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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64화 (56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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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적월과 녹월을 잡아온 후 이청운은 그들을 무릎꿇려놓고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는 쌓아온 진신절기를 모두 내게 말해라."

"종사!"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그러자 적월은 손을 후들거리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체념한 표정이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녹월은 적월과는 달리, 상당히 의혹어린 표정으로 이청운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종사의 경지에 우리 따위의 무공이 왜 필요하십..."

퍼억!!

"으윽."

예고없이 이청운이 녹월의 팔을 공격해서 덜렁거리게 만들었다. 한 순간에 뼈만 빠지도록 타격을 가했는데 녹월은 반항도 못하는 기색이었다. 이청운이 그를 고요히 노려보며 말했다.

"뇌신류의 종사가 너희에게 그걸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나?"

"... 없습니다."

"지금은 경고다. 한번만 더 그딴 소리를 하면 그땐..."

스스스

이청운의 손에서 뇌기가 스멀스멀 기어나오자 결국 녹월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래야지."

이청운은 내게 전음을 보냈다.

[ 이 놈들에게서 절학을 캐내는데는 대략 한 달쯤 걸릴듯 싶네. 자네는 그 때까지 조금 기다리게.]

[ 알겠습니다.]

나는 시간이 남은 김에 천우진에게 가 보기로 했다. 장령곡 뒤편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던 천우진은 곡괭이를 든 채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또 왜? 왜 나를 귀찮게 하는거지?"

"한 달 동안 술법 좀 가르쳐 줘."

"2년동안 열심히 해도 안 되는데 한달갖고 뭘 하려고?"

"그러니까 경지를 올릴 필요는 없는데 단순히 [힘]만 갖고 휘두를 수 있는 술수를 가르쳐주면 되잖아.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쓰고싶어."

내 말에 천우진이 이해한 듯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요괴가 요력(妖力)을 휘두르듯이 음신지력을 방출하는 방법을 알고싶다는 거냐."

"그래."

"그건 나보다는 그 여우가 더 잘 알고 있겠지. 나는 힘만을 무식하게 휘두르는 방법을 좋아하지 않아. 날때부터 숨쉬듯이 힘을 통제해 온 요괴라면 요령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인간보다는 요괴가 더 적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요괴는 반마(半魔)이기 때문에 삼황오제에서 비롯된 힘을 사용하는데 더 익숙할 것이기 때문이다.

파앗!

나는 곧장 동영으로 이동해서 미호를 찾아갔다. 그리고 미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고, 미호는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흐음. 요력을 휘두르는 요령을 인간에게 가르쳐 본 적은 없는데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미호가 말을 이었다.

"그 음신지력이란 걸 내게 조금 건네줄 수 있겠느냐?"

"응?"

"직접 그 힘의 성질을 느끼지 않으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알았어."

나는 미호의 손을 잡고, 이번에 전욱의 동상에서 얻은 음신지력의 일부를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우우우

대략 3년치의 힘을 전해주었을까? 갑자기 미호가 크게 비명을 질렀다.

"아아!!"

"미, 미호?"

하지만 미호는 내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그녀는 전에 없이 들뜬 표정이었는데 묘하게 홍조까지 돌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강하게 갈구하듯이 말했다.

"계속... 계속. 더 줘!"

뭔가 위험하다.

나는 미호와의 힘의 연결을 빠르게 끊어냈다. 그러자 미호는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걱정스러워서 미호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미호가 손을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한동안 숨을 몰아쉬고 있던 미호가 한참 후에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굉장하구나... 단숨에 강해진 느낌이다."

"그래?"

"과연 신의 힘이구나. 방금 전에 힘이 너무 갑자기 강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음신지력에 중독될 뻔 했다는 소리인가?

"흠..."

아닌 게 아니라 미호는 힘을 받기 전보다 더 꼬리의 빛이 밝아지고 강력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방금 전해준 게 전욱의 동상에 남겨져 있던 음신지력의 절반 정도였다는 걸 생각하면 굉장한 고효율이었다. 미호는 욕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좀 더 음신지력을 얻으면 확실히 알 수 있겠다."

그리고 미호가 내 상체를 더듬자 나는 기겁해서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잠깐, 잠깐, 잠깐만! 이럴 때가 아니잖아."

미호의 눈은 요호(妖狐)의 그것으로 빛나고 있었다. 언뜻 호기심 넘치는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방금 전에 줬던 것만큼만 줘 보거라."

"안돼!! 정신 좀 차려."

그러자 미호는 뭔가 깬듯한 표정으로 내게서 물러섰다. 그리고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미안하다 백웅. 요괴는 인간보다 힘에 민감한지라... 마치 천상의 미주(美酒)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영력이 희박한 지상계에 온지 수백년이나 된지라."

"휴. 그래서 힘의 운용은 알 것 같아?"

"그래. 네게 힘을 직접 쓰는 법을 가르쳐 주마."

우우웅

미호가 반요의 형태로 변신하며 자신의 아홉 꼬리를 곧추세웠다. 그러자 꼬리 주변에 희미한 여우불이 떠올랐는데 미호는 여우불을 모아서 하나의 광구를 만들었다. 미호는 광구를 내 앞에 갖다주며 말했다.

"요력이란 건 무공이나 술법과 다르다. 무공이나 술법은 특정한 기술을 이용해서 힘을 끌어오는 거지만, 요력은 체력(體力)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체력?"

"이 광구를 만져보거라."

광구에 손을 뻗는 순간, 나는 광구를 통해서 힘이 혈관으로 직접 스며드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이 광구에 깃들어있는 힘이 매우 단순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알아챈 표정을 짓자 미호가 광구를 거두며 말했다.

"알겠지?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기경팔맥에 기를 쌓고 호흡을 운용하고, 술법을 키우려면 팔괘와 음양오행을 깨닫지만 요력이란 그렇게 귀찮은 기술이 필요없어."

"흐음."

"그저 본질을 육체와 함께 움직일 뿐. 말 그대로 숨쉬듯이 쓰는 것이고 그 자체가 요(妖)이며 력(力). 그래서 요력은 체력인 거다."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

내공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기혈에 힘을 집중하며 힘을 도인(導引)하지만, 요력은 그럴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술법의 경우에도 이치에 따라 술수와 영력을 감응시키지만 요력은 그럴 필요가 없다. 숨쉬듯이 체력처럼 단순무식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요력이었다. 내가 이해한 표정을 짓자 미호가 깔깔 웃었다.

"아하하. 무공이나 술법은 그렇게 어려워하면서 요력에 대해서는 상당히 감각이 뛰어나구나. 하급요괴들은 이런 요령을 쉽게 깨닫지 못하는데."

"어? 나 재능 있는거야?"

"그래.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내 설명 한마디로 깨달은 걸 보니 감각이 있구나. 몸으로 때우는 거라서 그런가?"

"헤헷."

나는 씨익 웃었다.

' 뭐야. 나도 재능있는 분야가 하나 정도는 있었잖아.'

내심 미호의 칭찬에 기분좋아서 헤실거리고 있을 때 미호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음신지력을 지금 얻어보니, 이건 일반적인 요력보다 몇 차원이나 높은... 진정한 신의 힘이다. 다만 이 또한 음(陰)에 속하며 마(魔)의 성향을 띄고 있어서 요력처럼 다룰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력을 다루는 요령만 익숙해지면 곧장 쓸 수 있을 것이다."

"오오! 어떻게 쓰는데?"

"우선 [방출]부터 해 보자꾸나."

미호가 두 손을 모아서 마치 장풍(掌風)을 쓰는 듯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기합을 내질렀다.

"하앗!!"

콰광

그러자 미호의 두 손에서 바람이 튀어나가더니 전방의 기둥을 박살냈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 황당해서 말했다.

"응? 장풍을 쏘라는 거야?"

"아니야. 너는 무림의 고수이니 기를 모아서 장풍을 쓸 수 있겠으나 이건 순수한 요력을 모아서 그냥 기합과 함께 날려버리는 거다. 네게 잠재되어있는 음신지력을 끌어내서 장심에 집중한 다음 떨쳐버리기만 하면 돼."

"흐음..."

나는 미간을 좁히면서 미호의 말대로 해 보았다.

콰광

"되네!"

"역시 감각이 좋구나."

"하하핫."

이게 얼마만에 받아보는 제대로 된 칭찬인가! 나는 음신지력을 다루는 요령에 대해서 빠르게 감을 익힐 수가 있었다. 아직까지 잘 모르는 부분은 있었지만 반나절 정도 미호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니 적당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현화]로 방패나 창의 형태도 만들 수 있다."

치리링

미호가 가르치는대로 하자 손쉽게 음신지력을 끌어내서 원하는 무형의 창이나 방패로 구현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물론 굳이 이걸 만든다고 해서 전력이 늘어난 건 아니었고 전술이 다양해졌다는 수준이었다.

미호는 나를 가르치다가 잠시 쉬며 말했다.

"사실 요괴가 요력을 쓰는 건 물고기가 물을 다니는 것과 같아서 어려운 건 아니니라. 다만 인간인 네가 이렇게 익숙하게 쓰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

"......"

"그리고 요력은 쓰기 쉽고 단순한 대신 무공이나 술법처럼 깊은 잠재력이 없다."

"무슨 소리야?"

"무공이란 건 내공이 전부가 아닌데다가 심오한 기술으로 힘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느냐? 술법또한 마찬가지고. 하지만 요력이란 건 일차적인 힘 그자체일 뿐이므로 기술의 운용으로 타고난 힘차이를 극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

"그래서 요괴들은 인간처럼 누대를 이어 싸움기술을 향상시키는 게 아니라 요력의 크기부터 늘리려고 하는거지. 인간을 잡아먹거나 은둔해서 영력을 쌓거나 악행을 저지르거나 고대의 유물을 얻거나..."

나는 미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힘 그자체라서 쓰기 쉽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명백한 것이다. 나는 다소 실망해서 말했다.

"그럼 요력의 운용을 발달시켜서 성장할 수는 없겠군."

"아니다. 나는 방금 기술로 힘차이를 극복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지 아주 없다고는 하지 않았느니라."

"응?"

"요괴에게도 요괴만의 상위 전투법이 있느니라. 적어도 격이 나 정도는 되는 상위요괴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지만."

사앗

미호가 갑자기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받자 잠시 머릿속이 몽롱해지며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반신이 꿈틀거렸다. 나는 내 몸의 변화를 감지하자마자 기를 끌어올려서 전신을 가라앉혔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미호의 술수에서 벗어났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외쳤다.

"미호! 왜 갑자기 나한테 매혹을 거는거야?"

"이게 바로 상위 전투법이니라."

"뭐라고?"

"요력을 닦아서 단순히 공방력을 향상시키는 건 어느 순간 효율이 떨어지지.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사는 무식한 괴물이 아니고서는 다들 순수한 전투력은 고만고만해. 그래서 요력을 모은다음, 자신의 요괴로서의 본질에 맞게끔 [특수능력]을 발달시키는 게 바로 상위 요괴이다."

특수능력!!

뭔가 멋진 어감이 들어서 내가 미호의 말에 정신을 집중하자 미호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천계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매혹의 특수능력을 발달시켰느니라. 또한 다른 요괴들도 자신에게 맞는 괴이(怪異)의 특징을 살려서 특수능력을 쓰지. 설녀(雪女)라든가 텐구, 누라리횬, 가샤도쿠로, 사토리, 요스즈메 같은 놈들은 정말 특이해. 너도 아오키가하라 수해에서 여러 대요괴를 쓰러뜨리며 느꼈을 것이다."

"음... 그랬던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 무식한 대요괴들을 쓰러뜨리다가 종종 괴상한 능력을 발휘하던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든 기경팔맥에 힘을 모아서 극복하긴 했지만 위험할 때도 있었다.

"근데 그놈들은 대개 힘만 쓰지 기괴신랄한 능력을 많이 쓰지는 않던데?"

"그 수해가 이상한 장소인 거다. 워낙 마(魔)의 기운이 충만한 곳이라서 특수능력을 발달시킬 필요도 없는 덩치큰 대요괴가 한가득이지 않느냐. 힘이 압도적이면 기술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

"흠, 그랬군."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미호는 시비들이 가져온 차를 한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네가 음신지력을 휘두르는 데 익숙해진다면 [특수능력]을 따로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내가 특수능력을?"

"그것은 혈인능력(血認能力)이라고 볼 수 있지. 너는 굉장한 음신지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삼황오제 전욱의 먼 후예이자 신손(神孫)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느냐? 격으로 치면 그 이상 갈 수 없는 대요괴라고 해도 되겠지."

"......"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나는 미호의 말을 듣다가 묘하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느냐?"

"아니 나는 인간인데... 그런 특수능력을 발달시키면 좀 안 좋은거 아니냐? 점점 인간에서 멀어지잖아."

그러자 미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우후후, 그깟 인간 포기하면 뭐가 어때서 그러느냐? 지금 네가 지닌 음신지력은 모든 요괴와 마(魔), 술법사들이 목숨걸고 갈망할 정도로 대단한 보물이다. 굳이 인간을 고집할 이유는 없어보이는데."

"난 요괴나 귀신이 되긴 싫어!"

"맘대로 하거라. 어차피 네맘대로 할 것 아니냐?"

미호가 조그마한 화과자를 한입 집어먹으며 말했다.

"한 마디 해두자면 네가 음신지력을 대성한 경지에서 발달시키는 특수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대한 능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과 싸우려고 한다면 그런 능력을 포기할 수 없지 않겠느냐."

"으음..."

나는 고민했다. 왜냐하면 미호의 말은 언뜻 달콤해보이기만 했으나 거기에 숨겨진 말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음신지력을 대성했을 때 나는 인간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 대라신선에 못지않은 대귀신(大鬼神)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강력한 요괴로 변이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내가 지닌 힘은 엄청나게 강해지겠지만,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게 가능할까? 종족 자체가 변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미호에게서 특수능력을 발달시키는 요령에 대해서 한 달 동안 더 듣고 나서 중원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청운에게 가기 전에 천우진에게 들렀다.

"천우진. 내가 음신지력을 대성했을 때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을까?"

그러자 천우진이 엄청나게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생각 못하는거냐?"

"응?"

"제길... 늘 바보같은 질문만 들고 와서는."

그는 짜증을 내더니 말했다.

"걱정 마라. 음신지력이 아무리 강해져도 네가 지금에서 변할 일은 없을 거다."

"왜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지?"

"음신지력은 전욱의 힘이지. 근데 전욱의 힘으로 네 본질을 지배하는 게 가능할까? 본체가 강림했어도 네 혼은 소멸하지 않았잖아."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고개를 홱 돌리며 말을 이었다.

"모두가 너같은 빡대가리한테 기대를 거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

완전히 납득된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일단 물러나서 이청운에게로 가기로 했다.

이청운은 내가 찾아오자마자 말했다.

"백웅. 적월과 녹월에게서 웬만큼 비기를 알아냈다네. 이제부터 뇌신류 권술과 잡기(雜技)를 수련하세나."

"알겠습니다."

나는 힐끔 적월과 녹월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한 달 동안 얼마나 시달렸는지 핼쑥해진 몰골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동정심은 들지 않는게, 모든 뇌신류의 숙원을 포기하고 혼자서만 잘먹고 잘살기를 추구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청운 밑에서 이후로 약 반 년 동안 뇌신류의 권술과 잡스러운 기술을 중점으로 수행했다. 지금껏 뇌령인이나 귀혼일파의 기술을 기본수준으로 익혀왔기 때문에 나머지 과정을 습득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야. 이런데 꽁꽁 숨어있었구나."

장령곡의 입구.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 앞에서 한 괴인(怪人)을 맞이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 괴인이 일방적으로 장령곡을 찾아왔으며, 장령곡 근처 십 리 일대에 펼쳐둔 감지결계에 괴인의 존재가 걸린 것이다. 그리고 괴인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장령곡 입구까지 걸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함부로 공격해서 제압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강아지탈을 쓰고 있는 그 자에게 망량이 걸어나가서 포권했다.

"반천맹주 망량이 십이율주를 뵙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랬다.

장령곡에 혼자서 덜렁 나타난 것은 개탈을 쓰고 있는 십이율주였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장령곡 근처를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별 건 아니고, 하나 말할 게 있어서 왔어."

"어떤 용건이신지."

망량은 그가 어떻게 이 곳을 알아냈는지 묻지 않았다. 십이율주가 여기 혼자 왔을 리가 없을 뿐더러 이미 알아낸 시점에서 수백 개의 계책과 흉계가 소용돌이치는 상황이다.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상대의 의도를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어진 십이율주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랑 백련교주는 이제 황궁을 멸망시킬 생각이거든. 너희 반천맹도 도와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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