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558화 (55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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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일련의 작업이 끝난 후 다시 장령곡으로 왔다. 그리고 이제 술법의 수련을 접고 다시 무공에 매진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제갈사가 단호하게 내 성장방향에 대해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힘'이 정점에 달해서 음신지력으로 경계를 돌파하기 전까지는 술법을 더 공부하는 건 시간낭비야. 차라리 무공이나 다시 연마하러 가라."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이청운을 찾아갔다.

"하압!"

이청운은 장령곡 한켠의 수련장에서 극호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다. 극호는 엄청난 속도로 팔영분신(八影分身)을 만들며 이청운과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 이청운은 나와 싸울 때와 마찬가지로 극호의 수준에 맞춰서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요란한 강기가 튀기며 두 사람의 창극이 수십 차례 부딪혔고, 그때마다 칠대절학의 절초가 변화를 만들어냈다.

꾸웅

"크윽."

그러던 중 이청운이 가볍게 파고들어서 극호의 허리를 가격했고, 극호는 고통을 억누른 신음소리를 흘리며 멀리로 날아갔다. 대련을 승리로 끝낸 이청운이 내쪽을 돌아보았다.

"왔군."

"늘 이런 식으로 대련합니까?"

"하루에 여섯 번씩."

"너무 격하지 않습니까?"

나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수련장 일대는 격돌 때문에 제 형태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부숴져 있었다. 제갈사가 수련장 수리비용이 많이 든다고 투덜대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련을 하는 당사자들은 무시무시한 체력과 내공소모를 늘 반복하게 되리라.

"극호는 이게 맞아. 대련으로 성장하는 무인이지."

"진소청은..."

"그에게 맞는 수련법도 다르다네. 지금 요결(要決)을 가르치는 중이지."

"요결요?"

"진소청은 폐관수련을 시키고 있네."

그렇게 대꾸한 이청운은 나를 고요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 눈빛이 워낙 심원해서 내가 움찔하며 말했다.

"무...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백웅. 자네가 무공수련을 멈추고 다른 분야를 공부하러 간 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했네. 이대로 자네의 부족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뇌신지혼의 길을 걷게 한다면 결국 심마(心魔)에 빠져들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네. 정말 나로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지."

운을 띄운 이청운이 널부러져 있던 극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극호. 여기로 와라. 너도 들어야 할 이야기다."

"네, 종사(宗師)."

극호가 내 옆에 앉았다. 그는 내게 히죽대며 말했다.

"어이. 잘 지냈냐?"

"그럭저럭."

그러자 이청운이 입을 열었다.

"백웅, 이전에 자네에게 절대지경까지 다섯 단계의 관문이 있다 했지."

"그랬었죠."

"후반부의 두 단계는 단순 명료해. 뇌신지혼의 전수와 수련이야. 하지만 그걸 자네가 할 수 있을 리 만무했기에 나는 뇌신류 무예의 정수(精髓)를 가르침으로서 지닌 바를 최대한 소화하는 수준까지는 올리려 했어. 자네가 묘예의 역을 익히고 뇌신류 권술만 좀 더 숙련되면 재능의 유무와 관계없이 거기까진 충분히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

이청운은 팔짱을 꼈다.

"... 헌데 자네가 가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더군. 나는 그 동안 뇌신류 종사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그게 뭡니까?"

"바로 교주(敎主)가 남겼던 이야기일세. 자네는 전생(轉生)을 하면서 아주 귀중한 실마리를 찾아낸 거였어."

"......?"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이청운이 말했다.

"기억나는가? 자네는 백련교주가 용화수(龍華樹)를 죽였다가 되살리는 기적같은 장면을 본 적이 있지."

그 말에 나는 퍼뜩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건 18회차, 백련교에 입교해서 교주의 제자로 들어가던 시점의 이야기였다. 비록 어이없게 사망하긴 했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 그 때 교주와 무예의 문답을 나눴었죠."

"그 때의 이야기를 잘 떠올려보게나."

나는 턱을 괴고 기억을 되살렸다.

[ 백웅이여. 그대는 기(氣)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지금까지 무극(武極)에 이르기 위해 무수한 수련을 거치던 도중,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지. 그것은 내가 이룬 원영신(元靈身)이 신허(神虛), 즉 태허(太虛)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 태허(太虛)란 기(氣)를 일컫는 말이다. 태허즉기(太虛卽氣), 기가 흩어진 모습이 바로 태허인 셈.]

[ 보라. 이 세상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 지금은 이해를 할 수 없겠지. 그러나... 천하에서 단 한 사람, 그는 태허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사겁(四劫)에 이르러 있다는 사실도...]

[ 그는 지금은 죽었지.]

분명히 그런 말을 했었다.

그 때 교주가 하도 의미심장하게 말을 했기에, 나는 그게 절세지경의 무공경지에 도달하는 단서라고 생각해서 이후의 생에서 교주의 말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럴듯한 성과는 없었으며 그저 망량이 화요를 탐색하던 중에 자신의 생각을 몇마디 말해준 게 전부였다. 이후에는 온갖 상황에 휩쓸려서 정신이 없었기에 다시 건드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나는대로 이야기하자 이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태허즉기(太虛卽氣). 그건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일세."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너무 형이상학적이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청운은 껄껄 웃었다.

"사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네."

"네? 이청운 님도요?"

"절대지경이라고 해서 같은 절대지경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각자가 자신의 무류에서 절대자에 도달한 종사이기에 같은 경지에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현묘함이 존재하지. 나는 그저 교주가 의념천주를 세우는 요령을 설파한 줄 알고 있었네."

이청운의 표정이 한층 굳어졌다.

"허나 요즘들어 칠대절학과 팔선신공을 수련하며 갈수록 경지가 심후해지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네. ... 어쩌면 그때의 교주는 내 상상보다 더 뛰어난 경지에 이르러있었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뭔가 한탄하듯 말했다.

"천지의 기(氣)가 취산공취(聚散攻取)함은 백 가지로 다르지만 태화(太和)는 서로 부딪혀 인온굴신(絪縕屈伸)하므로 한계가 없다. 이 말도 기억나지?"

"네. 교주가 대라신선의 보패를 맞이하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지금 자네에게 요체를 말해주지. 저 말은 어려워보이지만 다른 게 아니야."

이청운은 눈을 빛냈다.

"태허가 중요하단 걸세. 태허는 절대지경조차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실마리일세."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입니까?!"

"나도 저 구절이 의아해서 횡거의 저서를 좀 더 찾아봤네. 아니나 다를까 교주는 그 구절을 고스란히 인용한 것 뿐이더군. 허나 무무명이며 역무무명진이라 해석한 건 바로 불가의 공(空)일세."

"중구난방이군요."

"내 생각에, 교주는 횡거나 불가의 이론을 문자 그대로 가져와서 무공의 깨달음으로 쓰려고 한 건 아니라 보네.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격이라고 해야할까."

이청운이 자못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이론이 자신의 깨달음을 은유해서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하기 때문에 가져와서 쓴 것 뿐이란 말일세. 실제로 교주가 깨달은 건 전혀 다른 분야인 게 분명해. 그리고 내가 연구하던 중 요체만을 뽑아낸 결과가, 바로 태허 그 자체였네."

"어렵습니다..."

이청운의 말이 너무 깊어서 나는 따라가지 못해 끙끙거렸다. 그건 나 뿐만이 아닌지, 옆에 앉아있는 극호도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극호가 갑자기 내 등을 팡팡 두들기며 말했다.

"야! 이해 못해도 일단 열심히 들어."

"윽..."

그러자 이청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너무 말을 빙빙 돌렸군."

"아닙니다."

"좀 더 쉽게 말해주지. 본디 횡거가 태허를 설명한 까닭은 자신의 이론인 도학을 설파하기 위함이었네. 헌데 백련교주는 횡거의 도학에 무무(無無)를 논함으로써 공(空)을 붙여버렸지. 무(無), 공허(空虛)... 하지만 그 허무의 세계에서도 태허는 존재한다는 모순일세."

나는 이청운의 말에서 뭔가를 알아차렸다.

"교주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무(無)라는 말입니까?"

"그렇네.

이청운의 말이 이어졌다.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 이상하지 않은가? 이건 궁극의 모순일세. 하지만 교주는 그 모순이 존재한다는 걸 자기자신의 몸으로 깨달았어."

"몸으로 깨달았다고요?"

"원영신(元靈身)."

"......?"

"교주는 원영신(元靈身)이 신허(神虛), 즉 태허(太虛)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자네에게 솔직하게 토로했네. 그럼 원영신은 어디에서 비롯된 거였을까?"

"원영신을 신과의 계약을 통해 받았다고 했으니 혼돈의 옥좌에서 힘을 빌려오는 거였지요."

내가 겨우 이해한 기색이자 이청운이 말했다.

"교주는 기보다 더욱 본질적인 태허, 그 자체가 지닌 무한의 가능성을 깨달은 것이라 보이네.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이네만... 교주는 자신이 소유한 혼돈의 힘 속에 태허가 내포되어 있는 걸 깨달았다고 생각하네."

"혼돈 속에 태허가 있다고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그게 방금 내가 이야기했던 [모순]일세. 혼돈 속에 태허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면 굳이 불가의 공을 이야기할 이유가 없어."

이청운이 손에 깍지를 꼈다.

"아마 교주는 태허의 실체에 대해서 단 한가지 사실을 깨달은 걸세."

"어떤 사실입니까?"

"태허는 불멸(不滅)일세."

"예?"

이청운은 힘을 주어 강조했다.

"그러니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세. 우주의 중심에서 불경한 일언을 토해내면 삼천세계를 멸한다는 궁극의 마신(魔神)에게서 빌려온 혼돈의 힘이 바로 원영신이지. 그래서 그 혼돈은 존재만으로도 기를 멸해버리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궁극의 본질이 기에 존재한다는 말일세!"

"......!!"

"바로 그게 태허라는 존재일세. 또한 그렇기 때문에 교주는 원영신의 혼돈을 직접 휘두르는 게 아니라 의념절기와 기를 이용한 온갖 절학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세."

나는 이청운의 말을 알아듣자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 그건 말도 안되지 않습니까?"

그렇다.

방금 이청운이 설명한 것은 궁극의 모순이었다. 혼돈이란 모든 것을 멸해버리는 힘인데, 그 혼돈 속에서도 태허라고 하는 본질은 살아남기 때문에 기를 사용할 수 있다. 혼돈속에 태허가 내포되어 있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인 것이다.

이청운이 훗하고 웃었다.

"말도 안되지만 내가 1년동안 교주의 말을 심사숙고한 결론은 그것밖에 없네. 교주는 혼돈과 태허가 양립함을 알게 된 것일세. 혼돈의 힘을 휘두르며 동시에 기와 의념의 힘을 사역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었던 거네."

"음..."

"그리고 이건 또 하나의 거대한 의미를 갖게 되지."

나는 이제야 이청운이 말하는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속에 남아있던 교주의 한 마디를 읊조렸다.

"[ 이를 깨달으면 인간이 신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리라.] ..."

"바로 그거지."

이청운은 말하다가 신이 난듯 손가락을 딱하고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교주는 혼돈과 태허의 힘을 융합해서 함께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일세. 그 힘으로 인간은 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일세."

나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교주가 대라신선 3명을 홀로 쓰러뜨렸을 때... 그리고 투선 여동빈과 싸울 때 혼돈의 형태로 몸을 변화시켰던 걸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네. 교주가 변신했던 건 바로 혼돈과 태허의 융합체 상태였던 거야. 원영신에 있던 원래 힘이 아니라 그가 연구해서 발전시킨 변신형태였네."

이청운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아마 예상되는 그 융합형태는 공(空)의 체현. 그렇기에 교주는 불가의 이론으로 그 경지를 은유한 거야."

아귀가 맞아들어간다.

지금까지 교주가 난데없이 혼돈을 품은 형태로 변신했을때 저게 대체 무엇인가 고민해 왔었다. 원영신에 자체적으로 포함된 변신능력인가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교주가 혼돈의 힘과 태허의 힘을 감응시켜서 힘을 폭주시킨 초형태였던 것이다.

그 때 듣고 있던 극호가 말했다.

"하지만 종사님. 백련교주의 연구가 신을 뛰어넘었다기엔 좀 약한데요?"

"극호."

극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19회차에서 싸웠던 교주의 능력은 막강했고 사도나 마왕급이긴 했겠지만... 진짜 [옛 지배자]의 수준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극호의 말에 내심 동의했다.

진짜 [옛 지배자]의 힘이라면 아무리 온갖 신기의 힘을 얻은 투선 여동빈의 힘으로도 토벌할 수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나는 이미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기를 모아서 여동빈과 함께 해신부터 잡으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힘을 모아도 해신의 힘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청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때의 교주가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 생각해 보게. 단독으로 천계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옛 지배자]의 휘하로 들어가서 보호받으려 했지. 자신의 최대전력이 어떤 한계가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던 거야. 여기서 미루어볼때 교주가 생각하는대로 혼돈과 태허의 융합으로 신을 뛰어넘는 힘을 얻으려면 아주 오랜 수행기간이 필요하다고 추측할 수 있네."

"수행기간이라..."

"자세한 건 교주에게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법문(法文)이라는 게 수상쩍어."

나는 반문했다.

"법문이요?"

"백련교주는 자네가 전생모험을 하는 동안 아주 일관된 목표를 세우고 있었잖은가. 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법문을 찾는 게 우선일세. 그건 분명히 세상을 구하는 것 이외의 이유가 존재한다고 보네."

이청운이 약간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무생노모의 법문. 그걸 얻으면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네. 교주는 법문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의 힘을 증폭시켜서, 나아가서는 융합체의 힘으로 신을 뛰어넘으려 했을지도 몰라."

"......!!"

이청운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백웅, 극호. 지금 짐을 싸서 출발하세. 이미 제갈사에게 정보를 다 전해들었네."

"어디로 말입니까?"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의 집으로."

"거긴 왜..."

"도학자인 횡거나 왕수인이 우연의 일치로 태허의 이론을 주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그들은 분명히 혼돈과 태허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어. 왕수인과 직접 이야기해 봐야 태허에 대한 의혹을 완전히 씻을 수 있을 걸세."

"의혹을 씻으면..."

저벅

이청운은 한걸음 내딛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는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인간 또한 교주처럼 혼돈과 태허를 융합하는 기법을 알아내서 인간의 무공으로 신(神)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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