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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43화 (542/1,615)

00543  암천향(暗天鄕)

나는 독고성과 함께 차를 마셨다. 그간 이 사찰에는 가끔 잠을 오러 들어오거나 근처의 폭포에서 몸을 씻기 위해 온 것 뿐이었고 제대로 쉰 적이 별로 없었다. 독고성이 우린 차가 좋은 재질인지 향긋한 내음이 마음을 맑게 만들었다.

독고성이 말했다.

"사실 검뢰지경에 이를 건 예상하고 있었다. 네 무예의 경지는 결코 낮지 않으니 터득할 거라 생각했지. 단지 그게 조금 늦어졌을 뿐..."

"그래도 터득했으니 만족합니다."

"흐흠. 우선 차를 음미해라. 이 용왕곡에서만 나는 가무초로 만들어진 명차(名茶)다."

확실히 차는 맛있었다. 약간 떫은 맛이 났으나 차는 원래 고유의 맛으로 마시는 것이므로 나름대로 흡족하게 마실 수 있었다. 차를 음미하는 한 식경의 침묵이 흐르고, 독고성이 입을 열었다.

"검뢰지경에 이르면 하택 신회의 이야기를 해준다 했지."

"그랬었지요."

"사실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는데 들어볼 테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싶습니다."

"후후. 이런 산골에 수십년이나 처박혀 있으니 누구한테라도 내가 알게 된 걸 자랑하고 싶어지는거지."

자조적으로 웃은 독고성이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뽑아왔다. 그 책은 아주 오래된 고서(古書)인지 표지가 몹시 낡아 있었다. 독고성은 고서의 제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리(菩提)라고 되어 있지."

"그렇군요."

"보리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글공부 하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불가(佛家)에서 수행을 하여 얻어지는 깨달음을 보리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다. 본디 보리수라고 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석가가 그 나무와 큰 관련이 있었고, 후대에는 보리 자체가 깨달음을 상징하는 말이 된 거지."

"그 책 또한 불경(佛經)입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줄 알았다니?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독고성이 말했다.

"이 책은 하택 신회가 말년에 이 용왕곡에서 은거하며 생각했던 것들을 담은 수필(隨筆)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불경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고승(高僧)이 자신의 잡담을 담은 것도 불경이라 치는 걸로..."

"하택 신회는 명성이 높았으나 덕이 높은 고승은 아니었지. 물론 내가 이 책을 불경이 아니라 수필이라고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독고성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불가의 고사(古事)가 있지. 달마에서 이어진 오조(五祖) 홍인(弘忍)의 의발을 이어받을 때 신수와 혜능이 경쟁했었다고 한다. 신수의 가르침은 이후 교종(敎宗)의 맥으로 이어졌고 혜능은 너도 알다시피 선종의 조사 중 하나이다."

"그렇지요."

"그 때 경전해석에 능통한 고승, 신수는 보리에 대해 이와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독고성이 손가락에 내공을 담아서 사찰의 돌바닥에 천천히 글씨를 썼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動拂拭

勿使惹塵埃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라. 부지런히 털어내어 먼지 일지 않게 하리라. 이게 신수의 해석이었지."

해석을 천천히 읊은 독고성이 바로 옆에 다른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台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 명경 또한 대(臺)가 아니다. 본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오. 이것은 혜능의 해석이었다."

"......"

나는 유심히 두 개의 가사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이 두 개의 해석은 차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교종과 선종의 '깨달음'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불가의 경전을 그리 심도있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궁금해서 독고성을 쳐다보았다.

"음... 그런데 이 해석이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전에도 말했듯이, 하택 신회는 본디 신수의 제자였으나 변심하여 혜능의 제자가 되었다. 그에게는 선종의 가르침 쪽이 더 끌렸을 거라는게 세인들의 의견이었으나... 그런 게 아니었다."

독고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수필에 따르면 그는 승려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속물이었다. 선종이 투신한 것도 간화선(看話禪)으로 무형이며 애매모호한 가르침을 추구하는 선종의 분위기를 이용해서 한몫 챙길 셈이었지. 실제로 하택 신회는 선종의 고승이라는 명성을 등에 업고 온갖 비리와 부패를 저질러서 말년에는 황금 오백 관을 쌓을 정도의 거부가 되었다."

"......"

"말년의 수필인데다 비망록이니 거짓이라고는 볼 수 없지."

그렇게 중얼거린 독고성이 잠시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택 신회는 그만큼의 부와 명성을 쌓고 나서 결국 낙향해서 이 사천땅에서도 극히 외지고 험난한 용왕곡에 조그마한 사찰 하나를 지어서 은거하고 말았다."

"... 그건 이상하군요."

"그래. 본디 그는 쌓은 재산을 이용해서 몰래 이중신분을 만들어서 장안 근처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이었다."

"그가 용왕곡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 겁니까?"

독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자신의 스승인 육조 혜능때문이었지."

"......?"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내 추측을 이야기했다.

"육조 혜능이 사실 전설의 무예고수였던 겁니까? 달마가 백련종의 초대조사이니, 달마의 후예이자 육조인 혜능도 그만큼 대단한..."

"설마. 혜능은 우리같은 무림인이 아니었다."

"그럼 불가의 술수를 고도로 익힌 술법사였습니까?"

"그것도 아니었다. 승려는 불법을 익히는 자일 뿐 굳이 우리 무림인들처럼 무공과 술수로 힘을 쌓으려 들지 않는다. 하물며 육조라 불리는 대승려라면..."

내 말을 일축한 독고성이 무거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육조 혜능은 조계산에서 말년까지 계속 제자를 가르치고 깨달음을 설파했다. 그의 말은 〈단경〉이라는 경전으로까지 숭앙받았지. 그러나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하택 신회는 그만 공포를 느끼고 도망치고 만 것이다."

"......?"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지금 제가 잘못 들었습니까? 공포라고요?"

"그래."

"무공도 술법도 모르는 승려에게 그만한 속물이 왜 겁을 먹고 사천 용왕곡까지 도망친단 말입니까?"

"그건 하택 신회가 이 보리(菩提)의 해석을 할때 당시부터 의구심을 품고 있었고, 갈수록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바닥에 있던 보리해석을 가리킨 독고성이 어둡게 말을 이었다.

"하택 신회는 혜능이 직접 보리의 해석을 벽에 써넣는 광경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단 둘이 있을 때의 일이라고 하지. 그런데 그 때 혜능에게서는 인간을 초월한 어둠(暗)이 내려앉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다."

"......"

어둠!

나는 그 단어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 내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고성은 신이 나서 말했다.

"다들 몰랐겠지만 눈칫밥으로 먹고살았던 하택 신회에게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지. 그는 혜능을 이용해먹을 생각으로 제자를 자처했으나 갈수록 이질감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이질감이라고요..."

나는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조용히 듣기로 했다. 독고성은 힐끔 보리의 해석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하택 신회의 글에는 오조 홍인도 육조 혜능과 동류(同類)였을 거라는 추측이 쓰여져 있다. 왜냐하면 신수가 써낸 완벽한 해석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오조 홍인 그 자신만이 혜능의 글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해라..."

"여하튼 그는 불안감을 애써누르며 부정한 짓을 하기 시작했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조계산에서 혜능의 설법을 지켜보다가 크게 경악하게 되었지."

독고성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가 설법을 한 마디 할 때마다 혼돈이 하늘에 휘몰아쳤고, 이윽고 어둠이 산 전체에 일렁이면서 말이 인간을 지배하는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다. 수천 명의 신자들이 마치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혜능의 말에 조종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

"또한 혜능의 몸은 종종 어둠이나 혼돈을 연상시키는 [무언가]로 변화하기도 했다고 쓰여 있지. 그래서 혜능에 대해서 너무나 큰 불안감과 공포를 느낀 하택 신회는 결국 장안에 있던 자신의 재물을 다 팽개치고 사천으로 도망왔고, 가장 외진 장소인 용왕곡에 숨어살게 된 것이다."

"......"

침묵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말씀은... 육조 혜능이 인외(人外)의 존재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십중팔구는."

"요괴였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대요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는 격이 낮지. 불종의 총본산에서 무려 후계자로 지목받을 정도의 고승이 요괴였다면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하지."

"으음."

"그 자는 대요괴조차 초월한 [무언가]였을 거라고 하택 신회는 술회하고 있다. 너무나 강대한 존재이기에 도리어 인간이 자신의 인식을 뒤틀어서 스스로를 보호할 정도의..."

독고성은 팔짱을 꼈다.

"너도 알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종종 인간이 아닌 것들이 출몰하곤 하며... 그것들은 요괴로도 분류할 수 없다. 백련교에서 이따금 나타나곤 했었던 그 마물(魔物)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나는 이면의 세상을 믿는다."

"......"

"나는 그 존재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혜능이 [그 쪽]에서 온 자였다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지."

그 쪽.

인외.

다시 말하자면 - 이족(異族)과 마(魔)와 [옛 지배자]의 세상.

나는 그 세상을 소름끼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고 자주 접했기 때문에 독고성보다 더 절실하게 지금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 그래 맞아. 어쩌면...'

나는 육조 혜능이 달마(達磨)의 후계라고 생각하니 더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달마는 백련교의 초대종사로서 이 세상의 어둠과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인간이었다. 그는 결국 광기에 빠져서 무생노모의 법문을 제작하고는 혼돈과 함께 소멸해 버렸지만, 그런 달마의 후계를 자처하는 존재라면 -

어쩌면 육조 혜능을 비롯한 선종의 맥은 무생노모의 법문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추론이 세워지자 급히 독고성에게 말했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그 수필집 〈보리〉를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맘대로 해라. 나는 어차피 다 외울 정도로 보았다."

독고성이 껄껄 웃었다.

"흐하하. 뭐 고대에 아무리 대단한 일이 있었어도 그건 적어도 팔구백년 전의 일이다. 나는 재미있는 야담집처럼 읽었으니 너도 재밌게 읽기를 바란다."

"하하..."

나는 힘없이 웃었다.

' 독고성은 이면의 세상이 존재하는 건 알지만 그 무서움은 잘 모르는군.'

나는 하택 신회의 〈보리〉를 품안에 넣고는 차를 한잔 더 마셨다. 그리고는 독고성에게 말했다.

"어르신. 저는 이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종사를 잘 보필해라."

파앗

나는 장령곡에 돌아와서 제갈사와 망량을 찾아갔다. 그러자 망량은 자리에 없었고, 제갈사가 앉아서 서류를 잔뜩 읽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히죽 웃었다.

"성취가 좀 있었냐?"

"검뢰지경에 도달했어."

"오호. 이제 꽤 하는 건가."

"망량은?"

제갈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지금 발해의 옛 영토로 가서 은빛 봉황조각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서신을 보내오기를 조만간 조사가 끝날 거 같다는군."

"그래?"

"일단 사람들을 다 모아서 얘기나 해 보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윽고 장령곡에 있던 동료들이 모두 모였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오랫만에 보자 반가운 기분이 들어서 씨익 웃었는데, 그 중에서 이청운이 보이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이청운은?"

"망량의 호위로 갔다."

"아."

"그쪽은 현재 십이율의 영역이니까 자칫하다가는 고수와 맞닥뜨려서 힘들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백웅. 이쪽은 별다른 일이 없었어. 다들 너처럼 무공수련이나 하며 은둔외톨이처럼 지냈지, 크크."

그러자 극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은둔외톨이는 또 뭐야? 용맹정진했다고 표현하라고."

나는 극호를 보자 반가워져서 말했다.

"극호. 그간 잘 지냈냐?"

"뭐 이젠 용비천의 목을 썰어버릴 날만 기다리고 있지."

극호가 히죽 웃더니 말했다.

"그리고 니가 없는 동안에 미호가 몸이 달아서 장령곡에 찾아왔던거 모르지?"

"응?"

그랬단 말인가?

내가 놀라자 옆에 있던 진소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형. 나중에 미호 님한테 얼마나 혼나려고..."

"아 뭐! 걔도 나 놀렸는데."

극호가 투덜거리는 동안에 나는 진소청과 검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둘 다 절대지경에 도달했습니까?"

그러자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전혀."

"허허."

검마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백웅. 자네보다 우리의 재능이 월등하다 해서 일년하고도 반 사이에 절대지경에 훨훨 오를 수 있는 게 아닐세. 그 경지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존재가 목숨을 오가는 기연을 통과해도 얻을까말까한 것이니, 아직도 멀었지."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강해지셨군요."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동료들 모두가 굉장히 강력한 기도를 내뿜고 있어서, 내가 검뢰를 얻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치를 보이고 있었다. 검마가 피식 웃었다.

"이정도도 못하면 개가 웃을 노릇이지. 아무튼 절대지경은 적어도 십 년을 내다봐야 할 듯 싶네."

"그렇군요..."

나는 왠지 내심 안심하면서도 앞날이 까마득한 느낌이 들었다. 당장 동료들이 절대지경에 오르는 걸 보지 못하자 열패감이 수그러들었지만, 동시에 저런 천재들도 단시간에 절대 오를 수 없는 절대지경에 오르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싶은 마음도 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던 중 제갈사가 내게 말했다.

"백웅. 망량을 데려와라."

"데려오라고?"

"망량은 지금 굉장히 많은 걸 알아낸 것 같다. 지금 막혀있는 이유는 자료가 부족해서인것 같은데 발해의 땅에서 여기까지는 수천리 길이라서 바로 오지 못하고 있는 거다. 네가 비등으로 빠르게 데려올 수 있으면 좋겠지."

"알았어."

파앗!!

나는 제갈사에게 들었던 대로 발해의 옛 땅에서 가까운 북해빙궁 근처로 갔다. 북해빙궁 근처에서 조금만 더 북서쪽으로 가면 상경용천부가 나오는데 그 곳이 바로 발해의 옛 유적지가 있는 장소였다. 사실 예전에 상경용천부에서 좀 더 가까운 곳을 지나다닌 기억은 있지만 기억이 확실치 않아서 지도를 가지고 차분히 찾아볼 생각이었다.

타다닷

나는 약 수백 리를 달리던 중, 지도와 맞춰서 발해의 땅을 찾아갔다. 그리고 원주민들에게 물어보며 여기저기를 뒤적거린 결과, 약 반 나절만에 상경용천부의 폐허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 여기란 말이지.'

멸망한 수도의 폐허가 고스란히 널려 있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부흥운동이 일어나서 후발해, 정안국, 연파국, 흥료국, 대발해 등의 후속세력이 등장했으나 결국 금나라에 멸망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어째서인지 그 후속세력들은 정작 이 상경용천부의 폐허를 재건해서 도시성곽으로 쓸 생각은 하지 않았던 듯 싶었다.

나는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제갈사에게 들었던 망량의 위치를 찾아갔다. 나는 오래지 않아 망량이 숙식하는 거처를 발견할 수 있었고, 망량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왔소!"

"오, 왔구려."

망량은 오랫만에 봐서인지 수염이 수북하게 나 있었고 때가 꼬질꼬질했다. 그러나 눈의 정기가 맑았고 체력이 쇠하지 않은 듯 했다. 망량은 나와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했다.

"검뢰지경에 올랐다니 잘 됐구려. 그럼 이쪽 일도 좀 도와주시오."

"무슨 일 있소?"

쿠구구궁...

그 때 둔중한 파괴음이 울렸다. 망량은 그 파괴음과 진동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바로 저 문 때문에 더 조사하지 못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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