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39 암천향(暗天鄕)
연 왕가?
내가 놀라서 연종휘를 쳐다보자,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 연종휘는 진황도(秦皇島) 인근의 석하현(石河縣) 출신으로, 5세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부모가 과거의 비사를 이야기해 주며 가문 대대로 전해오는 비전무공을 전해주었고, 그때부터 약 이십 삼 년이 지난 후 강호에 출도하게 된 겁니다."
"연 왕가라니 무슨 말인지 말씀해 주시오."
"저는 고대 연 왕가의 후예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 황당해했다.
"정말 춘추전국시대의 연씨란 말이오?"
그렇다면 정말 보통이 아닌 핏줄이다. 진시황의 진나라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연나라 왕가의 적손이라면 역사와 전통이 굉장한 것이다. 적어도 천 년 전의 왕가였다. 그러자 연종휘는 씁쓸하게 말했다.
"사실 53대나 이어내려오며 그 동안에 피가 얼마나 섞였고, 정말로 제가 그 적손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가문에 내려오는 가전무공이 훌륭했기에 일말의 증거로 삼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 검은 활은?"
"이것 또한 왕가의 비전으로 내려오는 보물으로 묵린장궁(墨鱗長弓)이라 합니다."
연종휘는 묵린장궁을 들어서 전방을 겨누었다. 하지만 저 활은 활시위가 없었고 심지어 화살조차 없어서 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위가 있는 것처럼 나머지 손을 허공에 누볐고 이윽고 뭔가를 쏘았다.
퓨웅!
잠시 후 십 장 밖에 있던 바위에 시꺼먼 구멍이 뚫렸다. 연종휘는 활을 내리며 말했다.
"이것이 묵린장궁의 위력입니다. 시위가 없어도 쏠 수 있으며, 늘 사용자의 기를 빨아들여 무형의 화살이 응집됩니다. 화살의 위력은 보시다시피..."
"......!!"
"기의 효율이 좋습니다."
나는 놀라서 말했다.
"망량이나 제갈사도 그 활을 시험해봤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데?"
"정통한 연 왕가의 핏줄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묵린장궁은 굉장한 보물이다. 보패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신궁(神弓)이며 절세기보인 것이다. 연종휘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무공과 보물이 있음에도 저는 왕가의 후예라는 말을 확신할 수 없었고, 과연 왕가를 재건해야 하는가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문의 무공을 대성하자마자 강호를 나와서 의협행을 하는 동시에, 어느 장소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게 어디요?"
"종남산(終南山)입니다."
종남산?
뜻밖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말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종남산을 찾아가면 제 핏줄의 근원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찾아가던 중 붙잡힌 겁니다."
"흐음... 찾아가서 어떻게 할 생각이었소?"
"산 여기저기를 뒤졌겠지요. 아마 기보나 신물을 말씀하신 것일테니."
이제야 연종휘의 행적이 이해가 됐다. 그는 강호출도 이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의협행을 하다가 우연히 남궁세가에 들러서 식객이 되었다. 그리고 떠돌이 생활을 그만두고 종남산에 가려고 하던 중 우리와 마주친 것이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기억을 보았듯이, 내가 대적하려는 적들은 매우 강력하오. 백련교, 황궁, 십이율... 인간의 세력만 해도 이렇게 강력한데 향후에는 신과 싸우게 되겠지."
"......"
"만일 지금이라도 빠지고 싶다면 말하시오. 당신의 기억을 지우고 종남산에 내보내 주겠소."
"아뇨,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연종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큰 목적도 없이 떠돌던 삶이었습니다. 의로운 일을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어찌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 알겠소."
나는 연종휘를 완전히 동료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 만일 글러먹은 놈이었다면 이혼대법으로 이용해먹고 버리려 했는데.'
연종휘는 그런 인간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나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나는 연종휘가 동료가 되었음을 제갈사와 망량에게 이야기했고, 그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설득처럼 실패가능성 높은 짓을 잘도 하는군."
"뭐 어때. 성공했으면 된 거지."
"아무튼 연종휘가 자기 의지로 동료가 되었다면 호조로군. 그의 능력이면 많은 일을 순조롭게 해나갈 수 있겠어."
옆에 있던 망량이 말했다.
"백웅. 그리고 전에 말했던 은빛 봉황조각의 조사 말이오."
"그건 어떻게 되었소?"
"영 진척이 안 되는 상황이오. 발해의 것이라는 정보 외에는 딱히 짚이는 게 없어서... 정보원과 학자를 구해서 구(舊) 발해의 영토까지 보내긴 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소."
"그렇군..."
"그래서 말인데 잠시 연종휘를 불러주시오. 어쩌면 그가 이 조각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르오."
나는 망량의 말에 연종휘를 불러왔다. 연종휘는 은빛 봉황조각을 받아들고 한동안 살펴보다가 말했다.
"한 쌍이 되는 또 하나의 봉황조각이 있지 않겠소?"
망량이 그 말에 이채를 띄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그냥... 이 봉황조각이 쳐다보는 방향이 마치 짝을 쳐다보듯 해서. 한 쌍으로 만들어진 거라는 생각이 들었소."
"흥미로운 가설이군. 많은 도움이 되었소."
망량은 오화신염선을 부치다가 내게 말했다.
"백웅. 연종휘에게도 영약을 주시오. 그는 이번 계획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소."
"알았소."
나는 동료들에게 줬던 것처럼 흑백련을 연종휘에게 주었다. 연종휘는 연공실로 가서 자신의 내공을 도야시키기 시작했고, 나는 시간이 아까웠기에 곧장 미호가 있는 동영으로 향했다.
미호는 내가 찾아가자 반가운 듯 반요태의 상태로 새하얀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들었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고 뺨을 부비적거렸다.
"흐으으응. 왜 이제야 왔느냐."
아이의 몸이라서 그런지 성숙한 성인여성으로 둔갑한 미호에게 완전히 안긴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나는 미호의 가슴 때문에 답답해서 약간 고개를 흔들었다.
"미호. 흑요석은 어떻게 됐어?"
미호는 내게서 뺨을 떼며 싱글싱글 웃었다.
"코우가를 이쪽으로 포섭하고 막부와 협상한 결과 흑요석 광산을 여섯 개 매입했느니라. 그리고 지금은 광산을 넓히고 인부를 고용해서 캐는 중이지. 채굴된 것들은 곧장 교토에 운반하도록 하고 있으니, 서너달 후에는 가득 쌓일 것 같구나."
순조로운 모양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호에게 말했다.
"미호. 또 하나 부탁이 있는데..."
"무엇이느냐?"
"폭약을 많이 사 줄 수 있을까? 되도록 많이."
나는 그리고 미호에게 계획을 설명해 줬다. 그러자 미호가 흔쾌히 말했다.
"어차피 지금의 막부는 평화로운 시기라서 전쟁용 물자로 화약을 쌓아놓고는 있지만 그저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남은 백금괴를 모두 쓰면 충분히 막부에서 사들이는 게 가능할 것이야."
"언제쯤 될 것 같아?"
"흐음, 어디보자... 육 주야 정도 후에 찾아오거라."
"알았어."
"어차피 그 작전에는 내 힘이 필요할 테니 꼭 오거라."
그렇게 말한 미호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유, 이 못생긴 것."
"......"
"꺄하하. 귀여워서 말해봤느니라~"
나는 투덜거렸다.
"대체 귀엽다는 건 무슨 기준이야?"
"흐응? 지금 나이대의 너는 잘생긴 건 아니고 개성적으로 생겼느니라. 물론 자란 모습은 조금 꼴뵈기 싫지만... 그것도 인간 기준이지. 그럭저럭 귀엽다고 볼 수도 있느니라."
그녀가 살며시 내 턱에 손가락을 받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때 백웅은 백웅이니라. 그렇지 않느냐?"
나는 미호의 말에 씁쓸하게 대답했다.
"인간에게 10년 정도는 금방이야. 나는 조금만 있으면 여염집 여자들이 학을 뗄 정도로 못생긴 얼굴이 된다고. 그 때도 나를 받아들여 줄 거야?"
그러자 미호가 멀뚱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성형하면 되잖느냐. 가능하면 미소년이 좋다."
"......"
"안 할 이유가?"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내가 당황하자 미호가 깔깔대며 말했다.
"아하하. 내가 너의 몸과 마음을 생긴 그대로 다 좋아해줄거라는 대답을 기대한 것이냐?"
"...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우후후. 네가 성형술을 모를 때였다면 나도 그럭저럭 납득하고 너와 살려 했겠지만 너는 이미 잘생겨질 수단이 있지 않느냐? 잘생겨지면 주위에서 너를 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질 터인데 그 외모의 권력을 누려보고 싶지 않은 게냐?"
"음, 그건..."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친 문제지만 새삼 직면하자 어색하다.
내가 뭐라고 대꾸할지 몰라서 망설이자 미호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네 추한 외모가 천형(天刑)일지도 모르고, 못생긴 자 특유의 오기와 자존심이 있는 건 알고 있느니라. 하지만 그게 천년만년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지."
"으음."
"솔직히 말하자면 본녀는 잘생긴게 좋느니라. 그리고 그런만큼 네가 이제는 외모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걸 보기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나는 미호의 진심을 알 것 같았다.
솔직하게 잘 생긴 걸 밝히긴 하지만, 미호는 어쨌든 내 외면이든 내면이든 사랑해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다소 장난스럽게나마 내게 외모를 바꿀 것을 권유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욕심보다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미호가 그걸 원한다면 나도 거기에 맞춰주는 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미호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중에 모든 게 해결되면 네가 원하는 외모로 성형할게."
"본녀의 취향은 까다로우니 그때까지 성형술을 연마하거라, 아하하."
"알았어."
미호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이번 생에는 끝을 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나는 되돌아와서 엿새 동안 이청운의 밑에서 묘예의 역을 재수련하기 시작했다. 물론 엿새 동안에 실력이 바로 늘 수는 없겠지만 기분만으로도 조금 나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내 심정변화를 느꼈는지 이청운도 꽤나 즐겁게 가르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거사를 치르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미호에게 가서 미호가 사들인 대량의 화약을 목갑에 넣은 후 장령곡에 가지고 왔다. 제갈사는 내가 출발하기 전 작전에 나서는 인원을 살피며 말했다.
"알겠냐? 제일 중요한 건 그 놈을 생포해 오는 거다."
"알고 있어."
"한번에 황궁을 무너뜨릴 필요는 없어. 차근차근 무너뜨리는 거지."
파앗!
나는 동료들과 함께 먼저 제갈유룡의 복제몸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목갑에서 화약을 꺼내며 말했다.
"이 공동 전체가 폭발할만큼 설치합시다."
"알았네."
콰과광!
콰광!!
우리는 빠르게 복제몸체가 있는 다섯 군데의 은신처를 모조리 폭파시켜 버렸다. 그리고나서도 폭약이 절반 넘게 남았기에 다음으로는 낙양에 있는 동창과 금의위의 본부로 향했다.
나는 나타나자마자 전각의 1층에 불붙인 화약을 내던졌다.
콰과광!!
콰광!!
"크아아악!!"
"으악!!"
아비규환과 함께 비명이 몰아쳤다. 나는 불길에서 비등으로 빠져나온 후, 옆에 서 있던 이청운에게 말했다.
"여기는 부건물이고 본단을 이제 터뜨려야 합니다."
"알고 있네."
이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진입해서 수장들을 제압하지. 그 다음 저 친구가 빠져나오는 놈들을 사살하는 작전이잖은가."
"네."
"움직입세."
파앗!
말이 끝나자마자 이청운은 번개처럼 변해서 멀리 있던 전각으로 뛰쳐들어갔다. 그는 한두
개의 전각을 더 누비며 신속하게 적의 간부들을 제압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이청운의 말이 순어구를 통해서 전해져 왔다.
[ 동창과 금의위 간부들을 제압했으나 자네가 말했던 사신위 백호나 현무는 보이지 않네.]
[ 안좋은 상황이군요.]
[ 꽤 숫자가 많았어. 급하게 진입하느라 완전히 제압하지도 못했네. 그 친구에게 빠져나온 놈들을 격살하라고 말해 주게.]
나는 힐끔 연종휘를 쳐다보았는데, 그는 이미 행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퓨퓨퓽!
퓨퓽!
연종휘가 미친듯이 활을 쏘았다. 그리고 묵린장궁을 통해 뻗어나온 무형시가 전각에서 도망치고 있던 조그마한 쌀알만한 그림자들을 격중시키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적어도 백여 장은 되는 거리였지만 연종휘는 정확하게 그들의 머리통을 관통하는 듯 했다.
그렇게 약 십수 명을 척살했을까? 연종휘가 말했다.
"더는 안 보입니다."
"그렇군."
파앗
우리는 이청운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전각을 올라가는 도중에 수백여 명이 나동그라져서 죽어 있었는데, 확실히 이 정도 숫자면 아무리 이청운이라 해도 탈출하는 놈들을 다 못 잡을 만 했다. 최상층에 올라가자 그 곳에는 형편없이 나동그라져 있는 동창과 금의위의 간부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우리를 고문해도 절대 정보를 말하지 않을..."
사아앗
그 순간 미호가 나서서 그 자와 눈을 마주치며 요력을 발휘했다. 그 자는 몸을 벌벌 떨다가 결국 미호의 매혹에 사로잡혔고, 홀린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의 수장이신... 백호와 현무 님은... 황궁에서 불러서 들어가신 후... 나오질 않으셔서... "
"부총령은?"
"부총령 두 분께서도 마찬가지..."
미호는 그 후 일 다경 동안 질문하며 필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뇌신류 고문술을 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미호의 매혹능력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빠르기 때문에 데려온 것이다. 미호는 넋이 나간 금의위 간부를 내팽개치며 말했다.
"아무래도 진짜 알맹이는 다 황궁에 뭉쳐서 숨어있나 보구나. 그리고 노예들은 풍신류 휘하의 마도팔문인 수라문의 손아귀에 있는 모양이고."
"흐음."
옆에 있던 이청운이 말했다.
"마침 잘 되었네. 해야할 일이 확실해졌잖은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 폭발시켜야죠."
콰과과광!!
나는 전각을 폭발시킨 후 곧장 황궁의 태룡전으로 갔다. 그리고 태룡전 지하에서 남은 폭약을 모조리 격발시키고 비등으로 빠져나왔다.
쿠콰콰콰쾅
' 잘 가라, 황제.'
나는 내심 중얼거린 후 일행과 함께 수라문이 지키는 비밀장소로 가서 노예들을 구출했다. 수라문의 정예들이 우리를 가로막았지만, 그들은 우리 상대가 될 수가 없었고 이내 전멸했다.
나는 낙양의 한적한 곳에 펼쳐진 이 비지(秘地)에 오글거리며 모여있는 노예들의 숫자를 확인하자 황당해졌다. 아직 그들과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멀리에서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5천 명이랬는데 더 많아 보이잖아."
그랬다.
5천명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몇 배나 되어 보였다. 산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그 안의 분지에 밀어넣었기 때문인지 난민들이 우글우글한 행색이었다. 여기저기에 허름한 거적과 빈약한 집 같은게 보였다. 이청운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어쩌지? 이렇게 많으면 자네의 비등에 나눠 옮겨도 시간이 한참 걸릴텐데."
"음..."
그러자 옆에 있던 미호가 말했다.
"저 녀석들을 우리가 일일이 돌볼 필요는 없어. 지금은 다른 일을 먼저 하는 게 어때?"
"저 사람들이 다 굶어죽으면 어떡하고?"
"그건 나중에 와서 쌀포대라도 잔뜩 뿌리면 될 일이야. 어차피 장령곡에 5천명을 수용할 공간도 없으니 일단 황궁을 정신 못차리게 하는게 좋지 않느냐?"
"알았어."
파앗
나는 황궁의 내황각으로 이동해서 곧장 무명제사서가 있는 곳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 없군.'
무명제사서가 원래 꽂힌 자리에서 사라져 있다. 뿐만 아니라 내황각에 있던 거의 모든 서책들이 어디론가 옮겨졌는지 사라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부에 있던 인간들도 전부 사라져 버려서 이 곳은 황량한 공간이었다. 옆에 있던 이청운이 말했다.
"하루이틀 전에 옮긴 게 아닐세. 보아하니 자료를 옮긴지 꽤 시간이 지났어. 아무래도 미리 감지를 하고 내부자료를 전부 어디론가 빼돌린 모양이군."
"그럴 리가요? 지금까지 황궁에 낌새를 알아챌만한 일은 아무것도..."
"......"
잠시 생각하던 이청운이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이외의 변수가 이 일에 먼저 끼어든 것 같네. 오늘은 여기서 만족하고 우선 장령곡에 돌아가서 논의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