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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진소청은 고요히 창을 잡은 채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한번 숨을 들이쉰 후 마치 물을 헤치듯이 자연스럽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한 걸음에 이십 장이 축약되면서 모든 기운이 진소청의 창끝에 흘러들어가는 듯 했다.
' 포석인가?'
지켜보고 있던 나는 진소청의 한 수에 어떤 심오함이 숨겨져 있느지 잘 알 수 없었다.
진소청이 한 걸음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백련교주가 심천무량을 써서 달기의 전방으로 막강한 공세를 퍼부었다.
콰과과광
마치 산도 무너뜨릴 기세! 낙양에서 신의 사도로 화했던 때보다는 못했으나 교주의 원영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의 힘은 굉장했다.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수백 연타가 쐐기처럼 박히니 일반적인 무인은 방어도 회피도 불가한 것이다.
스스스스
[ 으음...]
백련교주가 침음성을 흘렸다. 강대한 공격을 퍼부었으나 달기의 몸 주변에 반투명한 막이 백련교주의 장인을 흘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투명한 물처럼 출렁거리는 그 반투명한 막은 유연해 보였으나 결코 깨질 것 같지 않았다.
달기의 눈이 찢어지며 샐쭉하게 적광(赤光)이 피어났다. 달기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 그 정도 힘으로 내 방어막을 찢을 수 있겠느냐?]
지이잉
콰과과광!!
달기의 눈에서 적황색 광선이 사출하더니 갑작스럽게 부채꼴로 전방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다. 공격범위가 백여 장을 훨씬 넘었기에 보통 신법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망량이 수인을 맺어서 아군 전원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켰다.
"오도일이관지."
파앗
망량은 순간적으로 축지법과 공간전이를 응용한 상급 술법을 발휘한 것이다. 망량은 한번에 큰 술력을 쏟았는지 비틀거렸고 검마가 그를 부축했다.
"괜찮나?"
"으... 윽. 지금은 저 괴물에게 덤빌 때가 아닙니다. 저 주술방어막이 해제될 때까지는 칠성의 보법으로 피합시다."
"알았네."
타닷
반천맹의 모든 고수들이 망량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달기가 재차 꼬리 세 개를 곧추세우며 사방으로 거대한 불기둥을 발사하자, 칠성의 방위를 잡고 있던 아군 전체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추었다.
파앗
다시 반천맹 사람들이 생뚱맞은 곳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감탄하며 말했다.
"굉장해."
칠성의 보법!
그것은 아군이 칠성의 방위에 따라서 천위를 잡으면 중앙에 있는 천권의 술사가 축지법을 발동함으로써 다같이 순간이동할 수 있는 술법이었다. 통상적인 술법사에게는 전수되지 않는 술법이지만 삼황내문에 수록되어 있던 상고시대의 고급술법이었다. 망량은 그 동안 술수를 수련하면서 칠성의 보법을 발동하는 법을 확실히 익혔고 이번에 써먹고 있는 것이다.
' 칠성의 보법을 쓰면 술력이 거의 소모되지 않아.'
한 번은 너무 급작스러운 공격이라서 망량이 어쩔 수 없이 자기 힘을 통짜로 쏟아냈지만, 지금부터는 칠성의 방위를 잡고 술수를 발동시키기만 하면 된다. 웬만해서는 달기의 연속된 거대범위공격을 피해낼 수 있으리라.
그 때였다. 십이율주가 월하정야갑을 소환한 채 은하구절편을 들고 주문을 외쳤다.
"하백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조리 얼려버려라!"
쿠구구궁
거대해진 이공간 전체가 빙룡(氷龍)에 휩싸이는 듯 했다. 과거에 수만 명 단위의 어인들을 한꺼번에 빙결시켜버린 십이율주의 강력한 능력이 펼쳐지자, 아무리 달기라도 무시할 수 없는지 주춤거렸다.
끼기기기긱...
달기를 감싸고 있는 주술방어막이 맹렬한 소리를 내며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주문의 냉기가 달기의 주술방어막을 뚫고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달기가 이내 같잖다는 듯 포효했다.
[ 나 달기가 명하노니 냉기여 되돌아가라!!]
언령(言靈)의 시전!
"뭣?!"
뜻밖의 권능에 십이율주가 당황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쩌저저적
빙룡이 마치 시간이 되감기듯이 그 형태를 잃고 순수한 냉기덩어리로 변화했고, 이내 주문을 발사한 당사자인 십이율주에게 되돌아갔다. 십이율주는 급히 은하구절편을 휘둘러서 주문을 흡수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듯 팔 끝에서부터 냉기가 육안으로 얼어붙었다.
"으으윽..."
십이율주는 비명을 질렀으나 이내 인형탈 전체를 냉기가 감쌌다.
쩌저적
마치 만년빙하에 하루나절을 묻혀있었던 것처럼 십이율주의 몸이 급속히 얼어버렸다. 하지만 빙기가 너무 강력해서인지 삼사는 그를 도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내 십이율주의 몸뚱이가 완전히 십여 장 크기의 얼음절벽으로 굳어지는데는 눈을 두세번 깜박일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
세상에 지금 내가 뭘 본거야?!
천하의 십이율주가 이렇게 간단히...
하지만 십이율주는 빙하에 갇힌 상태에서도 아직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는지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천리안으로 지켜보던 천우진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은하구절편과 월하정야갑의 내성이 높아서 아직 살아있나보군."
"대체 뭔 일이 벌어진거야?!"
"달기 정도의 요력이면 딱히 수련을 안해도 신급 주문을 반사할 수 있는 언령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지. 웬만한 주문공격은 통하지도 않을거고 설령 주문방어막을 뚫을만한 공격을 해도 지금처럼 반사시킬 거다."
"미친...!!"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아무리 그래도 칠요에 버금가는 신기 은하구절편으로 발휘한 능력인데 저렇게 쉽게 반사당하다니?
' 아, 아니 생각해보니 달기는 여동빈의 화룡소환도 맞받아친 적 있어.'
화룡소환이 하도 강력한 힘이라서 반감시키는데 그치긴 했지만 어쨌든 그때도 달기는 언령에 가까운 포효로 무효화시키려 했었다. 투선의 최대출력 공격도 흘려낼 수 있는 괴물이 바로 달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달기를 대체 무슨 수로 잡아야 한다는 말인가? 무공으로 물리공격을 하려면 달기의 주술방어막을 해제해야 하는데 그나마도 웬만한건 통하지도 않고 통한다 해도 달기가 능동적으로 주문을 반사해 버린다!
내가 당혹해 하자 천우진이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인건 저 주술방어막은 무한으로 회복되지 않고 피해를 흡수할 수 있는 한계가 있어. 그 한계까지 피해를 축적시키면 그때부터는 달기를 일반 무공으로 공격할 수 있을 거다."
"얼마나 축적시켜야 하는데?"
내 질문에 천우진이 천리안의 화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걸 지금부터 저 녀석이 보여주겠지."
파밧
진소청은 어느 새 달기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그러나 산처럼 거대한 달기에게 있어서 진소청은 말 그대로 개미같은 크기라서인지 달기는 딱히 그를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설령 공격받는다 해도 벌레가 자신의 방어막을 뚫을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우우우
진소청의 몸에서 번개가 튀어오르더니 일순간 번쩍거렸다. 그의 몸이 완전히 광휘에 휩싸이며 빛의 괴인처럼 변화하는 그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서 주먹을 꽉 쥐었다.
' 뇌, 뇌신지혼?!'
쉬이익...
하지만 그 변화는 찰나였고 진소청은 다시 본래대로 인간의 형상이 되었다.
' 내 눈의 착각이었나...'
진소청은 달기를 향해 창을 들고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달기가 저절로 뿜어낸 소용돌이치는 광선의 폭우 속에서 삼보절기를 운용해서 더 빠르게 파고들었고, 이내 한 번의 찌르기를 쏟아냈다.
투웅
[ 뭣...]
달기가 재차 사방으로 옥염을 입으로 뿜어내려던 순간 자신의 발치를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진소청이 찌르기를 유지한 채 서 있었다. 아직까지 달기는 손톱만큼도 다치지 않았으나 분명히 달기를 둘러싸고 있던 방어막이 얇아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 이 놈!!]
콰과광
하지만 달기는 당황한 듯 한쪽 꼬리를 들어서 진소청을 공격했고, 그 가공할 속도에 진소청은 재빨리 피해내며 몸을 사렸다. 그러나 달기가 왠지 악에 받쳐서 꼬리 여러 개를 동시에 휘두르자 진소청은 금세 위기에 처했다.
[ 현겁(賢劫).]
그 때 지켜보고 있던 백련교주가 끼어들어서 절대지경의 현겁으로 일순간 달기의 공격을 느리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진소청은 신법으로 몸을 뺄 틈을 얻을 수가 있었다. 진소청이 뒤로 물러서자 백련교주가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전음을 보냈다.
[ 젊은 뇌신류의 고수여. 그 창술은 무엇인가?]
진소청은 그를 마주 바라보며 대꾸했다.
"이름은 없소."
[ 그런가... 아직 붙일 수가 없다는 건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백련교주가 말을 이었다.
[ 유파의 구원(舊怨)은 피차 잠시 잊어두지. 나와 호법사자가 너를 보조할테니 바늘구멍을 뚫어라.]
"좋소."
[ 간다!]
말이 끝나자마자 백련교주는 힘을 아끼던 걸 그만두고 곧장 원영신의 힘을 극도로 발휘해서 무한의 강기를 달기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장인이 날아가며 연속으로 달기를 타격했고, 그와 더불어서 현겁의 공간이 펼쳐지며 달기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 하압!]
"받아라."
호법사자들도 백련교주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천령단의 내공을 아끼지 않고 거대한 원소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단숨에 교주와 호법사자들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화력을 집중하자 아무리 달기라 해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콰과과광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약간 들떠서 말했다.
"무한의 내공! 저거라면 언젠가는 방어막을..."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바보. 상황을 파악 못했냐?"
"뭐?"
"백련교의 힘만으로는 절대 달기를 쓰러뜨릴 수 없다. 붙잡아 둘 수는 있어도."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잘 봐. 달기의 방어막이 사라지는 만큼 저 녀석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아마 싸우는 중에 또 다른 술법을 시전했을 거다."
"준비...?"
"오행지력(五行之力)이 모이고 있다. 달기는 조만간 큰 반격을 할거다."
파지지직
달기의 몸 주변에 화염구슬과 번개구슬, 그리고 폭풍의 구슬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구슬의 크기는 제각각 십여 장이었는데 일단은 아군을 공격하지 않고 부유하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천우진의 말뜻을 깨달았다.
"호법사자들한테 받은 원소력의 충격을 저 구슬로 바꾸고 있다는 거냐?"
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기는 전술전략 없이 맞아주기만 하는 목각인형이 아니야. 술수에 능하고 교활한 마왕이지. 백련교 간부들이 무한의 내공을 갖고있다는 정도는 처음부터 파악했을테니 당연히 다른 전술을 쓰지 않겠냐."
"저 구슬이 다 모이면..."
"오행지력이 극대화되어서 달기의 옥염과 함께 대폭발을 일으키겠지. 그럼 저 안에 있는 놈들은 다 죽는다."
"......"
내가 할 말을 잃자 천우진이 긴장감어린 눈으로 전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백련교주는 도박을 건 거다. 오행지력의 구슬이 다 채워지기 전에 진소청의 절학으로 놈의 방어막을 뚫을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나머지가 다 달려들어서 달기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면..."
"전멸인가."
"그래."
나는 이를 으득 악물었다. 그리고 외쳤다.
"역시 안 되겠어! 지금이라도 가서..."
"기다려 봐. 아직까지 제갈사한테서 신호가 안 왔어."
"......"
"또한 십이율도 이대로 끝나진 않겠지."
콰과광
콰광
연신 폭발이 울려퍼지며 장엄한 파괴가 장내를 휩쓸었다. 호법사자들은 무한의 내공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때려도 때려도 달기가 전혀 상처를 입지 않자 다소 힘이 빠진 기색이었다. 그건 교주도 다르지 않은지 현겁을 펼치는 범위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 때 진소청이 다시 한 번 파고들었는데, 달기는 엄청난 덩치에도 불구하고 기민하게 진소청의 움직임을 감지했는지 순식간에 다섯 개의 꼬리를 진소청에게 휘둘렀다.
"으쌰!"
파밧
그 때 웬 기합소리와 함께 번쩍 하는 섬광이 터졌고, 진소청은 위험한 범위에서 금세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진소청을 옮긴 자는 히죽 웃더니 그에게 인사했다.
"이야. 우리 대장이 지금 당했으니 희망은 너 뿐이구만."
"당신은..."
"나 단의 일족 홍길동, 십이율의 동료들과 함께 네가 저 괴물한테 접근할 수 있게 도와주마."
스스스
홍길동의 몸에서 갑자기 똑같이 생긴 환영분신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 분신의 숫자는 무려 2백여 개나 되어서, 한창 싸우고 있던 용비천이 경악하며 외쳤다.
"아닛?! 저렇게 많이..."
풍신류의 종사가 경악할 정도로 홍길동의 분신은 대단한 걸로 보였다.
"자, 이 정도면 되겠지."
퍼엉
그는 분신을 향해 손을 휘둘렀는데 다음 순간 홍길동의 분신 모두가 진소청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진소청이 주위를 둘러보자 분신들도 똑같이 행동했다. 진소청은 홍길동의 의도를 알아챈 듯 다시 한 번 달기에게 파고들었다. 달기는 엄청난 속도로 꼬리를 휘둘러서 분신을 없앴지만 진짜 진소청이 어딨는지는 잘 모르는 듯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하압."
진소청의 가공할 찌르기가 다시 한 번 달기의 옆구리 쪽을 때렸다.
꽈앙
이번에는 달기의 방어막이 명백히 엷어진 모습이었다. 얇은 피막처럼 변한 방어막은 이제수명이 별로 남지 않은 게 확실했다. 달기는 노화가 솟구치는 듯 비명을 질렀다.
[ 이런 미천한 인간들 따위가...]
그 때였다.
"빈틈투성이군."
진소청의 일격이 들어간 순간 달기의 목 바로 뒤쪽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미야모토 무사시의 신형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달기의 빈틈을 찾아서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잠입했던 것이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뛰어오르며 다짜고짜 상하로 일검을 죽 그었다.
신살참(神殺斬)!
퍼억
[ 크아아악.]
미야모토 무사시의 회심의 일격이 먹혔는지 달기는 충격때문에 크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미야모토 무사시는 원래 베려고 했는데 방어막 때문에 뒤통수를 때리는데 그치자 아쉬워 하면서 재빨리 달기의 목 뒤에서 도망쳤다.
"실례."
파앗
그는 신살참을 쓰면 체력과 기력이 거의 다 소모되기 때문에 연속공격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무사시를 한참동안 찾던 달기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며 카랑카랑한 외침이 울려퍼졌다.
[ 이제 됐다! 다 죽어라!!]
키이이잉
달기가 소환한 오행구슬이 빛나기 시작했고 달기가 구슬을 향해서 화염의 숨결을 토해냈다. 구슬이 터지는 순간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게 될테지만, 바로 그 때 십이율의 삼사가 옥염의 바로 앞에 나타나서 술수를 전개했다.
화르륵
녹색의 결계가 만들어지면서 달기의 옥염이 막혔다! 그러나 달기의 화염을 막아내는 삼사들은 손이 누렇게 익어가는 듯 팔에서 연기가 나는 듯 했다. 이내 삼사의 팔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가 되자 위험함이 더해졌다.
[ 비켜라.]
그러나 백련교주가 즉시 끼어들어서 삼사를 도와서 달기의 화염을 막아섰고 삼사들은 겨우 죽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일단 한 번 전멸의 위기를 넘긴 것이다.
[ 크아아아아악.]
달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비명을 질러대며 수백 장이나 되는 크기의 화염기둥을 사방으로 계속 내쏘았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격렬한 공세인지라, 반천맹과 십이율의 고수들은 이리저리 피하고 있다가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하압."
진소청은 그 순간 공격의 기세에 주눅들지 않고 또 한 번 파고들었다. 장내에서 지금의 달기에게 반격할 수 있는 건 진소청밖에 없었고, 그는 창과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날아갔다.
꿰뚫는다.
진소청의 일섬이 달기의 목젖을 향해 날아갔고, 광창(光槍)의 끝이 달기에게 도달하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콰칭
[ 아... 아니...!!]
마치 유리가 깨지듯이 달기를 뒤덮고 있던 방어막이 부숴졌으며 달기의 털끝에 흔들리던 아지랑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방어막이 깨진 걸 믿을 수 없는지 달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고, 그 찰나를 다시 한 번 진소청의 창섬이 가르면서 그는 한 줄기 빛살이 되었다.
"죽어라 마왕 달기여!"
진소청이 심적권청의 찰나에 모든 염원을 담아서 절규했다.
꽈앙!
[ 크으아아아아악.]
한줄기 빛이 달기의 몸을 마치 화살처럼 꿰뚫으면서 몸뚱이를 통째로 벽까지 날려버렸다. 잠시 후 거대한 굉음과 함께 달기의 몸이 돌벽에 처박혔고, 달기는 화살에 목을 꿰인 여우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 위업을 달성한 진소청은 힘이 다 빠졌는지 허공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기절해서 땅에 떨어져 죽을 위기였다.
"진소청!"
바로 그 순간 칠성의 보법을 이용해서 현란하게 피해다니던 망량이 진소청을 허공에서 낚아챘다. 망량은 진소청을 데리고 땅에 착지하자마자 장내에 쩌렁쩌렁 울리게 외쳤다.
"방어막이 깨졌다! 일제공격!!"
파바밧
그 순간, 지금까지 이리저리 피해다니던 십이율의 고수들과 반천맹의 고수들이 한꺼번에 강기와 술법을 동원해서 달기에게 벌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죽을 위기를 수십 번이나 넘겨서인지 악에 받쳐서 온힘을 다해서 달기의 육체를 난도질하려 했다.
콰과광
푸콱
[ 캬아아악.]
이제 달기의 몸뚱이에 칼이 들어가고 술법이 꽂히기 시작했지만, 정작 달기의 몸뚱이가 너무 거대해서인지 달기는 몸을 바둥댈 뿐 아직 큰 상처를 입지 않은 듯 했다. 검마, 극호 등도 최선을 다해서 공격했으나 마치 큰 소에게 개미가 무는 것처럼 그다지 큰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교주와 호법사자가 다음 순간 눈에 불을 켜고 무한의 내공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 끝장내 버려라.]
콰과광
수십 장 크기의 대파괴가 연속해서 일어나며 달기를 피투성이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고수들은 호법사자의 공격범위를 피해서 달기의 급소에 몰려들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치 개미가 몰려들어서 큰 동물을 물어뜯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공격했을까?
갑자기 피투성이가 된 달기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며 포효했다.
[ 크아아아악.]
콰칭
다시 한 번 달기의 몸 주변에 방어막이 얇게 생성되었다. 달기는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싸울 수 있다는 듯 아홉 개의 꼬리를 곧추세웠고, 그 기세에 질린 인간들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그 방어막을 본 교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 정녕 괴물... 도대체 체력이 얼마나 되는건가. 방어막 없이 때린지 한 식경이 넘었는데...]
망량이 땅에서 삼황내문의 회복주술로 진소청의 의식을 회복시키며 크게 외쳤다.
"아까만큼은 아닙니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저걸 깨면 이번에야말로 끝장낼 수 있습니다."
[ 좋다. 빨리 처치하자. 오래 있으면 이 땅의 마기에 견딜 수 없다.]
다시 한 번 지지부진한 방어막 깨기가 계속되었다. 아까의 주체인 진소청과 무사시는 잠시 전투불능상태가 되어서 전선에서 빠졌지만 달기 또한 힘이 소모된 건 마찬가지였기에 한결 쉬워졌다. 달기는 이제 화염을 쉽게 내뿜지 못했고 섣불리 주술을 쓰지도 않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 식경이 지났을까?
[ 캬아아악.]
콰칭
"일제공격!!"
"우와아아아."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겠다는 듯 모두가 죽을 힘을 다해서 덤벼들어서 반쯤 기절한 달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퍼벅
콰직
[ 크아아악...]
달기는 수십 명의 고수들에게 난도질 당하면서 계속 선혈을 흘리다가, 어느 순간 빛으로 화하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 끄으... 분하다...]
원통한 외침과 함께 달기의 거대한 몸이 한줄기 빛으로 변해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더 이상은 현계를 버티지 못하고 원래 봉인되어 있던 금오도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잘못하면 소멸될 위기였기에 싸움을 포기한 셈이었다.
털썩...
"이... 이겼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쓰러져서 기진맥진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으나 부상자가 속출했으며 심지어 호법사자들도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있었다. 다치지 않은 것은 오직 백련교주 뿐이었으며 망량도 충격파 때문에 두세 번은 기절해버린 듯 했었다.
이겼다고 하기엔 꽤 처참한 광경이었으나 장내의 모두는 알고 있었다.
어쨌든 신의 사도를 쓰러뜨렸다!
이걸로 이제야 황궁의 흑막을 쓰러뜨리는 길이 열린 것이다.
백련교주 또한 큰 피로를 느끼는지 비틀거리다가 동상이 되어버린 십이율주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 그는 죽었나 보군.]
신급 주문을 정통으로 반사당해서 만년빙에 갇혀버린 십이율주가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든지 간에 백이면 백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
삼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이어지던 중 문득 우사가 말했다.
"율주의 숨이 지금 끊어졌다."
십이율주 하은천의 사망 통보.
난데없는 급보였으나 당황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까 달기와 싸울 때 너무 상황이 급박해서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단의 일족 중 대표로 홍길동이 나와서 말했다.
"율주가 죽었더라도 우리는 계속 갈 거요. 명나라 황궁은 오늘 멸망시켜야 해."
[ 뜻이 일치하는군. 좋아, 가자.]
교주가 눈을 이글거렸다.
[ 마침내 주작의 사지를 찢어버릴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