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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제천대성 미후왕은 자신의 여의봉(如意棒)을 등허리에 빗겨찬 채 뚱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겉으로는 아무런 투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진소청은 표정을 굳히고 미후왕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진소청이 말했다.
"제천대성께서 은신해서 여기까지 오신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그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이 마물을 해치우는데 힘을 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원래는 책사인 망량이 꺼낼법한 말이었고, 진소청도 성격상 제안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 미후왕의 위압감을 이기고 제대로 말을 꺼낼 수 있는 게 장내에서 진소청 뿐인 까닭이었으리라.
진소청의 제안에 제천대성 미후왕은 잠시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 좋아. 나도 내 할 일이나 하는게 좋겠지!"
쿠구구구
미후왕이 갑자기 여의봉을 들더니 커다랗게 변화시켰다. 본디 조그마한 양초 크기였던 여의봉은 순식간에 궁궐의 기둥처럼 변했고, 미후왕은 여의봉을 바닥에 꽂고는 주문을 외웠다.
"커져라!"
쿠콰쾅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의봉은 더더욱 크고 넓어지면서 바닥을 터뜨리면서 밑으로 파고들었고, 거대 괴목은 정수리를 꿰뚫리듯 전신의 줄기를 떨면서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쿠구궁
끼이이에에에엑
마치 명부의 단말마가 이런 것일까? 우리가 발을 딛은 줄기의 최상층은 마구 뒤틀리고 요동쳐서 마치 대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고 사방천지에서 시뻘건 피가 튀었다. 그러나 괴목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의봉이 자비없이 커지면서 아래로 파고들었다.
퍼버벙
회전, 회전, 회전!
여의봉은 뿌리 끝까지 관통한 후 잠시 멈췄다가 더욱 크게 팽창했다. 팽창의 속도는 순식간이라서 우리 모두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튕겨져나갔다.
"우왓."
콰아앙
강화도의 천공에 피와 나무조각이 쉴새없이 비산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던 괴목이 여의봉 한 방에 순식간에 파멸해버린 것이다! 그 파괴력은 도저히 무공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인지라, 우리는 허공답보를 써서 체공하는 와중에 황당한 눈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 여의봉의 위력...!!'
처음부터 거대괴물을 잡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의봉의 신축확장능력은 인세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괴목은 뿌리에서 최상층까지의 높이가 최소한 십여 리를 훌쩍 뛰어넘었는데 그 괴목을 터뜨려버린 것이다. 천령단을 최대로 발휘한 이청운의 공격조차 줄기를 3할 베는 데 그쳤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난 위력이었다.
진소청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 언제까지 체공해있을 수는 없소. 근처에 다같이 내려갑시다.]
[ 알겠소.]
잠시 눈짓을 한 후, 우리는 다함께 땅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대단히 높은 천공이었고 낙하속도도 굉장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자들 중 절세고수 아닌 이가 없었다. 차분하게 동체시력으로 낙하할 장소와 시간을 잰 후 빠르게 의념절기와 내가수법으로 충격을 분산시킨 후, 힘의 방향을 땅으로 흘리기 시작했다.
꾸웅!
이윽고 우리는 한 사람도 부상없이 땅에 큰 소리를 내며 착지하는데 성공했다. 극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크으... 내 생전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처음이야."
파밧
그 때 이청운이 번개처럼 변해서 우리쪽으로 날듯이 찾아왔다. 그는 우리가 모두 무사한 걸 확인하더니 말했다.
"어찌된 건가? 갑자기 괴목이 터졌는데..."
"제천대성이 여의봉으로 괴목을 죽였습니다."
"... 괴물이군. 저걸 한 방에."
이청운은 질린 눈으로 허공에 떠도는 혈운(血雲)을 지켜보다가 말을 이었다.
"상대가 제천대성이라면 우리끼리는 그를 상대할 수 없네. 백웅 자네가 필히 여동빈의 도움을 얻어야 해."
"여동빈도 놈을 이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하네."
"......"
이청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제천대성을 이길 순 없겠지만 놈이 함부로 우리를 공격해서 몰살시키는 걸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억제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억제력은 이청운 혼자서는 무리이기 때문에 여동빈의 힘을 합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곤란함을 느꼈다.
' 여동빈... 정말로 안 도와줄 생각인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단말이 연결되어 있지만 상대측에서 요구를 수신하지 않는 것이다. 여동빈이 '지켜보겠다'라고 한 것은 내게서 모든 기대와 도움을 접고 관찰하겠다는 뜻이었던 것이리라! 나는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여동빈은 지금 저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뭣?"
"제 이야기를 듣지 않..."
그 때였다.
쿠구구구
거대한 먹빛 안개가 혈운(血雲)을 삼키듯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양의 마기(魔氣)가 맥동하면서 마치 살아있는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듯 했다. 그 형상은 '손'을 만들어내더니 포자구름같은 걸 사방에 뿌렸다.
' [정신]이 왔구나.'
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아직도 적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스스스
' 그리고 저건...'
나는 전시안으로 그 포자구름의 정체가 '의지'를 담은 [옛 지배자]의 말이라는 걸 알아챘다. 지난번에 흉신이 낙양에 뿌리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는 저 포자구름에 섞인 '말'을 보통 인간들이 인식하는 순간 광기에 매몰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급히 모두에게 경고했다.
"저건 옛 지배자의 말! 정신에 이상을 일으키니까 의념을 곧추세워야 해."
그러자 다들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의념으로 정신력을 강화시켜서 포자구름의 하강에 버틸 준비를 했는데, 이윽고 극호와 검마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진소청도 정도는 덜했으나 마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져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검마가 쿨럭 피를 토해내며 말했다.
"크윽... 심마가... 이건 도대체..."
현재 절대지경의 초입에 발을 디딘 검마가 순식간에 심마를 겪다니! 정신공격의 수준은 과거 뇌옥의 두꺼비가 날리던 음파공격보다 더욱 강한게 틀림없었다. 보통 인간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영구적인 광기에 휩싸여서 미쳐 죽으리라.
"오래 노출되면 미쳐버릴 겁니다. 얼른 술법사들을 찾아서 합류해야 합니다."
"어서 갑세."
타다닷
우리는 빠르게 이동해서 아까 술법사들이 포진하던 장소로 향했다. 그 곳은 월요의 유적 근처, 서산대사의 거처 주변이었는데 잔뜩 부숴진 잔해 속에서 술법사들이 푸른빛 방어막을 만들어낸 걸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망량을 발견하고 크게 외쳤다.
"망량!"
"백웅. 빨리 이 안으로..."
약 오 장 크기의 방어막에 들어오자, 지속적으로 머릿속을 뒤틀고 있던 광기가 빠져나간 듯 사람들이 편한 표정을 지었다. 망량이 내게 말했다.
"백웅. 저 [말]이 무엇인지 해석을 해 주시오."
나는 전시안을 발동시켜서 천공에 떠 있는 어둠의 존재가 내뿜는 [말]을 해석했다.
[ 내 몸 은 어 디 있 는 가 ]
격렬한 분노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는 말! 나는 저 존재가 [옛 지배자]와 동일한 수단으로 자신의 의지를 전파하는 걸 확실히 느끼자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놈은 삼황오제에게 봉인당했던 '달의 [옛 지배자]'인 것 같소."
"으음... 역시 그렇구려."
망량은 한순간에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웅. 이자나기노미코토라 불리며 월요의 수호자로 봉인되어 있던 존재는 바로 지배자의 육체(肉體)였고, 저 하늘에 떠 있는 검은 안개는 지배자의 정신인 거구려. 그리고 정신이 육체와 융합하기 전에 여의봉이 거대한 파괴를 일으켰으니, 제천대성이 육체를 먼저 파괴해버린 것일 테고."
"맞소."
"그렇다면 저 [정신]의 진짜 이름은... 음..."
망량이 자신의 추측을 믿을 수 없는 듯 침음성을 흘렸다.
"이진아시(伊珍阿?), 혹은 이자나기노미코토... 오랜 옛적 동영을 지배했으며 동영의 위대한 신격인 삼귀자(三貴子)를 창조해 낸 신성의 근원... 또한 삼황오제에게 패배해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채 수천 년 간 봉인되어 있던 [옛 지배자]가 바로 저 존재겠구려."
"......"
좌중이 침묵했다. 망량의 추측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더러, 그게 사실이라면 난데없이 엄청난 강적이 출몰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옛 지배자]!
봉인되어 있던 육체의 힘만으로도 마왕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으니 어찌보면 예견되어 있던 일인지도 모른다. 수호자급으로 강등당해서 약화될대로 약해졌는데도 천지를 두렵게 하는 재앙이었으니, 그만한 존재의 격은 천지천상에 딱 하나 [옛 지배자]밖에 없는 것이다.
' 아마 이진아시의 원래 힘은 해신을 훨씬 넘어서겠지...'
지금까지 보인 힘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의지를 포자 형태로 내뿜는다는 건 필멸자와 비교도 되지 않는 상위차원에 거주하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 하지만 놈의 육체는 제천대성이 부쉈소. 지금이라면 승산이 있을지도."
"으음..."
망량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백웅. 이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요. 이미 목표로 한 월요를 손에 넣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위험부담을 무릅써야 하는지 모르겠소."
"도망치자는 거요?"
망량의 시선이 검게 일그러진 하늘로 향했다.
"수천 년동안 봉인당했었고 정신만 남아있는 반쪽짜리라고 해도 저 하늘에 있는 건 [옛 지배자]요. 이런 경우를 겪은 적이 없어서 모르겠소만, 도저히 도전할만한 엄두가 나지 않는구려. 저 자의 관심이 제천대성에게 쏠린 틈에 도망치는 게 나을 것 같소."
"......"
망량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나는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제갈사에게 순어구를 썼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자, 제갈사가 순어구 너머로 말했다.
[ 망량의 말이 옳지만 나는 거기서 네가 더 버티면서 관망하는 걸 추천한다.]
[ 이유는?]
[ 제천대성이 일부러 은신까지 하면서 너희를 쫓아온 이유가 수상쩍단 말이지. 어차피 거기서 도망쳐도 또 쫓아올 놈이니까 그냥 거기서 담판짓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 ... 그렇군.]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해야할 행동이 확실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파바밧
갑자기 하늘높이 거대한 구름이 떠오르더니, 그 구름에 거대한 제천대성이 타서 떠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일부러 거대하다고 표현한 건 제천대성의 몸뚱이가 무려 오 장이나 되는 거인처럼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변신술로 자신의 체구를 급격히 거대화시킨 듯한 제천대성이 근두운을 탄 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 니 몸은 내가 터뜨렸다 멍청아!!]
찌릿찌릿하고 여기까지 그의 사자후가 날아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기가 막히는 걸 느꼈다.
' 상대가 과거의 [옛 지배자]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저 제천대성은 본디 세상을 주름잡던 신격을 상대로도 거침없이 도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잠시 후 이진아시가 [말]을 늘어뜨리는 게 보였다.
[ 다 시 만 들 겠 다 ]
우웅
검은 안개가 갑자기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안개는 한밤중에 마치 천공의 새하얀 보름달으로 스며들듯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극호가 중얼거렸다.
"달이 안개를 흡수하는 건가?"
"아니오."
망량이 납처럼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안개가 달으로 가고 있는 것이오."
쿠구구구
검은 안개가 완전히 하늘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때였다. 난데없이 땅과 바다가 모두 흔들리면서 푸르죽죽한 기운이 여기저기에서 새어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늘에 떠 있던 새하얀 보름달이 급속히 크기를 더해서, 갑작스럽게 크기가 열 배나 커졌다!
아직도 달이 커지는 중이었기에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천우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광기를 담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푸하하... 흐흐... 부질없어... 신과 싸우다니 하하..."
"천우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냐?"
"달은 이 세계의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 달의 크기가 커졌다는 건 당연히 달이 이 세상과 가까워졌다는 뜻이겠지, 흐, 흐흐..."
천우진은 이미 전의를 잃은 듯 초점잃은 눈으로 허공만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흉신의 힘을 피부로 느꼈던 그 순간 정신이상에 걸려버린 듯 했다. 하지만 천우진이 하는 말 뜻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믿기지 않아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옛 지배자]라지만... 정신의 힘만으로 천공의 달을 당겨올 수 있다는 건가!"
쏴아아앗
여기저기에서 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강화도의 내륙이라서 본래 파도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어느새 철썩거리면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육지가 순식간에 잠겨버린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서 기조력 때문에 해수면과 파고가 달라지긴 하지만, 이건 정말 극단적이구려. 만조(滿潮)때보다 몇 배는 높아져 버렸소..."
"설마..."
"아마 달의 영향을 받는 모든 지상의 지역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겠지."
망량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쯤 중원, 고려, 동영의 수많은 도시들이 수해를 입고 있을 것이오. 해안지대는 물바다가 됐을 것이고 적어도 수만 명이 휩쓸려 가겠지."
대재앙.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대재앙이 눈 앞에서 벌어져 버리자 황망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육체와 정신이 융합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았는데, 설마 이신아시가 정신력만으로도 세계급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니!
쿠웅
근두운을 타고 하늘에 떠 있던 제천대성은 말없이 지상의 참상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여의봉을 늘여서 하늘과 땅을 이을 정도로 길게 만들었다. 마치 천상에 도달하는 거대한 철탑이 생겨난 듯 여의봉이 늘어나자 제천대성이 외쳤다.
[ 감히 날 바보취급하는군. 어디 맛 좀 봐라...]
제천대성이 하늘로 양손을 뻗었다.
[ 이리 오너라!]
일순간, 새하얀 달에 새까만 점이 나타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점은 잠시 동안 머물다가 사라졌는데 어둠의 안개같은 게 그와 동시에 다시 강화도의 상공에 나타났다. 이진아시의 정신이 강제로 지상에 내려오게 된 것이다.
쿠구구구....
[ 이 몸은 천계 최강! 세상 반대편에서도 내 여의봉을 피할 수는 없다!]
제천대성은 껄껄 웃으며 여의봉을 갑작스럽게 휘둘렀다.
퍼벅!
[ 오 오 오 오 ....]
천지를 가를 정도로 거대해진 여의봉이 이진아시를 직격하자, 놈은 안개인데도 마치 실체가 얻어맞은 것처럼 몸을 떨며 휘청거렸다. 제천대성의 여의봉은 아무래도 영체를 직접 타격하는 게 가능한 듯 했다.
[ 하하, 쭉정이 놈아!]
제천대성은 기가 살아서 경쾌하게 외쳤다.
퍼버벙
제천대성의 분신이 갑자기 하늘의 절반을 메울 정도로 가득 나타났다. 하나하나가 보통 인간의 크기와 같았지만 그 숫자는 무려 수만이나 되는 듯 했다. 수만 명의 제천대성 미후왕이 제각각 여의봉을 휘두르거나 술법을 쓰거나 손에서 광선을 쏘거나 몸을 거대화시키거나 폭발해 버렸다.
수백 마리의 분신이 한꺼번에 여의봉을 거대화시켜서 안개를 쩍쩍 갈라버리는 광경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콰과광
콰과과광
연신 폭음이 울리면서 하늘이 가득 섬광으로 물들었다.
' 말도 안 돼.'
저런 분신술의 소유자와 정면으로 싸우는 건 자살행위다.
저 수만 마리의 분신 하나하나가 - 엄청난 힘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모조리 분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전술을 쓰며 자유자재로 공격과 회피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황망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섬광이 멈추면서 검은 안개가 씻은듯이 사라졌고 제천대성이 하나의 검은 영혼을 손 위에 들고 있는 게 보였다. 미친듯이 타격을 주자 결국 [옛 지배자]의 영혼도 버티지 못하고 힘을 잃은 것이리라.
푸콱
제천대성은 주먹을 쥐어서 이진아시를 소멸시키며 외쳤다.
[ 그냥 싸우면 귀찮았을텐데 잔머리로 힘을 낭비하니까 이 꼴이 나지! 하하하.]
믿기지 않는다.
"... 괴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정신뿐인 반쪽짜리라지만 - 지금 제천대성 미후왕은 풀려날뻔한 [옛 지배자]를 홀로 토벌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