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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다음 날, 나는 망량선사에게 찾아갔다.
' 천우진이 없어서 그런가... 한산한 느낌이군.'
천우진은 현재 흑요석을 주고 영입한 상태라서 귀찮은 일 없이 망량선사의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안쪽으로 걸어가던 중, 슬슬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닫고 외쳤다.
"망량선사! 할 말이 있다."
스르륵
어느 새 나는 수면에 빠져들었고 늘 망량선사를 보던 오솔길에 와 있었다. 망량선사는 이번에도 검은 고양이의 형태를 하며 오솔길 너머에서 걸어왔다.
[ 또 여동빈을 불렀구나.]
아니나 다를까, 내 옆에는 여동빈의 영혼이 소환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수면에 들기 직전에 여동빈을 부르는 방식으로 꿈의 공간에 그를 초대한 것이다. 여동빈은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망량선사가 내게 물었다.
[ 이번엔 무슨 일로 찾아왔지?]
"너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망량선사의 묘안(猫眼)이 감정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네 입으로 말해라. 섣불리 자신의 말에 취하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태허와 혼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그리고 그걸 융합하려면 어떻게 하는지도."
[ 왜 그걸 알고 싶어하지?]
나는 망량선사의 반문에 여동빈을 잠시 째려보며 말했다.
"여동빈님께서 무신(武神)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시는데다 그 방법을 알아야 앞으로 신보다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사실 나는 어제 이청운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직후 여동빈을 소환해서 무신이나 태허, 사겁에 대한 것을 캐 물었다. 하지만 여동빈은 묵묵부답 나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하며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아서 아무런 단서를 얻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껏 여동빈과 함께 한 시간이 있는데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자 조금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 신보다 강해진다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앞으로 내가 칠요(七曜)를 쓰면 [옛 지배자] 놈들을 때려잡을 수 있게 된다는 걸 뜻하지. 혼돈과 태허가 융합된 힘으로 칠요의 힘을 증폭시키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냐?"
[ ......]
망량선사가 천천히 걸어오더니 지붕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 만두처럼 웅크린 채 하품을 했다.
[ 가능한 일이지.]
됐다!
나는 내심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실 자신있게 외치긴 했지만 그게 될지 어떨지는 긴가민가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옛 지배자]와 동급 이상인 신적 존재인 망량선사에게 그게 가능하다는 걸 인증받은 셈이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자 망량선사가 말을 이었다.
[ 이상한 일이지만 네게서는 충분한 인과(因果)가 느껴지는군. 백여 세는 커녕 서른도 살지 못한 인간에게서 보통 인간의 수백 배에 이르는 인과가 느껴지는 괴이(怪異). 하지만 따져묻지 않고 혼돈과 태허에 대해서 말해 주겠다.]
"어? 공양 안 해도 되는거야?"
이 녀석이 왠일이지?
나는 사실 이번 교섭에 쓰려고 내가 갖고 있는 보물 중 절반 이상을 갖고왔다. 상황에 따라서는 다 내놓을 각오까지 하고 어제 제갈사, 망량과 의논해서 목갑에 두둑히 보물을 채워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망량선사는 아무 대가 없이 정보를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의아해하자 망량선사가 꼬리를 흔들었다.
[ 놀랄 필요 없다. 충분한 인과가 존재한다면 내가 정보를 주는 것 또한 인과율. 수미쌍관(首尾雙關)의 일리(一理)에 불과하지. 운명의 흐름 중 일부에 불과하다.]
"... 괜히 어려운 말 쓰지 마! 머리만 복잡하단 말이야."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을 냈다. 저 놈은 이따금씩 알아듣지도 못할 이야기를 해서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독특한 재주가 있는 것이다. 망량선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혼돈이란...]
"......"
[ ......]
"......"
[ ......]
뭐지?
왜 갑자기 말을 안 하는 거지?
나는 망량선사가 말을 하다말고 멈추자 당황해서 놈을 바라보았으나 잠시 후 망량선사가 하는 말에 황당해졌다.
[ 배가 고프군...]
"어?"
망량선사가 일어서서 앉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 어서 간식을 내놔라.]
"뭣... 공양물은 필요없는 게 아니었냐!"
내가 당황해서 외치자 망량선사가 또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그리고 현재 나는 다중차원 속의 가능성 중에서 네 인식으로 파악된 본질으로 현신(現身)한 상태. 한없이 고양이에 가까운 본성을 유지하고 있으니 간식을 먹고싶은 것이다. 이는 인과율의 부작용을 피할 방법으로 현몽을 택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
"응? 아니 무슨..."
망량선사가 나를 강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그러니까 간식을 내놔라.]
나는 옆에 있던 여동빈을 쳐다보았다. 그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 왜 쳐다보는가, 연자여.]
"혹시 검선께서도 망량선사를 만날 때 이런 적이 있었습니까?"
[ 나를 만나실 때는 저런 모습이 아니셨다.]
"어떻게 하죠?"
[ 알아서 하라.]
제길... 안 도와주겠다는 말인가!
나는 별 수 없이 목갑 안쪽에 넣어두었던 온갖 물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쪽에 쟁여두었던 돼지고기를 망량선사에게 내밀자, 그는 잠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불쾌한 듯 말했다.
[ 돼지고기는 싫다.]
"어... 어떻게 하라고."
[ 네놈은 간식을 주지 않는 건가...]
망량선사가 왠지 실망한 목소리로 고개를 홱 돌렸다.
나는 다급해져서 외쳤다.
"잠깐 기다려봐!"
뭐지? 고양이가 뭘 좋아하지?
나는 급격히 당황하며 목갑을 뒤졌다.
' 어라? 이건 왜 넣었더라...'
나는 안쪽에 왠지 계퇴(鷄腿)가 있어서 일단 급한대로 꺼내서 내밀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술을 진탕 처먹을 때 안주가 아쉬워서 넣어뒀던 모양이다.
"이건 어때?"
[ 흐음... 괜찮군.]
닭다리의 냄새를 맡은 망량선사는 만족한 듯 발을 내밀어서 천천히 뜯어먹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망량선사에게 간식을 줬다!
잠시동안 맛있게 계퇴를 즐기던 망량선사가 기분이 좋아진 듯 입을 열었다.
[ 혼돈이란 '아버지'이며 이 세상의 근원. 전 우주를 채우고 있는 근간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족이 많든 적든간에 혼돈을 내재하고 있으며 신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혼돈을 갖고 있다는 거냐?"
[ 그래. 설령 미물이라 할지라도 혼돈을 지니고 있다.]
망량선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 그리고 태허는 '끈'이다.]
"끈?"
[ 인과율의 끈이지. 또한 그 끈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이다.]
"잘 이해가 안돼. 끈이 어쨌다는 거야?"
그러자 망량선사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 인과율이란 인(因)이 있으니 과(果)가 있다는 뜻이지. 인과가 이어진 상태, 그리고 인과를 잇는 끈. 그것을 바로 인연(因然)이라고 하며 모든 것은 인연 내에서 생멸(生滅)한다.]
"......"
[ 태허는 평상시에는 기(氣)로 존재하지만 분해되면 '인과율의 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 혼돈과 태허라는 건 뭐가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나는 너무 어려운 설명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며 대꾸했다.
"어... 어려워서 잘 모르겠는데 쉽게 설명해 주면 안돼?"
[ 기다려 봐라.]
그렇게 말한 망량선사가 천천히 계퇴를 뼈까지 발라먹기 시작했다. 한동안 츄릅거리며 맛있게 먹던 망량선사가 뼈다귀를 한쪽으로 치우며 말을 이었다.
[ 인간(人間)이 혼돈과 태허를 융합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너희는 애초에 혼돈에서 빚어진 종족이며, 태허 또한 누구든지 지니고 있지. 그래서 기초조건을 다 깨달았다면 갓난아이라 하더라도 네가 말한 혼돈과 태허의 융합을 시도할 수 있다.]
"정말이냐!"
[ 그렇다. 신(神)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란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空)에 도달해서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방법을 가르쳐 줘!"
이제야... 이제야 절망적인 신과의 격차를 해소할 방법이 생기는 건가!
완전히 신을 뛰어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게 그 때의 교주만큼의 힘이 생긴다면 큰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칠요를 이용해서 힘을 증폭시키면 힘이 몇십 배나 불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잠재력이 [옛 지배자]의 목에 송곳니를 들이댈 수 있게 되면 내 전생모험도 순탄해질 게 분명하다!
위잉
망량선사가 앞발을 들더니 갑자기 웬 광구(光球)를 떠올렸다.
[ 자. 내면의 혼돈을 끌어모아서 태허를 통해 인과율에 접속해라. 그걸로 융합은 끝이다.]
"......"
[ 아주 쉽다.]
"아, 아니 그걸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가르쳐줘야 할 거 아냐."
[ 흠.]
망량선사는 광구를 없애더니 말했다.
[ 그러고보니 신(神)은 인과율의 세계를 직접 볼 수 있으니 쉽지만 필멸자에게는 무리겠군. 너희 필멸자들이 이 경지에 도달하려면 세 가지의 수련이 필요할 것이다.]
"세 가지?"
[ 첫째. 너희 스스로 보유한 혼돈을 느끼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기(氣)를 근원소의 경지까지 분해해서 태허(太虛)로 만들고, 그 태허를 느끼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융합하는 순간의 거대한 공(空)을 버텨낼만한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
"......"
나는 황당해하며 말했다.
"혼돈을 어떻게 느끼고 움직이는데?"
[ 너희 인간에게도 혼돈이 잠재되어 있으나, 전 우주에서 최하위종족이라서 극미량에 불과하지. 혼돈의 양을 높여서 마치 물 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혼돈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럼... 기를 어떻게 분해해서 태허로 만드는건데?"
[ 혼돈은 기를 분해하는 성질이 있다. 압도적인 혼돈을 응축시키면 그 공간에서는 기가 소멸되며 가장 작은 본질인 태허만이 남을 것이다.]
"으으음."
나는 망량선사의 설명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 그래서 인간 중에서는 백련교주만이 융합의 경지를 깨달은 거구나!'
망량선사의 말에 따르면 융합의 경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딱 하나의 절대적인 조건이 있었다.
압도적인 혼돈의 힘을 내면에 보유하고 있을 것!
거대한 혼돈 속에 잠겨 있어야 혼돈을 느껴서 사역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혼돈의 양이 많아야 기를 분해해서 태허로 되돌릴 수가 있다. 이 조건을 만족하려면 압도적인 혼돈의 힘을 갖고 있어야 했고, 인간세상에서 그 정도의 혼돈을 보유하고 있는 건 원영신으로 혼돈의 옥좌에서 힘을 무한정 빌려오는 백련교주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백련교주만이 융합의 경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리라.
아마도 대라신선조차도 불가능한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오로지 혼돈과 계약한 백련교주이기에 깨달을 수 있었던 세계의 비밀이었으리라.
나는 망량선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융합의 경지를 깨달았다 치고, 어느 정도 수련을 해야 삼황오제와 대등해질 수 있을까?"
[ 아주 오랫동안.]
"그러니까 어느 정도?"
[ 융합의 경지를 수련한다 함은, 필멸자의 몸으로 혼돈의 신성(神聖)을 갈고닦아 신(神)이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적어도 수백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수천 년이 지나야 신좌의 세계에서도 쓸만해질 것이다.]
망량선사가 꼬리를 빙빙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 세계의 정점에 가까운 삼황오제의 본체와 대등히 싸워보려면 적어도 수만 년은 수련해야겠지.]
"......"
이게 뭐냐. 장난하는 거냐?!
그런 말이 목구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삼황오제의 본체가 지니고 있는 압도적인 힘을 직접 느껴본 입장이었으므로 절망 속에서도 내심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인류 따위는 언제든 멸망시킬 수 있는 절대신의 힘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닌 것이다.
' 아냐. 포기하긴 일러...'
단순한 수련의 기간만이라면 수만 년이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시간을 쌓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칠요가 있기 때문이다. 삼황오제의 1푼에 불과한 힘이라 해도 칠요를 이용해서 힘을 증폭시키면 어쩌면 놈들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내심 큰 단서를 얻어서 기뻐하고 있을 때 망량선사가 슬며시 여동빈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하긴, 다른 방법도 있는 모양이지만...]
"응?"
망량선사의 시선을 받은 여동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짧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나는 계속 질문했다.
"망량선사. 나는 지금 전욱의 힘인 음신지력을 갖고 있는데 이것도 혼돈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순수한 혼돈이라기엔 한차례 가공된 힘. 전욱도 가면을 쓴 자로써 자신이 보유한 순수한 혼돈을 내보일 수는 없었겠지. 그래서 그걸 혼돈 그 자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안 되는 건가?"
[ 힘이 정점에 이르러서 경계를 뚫는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그렇군."
그렇다면 최다 13번 정도의 죽음을 겪는다면 나 또한 혼돈의 실체를 느끼고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음신지력이 정점에 이르러서 술법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전욱의 동상에서 음신지력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외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 않을까?
갑자기 앞날이 확 트인 기분이 들어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절대지경에 이르려고 온갖 고생을 했는데 길이 뻥 뚫린 기분이 든 것이다. 내가 히죽거리고 있을 때 망량선사가 천천히 일어나서 오솔길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 간식은 맛있었다. 다음에도 계퇴를 준비하도록...]
나는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일어서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흠칫했다.
"......!!"
여동빈의 사당.
그 앞에 검선 여동빈이 물질계에 현신해 있었다. 그것은 내 동의없는 현신으로서, 오로지 대라신선으로서 쌓아왔던 힘을 소모해서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여태껏 전생을 해 오면서 여동빈이 자발적으로 현신한 적은 없었기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동빈이 사당 앞에 서서 묵묵히 그 사당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연자여."
"왜... 왜 부르십니까?"
그러자 여동빈이 내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괴물을 잡으려고 괴물이 되려는 것인가."
"......?"
"...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그렇게 한탄하듯 중얼거리던 여동빈이 말을 이었다.
"허나, 나 여동빈, 그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겠다..."
스스스스
여동빈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천계로 돌아갔다. 물론 아직도 나와의 단말은 이어져 있기에 부르면 오게 될 테지만, 왜인지 나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여동빈이 앞으로는 나와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었다.
"어라?"
나는 문득 그 사당 안쪽에 뭔가 공양물이 놓여있는 걸 발견하고 가까이 갔다.
어둡고 좁은 여동빈의 사당 안쪽에는 웬 녹슨 철검(鐵劍)이 한 자루 놓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 검을 들어서 휘둘러 봤는데, 역시 낡아빠졌기만 할 뿐 아무런 신기도 영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공을 잘못 불어넣었다가는 부숴질까봐 섣불리 사용할 수가 없었다.
' 누가 이런 걸 여동빈한테 바친 거지?'
병기로서는 빵점이다. 누가 이런 쓸모없는 칼을 여동빈에게 공양한 것일까?
하지만 왠지 방금 전 현신했던 여동빈은 이 칼을 유심히 보고 있었던 것 같다.
"... 돌아갈까."
나는 낡은 검을 여동빈의 사당 안에 놔두고 장령곡으로 되돌아갔다.
이제 실마리를 잡았으니 더 강해지는 일만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