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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선!
개방의 전대방주이자 현 방주의 스승이었고,정파의 천하삼대기인중 한 사람이었다. 이로써 나는 천하삼대기인인 태산노옹(太이老祭),신승 (神僧)에 이어 걸선(乞仙)까지 모두 만나게 된 것이다. 걸선의 외양은 꾀죄죄한 거지 옷을 입고 있으나 평범한 외모의 장년 사내였다. 묘하게 졸린 눈이 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양 옆에는 똑같이 걸인의 옷을 입은 일남일녀가 시립해 있었다.
걸선은 마테오 리치에게 말했다.
“황금에 버금가는 대가를 가지고 왔소만 이쪽의 조건을 들어 보시겠소이까?”
“기꺼이.”
“이 악기와 음보(音譜)를 드리지.”
걸선의 양옆에 있던 일남일녀가 각각 옥색 찰현악기와 하나의 책을 꺼내서 마테오 리치에게 내밀었다. 마테오 리치가 그 악기와 음보를 받아 들자 걸선이 설명했다.
“그 악기는 판호(板胡)라고 하며, 따로 붙여진 이름은 파달건(裝關乾) 이라오. 그리고 파달건을 연주하려면 거기에 있는 음보와 음공을 수련 하면 되는데,무공의 이름은 심향천음(尊香天音) 이오.”
“무림의 기보와 음공이군요. 음공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그러자 걸선이 약간 입을 옴작거렸다. 아마 전음으로 마테오 리치에게 설명하는 게 틀림없었다. 한참동안 마테오 리치는 걸선의 전음을 듣다가 말했다.
“훌륭하군요. 이 두 가지는 황금에 뒤지지 않습니다.”
"... !!"
나는 약간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가져온 황금은 성주조차도 놀래자빠질 정도의 거금인데,거기에 뒤지지 않는 가치가 파달건과 심향천음에 있다니? 하지만 망량은 놀라지 않았는지 마테오 리치에게 말했다.
“이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우리는 일대일 거래인 줄 알고 찾아 왔습니다. 만일에 경쟁자가 있다는걸 알면 좀 더 준비해서 왔을 겁니다.”
“으음…. 그것도 맞는 말이군요. 성주께서 실수로 그쪽에게 말씀드리지 못했나 봅니다.”
마테오 리치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고 광동성주는 고개를 외면했다. 아마도 자신의 지인인 걸선이 은빛 봉황조각을 획득하기 쉽게하려고 일부러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게 뻔했다. 나는 내심 화가 났지만 뭐라 하기도 전에 마테오 리치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 두 분께서 최상층에서 상의를 하시지요. 그 곳에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으니,따로 이야기를 하셔서 서로 조각을 얻어야 할 당위성을 논의하시길…. 그 후에 저를 불러 주십시오.”
마테오 리치는 광동성주와 뭔가 이야기하더니 호위병들을 데리고 밑층으로 가버렸다. 순식간에 장내에는 우리와 걸선 일행이 마주보는 상태가 되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천천히 누각의 최상층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그 곳에서 해야 할 것이다. 최상층에 도착해서 걸선과 망량이 큰 탁자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망량이 입을 열었다.
“정파의 최대 명숙이자 그 명성이 하늘에 닿았다는 걸선 선배께서 보물을 탐하여 의리 없이 끼어들 줄은 몰랐소.”
그러자 걸선이 느긋하게 대꾸했다.
“난 은퇴한지 오래고 내 제자인 천룡개가 개방을 잘 이끌고 있지. 뒷방 늙은이가 소일하다가 보물을 물물 교환 하고자 하는 게 그리 잘못되었나? 잘못이라면 우리가 끼어든다는 걸 언급하지 않은 광동성주가 잘못이 있지. 그놈한테 따지게.”
“음!”
망량이 침음성을 홀렸다. 또한 나도 지켜보다가 황당했다.
‘아무리 걸선의 배분이 높고 무림 인이라지만 광동성주를 너무 서슴없이 생각하는군.’
존칭도 생략하고 편하게 부르는데다가 망설임 없이 성주를 비판하고 있다. 성주의 직위가 친왕에 버금가며 일개 성의 지배자라는 걸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우리가 경쟁자 입장이란 걸 생각하면 정말로 후환 따윈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망량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어쩌실 생각이신지? 그 보물에 굉장한 가치가 있다는 건 저도 알아보겠지만,저희도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소.”
“흐음 그런가…. 그럼 이참에 진솔한 이야기를 좀 해 보지.”
걸선은 뒤로 몸을 약간 뉘이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 맞아. 간만에 친구를 봤는데 아는 척도 안하는 못된 놈도 있군.”
"......... ?"
“근골성형을 했으나 내 눈은 속일수 없지. 운(雲).”
그러자 망량의 뒤에 서 있던 이청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네. 나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네.”
“그 못생긴 역용 좀 풀면 안 되나?”
“그러지.”
이청운이 자신의 몸에 기를 일으키자,내가 성형술로 고정시켜서 임시로 바꿔놓았던 외모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번 회담을 대비해서 우리 일행 모두가 성형술로 원래와 외모를 다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청운이 말했다.
“역용술을 한데다가 나와 만난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 어떻게 한 번에 나라는 걸 알아봤지?”
걸선이 졸린 눈으로 끄륵거리며 웃었다.
“크흐. 절대지경인데다 뇌기를 숨긴 자라면 아무리 중원이 넓다지만 자네밖에 없어. 뇌신류의 호법사자 뿐이지.”
“아무튼 간만일세.”
“반갑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다가 전율했다.
‘맞아…. 저 둘은 친구였다고 했어.’
이청운은 평소에 자신의 교우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신이 정파 삼대 기인인 걸선과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넘겼는데 이 자리에서 친구의 재회를 보게 된 것이다. 걸선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흠…. 내가 알기로 자네는 수십년 전 백련교에서 변란이 일어났을때 실종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은거하여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건가?”
그러자 이청운이 대꾸했다.
“오해하지 말게. 나는 반천맹의 주인이 아니야. 그리고 이 자리에도 그저 반천맹주를 돕기 위해 참여한 것뿐일세.”
“호오…? 반천맹은 뇌신류 휘하가 아니란 소린가?”
“그렇네.”
걸선은 뭔가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망량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반천맹주. 그대와 이청운은 무슨 관계지?”
“그 질문에 내가 대답할 이유는 없소.”
“말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중요한 정보를 줄 생각이 없는데….”
“말하면 줄 생각이 있단 말이오?”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지.”
걸선이 유들유들하게 대꾸하자 망량은 냉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그가 어떤 관계든 달라지는건 없소. 우리는 이 자리에 은빛 봉황조각의 소유권을 경쟁하러 왔잖소. 그 일과 상관없는 대답은 할 수없소.”
“흠,좋아.”
걸선은 탕하고 탁자를 쳤다. 그러더니 말했다.
“자네와 이청운의 관계, 그리고 은빛 봉황조각을 왜 원하는지를 말해 준다면 이 경매에서 내 이름을 걸고 당장 물러나도록 하지. 어떤가?”
“안 되오.”
망량의 눈이 한층 더 매섭게 빛났다.
“우린 더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당신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소. 당신 하나를 두려워해서 우리 정보를 내놓는 바보짓을 할 것 같소?”
“까다롭구만….”
“우리야말로 들어야겠소. 걸선 선배는 어째서 은빛 봉황조각을 얻으려 하시는지.”
걸선은 팔짱을 꼈다. 그리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봉황조각을 얻으려 하는 이유는 내게 고대의 유물을 모으는 취미가 있기 때문일세.”
“무슨 소리요?”
“방금 이마두에게 내놓았던 것들도 내가 말년에 소일거리 하다가 얻게 된 보물들이지. 그렇게 사연 있는 보물들을 모으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세. 그러던 중 광동성주가 내게 은빛 봉황조각 이야기를 해서 욕심이 생겼네.”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망량은 그 말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래서 물러나실 수 없단 말씀이시오?”
“자네가 방금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지.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네. 만일 자네들이 대가를 올린 다면,나는 내 제자인 이 아이들을 이마두에게 호위역으로 줄 생각이네"
걸선의 양옆에 있던 일남일녀가 고개를 들었다. 사내는 헌앙하고 훤칠한 외모였고,여인 또한 맑고 아름다우며 청순한 외모였다. 옷을 거지처럼 입었을 뿐 손꼽히는 미인들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건 그들의 외모가 아니었다. 이청운은 침음성을 홀리며 말했다.
“그간 자네가 각고의 노력으로 키워온 제자들인가 보군.”
“알아보았는가? 하하. 내가 심혈을 기울였지.”
자랑스러운 듯 말한 걸선이 남제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 아이들은 겉보기보다 나이가좀 있고,그 대신 내 가르침으로 상당한 경지를 성취했지. 이마두는 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할 게야.”
“사오십 대쯤 되나?”
“뭐 그렇지. 내 밑에서 오래 공부한 아이들일세.”
나는 이청운이 무슨 뜻으로 이야기 했는지 알아첼 수 있었다. 왜냐하면나 또한 무술경지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화의 뜻을 알아챌 수 있도록 망량에게 몰래 순어구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전달했다.
[망량. 저 일남일녀는 모두 초절정 고수요.]
그들의 나이가 사오십 대인데도 겉보기 외모가 이십대인 이유는 이미 강대한 공력과 의념으로 노화를 멈췄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심오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뜻이었다.망량이 당황한 듯 말했다.
[진실이오? 저 자들의 몸에서는 기세가 별로 느껴지지 않소만….]
[그들의 깨달음이 느껴지오. 아마 일부러 힘을 숨기고 있을 거요.]
[고맙소, 백옹.]
망량도 그간 틈틈이 호신용으로 무공을 수련하긴 했지만 술법수련의 비중이 높았다. 그래서 상위급 고수의 경지를 알아볼 수 없을 게 분명했기에 이야기해 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망량에게 정보를 전달하고도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뭐지? 걸선도 초절정고수겠지만…. 초절정고수를 두 명이나 키워낼 수 있단 말인가?’
초절정고수란 중원 아무데서나 발에 치이는 존재가 아니다. 고명한 구파일방의 장로들조차 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 대부분이었고,오랜 세월 기재가 각고의 노력으로 벽을 돌파한 게 초절정이다. 초절정 내에 서도 경지가 많이 나뉘긴 했지만 보통 무림인의 9할 9푼 이상이 초절 정은 커녕 절정지경도 도달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무림문파에서는 초절정의 고수를 양성하려 했으나 그 정도 고수는 키우려고 한다고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백련교는 예외적으로 사대무류의 중심 간부나 원로원 내에서 초절정 고수들이 끓어 넘치는 편이었지만 그들은 성련의 혜택을 받는데다 천년의 세월을 지니고 절세무공을 발달시켜 온 무림최강의 세력이었다.심지어 절대지경인 백련교주가 원로원 고수들을 직접 가르치기까지 했으니 그런 백련교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반박지경의 초절정 고수를 둘이나 키워 내다니,걸선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인물인가? 내가 걸선을 경계하고 있을 때 이청운이 말했다.
“자네가 무림 일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건 알고 있네. 이 자리는 친구인 내 낯을 봐서 양보해주지 않겠나?”
“흐음. 양보라…. 양보….”
걸선은 뭔가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 그는 한참 후에야 눈을 좁쌀만큼 뜨고는 말했다.
“알았네. 반천맹주는 내게 반천맹의 목적을 말해 주게. 그것만 들을수 있다면 물러나겠네.”
“난 이미 무림에서 은퇴한 노구일세. 궁금증만 해결해 주게. 하도 근자에 반천맹의 위세가 드높기에 궁금하구먼.”
잠시동안 망량과 이청운의 눈빛이 오갔다. 망량은 어쩔 수 없는 듯 입을 열었다.
“이 정보를 개방이나 타인에게 알리지 않는다 약속해주신다면 말씀드리겠소.”
“물론. 난 이미 제자였던 천룡개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내 이름을 걸고 지금 들은 정보를 무림에 이야기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반천맹의 목적은 사악한 인신공양을 주도하고 거대한 재앙을 불러오려는 황궁을 견제하여 무고한 민초 들을 구하는 것이오.”
“으음!”
걸선은 뭔가 놀라운 듯 눈썹을 크게 치떴다. 그는 흥미롭다는듯 몸을 앞으로 끌며 말했다.
“황궁이 인신공양을 한다? 그런 증거라도 있는가?”
“충분히 많이 있소. 그리고 그들이 사악한 족속을 소환하여 재앙을 일으키려는 사실도 분명하오. 낙양에서 거대한 사변이 터지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막으려는 것이오.”
“후후…. 후후후!”
걸선이 갑자기 괴이한 웃음을 홀렸다.
그는 한동안 키득거리며 웃다가 말했다.
“재밌어!”“뭐가 재밌단 말씀이신지.”
“아무것도 아닐세. 이걸로 은빛 봉황조각은 자네들 차지일세.”
걸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잘 기억해 두게. 자네들이 나를 건드리지 않는한, 나도 자네들을 건드리지 않을거야…. 난 그저 지켜볼 뿐. 이걸 꼭 명심하게.”
뭔가 의미심장한 이야기 같았다.
이청운이 그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무게 잡는 건 똑같군. 나와 술은 한 잔 할 생각 없나?”
“크흐. 난 노래나 부르며 지내겠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살펴 가게.”
걸선은 이윽고 제자들과 함께 밑으로 내려가서 참여를 취소하고 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테오 리치는 황금과 은빛 봉황조각을 바꾸며 우리에게 말했다.
“한 쌍의 조각을 모두 얻게 되어 축하드립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그 은빛조각이 어떤 왕실의 봉인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왕실의 보물을 얻으시려는 거겠죠.”
마테오 리치가 껄껄 웃더니 말했다.
“하지만 저와는 관련 없는 일입니 다. 제가 원하는 건 아주 색다른 보물이니까요.”
순간,나는 그가 원하는 게 뭔지알 것 같았다.
[나는 예수회의 명으로 대명 제국에 파견 나와 있는 마테오 리치라고 하네…. 그리고 이 쪽은 내 호위역인 한스 탈호퍼일세.]
[에메랄드 타블렛이 황궁에 있다는 정보를 얻어서 와 봤지만 엄청난 난리군….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닐 듯하니 이만 가 보겠네.]
그랬다. 과거 내 전생에서 분명히 마테오 리치는 황궁이 멸망하는 그순간에도 굉장한 검호로 보이는 탈호퍼와 함께 끼어들어서 황궁에 있는 에메랄드 타블렛을 찾으러 온 것이다.
‘아마 저 자가 원하는 건 수정석비 겠군.’
수정석비는 내가 진작에 얻을 수있었지만 세계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황궁의 손에 내버려둔 채 관망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수정석비를 얻어서 마테오 리치에게 준다면 전적으로 그의 협력을 얻을 수있는 게 아닐까…? 그러자 망량이 나직이 말했다.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향후 반천맹과 그쪽이 협력할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호오! 그건 아주 환영입니다. 안그래도 제 쪽에서 이야기를 꺼내려 했습니다.”
마테오 리치가 자신의 품속에서 십자가를 꺼내들며 말했다.
“예수회의 교리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을 들으시면 널리 인간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테오 리치가 말했다.
“저희 예수회는 이 땅에 숨어든 강력한 마도사를 찾아내고, 나아가서는 수호의 힘을 강력하게 할 수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하여 동방에 왔습 니다.”
“무슨 소리요?”
“음…. 조금 복잡한 이야기입니다.혹시 이 세상에 마(魔)가 존재함을 아십니까?”
“충분히 알고 있소.”
망량은 우리가 이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 그러자 마테오 리치는 크게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설명하기 편하겠군요.”
이윽고 그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말했다.
“서방은 현재 마도(魔道)에 물들어 정기가 쇠하고 사악한 존재들이 발호하는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신(邪神)의 교단인 [검은 형제단]이 암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때문에 수호자께서 스스로를 봉인하셨고,서방의 인간을 지켜 주는 결계는 크게 약해졌습니다….”
“음….”
“후우,뿐만 아니라 마도사들은 동방에 존재한다는 전설의 보물을 찾아서 너도 나도 중원에 왔습니다. 이대로라면 서방뿐만이 아니라 동방도 그들의 야욕에 희생될 게 뻔하니 우리 예수회에서는 동방행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생면부지의 동방인들을 구하려고? 좀 다른 목적이 있을 텐데.”
“물론 그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수호자님을 구할 수 있는 강력한 유물을 동방에서 찾기 위해서였지요.”
예수회의 목적은 금요를 스스로의 힘으로 봉인하고 있는 서방의 수호자를 구줄하는 것!그 봉인을 강화시키거나 수호자를 깨우기 위해 강력한 유물을 찾으러 동방에 온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망량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은빛 봉황조각을 너무 쉽게 포기하신 게 아니오? 그 말대로라면 금보다 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마테오 리치가 말했다.
“아니오. 저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그 조각으로 열어서 얻게 되는 보물 중에는 저희가 원하는 게 없다고 확신했기에 교환한 것입니다. 차라리 돈으로 다두왕국과 광동성에 예수회의 가르 침을 전파하는 게 나으니까요.”
“가르침을 전파하면 뭐가 나아지오?”
“저희가 모시는 수호자님도 인간의 신앙으로 힘이 강력해지십니다. 그렇기에 동방에서 신앙을 확대시킴은 곧 수호자가 강해져서 이족과 [옛 지배자]의 권족을 견제하는 일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군!”
서방의 수호자도 민중의 믿음으로 자신의 힘이 강해지는 신적인 존재인 모양이었다. 여러모로 예수회가 동방에 온 이유가 납득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슬픈 눈으로 자신의 십자가에 잠시 기도를 하더니 말했다.
“우리 예수회의 형제들은 에메랄드 타블렛이라는 보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 보물은 모든 연금 술의 기원이자 보고(寶庫)이며 가장 강력한 유물 중 하나…. 헤르메스 메기스토스가 승천하기 전 남긴 최고의 보물입니다. 그 보물을 생 제르맹이 동방으로 홈쳐서 달아났으니 반드시 그걸 찾아내야 현자의 돌을 제작해서 수호자님을 구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나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어리둥절 해서 물었다.
“현자의 돌? 그걸로 수호자인지 뭔지를 구출할 수 있소?”
“그렇습니다. 현자의 돌은 이 세계 전체의 균형을 뒤흔들 수 있으니 반드시 인간의 손에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자의 돌을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그 에메랄드 타블렛입니다.”
“현자의 돌을 얻으면 불로불사가 된다는 건 알고 있소. 불로불사,무한의 동력,만물의 창성이 가능하다고….”
나는 제갈사에게서 기초 연금술을 배우며 현자의 돌에 관한 능력을 모두 전해 들었다. 그러자 마테오 리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자의 돌을 얻게 된다면 반드시 말해주십시오. 예수회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사겠습니다. 열국의 모든 왕권(王權)을 얻어서라도 보답하겠습니다.”
현자의 돌에 숨겨진 능력이 그렇게 어마어마한데 고작 예수회의 모든것을 얻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하지만 그들이 서방의 인간을 구원 하기 위해 마지막 희망을 걸고 동방 까지 온 걸 생각하면 뭐라 할 수가 없었다. 피부색깔과 머리색깔은 다르지만 그들 또한 의인(義人)인 것이다.우리는 마테오 리치에게서 물러나서 곧장 발해의 왕실 앞으로 갔다.망량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끼워 넣겠소.”
달칵
한 쌍의 은빛 봉황조각이 끼워지는 순간이었다.
파아아앗!!!
거대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왕실의 문이 끼긱거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격하고 열리는 왕실의 문은 시꺼먼 공간을 안에 품고 있었다. 그 공간을 쳐다본 망량이 예상대로라는 듯 말했다.
“역시 내부는 술법으로 만들어진 아공간이군. 굉장히 넓어.”
“진법이나 함정이 있겠소?”
“그럴 리는 없소. 은빛 봉황조각은 완벽한 열쇠. 정통한 왕족만이 들어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거요. 그리고 이미 과거 전생에서 망량이 정보를 얻어낸 적이 있으니.”
망량이 손짓을 했다.
“갑시다.”
저벅….
우리는 발해 왕실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의 폐허와는 달리 고풍스러운 발해의 건물들이 여기저기에 늘어선 것을 볼 수 있었다. 바깥보다 안이 넓은 이 술법은 십이율주도 썼던 술법 같았다.그리고 우리의 걸음이 멈춘것은 한 옥좌와,그 위에 앉아있는 해골의 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