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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40화 (539/1,615)

00540  암천향(暗天鄕)

나는 일행과 함께 장령곡에 돌아왔다. 그리고 망량과 제갈사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제갈사는 의외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잘 했다. 이걸로 당분간 인신공양을 하지는 못하겠지."

"......"

이걸로 된 걸까? 나는 제갈사가 무명제사서 얘기를 꺼내지 않자 뭔가 불안해졌다. 하지만 뭐가 불안한지 몰라서 머리를 굴리고 있자 옆에 서 있던 이청운이 제갈사에게 말했다.

"제갈사. 자네는 무명제사서가 사라졌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거 아닌가?"

"......?!"

뭐라고?!

내가 놀라서 이청운을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처럼 꼼꼼하고 매사에 비겁할 정도로 실리를 챙기는 자가 무명제사서가 사라지게 좌시했을 리 없네."

"......"

"또한 자네는 음양천고를 이용해서 제갈부의 시야와 감각을 감시할 수 있지. 처음부터 내황각에 생겼던 변화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군."

그러자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과연 뇌신류의 종사인가?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인정한 셈이다. 나는 제갈사에게 물었다.

"제갈사. 놈이 무명제사서를 빼돌리는 걸 알고 있었다고? 정말이냐?"

"그래. 알고 있었다."

나는 황당하고 답답해서 말했다.

"아니 젠장, 그러면 그때 나한테 얘기했으면..."

"비등으로 나와 함께 이동해서 제갈부 놈을 죽이고 무명제사서를 뺏아서 가져왔겠지. 덤으로 수정석비까지 챙겼으면 완벽하게 황궁에 있는 걸 털어먹는 셈이었겠지."

덤덤하게 대꾸한 제갈사가 손깍지를 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황궁의 흑막, 제갈유룡이 본격적으로 제3세력을 경계하여 극단적인 수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의미하지."

"......!!"

"정작 제갈유룡을 확실히 제거할 방법도 없으면서 전생 난이도만 갑자기 올라가는 거야. 황궁의 복마전을 뒤에서 봐주고 있는 신이 개입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사도 달기가 강림할 가능성 또한 극도로 높아지겠지. 결국 지금까지와 다를바 없이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결말이 아닌가?"

옆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씁쓸하게 말했다.

"숙부는 백웅 당신에게 흑요석을 받은 순간부터 쭉 제갈부의 오감을 감시하고 있었소. 그리고 내게도 제갈부가 무명제사서를 옮기는 순간을 알아채고 말해줬지. 하지만 숙부의 말대로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었기에 굳이 당신에게 얘기하지 않은 거요."

"......"

그런 거였나?

내가 황망한 눈으로 제갈사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야. 넌 바로 지난 생이 기억나지 않냐?"

"뭐가?"

"백웅 너는 아주 철저할 정도로 황궁세력을 짓밟았다. 안 그러냐? 미후왕을 불러서 태산에 있던 제갈유룡을 죽여버리고 덤으로 복제체가 있는 장소도 다 없애버린 후 황궁의 동창 금의위는 물론이고 황제와 연금술사도 해치웠다. 수정석비 무명제사서 전국옥새도 다 빼앗았고 놈의 후계자인 제갈부도 납치해 왔다. 제갈유룡이 살아남았다 해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재기할 방법은 없었지. 나라고 해도 그 정도 상황이면 포기하고 도망쳐서 연명할 생각이나 했을 거다."

"으음, 그랬었지."

"그런데도 제갈유룡은 끝까지 살아서 어떤 수단으로든간에 팔부중 긴나라의 강림체가 되어서 마지막까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그때 네가 상식밖의 짓을 저질러서 그렇지, 사실 그때 우리는 제갈유룡한테 결국 패배했던 거다. 너같으면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그렇게까지 집착하며 맞서싸울 수 있냐?"

"......"

"까고 말해서 우린 팔부중 긴나라한테 못 이겼잖아. 계속 싸웠으면 졌을걸. 그래서 네가 천제단을 부숴버리려던 선택을 차마 욕하진 못하는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거 같기도 하다.

' 으으, 무서운 놈.'

나는 새삼 제갈유룡의 끈질김을 생각하자 치가 떨렸다. 제갈사의 말대로 나는 완전히 황궁을 없애서 근심거리를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자에게 가로막힌 것이다. 내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지금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황궁전력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한순간에 제갈유룡을 제압해서 그 자의 영혼을 뽑아서 천계에 봉인하며 동시에 복마전의 배후세력까지 차단하는 작업을 동시에 할 수는 없소."

"그건 그렇지."

"이래서는 의미가 없는 거요. 그래서 우리는 이번 생에 제갈유룡의 행동을 견제하긴 하지만, 그 자가 경계하는 수위를 줄이는데 집중했소."

이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알쏭달쏭한 눈으로 망량을 쳐다보자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일부러 놈에게 대비할 시간과 여유를 줬다는 소리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청운이 말했다.

"역시 그랬군. 그대들이 황궁에 은근슬쩍 제 3세력이 노리는 목표물의 정보를 흘렸구려."

"뭐, 뭐, 뭐라고?!"

나는 크게 당황했다. 설마 제갈사와 망량이 일부러 우리 정보를 흘렸을 줄이야?!

"설마 무명제사서가 옮겨진 것도, 현무와 백호가 황궁으로 대피한 것도, 제갈부가 없었던 것도..."

제갈사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당연히 우리가 미리 흘린 정보지. 반천맹이나 기타등등을 이용했지. 아마 태룡전에도 별다른 중요인사가 없어서 황제와 연금술사는 무사할걸."

"이런 제기랄!! 대체 왜 그런거야?!"

적은 해치울 수 있을때 한꺼번에 해치우는 게 좋지 않은가?!

내가 답답해서 가슴을 치자 이청운이 말했다.

"백웅, 진정하게. 이게 바로 정보를 적절하게 쓰는 방법이네."

"무슨 소리십니까."

"이번의 우리 습격에서 중요인사와 보물을 보호하면서 황궁측은 당연히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고 생각할 걸세. 그렇다면 제갈유룡이 굳이 신을 강림시키거나 사도를 강림시키려고 무리를 할까?"

"... 아!!"

"당연히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무모한 수를 쓰지 않으려 할 걸세."

이청운의 말이 맞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자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어이구... 계략 쪽에서는 별로 늘지를 않는구만 우리 주군은."

"아니... 너희가 숨겼으니까 당연히..."

"근데 이청운은 무명제사서가 없어진 시점에서 이미 우리 의도를 알아챈 거 같은데? 하긴 뭐 천년무류의 일대종사라면 그 정도 두뇌회전은 되겠지만."

"......"

"좀 더 머리를 굴려. 그래야 심계가 늘어날 거 아냐."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조용히 있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지금 겉으로는 우리의 습격이 실패인 것처럼 보여도, 어쨌든 제갈사 숙부는 언제든 제갈부의 음양천고를 통해서 그를 조종하거나 죽이는 게 가능하오. 그를 감시하고 있다가 제갈유룡이 빈틈을 보이는 순간에 한꺼번에 그들을 없애버릴 계책을 짤 생각이오."

"그렇군..."

나는 이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제갈사와 망량은 천재 제갈가문의 인재들 답게 적절한 대비책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잠깐... 근데 내가 제갈유룡의 몸뚱이를 저장해놓은 저장고를 5군데나 폭파시켜 버렸잖아. 이것 자체로 놈의 경계심을 극대화시키는 거 아냐?"

"그 질문 할 줄 알았다."

제갈사는 낄낄거리더니 말했다.

"허(虛)의 허의 허를 찌르는 셈이지."

"... 뭔 소리야?"

"앞서 공격했던 동창, 금의위, 내황각, 태룡전은 미리 우리가 흘렸던 정보야. 하지만 흘린 정보대로만 습격하면 아무런 견제가 되지 못하지. 졸개들이야 많이 없앴다만 그건 타격이라고 할 수 없잖아? 그래서 정보대로 공격하되 실제로 큰 타격을 줄만한 한 방은 필요했던 거다. 그 정도는 해줘야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서 견제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한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내 형인 제갈유룡을 알아. 그는 한방 먹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최악의 경우에 놓여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하지. 그리고 최악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은인자중하며 섣불리 패를 꺼내들지 않아."

"그 말은..."

"너도 알다시피 제갈유룡은 그 5개의 저장고를 폭파시키는 것만으로 없앨 수가 없어. 또 하나의 몸체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긴 게 분명하니까."

"... 맞아."

그렇기 때문에 여태껏 주작을 없애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때문에 그는 우리의 허를 찔렀다 생각하고 경계태세를 필요이상 높이지 않겠지. 섣불리 신이나 사도를 소환할 일도 없을거야. 왜냐하면 그는 최악의 상태가 아니니까. 알아듣겠어?"

"그의 경계수위가 최대가 되지 않는다는 거냐?"

"확신해. 내가 볼 때는 이 정도가 최선의 견제야. 현이 말대로 5년은 벌 수 있지. 우리는 그런 제갈유룡의 허의 허를 찌른 거고."

"후우..."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자 제갈사가 이죽거렸다.

"야. 이것도 네가 수련에만 집중하게 하려는 노력이야."

"응?"

"경계수위를 조절하면서 미묘한 견제구도를 맞추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끄고 일단 무공과 술수를 높여. 그걸 하려고 우리가 여기 있는 거니까."

"... 알았어."

내가 대답하자 이청운이 걱정스러운 듯 제갈사에게 말했다.

"헌데 제갈사. 수정석비는 결국 우리 쪽으로 가져오지 못했는데 이건 꽤 위험한 거 아닌가? 연금술사가 무명제사서를 사용해서 수정석비의 힘을 끌어올리면 단시간에 강력한 마도생명체가 양산될 걸세."

"이미 다 생각해둔 게 있어. 그래서 일부러 저 빡대가리 주군한테 굳이 수정석비를 가져오라고 이야기하지 않은 거고."

퉁명스럽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수정석비를 갖고오는 건 좋지만... 우리는 지금 한 가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게 있어서 좀 더 정보를 캐내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일단 놈들한테 수정석비를 놔뒀어."

"무슨 정보 말인가?"

"백발(白髮)의 그 초상기인."

제갈사는 팔짱을 꼈다.

"그 조그마한 놈이 앞으로 나인교(螺湮敎)의 주교가 되거나 미래의 거대한 위협이 된다는 백우선의 예지가 있었지. 하지만 생각해보니 전생의 나, 제갈사가 아무리 만들어봐도 백발의 초상기인은 만들 수가 없었단 말이야."

"아, 그러고보니..."

제갈사가 나한테 수정석비로 만든 초상기인을 자랑한 적 있었다. 대개 아름답게 생긴 미부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여러가지 종류를 만들었었다. 그런데 백발이 안 만들어진다고 내게 투덜거린 기억이 있다.

"우린 그 놈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즉, 미래에 나타날 나인교의 실체에 대해 아는 게 없단 소리야."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내 생각에 백발의 초상기인은 굉장히 특수한 공정으로 만들어졌거나, 혹은 서양의 대마도사인 그 연금술사로서도 딱 한두번밖에 만들 수 없는 특제품(特製品)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공정이 아무리 특이해도 기록되어 있으면 못 만들리 없으니, 아마 백발을 제작하는데 꼭 필요한 극히 희귀한 재료가 있는 거겠지."

"극히 희귀한 재료라..."

"그건 지금 시점에서 수정석비를 강탈해 봤자 알 수가 없는 정보야. 백발 초상기인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놈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어! 하지만 현재 초상기인의 양산제작을 위해서 제갈부가 늘 연금술사와 접촉하고 있는 중이지."

나는 제갈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갈부를 감시 감청하는 동안 연금술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알아낸다는 건가?"

"그런 거지. 그것만 알아내고 나면 강탈작전을 세울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연금술사 그 놈만 납치해와도 되지 않아?"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망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백웅. 그 연금술사라는 자는 썩어도 준치라고 서양의 대마도사요. 지금까지 그 자의 포획이 성공했던 경우는 전생 중에 딱 한 번, 당신이 그 자와 일대일 대결을 했을 때 뿐이요. 그나마도 당신을 얕보아서 그렇지 극히 신중한 그 자를 생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우리 판단이오."

"으음...."

"같은 마도사인 숙부가 판단했으니 사실일거라 생각하오."

내가 말없이 동의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어쨌든 간에 최소한 일 년 정도는 현 상태를 유지하며 지켜볼 생각이다. 길면 삼

년 정도? 그러니까 수련이나 열심히 해. 노예들 쪽은 나와 망량이 황연 장군의 인맥과 반천맹을 움직여서 처리하마."

"알겠어."

나는 제갈사와 망량에게서 물러나왔다. 그리고 미호를 동영에 데려다줬다.

파앗

"그럼 나중에 또..."

그런데 천황궁에서 내가 물러나오려는 순간이었다.

"......?"

뭔가 이상하다.

이 느낌은 뭐지?

알 수 없는 말랑말랑한 불쾌감이 피부에 와닿이고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지만 손바닥에 땀이 축축하게 배여 있었다. 그리고 전신의 모공이 조금씩 축소되어서 내 몸이 조금 긴장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잠시 후 이 느낌이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음험한 기(氣)!

살기까진 아니었고, 보통 사람은 절대 깨달을 수 없을 정도로 은밀했다. 아니, 무공을 익힌 자라고 하더라도 웬만해선 알아채지 못하리라. 내가 방금 알아챈 것은 오랜 시간 절대지경의 고수 이청운 밑에서 초고수준의 무학을 수련하다보니 육감이 극도로 예민해져서이다.

다시 말하자면 초절정고수라 해도 원래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은밀한 기척.

나는 이 기운을 흘린 자가 굉장한 자라는 걸 깨닫자 급격히 긴장했다. 그리고 미호 앞에 서서 검을 뽑으며 말했다.

"미호. 안 느껴져?"

미호는 눈치가 빨라서인지 금새 내 말을 알아차린 듯 했다. 하지만 당황해하며 말했다.

"뭐... 뭐가 말이냐? 뭔가 있는 거냐?"

이렇게 당황한다는 건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이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다. 대요괴인 미호의 감각을 속일 정도의 실력자인 셈이다. 나는 전신에 투기를 돋우며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누군지 몰라도 당장 나와라!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슈르르륵

그 순간이었다.

어둠이 뭉쳐서 그림자에서 뭉게거리며 사람의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존재는 시꺼먼 어둠을 휘감으며 내게서 삼 장 밖에서 무릎을 꿇으며 나타났다.

"엄청난 고수로군... 내 은신의 기척을 간파하는 자는 동영 땅에 아무도 없었거늘... 그대같은 고수는 처음 본다."

음울한 목소리.

그리고 파란빛이 스며들어 있는 흑영복(黑影服).

그 자는 어깨춤에 수리검을 차고 있어서, 나는 대번에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닌자(忍者)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마슈(風魔衆)의 수령, 후마 코타로(風魔 小太?)."

후마슈라면 이가와 코우가에 이어서 동영 제 3위의 닌자단체, 풍마닌자단을 의미했다. 확실히 닌자집단의 수령답게 대단한 은신술이었다. 내가 절정고수 시절에 감지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일개 닌자의 은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방금 전만 해도 찰나의 직감이 아니었다면 고스란히 지나칠 뻔 했다!

"그녀를 암살하러 왔나?"

"그럴 리가... 돌출행동을 하는지 황후를 감시하라는 의뢰를 받았을 뿐이다."

스윽

자칭 후마 코타로라고 한 닌자가 시뻘건 눈빛을 잠시 빛냈다.

"하지만 당신 정도의 고수가 붙어있을 줄은 몰랐다. 내 전력을 다한 은신술을 도대체 어떻게... 우리 후마슈는 이번 일에서 손을 떼겠다."

"뭐? 누가 감시하라고 한 거냐."

"훗. 닌자가 그런 걸 말할 리가 있겠는가?"

그는 껄껄 웃더니 슬며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에게도 백금을 주고 고용한다면 의뢰주를 말할 의사가 있다만..."

"어?"

"황후여. 우리 후마슈를 고용해달란 소리다."

결국 돈을 달라고 하기 위해서 우리 앞에 나타난 셈이다.

' 왜 일부러 자기 신분을 밝히나 했더니만.'

풍마닌자단의 수령이라는 명성을 이용해서 돈을 쉽게 받아내려고 한 것인가? 어차피 자기

신분도 코우가슈에 의해 밝혀질테니 미리 밝혀버린 듯 했다. 나는 어찌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미호가 뜻밖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꺼져라! 어차피 중간에서 장난질이나 칠 생각이 아니냐?"

"후우, 그런가... 뭐... 백금을 많이 받을 생각은 없다. 코우가한테 준 것만큼만 줘도 대만족한다."

아무래도 정말로 백금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정말로 의뢰주를 말하는 거지?"

후마 코타로가 간절하게 말했다.

"물론... 돈을 다오. 우리 후마슈는 돈이 없다."

"미호. 그냥 주자. 그 정도로 배후를 알아내면 싸게 치는..."

그러자 미호가 영언으로 버럭 내 머릿속에 소리를 쳤다.

[ 이 바보야! 나도 알아! 그래도 가격교섭을 해보려고 일부러 튕기고 있었잖아.]

"......"

그런 거였냐?!

잠시 후 미호와 후마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한참동안 이야기가 진행된 후에야 백금 네 덩이로 교섭이 끝났다. 미호가 백금을 갖고와서 후마에게 던져주자, 후마가 미호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우리 후마슈에 의뢰한 자는 반도(半島) 십이율 문파 중 호국동맹(護國同盟)이오. 그 곳의 맹주가 내게 의뢰했소."

"그놈들이 왜?"

"호국동맹은 동영으로 진출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소. 그래서 십이율 중 가장 동영의 사정에 관심이 많지. 그래서 근자에 가장 큰 돌출행동을 보이는 황후의 행보를 감시하기를 우리에게 부탁했소."

그랬던 거구나.

나는 별일 아닌 걸 깨닫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지만 그렇게 쉽게 배후를 말해도 되나?"

"놈들이 선수금을 안줬기 때문이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의뢰를 해놓고 금액을 지불하지 않아서, 밀린 돈이 많소. 그래서 마을의 어린 아이들이 굶고 있소."

후마 코타로가 당당히 말했다.

"돈을 주는 자가 바로 닌자의 주인이오! 황후 만만세."

"......"

임금체불 때문에 주인을 갈아탄 것인가!

미호가 내게 말했다.

"백웅. 이로써 나는 한층 더 동영에서 운신하기 쉬워졌구나. 닌자세력 중에서 2대세력을 움직일 수 있으니, 나는 완전히 음양사 일족으로부터 안전해진 듯 하구나."

"다행이야."

"우후후, 이 기회에 막부나 뒤집어볼까?"

미호가 음흉한 목소리로 말하는 건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파앗

나는 다시 장령곡으로 와서 이청운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자, 이청운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그렇군... 그러면 자네는 이제 슬슬 자신의 경지에 걸맞게 칠감(七感)을 통제하는 수준이 된 듯 싶네. 그렇지 않으면 최상급 닌자의 은신술은 감지할 수 없어."

"칠감이요?"

"육감의 영역은 자네도 알다시피 절정수위의 무인들이 흔히 다루는 영역이지. 그리고 칠감은 그 육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감각... 의념을 다루는 기둥의 근원..."

뭔가를 중얼거리던 이청운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백웅. 때가 되었네. 어서 용왕곡으로 가지."

"무슨 때 말입니까?"

이청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검뢰(劍雷)를 얻을 때가 온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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