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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비등과 목갑을 이용해서 먼저 광동성으로 가서 마테오리치를 만난 후 그와 교섭해서 다두왕국에 본거지를 옮기기로 했다. 마테오 리치는 우리쪽의 사정을 듣자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알겠습니다. 광동성주에게도 협력을 부탁하겠습니다."
"고맙소."
대충 준비가 끝나자 나는 망량, 천우진과 함께 망량선사의 마을로 향했다.
파앗
마을으로 진입하자,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졌다. 천우진은 약간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
"스승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그렇군... 어찌된 일이지."
나는 두 사람과 함께 늘 수기를 공양하던 장소 근처와 여동빈의 사당을 맴돌았다. 하지만 기다려도 망량선사가 현몽으로 우리를 부르는 기색은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느낌만 가득했다. 약 반 시진 동안 마을을 돌아다니던 우리는 마을사람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근래에 이 마을에 혹시 큰 일이 있었소?"
"음... 잘 모르겠는데..."
너무 태연한 반응 아닌가?
나는 혹시나 해서 질문했다.
"근처 낙양에서 거대한 천재지변이 일어났잖소."
그러자 마을사람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그런 일도 있었소?"
"......"
이 곳에 사는 촌민들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었기에 질문을 듣고도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결국 인근 주막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 나는 두 사람과 지금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망량선사는 이 마을을 떠난 것 같소."
"스승님께서 떠나신 이유는 짐작이 가오. 아마 흉신이 대결계를 파손하려 드니 근처에서 감시하는 걸 그만두고 직접 대결계를 관리하려 하시는 거요."
"으음..."
나는 고민했다. 그 때 천우진이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이 마을을 좋아하셨다. 흉신이 낙양을 뒤틀어 부수는 괴변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이 마을만큼은 보호해주신 모양이군."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낙양의 재해를 모르는 건가?"
"신의 가호지."
나는 새삼 이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망량선사가 직접 가호하기에 낙양 근처에 있음에도 흉신이 직접 강림한 대재앙에서 무사했던 것이다.
' 낙양의 인간들은 산 송장이 되거나 미쳐버린 자가 대다수일텐데.'
생과 사를 마음대로 뒤트는 [옛 지배자]의 충돌에 휘말려든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낙양에 들어가면 망량선사를 만날 수 있겠군."
"솔직히 잘 모르겠소. 안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오."
"왜 그렇소?"
망량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이 마을에서 낙양을 감시하면서 너무나도 거대한 자신의 존재를 축소시키셨소. 보통 인간은 그 분의 존재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정신에 이상이 오기 때문이었소. 그런데 흉신과 맞서면서 자신의 본질을 일깨우셨으니,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분이 아닐수도 있소."
"... 그렇군."
흉신과 맞설 정도로 강대한 신적 존재.
그가 평소에 자신의 힘을 크게 낮추면서 이 마을에 거하고 있었지만 봉인이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전력을 다하며 결계를 방어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상위존재의 격을 생각해 보면 그의 성질이 이 마을에 거할 때와는 많이 다를 게 분명하다.
' 섣불리 대화를 시도했다가는 살해당할지도 몰라.'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위험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나는 당장 망량선사에게 접촉하려고 낙양에 가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다두왕국으로 본거지를 다 옮기는 게 좋겠소. 상황을 정리한 다음에 움직여야 할 것 같소."
"백웅. 그건 사실 지금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오. 더 중요한 일이 하나 있소."
"무엇이오?"
"당장 오악의 천제단의 상태를 확인해 주시오."
망량은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음과 양의 균형이 망가진 상태에서 천제단에 어떤 균열이 일어났을지 모르겠소. 잘못하면 더 큰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소."
"균열이 일어난 걸 내가 관측했다 한들 나는 그걸 보수할 방법을 모르오."
"그건 사제가 알아서 해 줄 거요."
천우진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나는 무시하고 전시안을 발동시켰다.
우웅
' 이제 사용하는 방법을 좀 알겠는데.'
처음에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거치적거렸지만 이제 전시안을 쓰는 법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전시안을 써서 오악의 천제단으로 시선을 향했다.
나는 하나하나를 다 살펴본 후 말했다.
"다 무사하오."
"다행이군."
"그러고보니 주작의 영혼은 지금 어떻게 되었겠소?"
"모르긴 해도 아마 흉신의 소유가 되었을 거요."
"음...?"
"그의 영혼은 수면자의 손아귀에 한 번 수확되었으나, 흉신이 수면자를 살해하고 그 인과율을 빼앗았소.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소유하고 있던 영혼까지 같이 데려갔을 것이오. 전리품같은 거지."
"놈이 탈출했을 가능성은..."
"... 솔직히 잘 모르겠소. 그는 천재적인 지략의 소유자라서 어떤 귀계를 마련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소. 이번만 해도 흉신과 수면자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이중계약을 했을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소."
망량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천계를 멸망시키는데 집착하는지 모르겠소. 자신의 모든 영혼을 던지면서까지 [옛 지배자]를 이간시키는 계책은 자살행위였을진대..."
"......"
주작의 동기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것은 과거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아내의 복수일 가능성이 크다.
망량 또한 그 동기를 알고 있으나 '모른다'고 한 것은, 주작의 행동이 단순히 그 복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처절하고 또 다른 목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을 배신하고 영겁의 생지옥을 각오하면서까지 신격을 이간시키는 건 보통 배짱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 단순복수가 아냐.... 주작 제갈유룡에게는 뭔가 천계를 멸망시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어.'
놈은 한 번의 복수에 다 쏟아부을 놈이 아니다.
그 이상을 노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직감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오늘 굉장히 날카로워져있는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이유를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 다음에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파앗
우리는 광동성 항구로 와서 배를 타고 다두 왕국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다두 왕국에 막 내려서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려고 부산하게 반나절 가량 움직였다. 진랑곡과 장령곡에서 챙겨온 온갖 재물, 하인, 병기 등등을 새 거점에 배치하고 있을 때였다.
쿠르릉!
"폭풍우가 몰려옵니다. 조심하십시오."
마테오 리치의 부하 한 명이 크게 외쳤다. 뇌운에서 천둥이 한 번 친 것 뿐이었지만 심상치 않은 폭우가 하늘 저편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또다시 흉신이 강림하는건지 긴장했으나 그런 건 아니고 그저 때아닌 비구름으로 보였다.
쏴아아 -
잠시 작업을 멈추고 큰 막사 안에 몰려들어서 쉬고 있을 때였다. 제갈사가 일행을 불러서 좀 더 은밀한 장소로 이동한 후 말을 꺼냈다.
"제일 먼저 얻어야 하는 것은 월요다. 오늘은 쉬고 당장 내일부터 움직이자."
"잠깐. 그 전에 알고 싶은게 있다."
"뭐지 검마?"
검마는 침착하게 제갈사에게 질문했다.
"지축이 바뀌고 음양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했지.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중원을 망하게 하는건지 좀 알려줄 수 있겠는가? 나는 술법을 몰라서 지금 어떤 이변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네."
"흐음. 하긴 대부분 잘 모르겠군."
제갈사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설명했다.
"본디 이 세상은 둥그런 천체(天體)인지라 회전을 하며 태양 주변을 공전하게끔 되어 있지. 그런데 그와 동시에 스스로 자전(自轉)을 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 때 둥그런 천체가 자전을 하는 각도와 축이 존재하지. 바로 이렇게 말이야."
제갈사가 근처에 있던 수박을 손에 들고는 중앙에 기다란 나뭇가지를 꽂았고,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수박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이 축이 지금 흉신의 권능으로 완전히 반전(反轉)되었다. 바로 이렇게."
갑자기 그가 수박을 거꾸로 뒤집었고 잡고 있는 나뭇가지도 반대방향이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세상이 물리적으로 뒤집힌거야. 말 그대로."
그러자 듣고 있던 검마가 황당한지 말했다.
"그런 황당한 일이... 축이 반전되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원래 극(極) 이동은 자연현상에서 전혀 없는 일이 아니야. 천체는 주기적으로 극이동을 하게끔 되어있고 북극은 남극이 되며 남극은 북극이 되지. 하지만 한 순간에 극이 이동해버린 이상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고 변동의 수준은 현재의 인류의 문명이 견디지 못할 정도일 게 분명하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마찬가지야. 적어도 방주를 만들어서 화성을 개척할 정도의 문명수준이면 모를까 지금은 택도 없지."
제갈사가 근처의 돌벽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우선 일몰과 일출부터 극단적으로 변화할 것이며 밤과 낮의 주기가 요동친다. 지판(地版)이 크게 흔들리면서 대륙끼리 부딪혀서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도 급증하지. 뭣보다 흉신이 용맥을 죄다 깨워버리는 바람에 중원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던 휴화산들이 모조리 활화산으로 변해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되겠지."
"......"
"전욱이 칠요를 휘두를 때처럼 당장 망하는 건 아냐. 하지만 적어도 100여일 이내에 인류는 현재 숫자의 5푼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검마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다두왕국도 멀쩡할 수 없는 게 아닌가?"
"당연히 멀쩡할 수 없지. 하지만 중원 본토보다는 상황이 낫기 때문에 여기로 온 거야. 사실 이 재앙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축의 반전보다는 음양의 파괴거든."
"무슨 소리인가?"
제갈사는 손깍지를 끼며 대답했다.
"원래 음과 양은 상보상존하게 되어있으며 균형이 딱 절반으로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흉신은 음을 강맹하게 만들어 버려서, 현재는 양이 삼(三), 음이 칠(七) 정도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음(陰)에 속하는 생물과 술법은 원래보다 더 강력해졌다는 소리지. 대요괴도 난데없이 많이 탄생했고."
"대요괴가 많이 탄생한 게 그리 무서운 일인가?"
"뭐... 대요괴 자체도 얕볼 존재는 아니다만 그게 인류존망을 결정지을 일은 아니지. 진짜 문제는 음(陰)에 속하는 존재가 무조건 우위를 차지하는 천칭의 균형, 그 자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하아! 현 시점에서 인간술법사들의 힘은 원래보다 크게 줄었을 것이며 요괴나 이족의 술수는 몇 배나 강력해졌을 것이오. 또한 음의 힘이 오랜 시간 세상을 뒤덮게 되면 대요괴 중에 진화한 자들이 마왕이나 사도급으로 격상될 가능성이 있소."
"......"
"더 무서운 건 이족이 차원문을 만드는 게 원래보다 몇 배나 쉬워졌다는 것이오. 중원 곳곳에서 암약하던 [옛 지배자]의 광신도나 추종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재앙을 일으키게 되면 종말이 가속화될 것이오."
"으음..."
이야기를 모두 들은 검마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듯 이마에서 땀을 주륵 흘리다가 중얼거렸다.
"대요괴같은 건 때려잡을 자신이 있었거늘 세상의 균형이 바뀌어서야 내 검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겠군..."
제갈사가 비직 웃으며 말했다.
"자책하지 마. 설령 천계의 삼청이라 해도 이 상황에 딱히 손을 쓸 도리가 없을 테니까. 말했던 대로 우리는 살아남는데만 전념해야겠지."
"칠요를 얻으면 뭔가 방법이 생긴다는 말인가?"
"당연히 생기지. 그건 현 시점에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교섭수단이다. 칠요를 잘 사용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긴다."
단호하게 말한 제갈사가 나를 쳐다보았다.
"백웅. 모험이긴 하지만 내일은 반드시 월요의 수호자를 토벌해야만 한다."
"수요를 해방해서 가는 게 안전할텐데..."
나는 걱정스럽게 대꾸했다. 지금 전력으로도 못 쓰러뜨리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칠요를 해방해서 싸우는 게 훨씬 쉬운 것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말했다.
"음양의 균형이 뒤틀린 상황에서 천제단을 통해서 천계와 통신하는 건 너무 위험해. 또한 지금 삼황오제의 심사가 얼마나 배배 꼬여있을지 생각해 봤냐?"
"으음!"
"흉신이 제멋대로 집을 뒤엎어놓고 간 상황에서 종말의 열쇠로까지 불리는 칠요를 해방해달라는 이야기를 당장 수락해줄 리가 없어. 월요까지 얻어서 우리 역량을 입증한 다음에나 얘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정도 능력이 있으니 혼란을 수습할 역할을 맡겨달라는 식으로 말이지."
"그렇겠군."
그 때 진소청이 말했다.
"월요의 수호자는 매우 거대하며 하늘에 체공한다고 알고 있소. 공중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겠소?"
"그 정도는 우리 술사들이 보조해주지. 천우진이 있으니 웬만한 건 될 거야."
우리는 월요의 수호자를 어떻게 때려잡을 지 열심히 작전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야기가 거의 무르익어갈 때쯤, 난데없이 마테오 리치가 나를 불렀다.
"백웅이여."
"무슨 일이오?"
"그대들이 강력한 마(魔)를 토벌하러 간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럴 생각이오."
마테오 리치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현재 중원의 상황에 대해서 본단에 보고를 하자, 본단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사를 이 곳으로 지원을 보내준다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 예수회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술사. 그의 도움을 받으면 그대들도 많이 편해질 것이니."
"으음. 얼마나 기다리면 되오?"
"한 달 정도..."
나는 그 말을 듣자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한시가 바쁜 상황이라 그럴 여유가 없겠소."
마테오 리치는 실망한 듯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는 현자의 돌을 찾는 곳에 투입하겠습니다."
"좋을대로 하시오."
나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푹 자게 되었다. 오늘 체력을 모두 회복하고 내일 만전의 상태로 월요를 얻으러 가는 것이다.
꿈...
이 꿈은 뭐지?
달이 비친다.
이 평원에서 괴이한 음률이 고적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아주 그리운 - 그런 음률이다.
[ 삼황오제가 과거에 입을 모아 내게 말했지. 날 존중할테니 서로 간섭하지 말자고.]
뚜벅
뚜벅
[ 하지만 이제 그럴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어둠의 저편에서 검은 고양이가 천천히 걸어서 내 쪽으로 왔다.
' 망량선사!'
나는 이게 꿈인 걸 인지하고 있었으나, 왠지 망량선사의 마을에서 겪었던 현몽과는 느낌이 달라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망량선사는 왠지 차가운 눈으로 나를 쓱 훑어보다가 말했다.
[ 조만간 제 3의 세력이 네게 찾아가서 의중을 묻게 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삼황오제의 파멸.]
제 3의 세력?
내가 입을 열어서 대꾸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안 나왔다.
망량선사는 나와 대화하려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 조언해주겠다. 네가 인간을 구하고 싶다면 삼황오제와 손을 잡는 것에 집착하지 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스스
스스스
흰 안개가 번져나오며 시야를 가득 물들였다. 나는 새하얀 시야 속에서 끔찍한 혼돈이 뒤엉켜 비명을 지르는 기분과 함께 정신이 표백되는 것 같았다. 일순간 망량선사의 정신세계를 직접적으로 응시한 느낌에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 같다.
"... 헉!!"
찌르륵거리는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아직 새벽이었다.
나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깨어버린 셈으로, 침상에 상채를 일으킨 채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망량선사가 했던 말은 똑똑히 기억났다.
황제 공손헌원을 판으로 끌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