 들고 있던 죽장을 휘둘렀다.

의념절기(意念絶技)

복견난타(伏犬亂打)

투투퉁

북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빠르게 출수된 초식이 교주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냈다. 가벼운 견제라지만 교주의 공격이 막히자 장내의 인물들은 한층 크게 놀랐고, 걸선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허허! 약해빠진 인간의 몸이라지만 꽤 단련해 두었지."

꽤 정도가 아니다.

방금 전 의념절기를 운용하는 걸 보면 최정상의 명인급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백련교주의 공격을 저렇게 흘릴 수 있는 자는 천하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것이다. 백련교주가 말했다.

[ 그 동안 정체를 숨기고 있었군. 내가 아는 걸선의 무공보다 적어도 열 배는 강하군.]

"운천. 나와 자네가 만난 게 물경 팔십 년도 넘은 일이었던가... 그 때의 자네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다른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광인(狂人)에 가까웠지."

[ ......]

"자네의 집념과 의지는 인간치고는 유별난 점이 있어서 친하게 지내고 싶었네. 아니나 다를까 자네는 청운마저 쓰러뜨리고 백련교의 지존으로 올라서더군. 나는 인간으로서 자네를 아주 존경해."

백련교주와 걸선은 아주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말한 걸선이 말을 이었다.

"... 허나 이 자리는 '인간' 걸선으로서가 아니라 팔부신중 건달파로써 찾아왔지. 비켜주지 않는다면 백련교를 멸망시킬 수밖에."

걸선의 눈에 흉맹한 적광(赤光)이 맴돌았다.

고오오오

잠시 후 걸선이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기가 덮쳐왔다.

"......!!"

다들 수상함을 느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위압감은 초극의 절대지경 고수에게서 느껴지는 무예의 위압감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마치 터무니없는 괴물이 지옥에서 기어올라올 것만 같은 악랄함이 이 공간에 팽배하게 들어차있는 것이다. 걸선이 비인간(非人間)적인 흉흉한 기운을 내뿜어서 생기는 일이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그 본질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그 위압감을 정면으로 버텨내는 건 장내에서도 최강급에 속하는 인물들 뿐인지, 백련교주와 이청운, 진소청 등 절대지경에 완연히 오른 듯한 자들만 태연한 신색이었다. 백련교주가 나직이 말했다.

[ 허세는 아닌 것 같군. 너희같은 초강자들이 도대체 무림의 어디에 숨어 있었지?]

걸선이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무림이 아닐세, 운천. '우리'는 무림처럼 좁은 세계에 살지 않아. 무림에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던 팔부신중은 나 뿐이고 그나마도 유희에 불과했지."

[ 이면의 세계에서...]

"바로 그걸세.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의 첫 왕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우리는 창힐의 명으로 인간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지."

[ ......]

백련교주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무슨 일로 백웅과 이야기하려는 거지?]

"자네들 일이 아닐세. 더 이상 관여하려 들지 말게나. 백웅을 넘겨받으면 우리는 역사에서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줄 테니."

[ 그럴 순 없지.]

"뭐라고?"

백련교주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 나는 백웅과 반천맹을 맹우로 인정했다. 그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한, 나 독고운천은 백련교주의 의지로 너희를 막겠다.]

"......!!"

걸선은 물론이고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백련교주가 설마 저 정도로...'

전력차이는 명백했다. 물론 그 전력차를 확실히 알고 있는 건 내게서 흑요석을 받은 동료들 뿐이지만 백련교인들의 눈에도 지금 나타난 7인의 괴인, 팔부신중이 심상치 않은 놈들이란 건 확실할 것이다. 백련교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련교주는 나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걸선은 잠시 황당한 눈으로 백련교주를 쳐다보았지만 그 때 옆에 서 있던 권태로운 표정의 흑발 절세미녀가 말했다.

"혁아에게 들었던 대로군. 일세의 패도를 추구할만한 자야."

"야차(夜叉)."

그녀 또한 팔부신중인 걸까?

걸선에게 야차라고 불린 미녀가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백웅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너희가 알아도 상관없는 이야기니 이대로 백웅과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그러자 팔부신중들의 시선이 일시적으로 야차에게로 쏠렸다. 잠시 후 대부분이 동의한다는 듯 시선을 돌렸고, 그들은 순식간에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합의가 된 듯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팔부신중 개개인의 힘만 해도 압도적인데 대화를 하려 한다고?'

솔직히 말해서 예전 태산에서 긴나라가 보여줬던 힘을 7명 모두가 선보인다면 당해낼 방법이 없다. 방금 전까지 죽음을 예감하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팔부신중 측에서 전투를 피하려 하는 것이다. 그저 힘으로 밀어버리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일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팔부신중에게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성질이 있는 건가.

하지만 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장내의 시선이 한순간에 내게 쏠리자, 나는 내 의견을 말할 때가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걸선과 야차를 한번씩 노려보고는 말했다.

"당신들은 무슨 일로 내게 찾아온 것이오?"

"경계하지 마라. 싸우러 온 게 아니니."

야차라는 여인이 부드럽게 대꾸했다. 그리고는 말을 꺼냈다.

"우리는 인간세상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더러는 간섭하기도 했고 더러는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으면서 창힐의 뜻대로 종말의 때를 맞이할 준비를 했지. 원래라면 우리가 500여년 후까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낼 일은 없을 터였다..."

야차가 말했다.

"하지만 흉신의 사도로 예비된 존재가 각성을 거부하고 네게 이름을 받으면서 엄청나게 예정이 뒤틀렸지. 흉신은 완전히 인과율을 얻어버렸고 지금 당장이라도 삼황오제와 전쟁을 벌일 기세다. 우리에게도 큰일이기 때문에 이 혼란의 장본인인 네게 찾아오게 된 것이다."

일을 꽤 상세하게 알고 있다.

"......"

나는 야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팔부신중 하나하나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머리에 외웠다. 나중에 죽어서 전생하면 반드시 저 자들을 어떻게든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팔부신중 전체를 대면할만한 일이 없으리라.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했다.

"이름을 짓는게 그렇게 큰 일인줄은 몰랐소. 허나 지금 나를 찾아와서 어쩌겠다는 것이오? 나는 당신들 팔부신중 개개인보다 훨씬 약하며 대라신선 하나만 찾아와도 날 없앨 수 있을 것이오. 나같은 약한 존재에 신경쓸 이유가 없다 생각하오만."

그 때, 풍채 좋은 장년인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끼어들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

"당신은?"

"나는 긴나라(緊那羅)라고 한다. 이 녀석들의 책사이자 두뇌 역할을 맡고 있지."

"......!!"

긴나라!

예전에 제갈유룡의 몸에 빙의했을 때는 몰랐는데 인간으로 변하면 저런 모습이란 말인가? 꽤나 살이 두툼하게 쪄 있고 키와 덩치가 상당한 장년인의 모습이었다. 머리쓰는 모습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자칭 책사라고 말한 긴나라가 말했다.

"넌 축융족의 왕과 최근에 큰 거래를 했으며 그들의 강대한 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얻었다. 또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강력한 신급 주문을 하나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옥새의 주인이기도 하지. 뿐만 아니라 칠요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넌 향후 혼란스러운 국면의 열쇠가 될 것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나는 말을 얼버무렸지만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 저 자식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엄청나게 강력한 신급 주문이라는 건 아마 내가 보유하고 있는 흉신(凶神)의 언령일 것이다. 그리고 축융족의 왕이라는 건 선지자를 의미하고, 나는 얼마 전 그에게서 무창의 탑 1회사용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은 일이었으며 철저한 비밀일텐데 어떻게 알아낸 것인가? 게다가 전국옥새의 주인이라는 건 아예 확신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내 비장의 수를 다 들켜버린 기분이다. 내가 내심 이를 악물자 긴나라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우리가 너를 습격하면 전국옥새를 뺏는 정도는 일도 아니겠지. 하지만..."

"하지만?"

긴나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인간치고는 엄청난 행동력과 지식, 발전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 같더군. 그래서 이대로 힘으로 억누르는 것보다는 네게 제안을 하려고 찾아왔다."

"어떤 제안이오?"

"우리 팔부신중과 손을 잡자. 그리고 조만간 우리의 주인을 알현하라."

"......?"

손을 잡자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하지만 '주인'을 알현하라는 건 - 설마 나보고 전설의 창힐(倉頡)을 대면하라는 것인가? 나는 내심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평정을 유지하며 대꾸했다.

"내가 그를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주인께서 네게 흥미를 가지셨다. 왜냐하면 네 행보는 마치 삼황오제를 거스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지."

"......"

맞는 말이다. 나는 궁극적으로는 삼황오제라는 놈들도 해치워버리고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놈들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기로 한 건데, 설마 그 반감을 읽어낸 것인가? 내 행보에서 그런 걸 읽어낼 수 있는 건가?

나는 혼란스러워하던 중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창힐이 나를 죽이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런건 모른다."

"제멋대로군."

"선택해라."

나는 팔부신중들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그들의 특징을 알아냈다.

' 감정이 안 느껴져.'

표정은 짓고 있으나 그들에게는 인간이라고 할만한 생동감이나 특징이 적었다. 말 그대로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썼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보통사람은 느낄 수가 없겠지만 오랫동안 인외(人外)를 마주쳐 온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어쩌면 이 감각으로 다음번에도 놈들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말했다.

"알았소. 당신들과 손을 잡겠소. 대신 백련교와 반천맹은 건드리지 마시오."

"좋다."

"또한 나를 가능하면 무사히 돌려보내줬으면 좋겠소."

"고려해 보지."

어차피 망량선사의 말에 따르자면, 눈 앞의 팔부신중이 바로 제 3세력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내게 의사를 물어올거라고 한 망량선사의 예측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로서는 여기서 팔부신중과 지옥같은 싸움을 하느니 놈들의 뜻에 따라주는 게 낫다. 왜냐하면 -

파아앗

갑자기 거대한 차원문이 허공에 열렸다. 다만 그것은 이족이 여는 특유의 차원문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는데, 절제되지 않는 악함과 광기가 새어나오는 대신 공허한 어둠만이 저편에 묻혀있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팔부신중들이 하나씩 그 차원문으로 들어갔고, 나는 긴나라를 따라서 나 혼자 차원문으로 걸어들어갔다.

뒤에서 망량이 외쳤다.

"백웅!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망량을 돌아보며 훗하고 웃었다.

"죽기밖에 더 하겠소?"

그렇다.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망량이 방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최대의 이득을 얻어내고 오라는 소리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동안 전생을 하면서 단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창힐'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대면할 기회이며, 나아가서는 그 자의 의도와 생각까지도 알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우우우우 -

잠시 후 내 몸이 차원문을 통해서 어딘가 이계(異界)로 날아갔다. 접힌 공간의 왜곡을 몇십 번이나 통과해서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마도지식에 따르면 공간왜곡을 통해서 다른 차원을 경유하는 건, 신적 존재에게 그 위치를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 창힐이 머무는 원래 차원의 위치는 극비인 듯 하군.'

아마도 암천향의 달이겠지만, 거기서도 또 다시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기이한 장소에 서 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 같은 장소라고 할까? 하늘은 평평하면서도 무량하게 넓었고 이따금 꿈틀거렸으며 - 하늘 저편에 출렁이는 바다가 넘실거렸다. 그리고 땅은 구름을 이어붙인 것 같았으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과 같다. 오색찬란한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이기도 했다.

기이하긴 하지만 사악한 기운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영소(靈所) 같았다. 나는 팔부신중들을 뒤따라서 걸어갔는데, 이윽고 시꺼먼 건물 안쪽으로 걸어들어가게 되었다.

저벅

"엇."

한 걸음을 안으로 옮기는 순간, 내 앞에 가던 팔부신중들의 기척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완연한 암흑이 아니었고 은은하게 불빛이 비치고 있는데, 말 그대로 도깨비처럼 모조리 소멸된 것이다! 내가 어찌된 일인가 싶어서 둘러보았지만 좁은 통로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일직선통로를 따라서 끝까지 걸어들어가자 - 그 곳에는 눈이 네 개 달린 존재가 허공에 뜬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에 체모와 성기가 없었고 희멀겋게 생긴 가죽을 걸친 듯한 괴이한 생명체였다.

' 창힐...'

창힐이 맞을까?

내가 그렇게 의심한 것은 그 존재는 아무런 지성도 없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나를 무시하고 어디론가 지나쳐 버렸다. 잘 보니 이 공간에는 저렇게 생긴 사안족(四眼族)이 여기저기에 떠 다니고 있었다. 역시 저건 창힐이 아니라 휘하종족일 뿐인 듯 했다.

쿠구구...

불길한 진동이 갑자기 울렸다. 그 때 내게 '의지'가 들려왔다.

[ 너 는 무 엇 을 원 하 는 가 ? ]

나는 직감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창힐이다.

마치 [옛 지배자]와 같은 느낌!! 나는 전신을 송곳처럼 파고드는 그 언령(言靈)에 소름이 돋았다. 완전히 몸을 빼앗겨버릴 것만 같았기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간신히 참으며 그 말에 대답했다.

"모든 [옛 지배자]의 파멸!!"

어차피 여기까지 나를 부른 자이며 창힐이라면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크게 외치자, 창힐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 하 하 하 ... 그 대 전 생 자 여... 부 나 방 이 여 ... 내 가 급 히 화 신 을 거 둘 정 도 로 위 험 한 인 간 세 계 를 헤 쳐 나 가 려 하 는 가...]

나는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서 외쳤다.

"창힐! 당신의 목적은 대체 뭐요?"

[ 말 해 줄 이 유 가 없 구 나 .]

"황제에게서 당신이 얻어낸 진의는..."

[ 말 해 줄 이 유 가 없 구 나 .]

"......"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잠시 굳어 있는 동안 창힐의 말이 이어졌다.

[ 내 가 잠 시 너 를 거 두 리 라 . 곧 너 는 재 밌 는 일 을 보 게 되 리 라 ]

"무슨 말이오?"

[ 파 멸 이 당 겨 진 시 간 의 끝 을 ....]

파아앗!!

나는 잠시 후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창힐의 기묘한 궁전이 아니라 지상세계에 되돌아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

뭐지?

겨우 그 말 하려고 창힐은 나를 부른 건가?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으나, 내가 갖고 있는 전국옥새나 비등 목갑 등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가 갖고 있던 화룡신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단 무사히 인간세상에 돌아온 것 같았으나 이상하게도 내가 있는 장소는 황량한 산골이었다.

백련교 사람들은 몽땅 사라져 있고, 동료들도 아무데도 없다! 나무가 모조리 불타 사라진 것 같았고 인적도 없다. 나는 분명히 백련교의 교주전에 있었을 텐데 왜 이런 꼴이 된 것인가?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가지고 있던 순어구를 써서 제갈사에게 연락했다.

[ 제갈사! 어딨어?!]

그러나 대답은 곧장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두세 번 더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길래 순어구를 놓으려 했는데, 잠시 후 굼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어, 백웅 맞냐?]

제갈사가 대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원래 내가 알던 제갈사의 것과 약간 달랐고 조금 탁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갈사가 아니라 다른 자가 순어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며 경계했다.

[ 제갈사가 아닌가? 넌 누구냐? 어디에 있지?]

[ ... 크흐... 흐흐흐. 어이가 없군... 하필 이럴 때...]

[ 대답해!]

내가 호통치듯 의지를 전달하자 이윽고 '제갈사'가 김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비등은 아직 갖고 있나?]

[ 제갈사 맞는거냐고.]

[ 비등을 갖고 있으면 다두왕국으로 와라. 다들 여기 있다.]

[ 아니 무슨...]

나는 황당해하면서도 일단 다두왕국으로 갔다.

그리고 본거지 안에 들어가는 순간 놀라서 경직했다.

"이 새끼야... 왔냐?"

"제, 제갈사."

"크크크."

제갈사는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중늙은이의 몸을 하고 있는 제갈사의 옆에는 - 마찬가지로 노인이 되어 있는 망량과 예전 모습 그대로인 진소청이 서 있었다.

제갈사가 히쭉 웃으며 광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좀 있으면 세상이 망할텐데 50년 동안 뭐 하다가 이제 온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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