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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74화 (57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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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 허세라고...?]

백련교주가 반문했다. 딱히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그는 내 말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경악스럽게 보든 말든 말을 이었다.

"스스로 그렇다 생각지 않으시오?"

[ 재밌군. 왜 내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거지?]

"당신이 지금 나를 공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백련교주. 당신 말대로 당신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할 이유는 없소. 그리고 나를 흑막이라 생각한다면 당장 나를 공격해서 없애거나 포획하는게 간단할 것이오. 그런데 당신은 굳이 내게 선택지를 주면서 여유를 만들어주고 있지 않소."

[ 하고싶은 말이 뭐지?]

"당신은 지금 나를 경계하고 있소. 그래서 자기 힘을 빼지 않고 손쉽게 다 집어삼키려는 거고, 내가 어떤 수를 쓸지 모르니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잖소."

[ ......]

잠시동안의 정적.

대부분이 나를 우려섞인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그건 망량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한 말은 엄청난 모험이었고 백련교주에게 도발을 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진소청만큼은 자신의 생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무표정하게 장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또 하나! 당신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증거가 있소."

[ 호오. 말해봐라.]

나는 가슴이 떨렸지만 표정은 여유로운 척 웃었다. 아무리 쫄려도 얼굴은 웃고 있어야 이득을 본다는 걸 그동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오. 주작을 쓰러뜨렸지만 진짜가 아니고 무엇을 꾸미는지, 그리고 과연 원하는대로 황궁을 견제했는지도 잘 모르지.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정보가 없어서 초조한 것은 바로 당신 백련교주이며 백련교가 아니오?"

[ ... 흐음...]

"당신이 원하는게 우리와 싸워서 없애는 거라면 응해 주겠소. 어디 서로 죽고 죽여봅시다."

나는 차분하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천하를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 백웅으로써 말해두건데, 당신은 우리 반천맹을 공격한걸 기필코 후회하게 될 것이오. 왜냐하면 당신의 목적은 더 높은 데 있을 테니까!"

[ ......]

내 말에 백련교주는 침묵했으나 옆에 있던 수신류의 호법사자, 독고준이 발끈해서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크게 노한 듯 황금용가면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 천지모르는 애송이가 감히 교주께 망발을 하다니! 그 죄, 죽음으로 갚아라.]

쿠콰쾅

갑자기 지상이 폭발하는 소리가 울리며 독고준의 신형이 내게로 폭사되어 왔다. 백련교 서열 2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무한의 내공 천령단을 다루는 초고수가 나를 진심으로 공격한 것이다. 나는 그 찰나에 독고준이 내 감지범위를 절반 이상 파고들어오는 속도를 느끼며 생각했다.

느리다.

전혀 느리다고 볼 수 있는 속도가 아닌데도, 절정고수를 일거에 쳐죽일 쾌속인데도 그렇게 생각된다. 이 정도면 내 무공으로 충분히 반격하고도 남는다.

' 뇌신지혼의 소유자와 하도 많이 대련해봐서 그런건가?'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독고준의 수강이 내 갈비뼈를 도려내려는 순간 삼보절기를 시전했다. 삼보절기가 천지인의 변화를 제압하며 유려하게 그의 공격을 흘려내자, 독고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마주 칠대절학을 펼쳤다.

파바밧

역시 독고준 또한 교주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칠대절학을 접했는지 굴공천축검의 묘리를 살려서 내게 수창(水槍)을 수십 개씩 날려댔다. 뿐만 아니라 현란한 수공이 압도적인 잠재력을 품고 내 육체를 꿰뚫으려 했다. 천령단을 지닌 독고준의 공격 하나하나는 내 호신강기를 종잇장처럼 뚫어버릴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현재의 독고준과 나의 순수한 공방력은 현저한 격차가 있다.

지금은 입맛이 쓰다.

독고준이 대충 공격해 오는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날 얕보는가? 하긴 독고준 당신은 그럴만한 실력이지.'

하지만 - 그건 어디까지나 맞을 때의 이야기.

무당오대신공(武當五大神功)

사상조화공(四像造化功)

토극수(土克水)

내가 과거 장삼봉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던 시절, 나는 무당오대신공의 요결도 실전대련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장삼봉이 머릿속에서 상세한 가르침을 줬기에 그 오행상생상극의 묘를 자세히 이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천신공을 수십년간 닦아온데다 내공력과 의념이 최정점에 오른 지금, 내가 사상조화공을 응용해서 토극수의 효과를 발휘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극권(太極拳)

퇴보(退步)

반란추(搬瀾錘)

휘리릭

가볍게 회전권의 초식을 운용하자 내 쌍장에 토(土)의 기운이 모이더니 독고준의 수창을 부드럽게 의념으로 감쌌다. 힘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하강하며 물의 기운이 흙 때문에 기운을 잃고 땅에 박혔고, 독고준의 공세도 일순간 주춤해졌다.

[ 아니!]

아무리 강한 힘이라 해도 흘리기를 당하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뛰어난 화경을 지닌 무당파 절학이 무림에서 고평가받는 것이다.

"내 차례다!"

독고준이 뜬금없는 토극수의 응용에 당황할때 나는 뇌명을 일으키며 삼보절기를 써서 독고준에게 반격해 들어갔다. 독고준은 크게 천령단의 강기를 일으키며 나를 튕겨내려 했으나 나는 그 순간 뇌명을 더욱더 가속시키며 검지 손가락에 뇌력(雷力)을 충천할 정도로 모았다.

' 헛점투성이군!'

팔선신공(八仙神功)

칠성폭뢰지(七星爆雷指)

절초(絶招)

일이삼사오육칠(一二三四五六七)꽝!

"일(一)!"

내 기합과 함께 첫 지공(指功)이 독고준의 호신강기에 부딪히자 손바닥만한 파문이 일어났다.

"이(二)! 삼(三)!"

그리고 두번째 파문은 두 손바닥만한 파문을 만들어냈고, 세 번째 파문은 가슴만한 두께를 만들어냈다.

투둥

"사(四)! 오(五)! 육(六)!"

꽝 꽝 꽝

네 번째에서 호신강기 전체가 떨렸고 다섯 번째 찌르기에서는 독고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여섯번째 찌르기에서 팔을 쭉 뻗자, 호신강기가 크게 십자로 갈라졌다. 칠성폭뢰지의 잠재력이 그의 호신강기의 방어력을 일순간 뛰어넘은 것이다.

쩌적

"칠(七)!"

마지막의 혼신을 다한 칠뢰지(七雷指)에서 독고준은 마침내 호신강기에 의존하는 걸 포기하고 자신의 급소를 보호하며 몸을 뒤로 뺐다.

[ 크윽!]

꽈광!

치지지직...

독고준이 칠성폭뢰지 절초를 막아냈지만 그는 원래 서 있던 위치에서 이 장이나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팔뚝에는 크게 지인(指印)이 새겨져 있었고, 그건 내가 그의 경락을 찔러서 일시적으로 내공이 흐르는 길을 막았다는 뜻이었다. 또한 땅바닥에는 독고준의 발이 끌려서 불꽃의 길이 생겨나 있었다.

독고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외쳤다.

[ 이... 이런...]

나는 손을 털며 말했다.

"내가 검을 쓰면 지금보다 두 배는 강하지. 시험해 보겠소?"

물론 이건 내 허세다. 검을 쓰면 권장법을 쓸 때보다 더 강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천령단을 넘어설 정도는 되지 않는다. 화력전이 된다면 내가 훨씬 불리해질 것이고, 아직 나는 천령단을 쓰는 호법사자를 순수한 실력으로 감당하지 못한다.

[ ......!!]

그러나 내 허세가 먹힌 듯 독고준은 주춤거리며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아까와는 달리 나를 크게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교주가 말했다.

[ 준아를 격퇴시키다니 훌륭한 실력이군... 백웅 그대 또한 천하를 오시하는 절세고수구나.]

"띄워줘도 남는 건 없소."

내가 대꾸하자 교주가 팔짱을 꼈다.

[ 한 가지 물어보지. 백웅 너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된지 파악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소. 그리고 제갈유룡을 제외하고는 현재 모두가 엿을 먹은 상태요. 나도, 당신도, 저기 십이율 모두가."

[ 음...]

"또한 이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나만 알고 있소."

"배, 백웅!"

망량이 옆에서 당황해서 외쳤다. 교섭재료로 쓸 수도 있는 중대정보를 백련교주에게 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왕 이렇게 된거 기호지세로 끝까지 망설임없이 내 생각대로 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당당하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백련교주! 이번 여산협공의 목적은 황궁을 멸하고 주작을 영원히 매장시키는 거요. 하지만 교주 당신은 주작이 도망쳤다는 걸 내심 짐작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면서 문제의 본질을 회피했소. 그래서는 우리 모두가 주작한테 놀아날 수밖에 없단 말이오."

[ ......]

"다시 한 번 말하지. 동맹전선을 계속 유지하든 싸우든 당신의 선택이오. 현명한 결단을 바라겠소."

이게 마지막 포석이다.

' 제발 먹혀라...'

나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백련교주가 내 이야기를 무시하고 우리를 공격한다면, 나는 최대한 비등을 써서 동료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러나 다 구할 순 없을 것이며 기껏해야 한두 명을 구하는데 그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이번 전생은 망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건 굉장히 큰 도박일 수밖에 없었다.

침묵은 꽤 길었다.

백련교주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 백웅. 그대의 목적이 무엇이지? 천하를 제패하는 것인가?]

"그런 건 관심없소. 하지만 내 꿈 또한..."

문득 십이율주에게 예전에 들었던 희한한 단어가 생각난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서 쓰기 좋은 단어같다. 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고 해 두지."

내 말에 백련교주가 흠칫 놀라서 몸을 떨었다.

[ 홍익인간이라.]

"누군들 멸망의 때를 바라겠소."

[ 후후...]

낮은 웃음을 흘리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 좋다. 내가 졌다. 그대들 반천맹의 뜻에 따르지.]

[ 교... 교주님!!]

독고준이 깜짝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지만 백련교주가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 뒤통수를 친 건 사과하지. 내 영혼을 걸고, 적어도 오늘은 더 이상 그대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뒤통수를 친게 그런 한두마디로 사과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소만."

[ 하지만 그대들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지.]

"... 알았소."

해냈다!

백련교주가 반천맹을 공격하는 걸 포기하고 다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동의한 것이다. 이윽고 호법사자들이 억류하고 있던 반천맹 고수들이 모두 포승에서 풀려나서 이쪽으로 왔고, 그들은 구사일생한 표정을 지었다. 검마가 내 옆으로 와서 감탄한 듯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 저 백련교주와 대등하게 협상하다니..."

"실력은 그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지만요."

"아니. 그렇지 않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성장했군."

"하핫."

그저 예전에 망량이나 책사들이 하던 것처럼 적당히 배짱을 세운 것 뿐인데 잘 먹혀서 내심 흐뭇해졌다. 그 때 망량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백웅. 이 자리에서 빨리 물러납시다. 백련교 십이율과 더 이상 마주치면 좋지 않소. 그리고 숙부가 있는 곳으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 방금 전에는 백련교에게 정보를 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먼저 뒤통수를 친 게 저쪽이므로 그런 의리를 지킬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백련교주를 경계하며 모두를 비등으로 이동시키려고 할 때였다.

"......?"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든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

뭔가 찝찝한 기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성적으로 볼 때 지금 반천맹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을 망설일 이유는 없을텐데도 목이 쩍쩍 마른다. 내 마음속에 잡초처럼 피어난 망설임이 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때 내 머릿속에 망량선사의 말이 맴돌았다.

[ 흉(凶)이 느껴지는군. 너무 자만하다가 반격당하지 말도록...]

"......"

설마 지금 이게 '자만'인 걸까?

' 반천맹끼리만 가서 주작을 쓰러뜨리겠다는 게 설마 자만으로 인한 흉을 불러오는 걸까?'

나는 갑작스럽게 내 대뇌 속에 생각이 갇힌 느낌이 들어서 갑갑해졌다. 분명히 일리가 있지만 내 선택이 옳을 거라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었다. 궁극의 초상기인을 차지하려면 여기서 십이율과 백련교를 따돌리고 우리끼리만 탈출하는 게 정석이다. 도리어 지금 든 생각이 어이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반천맹이 전력의 대부분을 잃은 주작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전제.

만일 그것부터가 틀려 있다면?

주작이 아직도 우리를 전멸시킬 힘을 남겨두었다면?

' 빌어먹을. 여유가 없어.'

나는 망량을 힐끔 쳐다봤지만, 지금 망량과 의논을 할 시간은 없다. 백련교주는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정보를 주길 원하는 듯 나를 엄청나게 주시하고 있었고, 십이율 또한 아까부터 관망하고 있으나 언제 끼어들지 모른다. 섣불리 의견을 나누고 회의를 했다가는 멍청이 취급만 받을 뿐이다. 그렇다고 순어구로 제갈사와 의견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예전에 제갈사가 말했던 대로 찰나간에 내가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교주. 우리를 따라오시오."

[ 어디로?]

"백웅!!"

망량이 깜짝 놀라서 외쳤지만 나는 마음을 굳히고는 계속 말했다.

"지금 우리는 주작이 궁극의 초상기인을 제작하는 장소로 갈 거요. 그 자를 확실히 없애버립시다."

이번 생에 궁극의 초상기인을 차지하는 건 포기한다.

과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둘 다 놓치기 전에 하나라도 확실히 해야겠다.

그 결과도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겠지만 - 내 느낌대로 삼대세력의 전력을 모아서 주작을 없애는데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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