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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해골의 머리에는 왕관이 씌여져 있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분명히 저 해골은 왕의 유해일 것인데, 이 넓은 공간에 오직 옥좌와 해골이 황량히 놓여있을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해를 눕혀서 안장하는 게 정상이었고, 저렇게 앉은 채로 죽는 것은 군주의 유해에 대한 모독에 가까웠다.
망량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손을 뻗었다.
후두두둑
다음 순간, 땅에서 사람만한 흙인형이 만들어졌다. 토둔술(土遁術)을 사용한 망량은 흙인형들을 전진시켜서 해골 근처로 향했고, 흙인형이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함정이 없는지를 살폈다. 확인작업이 끝난 후 망량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고 해골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망량이 해골에 손을 갖다대었다.
우우웅
해골에게서 빛이 나더니, 옥좌의 등 뒤에 은빛의 길이 깔렸다. 자연스러운 은광과 함께 뒤편에 숨겨져 있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그 공간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안쪽에는 정돈된 묘역(墓域)이 펼쳐져 있었고 한켠에 온갖 서책을 봉인해둔 서가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놀라게 한 건 묘역 그 자체가 아니었다.
스스스...
[ 그대들은 누구인가?]
커다란 묘역 여기저기에서 영혼들이 걸어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제왕의 관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는 예를 갖췄고, 망량이 말했다.
"발해국의 열왕(列王)이시여. 저희는 발해의 멸망이유를 좇아 본의아니게 여기까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 무엇이...!!]
[ 감히 발해의 왕실을 지나인이 침범했단 말인가!!]
쿠우우우
일순간 군왕의 영들이 노했고 강대한 압박이 느껴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영의 분노 때문에 기혈이 뒤엉켜 죽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같이 단련되어 있는데다 망량 또한 뛰어난 술법사로 발전해 있었기에 그다지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대신에 망량은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는 은빛 봉황조각을 모두 얻어서 들어왔으니 왕실에 들어올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옥좌를 통해 문이 열렸겠습니까?"
[ 으음!]
"또한 그대들의 안식에 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묘역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단지 알고 싶은 게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 알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웅성웅성
군왕의 영들이 당황한 듯 뭔가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들 중 덩치가 마치 거인처럼 커다란 영이 나와서 말했다.
[ 무엇을 알고싶단 말인가?]
"발해국은 본디 강성하여 북방민족들과 정면으로 겨루었던 나라입니다. 허나 그런 강대한 나라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 ......]
"저희는 그 이유가 칠요(七曜)에 있을거라 생각하고 찾아왔습니다. 발해에 칠요가 봉인되어 있었다는 정보를 알아냈기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 오오...]
[ 칠요...!!]
군왕의 영들은 칠요라는 단어를 듣자 혹자는 흐느끼고, 혹자는 찬탄하고, 혹자는 아쉬워하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제일 앞에 나와 있던 거대한 군왕의 영이 말했다.
[ 역시 그랬구나... 멸망 후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누구든지간에 칠요를 찾아 예까지 찾아올 거라는 예언은 이루어졌구나...]
"예언이라고요? 누가 예언을 했습니까?"
[ 고왕(高王)이시다.]
"......?"
망량은 약간 당황한 듯 대꾸했다.
"고왕이라 함은 발해의 초대 군왕인 대조영(大祚榮)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렇다... 그분께서 예언을 남기셨다.]
"그 분께서는 이 열왕의 묘역에 계시지 않습니까?"
[ 고왕께서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생몰에 방랑을 떠나셨다... 당연히 여기 있을 리가 없지...]
"으음! 그렇다면 당신은..."
거인같은 체구의 군왕령이 말했다.
[ 나는 이 발해의 멸망을 지켜본 마지막 군주, 대인선(大??)이다.]
나는 망량과 대인선의 대화를 들으며 상황이 어찌된 건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발해의 초대왕인 대조영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는 천부적으로 대단한 용맹과 지혜를 타고난 영웅이었다고 한다. 그가 아무래도 칠요에 관한 예언을 남긴 후 왕의 묘역에 묻히지 않고 실종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대조영이야말로 발해를 만든 창조자인데 어찌 열왕의 묘역에 남지 않고 떠났단 말인가?
대인선 왕이 말했다.
[ 우리 발해가 멸망한 원인은... 신보(神寶) 토요 팔괘도가 폭주했기 때문이다. 거란이 강했다 하나 결코 그들의 힘으로는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었다.]
"팔괘도가 폭주했다고요? 왜입니까?"
[ 누군가가 팔괘도를 훔쳐서였다.]
대인선 왕이 고통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 그 자는 스스로를 상관완아(上官婉兒)라고 밝힌 여인이었다... 그 마녀가 팔괘도를 훔치고 용맥이 자극받아 화산이 터지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수도를 포기했고... 이어진 거란의 습격에 멸망했지...]
"......"
[ 원통하고 원통하도다... 그 마녀만 없었어도... 저주받을 상관완아...]
뭐라고?
익숙한 이름이 들린 것 같았지만 아직 내 머릿속에서는 인과관계가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망량은 뭔가를 알아챈 듯 표정이 더욱 냉정하게 변했다. 그가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습니다. 잘하면 저희가 토요 팔괘도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 역시 그런가... 오라, 은빛 봉황이여...]
키이이잉
갑자기 거대한 아지랑이처럼 은빛이 흩어졌다. 청은의 섬광이 마치 강물처럼 쉴새없이 넘실거리더니 하나의 구체를 만들어냈고, 그 구체가 무언가를 만드는 듯 꿈틀거렸다. 이윽고 구체의 내부에서 하나의 모양이 만들어졌는데 그 모양이 완연한 은빛 봉황이었다.
은봉황의 크기는 사람이 가슴에 가득 안을 정도였다. 은빛 봉황을 만들어낸 대인선 왕이 우리에게 은빛 봉황을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 이 은빛 봉황은 사실 머나먼 세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대대로 발해 왕실의 보물이었다... 또한 기억을 전송하는 능력이 있으니, 역대의 왕들은 이 봉황을 이용하여 빠르게 힘과 지혜를 쌓아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이 왕실의 열쇠 또한 은봉황(銀鳳凰)에서 떼어낸 조각으로 만들었던 것... 힘을 불어넣으면 진실을 얻으리라.]
대인선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나의 뒤를 이어서 발해를 일으키려 한 자들이 찾아오길 바랬건만... 종말의 때가 머지 않았으니 하는 수가 없구나... 부디 이 정보를 유용하게 써 주기를 바라겠다...]
"책을 가져가도 좋겠습니까?"
[ 마음대로 하라...]
망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 왕실은 그대들 발해의 왕족이 종언에 대비하여 만든 안식처군요."
[ 흐흐... 많은 걸 알고 있군... 그러하다...]
망량은 회의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왕실에 쳐진 술법방어는 굉장히 강합니다. 발해의 강력한 대술법사들이 수백 명이나 달려들었으니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정말 이런 방법으로 파멸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우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왜인지는 기억을 전송받으면 알 수 있을 터... 그럼 안녕이다...]
스르르륵
대인선 왕을 포함한 다른 열왕들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침입자가 아니라 생각하고 다시 안식에 들러 가는 것이다.
"......"
완전히 묘역에서 영의 기척이 사라지자, 망량은 말없이 서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 이 서가의 책을 모두 목갑에 담아 주시오."
나는 망량의 말대로 책을 모두 목갑에 쓸어담았다. 그리고 망량에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바로 은봉황의 기억전송을 하는 게 낫지 않겠소?"
"내 생각도 그렇소. 이 왕실에서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렇게 대꾸한 망량은 자신이 들고 있던 은봉황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이건 백웅 당신이 제일 먼저 얻어야 하오."
"음?"
"기억 전송능력... 이건 틀림없이 선지자의 종족인 [위대한 종족]과 관련이 있는 유물이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연왕국의 시절부터 발해까지 계속 이어져 왔고 기록도 있는 거겠지."
"아!"
"이미 선지자에게서 기억전송술법을 얻은 당신이라면 쉽게 이 은봉황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봉황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엉거주춤 서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발동해야할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내가 당황해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이청운이 말했다.
"힘을 불어넣으라 했지. 그러니 기(氣)를 흘려넣어 보게."
"알겠습니다."
우웅
그 순간이었다. 기에 반응한 은봉황이 영기를 내뿜더니 내 머릿속에 거대한 정보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
엄청난 기억의 탁류(濁流)! 나는 역대 발해의 군왕들이 저장해놓았던 기억과 온갖 지식 따위가 흘러들어오는 걸 느끼며 전율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걸 받아들이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구토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나는 오랜 세월 기억을 다루면서 정신력이 향상되었고 기억용량도 커졌으므로 침착하게 견딜 수 있었다.
' 맞아. 이건 선지자의 [위대한 종족]의 술법이다...'
나는 흑요석을 매개로 직접 시전하지만, 이 은봉황에 쓰인 금속은 외계(外界)의 것이다. 그래서 기만 불어넣으면 자동으로 발동하게끔 설정해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술법의 흐름을 읽어내며 내가 갖고 있는 기억전송술과 아귀를 맞춰보았다.
' 그래. 이걸 이렇게 해서...'
이계의 언어로 된 지식들이 머릿속에 맴돌고 춤춘다. 그 와중에 나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지만 아무튼 요령을 알 수 있었고, 기억을 차곡차곡 정돈하기 시작했다. 정리가 다 끝나자 기억은 한층 안정적으로 내 머리에 자리잡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장령곡으로 동료들과 함께 이동해서 은봉황을 통해서 발해의 기억을 공유했다.
파앗!
"......"
모두가 침묵했다. 침묵을 제일 먼저 깬 것은 제갈사였다.
"조각이 맞춰졌군."
"그렇습니다, 숙부."
"이제 한 걸음 나갈 수 있겠어."
제갈사는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상관가의 시조는 상관완아(上官婉兒)로 측천무후의 제일가는 책사이자 측근이었지. 그리고 이 기억에는 발해의 대술법사들이 쳐둔 결계를 뚫고, 그 상관완아가 마도의 비술으로 토요 팔괘도를 강탈하는 기억이 있다."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다가 반문했다.
"그 말은 상관완아가 발해를 멸망시킨 주범이라는 건가?"
"글쎄.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상관완아의 목표는 딱히 발해를 멸망시키는 게 아니었을 테니까."
"뭐? 무슨 뜻이야?"
"그녀는 말 그대로 토요 팔괘도만을 필요로 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음..."
나는 팔짱을 낀 채 생각하다가 말했다.
"칠요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의 힘을 키우려 한 건가?"
"결과적으로는 토요를 얻었으니 그렇게 된 셈이지만 그것도 원래 목적은 아닐거다."
"응?"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내가 볼 때 상관완아 자체보다는 그녀의 배후가 중요하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충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사. 잘 못 알아듣겠으니 설명 좀 해 줘."
"씨벌 빡대가리."
내가 답답해서 말했지만 제갈사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지못해 옆에 있던 망량이 말했다.
"백웅. 토요 팔괘도는 지금 암천향에 있소. 그 이유가 무엇이오?"
"응? 그건..."
그러고보니 토요는 왜 암천향이 있더라?
나는 생각하다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곤 말했다.
"복마전(伏魔殿)이 그걸 가져갔기 때문..."
"그렇소. 그게 바로 [망량]이 당신에게 말했던 정보. 그러나 우리는 지금 대인선 왕의 증언과 은봉황의 기억을 통해서 그 진짜 실행범이 누군지 알게 되지 않았소?"
"... 아."
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외쳤다.
"상관완아가 복마전의 부하였다는 말이오?!"
"부하였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상관완아가 그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 확실하오. 그리고 복마전은 아마 측천무후 생전부터 활약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
"......!!"
"상관완아는 토요 팔괘도를 훔쳐낸 후 모종의 수단으로 암천향에 존재하는 신에게 그걸 바쳤을 것이오. 그 신은 당연히 현재 황궁을 뒤에서 지배하는 존재이자 복마전의 중간관리자인 마신(魔神). 그렇기에 현재 신에게 바쳐진 토요 팔괘도는 암천향에 있는 것이오."
"뭔가 좀 이상한데."
듣고 있던 검마가 팔짱을 꼈다.
"내가 역사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측천무후는 만당 때 사람이고 상관완아도 마찬가지일세. 허나 발해가 멸망한 것은, 은봉황의 기억에 따르면 그로부터 적어도 이백여년 후의 일..."
"그렇습니다."
"칠요 중 토요 팔괘도를 얻어서 신에게 공양하고, 그 대가로 측천무후를 신으로서 암천향에 승천시켰다는 건 아귀가 맞아. 하지만 팔괘도를 훔친 건 측천무후의 공식적인 사후 200년이나 지난 일이란 말일세. 시기가 안 맞는단 말일세."
검마의 말대로였다. 만당시대는 지금부터 천여년 전이고, 발해멸망은 대략 칠팔백년 전이었다. 시대의 차이가 현격한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둘은 서로 다른 사건입니다. 측천무후는 만당시대에 이미 신이 되었고, 상관완아는 그 건과는 별개로 토요 팔괘도를 훔친 것이죠."
"왜 그런거지?"
"그건 본인에게서 듣기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망량은 손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긴가민가하던 게 확실해졌습니다. 발해의 술법사들이 목숨을 바치고 마지막으로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토요 팔괘도는 복마전의 지배자의 소유이긴 하지만 측천무후의 궁전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목숨걸고 암천향까지 갔다온 자의 체험이니."
"그렇다면 암천향에 가게 되더라도 측천무후의 궁전만 찾으면..."
"네. 토요 팔괘도를 회수할 수 있는 거죠."
그랬다.
지금까지 토요 팔괘도를 언젠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찾을 엄두를 못냈던 이유는, 그게 암천향에 있다는 건 알지만 도대체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라신선조차 미쳐버린다는 암천향에서 천지를 뒤지고 다니다 보면 목숨이 몇백개라도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토요 탐색을 미뤄왔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은봉황으로 전해받은 기억에 따르면, 토요 팔괘도는 확실히 암천향 측천무후의 궁전에 있는 게 확실해진 것이다.
' 죽음을 감수하고라도 한번이라도 그녀의 궁전에 도달하기만 하면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면 금요와 일요를 제외한 모든 칠요의 위치가 확실해진다. 내가 손을 불끈 쥐자 제갈사가 옆에서 이죽거렸다.
"뭐, 안 좋은 사실도 하나 있지만."
"뭔데?"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칠요 중에서 토요 팔괘도는 해방상태인 채, 신격(神格)이 된 측천무후의 소유란 거지... 그럼 측천무후는 얼마나 강할까?"
"......"
"뭐, 신이 칠요를 쓰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는 말 안해도 알겠지."
"빌어먹을!"
나는 또 하나의 난관을 느낄 수가 있었다.
측천무후의 궁전에 도달하더라도, 측천무후를 이기고 토요를 강탈할 수 있을까?
인간이 칠요를 썼을 때도 무시무시한 힘의 상승이 가능한데 신이 쓰는 칠요를 이길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 때 극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칠요 팔괘도는 모든 술법을 봉인하는 거잖아. 그럼 무공을 익혀서 엄청 쎄지면 해볼만하지 않을까?"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측천무후도 신이긴 하지만 소신격 수준일테고."
"삼황오제급은 아니란 거잖아. 절대지경이면 어떻게든 승산이 있겠지?"
"아마도."
"결정났네."
극호가 낄낄거리며 내 등을 두드렸다.
"자 노오오오오오력이다!!"
"......"
"노력해서 절대지경 가자! 친구야."
"제길."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내심 크게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
' 도대체... 뭐야 이건!'
나는 동료들과 대화를 끝내고 나서 혼자 있을 때 여동빈을 불렀다.
[ 연자여. 왜 나를 불렀는가?]
"여동빈. 미안한데 하나 여쭤볼 게 있습니다."
[ 무엇인가?]
나는 솔직하게 질문했다.
"저... 종리권의 축복을 받았는데... 지금 재능이 향상된 거 맞습니까?"
진짜로 몇 년간 죽자사자 수련만 한 것 같다. 스승도 이청운이니 더할나위가 없다. 그런데 겨우 검뢰지경을 뚫었을 뿐 그다지 큰 향상은 없다. 아니, 재능이 늘었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난 축복을 받은 게 맞긴 맞는가?
[ ......]
"여동빈?"
여동빈이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 전혀...]
"......"
[ 그런 종류의 축복이 아니다. 역시 뭔지도 모르고 받았구나, 연자여...]
"도대체 종리권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 후우! 그 축복은 열여섯 글자로 불린다.]
이어진 여동빈의 말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 무사태평만사평안일념일로용맹정진(無事太平萬事平安一念一路勇猛精盡)의 축복.]
"... 네? 그게 무슨 축복이죠?"
여동빈은 내 눈을 외면했다.
[ 수련자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열심히 성실하게 도만 닦을 수 있게 집중력을 키워주고 주위의 상황이나 운명을 급박하지 않게 가라앉혀준다.]
"......"
[ 생전에 내가 천둔검법을 열심히 수련할 수 있게 스승께서 그 축복을 주신 적이 있지... 나는 너무 주위의 잡사한 일에 많이 휘말렸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이... 이런... 이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진짜... 쓰레기다!!'
종리권의 축복.
그것은 그냥 열심히 수련하기 좋게 주위를 조용하게 만들어주는 축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