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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65화 (56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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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십이율주의 뜬금없는 선언!

하지만 망량이나 제갈사는 그다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고 차라리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망량이 무겁게 말했다.

"삼자회담의 맹약을 깨실 생각이십니까?"

"삼자회담의 요점이 뭐였지? 너희 반천맹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거였잖아. 그럼 징검다리를 통해 백련교가 법문을 전해받은 지금의 상황은?"

"......"

"서로 필요에 의해 맺은 협약이었으니 이젠 아쉬울 게 없어. 나든 교주든..."

십이율주가 차갑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황궁은 너희도 알다시피 공공의 적. 휴전(休戰)은 끝났다."

그러자 망량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성급하지 않습니까?"

"뭐가?"

"언젠가는 황궁을 쳐야한다는 사실에는 저희 모두가 동의합니다. 단지 황궁의 발악이 두려워서 차분하게 다져갈 시간이 필요했죠. 하지만... 지금 진실로 황궁을 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십이율주가 손을 입가에 갖다대고 큭큭 웃는 듯 했다.

"크흐흐."

"......?"

"그게 아니겠지. 너희 반천맹에게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우리를 바보로 알고 있나?"

십이율주는 느긋하게 말했다.

"너희가 뭘 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다. 나와 교주는 이미 합의를 보았으니 너희도 우리 의견에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만일 따를 수 없다고 한다면?"

"황궁 다음은 반천맹 차례가 되겠지."

"......"

노골적인 협박!

' 십이율주는 자기들끼리만으로 황궁을 쳐도 상관없다 생각하는군.'

굳이 장령곡의 위치를 알아내서 찾아온 이유는 협약의 중재자인 반천맹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또한 반천맹이 현재의 세력균형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협력하라고 강제하러 온 것이다. 십이율주는 정말로 황궁을 치고 나서 반천맹을 치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망량이 힘겹게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무슨 시간을 달라는 거지?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니게? 너희 움직임이 달라진걸 보고 황궁이 대비할 시간을 주게?"

십이율주가 우리 쪽을 손가락으로 척 가리켰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결정해라."

"......"

그러자 망량 옆에 있던 극호가 신경질을 내며 걸어나왔다.

"십이율주인지 뭔지 얼마나 잘났는지는 몰라도 한가지는 생각 못한거 아냐? 여기서 네놈이 혼자서 우리 모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하하하. 그런가? 뭐 확실히 너희 모두와 싸워서 이길 생각은 없다만."

따악

십이율주가 손가락을 마주치는 순간 그의 주변에 네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것은 십이율의 삼사(三師)와 특위 미야모토 무사시였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들을 흘려넘겼겠으나 극호는 이미 내 전생기억을 전해받아서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기에 흠칫했다.

십이율주는 말했다.

"이 정도면 뭐... 너희를 반죽음으로 만들기엔 충분하겠지."

망량이 다시 한걸음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말했잖아. 우리한테 동참하라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율주 당신이 혼자서 이야기를 지어내었을 가능성이 있는 한 우리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지어내었다라... 우리가 뭐하려고?"

"백련교가 의견에 동의했다는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뭐 좋아."

우웅

그 순간, 허공에서 재차 문이 열리더니 호법사자 세 명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었으나 그들이 흘리는 무한의 기운은 호법사자라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호법사자들의 출현을 보는 순간 눈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 진짜다...'

용비천 하나만 등장했다면 의심했겠지만, 교주의 철저한 충신인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도 함께 와 있다. 그렇다면 교주 또한 이 일에 동의했다는 뜻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쪽은 대부분 역용술을 해 두었기에 이청운 등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은 듯 했지만 그래도 위험하다.

피할 수 없다.

십이율이 우리를 기만하려 든 게 아니라 정말로 황궁을 치려고 작정한 것이다. 백련교와 연수하기로 했다는 것도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거절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지경의 고수 2명과 환신급 술법사 3명, 그리고 호법사자 3명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 3대세력 중 2개를 한꺼번에 상대하면 절대로 승산이 없었다.

한백령이 여우가면을 쓴 채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천맹. 뭘 그리 주저하는가? 너희 또한 황궁을 눈엣가시로 여겼을텐데."

"굳이 저희가 동참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현재의 황궁의 힘으로는 백련교 하나도 당해내지 못할 터인데."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용비천이 코웃음을 쳤다.

"흥! 너희가 일개세력에는 미치지 못해도 구파일방을 뛰어넘는 힘을 응축하고 있다는 건 이미 조사를 끝냈다. 기왕 할 거면 압도적인 전력으로 초전박살을 내야 이쪽의 피해도 적겠지. 개소리 말고 우리 일을 도와라."

망량은 더 이상은 물러날 곳이 없다는 걸 직감한듯 마지못해 말했다.

"율주. 그렇다면 이쪽의 조건을 한 가지만 들어 주십시오."

"뭐지?"

"이 일이 끝나고 나서 만일 백련교와 십이율이 충돌하게 된다면 그 때 저희가 중재하는 걸 반드시 한번은 받아들여 주십시오."

"좋아. 어려운 일은 아니군."

십이율주는 고개를 까닥하고는 미야모토 무사시를 앞으로 내보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우리의 삼 장 근처로 오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우리 쪽의 특위다. 그가 작전계획을 설명할 것이니 정해진 때에 반드시 오도록."

스스스

잠시 후 십이율주와 삼사는 물론이고 백련교의 삼대 호법사자도 공간의 문을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는 우리에게 고개를 까닥하더니 말했다.

"설명해도 되겠나?"

망량은 한숨을 쉬었다.

"잠시... 한 식경만 기다려 주시오. 이쪽도 회의를 할 시간이 필요하오."

"좋다. 가능하면 빨리 끝내라."

"응접실에서 맞이하겠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우리는 미야모토 무사시를 응접실에 놔두고 회의를 시작했다. 물론 미야모토 무사시가 장령곡을 함부로 헤집지 않도록 견제할 자가 있어야 했기에 이청운이 그를 지켜보았다.

제갈사가 말했다.

"올 게 와버렸군."

"숙부. 이 생의 끝을 대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망량의 말에 제갈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 생각도 같다. 지금의 위기는 대라신선 종리권의 축복으로 운명을 수정했는데도 결국 찾아와버린 위기. 틀림없이 흉험하기 그지없겠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몰살당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자 극호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우리만 황궁을 치러가고 백웅 녀석은 살리는 게 맞지 않을까? 저 녀석만 살아있으면 어쨌든 수련시간은 보장되잖아."

"그 생각도 해 봤소만."

망량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와 숙부는 오늘 율주가 찾아올거라는 걸 짐작 못한 게 아니오. 그래서 이 귀중한 경험과 정보를 그냥 날릴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힘드오."

"무슨 말이야?"

"십이율과 백련교는 괜히 협약을 깬 게 아니오. 몇 달 전부터 황궁의 움직임이 더욱 수상해졌고 여산(驪山)의 유적에서 본격적으로 대규모 제례를 위해 의식과 인력을 동원했소. 필시 황궁이 뭘 꾸미는 걸 느꼈기에 나머지 2대세력이 반발한 것이오."

나는 듣고 있다가 짐작가는 게 있어서 말했다.

"궁극의 초상기인!"

"그렇소, 백웅. 여산의 진시황릉에 매장되어 있던 신혈(神血)을 이용해서 백발의 초상기인을 완성하려는 의식이 지금 벌어지고 있소. 그래서 이 시점에서 황궁을 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소."

"단지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휴전협약의 공증인이라서 망설였던 거군."

"그렇소. 황궁은 지금 쳐야 하오. 그리고 여산의 초상기인을 우리의 소유로 만드는 게 중요하오."

망량이 말을 이었다.

"2대세력의 초고수들을 상대로 초상기인을 빼돌리는 건 필시 쉽지 않은 일일 것이오. 그들이 초상기인에 대해서 어디까지 파악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의 전력을 다해도 힘들지도 모르는거지."

"그래서 내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건가."

"그렇소. 우리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어서는 안 되오. 죽을 때 죽더라도 미래로 나아갈 단서를 얻어야 하는데, 백웅 당신이 그 모든 정보를 취합해야만 하오. 은빛 봉황조각만 하더라도 정보를 미처 얻지 못하고 죽은 바람에 당신은 10회차 이상 더 굴러야했잖소."

"......"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내 수련시간을 생각한다면 동료들만 위험한 사지(死地)에 보내는 게 맞지만, 그렇게 되면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는 황궁과 초상기인에 대하여 명확한 정보도 없이 수박겉핥기만 맴도는 상태가 수십 회차나 계속될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백우선으로 상황을 미리 예지해보는 건 어떻겠소?"

"무의미하오. 어차피 관측때문에 결과가 달라지는 게 뻔한데다가 우리는 여산 진시황릉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곡해된 미래시가 전달될 것이오."

"흠..."

그 때 가만히 듣고 있던 검마가 말했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정보를 듣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군."

"그래야겠습니다."

이윽고 우리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기다리고 있는 응접실로 향했다. 무사시는 얌전히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이청운이 그의 옆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무사시가 흥미롭다는 듯 입을 열었다.

"굉장하군. 이런 초고수가 무명(無名)으로 머무르고 있었다니... 너희 반천맹은 율주의 말대로 대단한 잠재력이 있군."

이청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나와 싸우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해도 참아 주시오. 이번 일이 끝나면 시간 될 때 어울려 주겠소."

"그 말을 믿지."

아무래도 무사시는 이청운의 경지를 파악하고 그에게 무형의 도발을 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 응접실에서는 절대지경 고수들의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했다.

"일시는 사흘 후 술시(戌時), 여산(驪山). 그곳에 있는 진시황의 무덤에서 황궁이 흉계를 꾸미고 있으며 전날 황제를 비롯한 명제국의 고관(高官)들이 방문한다. 우리는 그들을 진시황릉 내에서 일망타진할 생각이며 너희들도 많은 도움을 줘야할 것이다."

"밤이구려."

"경비는 금의위와 동창이 평소에 모든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怪人)들도 있다고 한다. 사악한 술수로 개조된 놈들인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율주의 전언도 있었다."

아마도 용인과 마인들일 것이다.

' 뭐, 힘으로 밀릴 일은 없겠지만...'

일개 무림세력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황궁의 전력이지만 이쪽에도 백련교주나 십이율주, 그리고 호법사자 등이 있다. 상대편에 동급의 강자가 없는 이상 애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마음속이 불안한 건 왜일까?

미야모토 무사시는 이후 사소한 계획을 다 전달하고는 장령곡을 나섰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신형이 완전히 지평선에서 사라지자 이청운이 입을 열었다.

"저 자는 전투광이군."

"위험하겠습니까?"

"저 자와 내가 다시 마주쳤을 때는 전투를 피할 수 없을걸세.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한 칼을 대어보고 싶어하는 광기어린 마음이 느껴져."

"......"

삼황오제한테도 신살참을 날리는 똥배짱이니 오죽하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무식한 자존심과 오기만큼은 천하제일인 미야모토 무사시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그럼 차라리 결전 당일에 이청운 네가 저 놈을 유인해.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변수를 제거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한결 편해질테니까."

"십이율주나 교주는?"

"우리 쪽에도 비밀병기가 있잖나."

"그런가."

비밀병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백웅. 십이율주는 혼란을 틈타서 백련교와 우리까지 한번에 진시황릉에서 제거해버리려고 할 거다. 그 날은 십이율과도 일전을 벌인다고 생각해야 하니, 네가 꼭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일?"

"그건..."

파앗

나는 이윽고 선지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선지자가 나를 보기 위해서 나오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거래를 걸었다.

"선지자!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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