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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85화 (58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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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여동빈의 검을 앞둔 상태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였다.

'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인데...'

여동빈이라면 연자고 뭐고 패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여동빈의 영을 고스란히 천계로 되돌려보내는 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여동빈이 화난 이유를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네."

도박이고 모험이다. 여동빈에게 박살나더라도 이 자리에서는 부딪히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검을 들고 성큼 앞으로 나서자 여동빈이 자신의 선검(仙劍)을 어검술로 띄우며 말했다.

[ 역량차를 알면서도 응하다니, 그대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목숨이 아까웠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여동빈은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 후!]

쐐액

엄청난 기세로 여동빈의 어검이 날아왔으나 나는 첫 수를 간파하고 튕겨낼 수가 있었다. 나는 여동빈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생각에 내심 뛸듯이 기뻤으나 다음 순간 명치와 갈비뼈에 큰 통증이 찾아왔다.

퍼벅

"컥...!!"

뭐지?!

나는 예상치 못한 공격 때문에 당황했지만 다음 순간, 무려 열 군데에 추가로 타격이 느껴졌다. 어찌된 일인지 살펴보니 여동빈이 어검과 동시에 더욱 빠르게 의념으로 검격을 가한 것이었다. 나는 그 검격을 알아채지 못하고 당한 것 뿐이지만 내심 기가 막혔다.

' 어검도 너무 빨라서 막는데 급급했는데...'

여동빈이 봐주지 않았다면 방금 전에 즉사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가 요혈을 때렸을 뿐 살기를 담지는 않았기에 통증만 찾아왔지만, 그건 상황이 좋아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여동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절세검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육의성천도(六意聖天圖)

운결(雲決)

기검의 환영 수천 개가 떠오르더니 나를 향해 쏘아져 왔다. 내가 적으로써 육의성천도를 맞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나는 운결을 보는 순간 마음속이 암담해졌다.

' 너무... 많고... 빠르고... 강해!!'

쩌정

나는 급히 삼보절기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동원해서 운결을 흘리려 했으나 겨우 일파와 이파를 막는데 그쳤고, 이어진 삼파(三波)에 휩쓸리듯 튕겨서 날아갔다. 전신이 부숴지는 듯한 고통에 나는 잠시동안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투둥

"크윽."

나는 땅바닥에 처박혀서 기절할 뻔 했다가 간신히 의식을 찾고 뒤로 몸을 날렸지만 더 이상 싸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운결을 보자마자 투선과 나의 실력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실감한 것이다. 마치 어른이 아이 손목을 비트는 듯 했다.

' 왜 이런 거지? 분명 여동빈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수십 배 강해졌을 텐데...'

아니, 아니다.

내가 강해진 만큼 검선 여동빈의 실력이 더욱 실감나게 된 것 뿐이었다.

땅 밑에서 올려보든 태산 정상에서 올려보든 하늘은 하늘인 것이다!

' 아직 포기 못해!'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들었다. 그렇다 해도 투지를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은 검사로써 할 짓이 아니다. 여동빈은 곧장 선검을 곧추세워서 상하로 베어왔는데, 그 단순한 베기조차도 숨이 멎을 만큼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쿠웅!

뇌신검무의 최절초를 응용해서 베기를 막아냈지만 그 순간 내 철검은 부러져서 옆으로 날아갔고, 검선의 종베기는 거칠것없이 내 정수리를 내리쳐 왔다. 의념절기의 응용수준과 힘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 버린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수리가 갈라져서 몸이 반쪽날 위기였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내가 쌓아왔던 경험과 무예의 질이 순간적으로 하나의 절기를 의념절기로 승화시켰다.

무토도리(無刀取り)

쩌엉 -

검선의 검은 허공에 멈춰 있었고, 내 손아귀는 절반 이상 베여져 있었다. 나는 양손으로 칼날을 잡는 모양을 취하고 있었으며 운 좋게도 검선의 종베기를 막아냈다. 그러자 검선 여동빈은 헛웃음을 지었다.

[ ... 허허.]

비웃음이라기 보다는 황당해하는 웃음이었다. 노기(怒氣)가 상당히 풀린 듯 했으며 그는 검을 거두며 말했다.

[ 연자여. 감히 그 수준으로 나를 상대로 불살(不殺)의 비기를 사용했단 말인가?]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아귀를 움켜쥐며 대꾸했다.

"달리 다른게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 허허허... 진검 잡아채기라... 허허...]

잠시동안 황당해하던 검선 여동빈이 이윽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내 손에 났던 검상(劍傷)이 회복되었고 전신의 격통이 사라졌다. 나는 난데없이 여동빈이 나를 회복시켜주자 의아했는데 여동빈이 말했다.

[ 방금 전 내가 봐주지 않았다면 연자 그대는 몸이 반쪽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

[ 그런 불살의 반격기는 수십 년간 일심으로 연마해도 쓰기 힘든 것.]

역시 제대로 익히지도 않은 무토도리를 써먹기는 무모했던가? 나는 왠지 부끄러워졌지만 다시금 검을 잡으며 말했다.

"여동빈. 더 이상 우리가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 연자여. 그대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도탄에 빠진 천하를 평정하고 인간을 구할 것입니다.]

[ ......]

한동안 침묵하던 검선의 말이 이어졌다.

[ 연자여. 내가 그대에게 화를 낸 이유는 삼청(三淸)이 그대를 흉신의 앞잡이로 지목했다는 이야기가 천계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엥?!"

이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내가 황당해서 검선을 쳐다보자 여동빈의 말이 이어졌다.

[ 결과적으로 흉신은 인과율을 얻어 세상에 풀려났으며 그 책임소재를 찾던 중 그대가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결론이 났다. 그리하여 그대를 연자로 택한 내게도 큰 추궁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곧이어 천계가 지상에 관여하기 시작하면 나는 죄인으로 확정될 것이다. 깊은 죄업을 쌓은 그대에게 투선으로써 힘을 빌려준 죄로.]

"......!!"

내가 이 혼란의 주범이라고?!

... 아니,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원한다면 초상기인의 제작을 미리 막을 수도 있었고 초상기인과 굳이 타협하지 않고 토벌하는 길을 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동빈의 말마따나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그 일의 주동자는 바로 황궁세력과 복마전의 주작이 아닌가?

나는 혼란스러워하던 와중 생각을 정리하고 여동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변명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전적으로 제 탓은 아닙니다. 저는 사악한 세력을 막으려 했을 뿐입니다."

[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대가 사악한 존재인지 아닌지 한번 더 시험해봐야만 했다.]

그가 심유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대는 스스로의 의지로 나와 대적할 용기를 내었다. 검을 부딪히며 그 옳고 곧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으니, 나는 그대를 믿겠노라.]

"......"

방금 전 여동빈은 진짜로 분노했던 게 아니라 내가 흉계의 근원인지를 떠봤던 것이다. 만일에 내가 사악한 힘을 동원하거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송환했다면 여동빈은 완전히 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으리라. 나는 내심 내가 택한 길이 맞았다는 걸 깨닫고 속을 쓸어내렸는데,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잠시만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천계는 저의 적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 아직은 충분한 증거가 없는데도 그대보다 커다란 문제가 산적해 있기에 내버려두고 있으나, 곧이어 천제단이 내려오면 그대를 토벌할 자들이 찾아올 것이다.]

"크윽. 제천대성은 그냥 넘어갔는데..."

[ 그는 자기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단호하게 말한 여동빈의 말이 이어졌다.

[ 허나 그대가 스스로의 정의에 자신이 있다면 천계와 대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스스

여동빈이 갑자기 의념을 발휘해서 내 허리춤에 있던 화룡신검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검신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 천제단이 내려오기 전에 내 스승님이신 화룡진인을 깨워 각성시킬 수 있다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화룡진인을...?"

[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화기를 쬐면 스승님의 힘은 빠르게 회복될 것.]

물론 그 방법은 알고 있다. 화요에 깃들어 있는 수천 년이나 응축된 화기를 먹이게 되면 화룡진인은 머지않아 부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동빈의 말이 전체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되물었다.

"천계 전체가 저를 인류의 배신자로 낙인찍은 상황에서 어찌 화룡진인 하나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화룡진인이 천계에서도 단연 뛰어난 존재이며 보통 대라신선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권위가 삼청을 능가하는 건 아니었다. 내 의혹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나 여동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우선 스승님을 깨워 사정을 설명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주실 것이다.]

"그럼 여동빈 당신은..."

[ 나는 그대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으므로...]

화아아앗

갑자기 여동빈의 몸 전체가 푸른 불꽃을 내며 타올랐다. 그러더니 그 푸른 불꽃이 내 심장에 날아와서 박혀 들었다. 나는 깜짝 놀랐으나 이상하게도 외상이나 내상은 없었으며 마음 속이 크게 일렁이는 기분이 들었다.

[ 모든 힘을 다하여 연자의 검이 되겠노라!]

파직 파직

불꽃으로 변한 여동빈이 내 몸에 들어오자 갑자기 전신에 강력한 힘이 타오르면서 절세검기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게 느껴졌다.

' 이... 이건 여동빈의 지식? 경험?'

여동빈의 정신이 나를 잠식하려 하는 낌새는 없다. 하지만 마치 내가 알고 있던 무학경험을 모조리 덮어쓰는 듯한 강렬한 기억이 정신을 계속해서 뒤틀었다. 내가 가만히 서서 정신을 되찾으려 할 때 멀리에서 보고 있던 망량이 가까이 와서 말했다.

"굉장하군. 이게 말로만 듣던 궁극의 선검술(仙劍術)인가."

"망량. 그대는 이게 어떤 현상인지 알고 있는 거요?"

내 질문에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빈은 천계 최고의 선검술을 사용하는 투선. 그가 사용하는 육의성천도와 천둔검법 등의 일체를 가리켜 선검술로 부를 뿐만 아니라, 그는 무형의 선검을 생성해서 뭐든 할 수 있는 명인으로 이름높았소."

"선검술..."

나는 머릿속의 기억을 떠올렸다.

[ 천둔검법은 왜 5단계로 나뉘어져 있습니까?]

[ 구세(求世)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 연자에게 천둔검법을 전하여 선검(仙劍)의 경지에 도달하게 해야만 하는 경우는, 천하가 도탄에 빠져있는 경우겠지. 자기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도 힘이 필요한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연자여.]

[ 연자는 이미 신(信)으로 시작하여 해(解)로 이어지며, 입멸(入滅)하여 공(空)을 깨달아 천둔(天遁)이 되는 천둔검법의 5단계 요결을 모두 습득했다. 그리하여 본디 선검(仙劍)의 경지에 도달해야 옳은 것!]

[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천둔검법의 요결은 그대 내면의 모순을 치유하는데만 쓰여, 그대를 올바른 선검의 경지에 올려놓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천둔검법을 더 가르칠 수는 없다.]

그랬다. 여동빈은 내게 인연이 닿이자 천둔검법을 전수했으나 나는 5단계의 천둔검법을 모두 습득했음에도 선검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동빈은 크게 아쉬워했고, 심지어 장삼봉조차도 내가 선검이 있는데 왜 자신의 무공을 필요로 하는지 이상하게 여겼었다.

이 경험에서 비춰볼 때 선검을 얻는 것이야말로 투선 여동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내가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그는 아무래도 선검술으로 자신의 선체(仙體)를 검으로 바꿔서 당신의 영혼과 동조시킨 모양이오. 그렇게 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선검의 경지를 달성하게끔 한 것이지."

"그런 것도 가능한가?"

"선검술은 술법처럼 보이지만 술법이 아니오. 천상천하에서 여동빈만이 쓸 수 있는 기술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무튼..."

망량이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여동빈은 말 그대로 검이 되어서 백웅 그대에게 힘이 되기를 결심한 모양이군. 천계를 등지는 일인데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

"대라신선으로서는 자살을 택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심 충격을 받았다.

천계를 위해서라면 어떤 더러운 일이라도 감수할 것 같았고, 천계의 명령을 결코 거스르지 않던 여동빈이 나를 위해서 검화(劍化)를 선택할 줄이야? 수많은 전생 중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으며 그가 짊어진 각오를 짐작하게 했다.

' 나를 믿기 때문이야.'

여동빈은 내가 화룡진인을 기필코 각성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모험을 한 것이다! 그 믿음의 근원은 내가 그의 연자로써 정의를 실천할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나는 여동빈의 뜨거운 정의의 마음을 느꼈기에 순간 눈물을 주륵 흘렸다.

"... 알았소."

나는 급히 팔뚝으로 눈물을 닦고는 외쳤다.

"당장 움직입시다!"

울고 있을 시간같은 건 없다.

지금 당장 백련교주를 찾아가서 소교주의 각성을 막고, 나아가서는 화요의 힘을 빌려서 화룡진인을 부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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