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573화 (57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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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즉시 비등을 써서 여산 근처로 갔다. 천우진의 천리안을 이용해서 다소 편법으로 직접 여산에 들리지 않고도 이동한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비등의 순간이동이 조금 느리게 느껴졌고 좌표가 불안정해져서 어쩔 수 없이 산 정상에 도착했지만, 어쨌든 나는 동료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나는 산의 정상부에서 양손으로 땅을 짚고 기를 불어넣으며 심호흡을 했다.

"하아아."

진무칠절경(眞武七絶經)

명곡(鳴曲)

우우웅

칠대절학 진무칠절경의 요결인 명곡을 발동하자 땅에 내가 불어넣은 기가 공진(共振)을 일으키며 내부 상황을 내게 전해줬다. 보통의 무예인들은 청경(聽經)을 써서 삼 척 이내의 짧은 범위만을 감지할 수 있지만, 진무칠절경은 달랐다. 기를 파장처럼 내보내서 감지범위를 확산시키고 내부를 마치 직접 꿰뚫어보듯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내부가 비어있군... 그리고 생명체의 기(氣)가 온도와 함께 느껴진다.'

명곡의 요결을 더욱 발달시키면 파장 그 자체를 다루어서 공격과 방어에 쓸 수 있고, 궁극의 방탄진기를 형성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아직 진무칠절경을 달인의 경지까지 익히지 못했으므로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방탄진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리라.

망량의 위치는 나에게서 약 이백칠십장 떨어져 있다. 나는 아군의 위치를 확실히 감지한 후 비등과 내 감각을 동조시켜서 순간이동 했다.

파앗

"앗..."

내가 망량과 진소청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망량은 어찌된 건지 순식간에 알아차린 듯 내게 말했다.

"찾았구려."

"그렇소."

"백웅. 내가 반천맹 사람들을 인솔해 올테니 여기에 가만히 있으시오. 도착하는 대로 진짜 장소로 출발합시다."

망량은 다시 전선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 진소청에게 말했다.

"아까 그 찌르기는 도대체 뭐였소?"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설명해 주겠소."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무술수행을 하던 중 극소(極小)의 영역을 느끼게 되었소. 그리고 내 창술을 근본에서부터 분해해서 되짚던 도중, 극소의 영역에서 일정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조그마한 게 존재한다는 걸 알았소. 나는 시험삼아서 그걸 건드려 보았는데, 그때마다 세상이 비틀리는 걸 느꼈소."

"비틀리다니?"

"그 조그마한 존재를 건드릴 때마다 법칙이 왜곡(歪曲)되었소. 그건... 어쩌면 당신이 말하던 태허(太虛)와 비슷할지도."

자신의 말을 되새기며 곰곰히 생각하던 진소청이 말했다.

"나는 그 조그마한 영역에 내 창이 닿일지를 생각했소. 먼지알갱이보다 1천배는 작은... 아니 더 작을지도 모르는 그 영역에 과연 닿일지 궁구했소. 그렇게 백여 일동안 집중해서 수련하다보니 조금씩 손이 뻗더군. 그 결과 나는 새로운 [찌르기]를 얻게 된 것이오."

이건 진소청만의 절대지경의 깨달음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나는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서 이해하려 하다가 뭔가 감이 와서 질문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찌르려 한 것이오?"

내 질문에 진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찌르기의 극의란 미세한 표적조차 자유자재로 뚫을 수 있는 것. 나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겼소."

"당신이라면 뇌신지혼을 연마하는 게 더 편했을텐데... 그렇게 괴로운 수행을 하면서 굳이 새로운 절대지경을 개척한 이유가 뭐요?"

진소청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뇌신지혼은 겸사겸사 익혔소. 그리고 나는 뇌신지혼이 별로 끌리지 않았소."

"응? 그건 또 뭔 소리요?"

내가 황당해서 진소청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진소청이 왠지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청운 종사께는 말하지 말아주시오. 나도 긴가민가해서..."

"그래도 말해 주시오."

"나는 뇌신지혼이 너무 어렵다 생각했소. 분명히 엄청난 깨달음이며 뇌신(雷神)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절대지경 상위절학인건 틀림없지만 이렇게 어려운건 범용성이 부족해서 한계가 오지 않을까 싶었고... 하여튼 내키지 않아서 뇌신지혼에는 집중하지 않았소."

"......"

"그래서 지금의 나는 뇌신지혼의 힘을 일시적으로 방전하듯 일으켜서 뇌명처럼 잠깐 운용하는게 전부요."

"그렇군..."

나는 뭔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대를 이어 뇌신류의 천재들이 전승발전시켜 온 최강의 절학, 뇌신지혼! 원영신이 사법(邪法)의 일종이라는 걸 감안하면 분명히 뇌신지혼은 사실상 무림최고의 절세신공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최종오의 무혼에 도달하는 유일무이한 길이기에 지금껏 나는 뇌신지혼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소청은 뇌신지혼 자체가 옳은 길인지 의문을 지금 제시한 것이다. 뇌신류의 세력이 정상이었다면 불경죄를 물을수도 있는 일이었고, 하물며 종사 이청운에게는 절대 자기 입으로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닐 것이리라. 뇌신류의 무학을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자신의 무학이 옳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 생각해봐야겠군.'

그렇지만 나는 진소청의 지금 말이 매우 중요한 단서일지도 모른다는 감이 들었다. 당연히 무예종사로서의 경지는 진소청보다 이청운이 높지만, 진소청은 무림역사상 최고의 천재다. 그런 진소청의 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진소청의 무예경지에 대한 담론을 대략 한 식경 동안 나누었다.

그 때 망량이 반천맹 동료들을 데리고 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찾아왔다. 나는 망량에게 물었다.

"모두 무사하오? 용인들은..."

"모두 무사하고, 용인 놈들은 진소청이 주작의 복제를 해치운 순간 통제불능이 되어서 어디론가 도망쳤소. 아마 그 복제체가 이 장소에서 놈들을 조종하고 있었던 모양이오."

그렇게 대답한 망량이 한숨을 쉬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미안하오... 내 불찰이오."

"응?"

쿠구구

그 순간, 나는 맞은 편에서 엄청난 기의 폭풍이 나를 향해 쏘아져 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는 의념으로 정제된 기운이었고 나는 빠르게 의념을 끌어올려서 그 공격에서 정신을 방어했다. 가벼운 정신제압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막지 않았다면 기절해버렸을 것이리라.

' 돌려주마.'

나는 의념견제를 막아내고는 고스란히 상대편으로 되쏘았다. 그러자 내 의념이 벽에 막혀버리는 게 느껴졌다.

[ 호오... 꽤 하는군.]

장내를 울린 의문의 육합전성은 내 의념조종에 꽤 놀란 기색이었다.

내가 그쪽을 쳐다보자, 그 곳에는 백련교주가 삼대 호법사자와 함께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백련교주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 그대가... 반천맹의 진짜 맹주인가?]

"......"

[ 생각한 것보다 어리군. 약관 정도인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 들켰어!'

망량은 몰래 반천맹의 전력을 빼와서 여산을 탈출하려 했지만 백련교주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하지만 망량은 뛰어난 두뇌를 지니고 있어서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하지 않을텐데 어찌된 일인가?

망량 옆에 서 있던 전우치가 분한 듯 말했다.

"백련교주! 치사하군. 용인들이 물러나자마자 우리를 공격하다니."

[ 치사하다니...? 우리가 반천맹을 공격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한 백련교주가 뒤쪽의 어둠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 십이율도 딱히 너희를 도와주진 않는다. 그리고 너희는 뇌신류를 포용하고 있다. 당연히 본교의 사대무류의 일이니 우리 집안문제를 해결해야겠지.]

백련교주가 쳐다본 곳에는 어슴프레한 어둠 속에서 십이율의 고수, 단의 일족들이 이쪽의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백련교주의 말대로 중립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교주가 뇌신류를 거론하면서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선을 그어뒀기 때문이리라.

' 망량... 돌아가자마자 공격당했구나.'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반천맹이 통째로 학살당하는 것보다는 일단 백련교주의 강요에 따르기를 택한 것이다. 망량을 제외한 검마, 극호 등은 포승에 묶여서 수신류 고수들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망량은 수치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망량."

난 망량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다. 반천맹의 전력과 동료들은 하루아침에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니 섣불리 저항하려다가 백련교에게 학살당하는 게 더 최악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기호지세,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나는 백련교주를 침착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백련교주! 나는 반천맹의 맹주가 아니오."

[ 맹주가 아니라 흑막인가?]

"......"

[ 전부터 궁금했지. 반천맹주의 지략과 역량은 대단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단시간에 정천맹과 흑도를 통합한 대세력을 만들어낼 정도는 아니었어. 엄청난 보물과 기연, 인재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저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없었다. 반천맹은 하늘에서 도깨비처럼 뚝 떨어진 세력이었지.]

"그렇소?"

[ 그런데 반천맹을 뒤에서 조종하던 실체를 오늘에서야 만나게 되었구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이십여 회 이상 전생하며 쌓아왔던 인맥, 무공, 보물, 영약 따위를 망량을 통해 간접적으로 반천맹에 퍼부었기 때문에 천하 3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정도의 대세력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얼굴빛을 바꾸지 않으며 말했다.

"교주께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 이 자리에서 그대들을 몰살시킬 생각이었다. 너희는 향후 백련교의 천하제패에 큰 걸림돌이니까.]

"......!!"

[ 하지만 그대들의 잠재력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아주 흥미로워...]

자신의 가면을 쓰다듬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 반천맹의 흑막이여. 그대의 이름은?]

"백웅이오."

속여도 무의미할 것이다. 어차피 꼼꼼하기 그지없는 백련교주의 성격상 두번세번 확인하면서 내 본명을 알아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련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 백웅! 반천맹과 함께 백련교에 가입하라. 그리고 백련교의 교리와 권위에 복종하라. 그러면 그대들 반천맹은 무탈하게 존속할 것이며, 향후 사대무류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

역시 그건가. 지금까지 백련교주의 행동양식은 많이 봐 와서 이젠 어느정도 예측이 되었다. 또한 인재를 아끼는 그의 성격상 우리를 쉽사리 전멸시키지 않으리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적에게 한없이 잔혹했으므로 이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를 공격해서 전멸시키리라.

이 상황에서 섣불리 십이율 측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십이율은 현재 율주가 사망한 상태였고, 백련교와 싸우기에는 위험부담도 크다. 게다가 우리를 도울 의리도 없으니 그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 까딱하면 몰살하는 위기상황이지만 왠지 마음이 가라앉는군.'

여태껏 전생하면서 하도 위기를 많이 겪고 많이 죽었던 탓일까? 절체절명이었지만 마음속 한켠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흘러서 제대로 머리를 굴릴 수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게 가능했다.

그리고 교주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는 교주를 잘 알고 있다.

또한 그의 이상과 생각, 성향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상대를 맞이하는 만큼, 힘의 차이는 큰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교주."

이어진 말에 장내의 모두가 경악했다.

"허세부리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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