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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36화 (535/1,615)

00536  암천향(暗天鄕)

츠팟

여동빈이 강신해서 준비하자마자, 이청운은 뇌신지혼을 써서 파고들어 검지로 여동빈의 목을 노렸다. 나와 일초대련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초식이었지만, 저 검지찌르기는 천하에서 막을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필살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설령 호법사자라 하더라도 일단 찔리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여동빈은 달랐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월공투계(越空透界)

그의 시야와 감각은 극순의 시간 속에서 자유자재로 적을 감지했으며, 찰나의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과거 백련교주와의 대결에서도 심천무량으로 뻗어나온 현란한 수만 개의 기운을 모조리 쳐냈던 그였다. 월공투계가 그의 감각이자 눈이 되어 월공투안으로써 작용했고, 여동빈은 가볍게 검을 움직여서 이청운의 찌르기를 튕겨냈다.

따앙!

검과 손가락이 부딪혔는데도 마치 철덩이가 부딪힌 듯한 소리가 났다. 그것은 이청운 또한 자신의 손가락에 뇌신지혼의 힘을 집약시켰기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훗."

이청운은 첫 공격이 먹히지 않자 창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의 몸을 뇌화(雷化)시켜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뇌신지혼(雷神之魂)

천뢰무극창(天雷無極槍)

뇌전이 이지러지며 이청운의 공격이 시작된다. 푸른 번개가 튀기다가 갑자기 허공을 왜곡시키며 무수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란(欄)

합식(合式)

천경(天經) 팽할(烹割)

"......?!"

대체 저건 뭐지?!

일수지간에 쏟아지는 번개덩어리는 몇 가지 무공이 섞여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근본은 천뢰무극창의 절초를 응용한 거라는 걸 파악했으나, 거기에서 란으로 이어지며 무수한 변초가 불규칙적으로 이어지니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정작 내 몸을 차지하고 있던 여동빈은 한 줌의 동요도 없이 서서히 검결을 운용했다.

육의성천결(六意星天決)

해결(海決)

마치 바다처럼 일렁이는 검결이 춤사위처럼 흘러나온다. 이청운이 최초로 내쏜 뇌창(雷槍)이 공포스러울 정도의 회전을 거듭하며 공격해왔지만 해검결에 감싸이자 그 위력을 잃어버렸고, 이어서 번개덩어리가 폭죽 터지듯 내 주변을 둘러싸고 수백 번의 공격을 가해 왔다.

피피피핑

바닷물 속에서 용솟음 치는 뇌룡(雷龍)!

지금의 절초대결은 바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청운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여동빈이 무초의 검학으로 무한의 뇌룡을 물리치는 듯한 형상이었다. 일 초에 수백 번의 공격이 쏟아지고 다시 거둬지는 광경은 그들의 깨달음을 겨루는 게 분명했다.

꾸웅

갑자기 일순간 푸른 뇌전에서 이청운의 몸으로 되돌아오며 내 정면에서 정권을 날려 왔다. 기습공격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월공투안으로 그 공세를 알아차린 여동빈이 이청운의 목을 베려 했고, 이청운은 반격에 재반격을 하듯 다시 주먹을 반줌 쥐며 초식을 뒤틀었다.

콰광

콰과광

이청운의 수도가 내 목을 쳐올 때마다 여동빈이 일일이 거둬내었고 그때마다 강기의 폭음이 울려퍼졌다. 나는 이청운이 창술의 팔대수법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뿐만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고급스러운 무술의 기예를 녹여내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내심 경탄했다. 이 무예의 호흡 자체가 내 무예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거대한 춤사위나 다름없었다.

타닷

그렇게 대략 삼백여 초를 나누었을까?

이청운이 공세를 멈추며 인간의 형태로 되돌아 왔다. 그는 자신의 손을 털며 쓴웃음을 지었다.

"많이 봐 주시는구려. 과연 투선."

봐 줬다고?

나는 도저히 방금의 대결에서 그런 낌새를 느낄 수 없었지만, 여동빈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 내가 전력을 다해 베어야만 할 것은 오로지 마(魔) 뿐. 그대의 뇌혼은 사특한 술수가 아니니 어찌 살의를 담고 싸우겠는가?]

"나 또한 나름대로 필살초식이 있긴 하지만 도저히 통할 것 같지 않군. 그 '눈'은 정말 대단한 경지요."

[ ......]

그렇게 중얼거린 이청운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헌데 그 검법은 진정한 무중생유(無中生有)라고 할 수 있소이까?"

무슨 질문인 걸까?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동료들은 아리송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오직 여동빈만은 이청운의 질문을 알아들은 듯 잠시 표정이 무거워지더니 대꾸했다.

[ 그건 인간의 무예계에서 멋대로 가름한 경지일 뿐. 내 무검(無劍)은 어설픈 필설로 형용할 수가 없다.]

"그렇군. 무즉유(無卽有), 유즉생(有卽生), 생즉오(生卽悟)... 과연 신선의 검법이오."

[ 알아들었다면 그대도 무초의 경지를 추구하면 될 것이 아닌가?]

"후후! 나를 놀리지 마시오. 검선의 무학과 나의 무학은 도달점이 다를진대."

껄껄 웃은 이청운이 말했다.

"여동빈이여. 그대라면 백웅의 무(武)의 그릇이 십여 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걸 알고 있을 것이오."

[ 물론이다.]

"방법은 단 하나, 당신의 천둔검(天遁劍)을 더욱 강화하는 것... 그렇게 해 줄 수 있습니까?"

[ 가능하다.]

여동빈은 이청운의 말을 긍정하면서 토를 달았다.

[ 허나! 어디까지나 유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수명을 대가로 내놓지 않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게 지불하라.]

"잘 알았소. 그건 내가 백웅과 이야기 해 보겠소."

[ 재밌는 대련이었다.]

슈우욱...

여동빈의 강신이 풀렸다. 나는 대결이 끝나자 엄청난 내공이 소모되어서 단숨에 탈력상태가 되어서 연무장에 무릎을 꿇었다.

"허억, 헉... 헉..."

겨우 삼백 초를 겨루었는데 칠주야 내내 달리기만 한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절대지경끼리 겨루다보니 심력과 내공을 극도로 소진한 것이다. 꿇어앉아있는 내게 이청운이 다가오며 말했다.

"백웅. 방금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지?"

나는 턱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장삼봉 진인이 말해줬죠."

기억난다.

지난 생에 내가 장삼봉 진인에게 무예의 가르침을 받을 때 그가 했던 말이.

[ 여동빈의 선검(仙劍)으로 강제로 틀어막은 그대의 그릇이 곧 가득차게 될 것이오. 칠대절학 뿐만이 아니라 파생된 팔대 가능성 하나하나는 모두 천재들이 벼려낸 절세신공. 그대가 모두 대성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오.]

[ 근본적인 해결책은 그대의 영혼에 꽂혀 있는 천둔검을 강화시키는 것. 허나 이건 세상에서 여동빈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그릇을 조금이나마 넓히면서 한계를 유예하는 수밖에 없구려...]

[ 연자여. 우선 내 가호를 내려 십 년 정도의 수련치를 유예해 두겠소. 지금부터 칠대절학을 최대한 가르쳐 줄 것이지만 차후 스스로 수련을 통제하기를 바라겠소.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그릇에 균열이 가면서 정신에 광기가 침투하게 될 것이오. 진정한 주화입마를 피하고 싶다면 내 말을 명심하시오.]

그랬다. 나는 칠대절학에 이어서 팔선신공이라는 광세기연을 얻었지만, 그 기연을 소화하기에는 내 재능의 그릇이 너무나 빈약했다. 그래서 무류의 혼란을 다잡고 있던 여동빈의 선검에도 한계가 다가올 것이며,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검을 강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검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건 여동빈 뿐인 것이다.

다행히도 여동빈은 선검을 강화시켜줄 수 있다고 긍정적인 대답을 했으니 이제 여동빈을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자 이청운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여동빈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보물을 제물로 바치는 편이 나을 듯 싶네. 아무리 자네가 파리목숨이라고는 하지만 수명을 함부로 바치는 건 좋지 않아."

"그래야겠군요."

"그리고 또 하나... 자네 그릇의 한계는 아직 생각보다 많이 남은 듯 싶네."

"네?"

"방금 전 대련에서 내 변초와 절초를 거의 파악하지 못한 듯 싶더군."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태껏 자네에게 투선급 강자가 강신해서 싸운 게 여러번이지만 자네가 그 전투경험을 소화할 역량이 되지 않는 걸세. 하지만 같은 뇌신류의 종사인 내 수법도 알아보지 못해서야... 자네의 영혼이 내 변초를 따라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니 여동빈이 억지로 고삐를 끌어대는 느낌이 여실했다네."

"......"

그렇다. 내가 강신 중에 절대지경을 느껴보고자 조금씩 정신을 집중한게 되려 여동빈에게는 방해가 된 느낌이었다. 이청운도 특유의 감각으로 그 낌새를 알아챘던 모양이다.

"자네는 뇌신류의 기술을 좀 더 오랫동안 연마할 필요가 있네. 기초가 튼실해야 올라갈 수 있는 법일세."

"음... 수련이 부족하군요."

나는 이청운의 말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즉, 장삼봉은 내 용량의 한계가 십 년이라고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뇌신류의 무공 이해도가 떨어지므로 십 년 이상이 남아있다는 말이었다. 좋게 보자면 좋지만 그동안 내 수련이 부족했다고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말이었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자 이청운이 피식 웃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게. 이건 절대지경과 뇌신류 종사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일 뿐, 자네는 충분히 대단한 고수야. 게다가 전생하는 동안 무공수련에만 매진한 일도 거의 없었잖은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 제갈사와 상담해야지. 여동빈에게 어느 정도의 제물을 바칠지부터 정해야 할 걸세."

우리는 제갈사를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제갈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이청운. 나는 무림인이 아니라서 모르겠는데 지금 백웅이 절대지경에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관문이 남은 거지?"

"백웅이 초절정의 끝자락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사실 거기에서도 절대지경까지 적어도 5개의 관문이 있다고 보네. 그래서 무예의 세계가 넓고도 깊은 거지. 또한 백웅이 막대한 내공으로 이득을 보는 부분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아직 멀었네."

"뭐가 그렇게 복잡한 거야?"

제갈사가 투덜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겠군. 강신상태에서 평범하게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는 위격을 갖추고 정식으로 공양의식으로 바치는 수밖에. 그게 더 효율이 좋겠지..."

"알았어."

파앗!

나는 보물을 잔뜩 가지고 망량선사의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천우진을 만나서 공양의식을 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천우진은 꽤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언짢은 듯 말했다.

"... 꼭 여기서 해야하나? 당신과 여동빈의 단말이 연결되어 있으니 바로 바쳐도 될 것을..."

"천계에 의식을 갖추고 바쳐야 여동빈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잖소."

"후우... 따라오시오."

역시 망량의 말대로였다. 뭔가 말해두고 왔는지 천우진은 따로 대가를 따지지 않고 그냥 일해주기로 한 것이다.

나는 수기공양의 의식을 치를 준비를 마치고는 처음부터 바로 여동빈을 불렀다.

"오시오, 여동빈!"

파앗

그러자 제단 위에 나타난 여동빈이 말했다.

[ 참 번거롭게도 하는군...]

"나중에 딴소리 말고 잘 챙겨달라고 하는겁니다."

[ 속물이구나.]

누가 할 소릴!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일단 여동빈에게 제물을 내놓았다.

"여기 은빛 봉황조각, 요도 무라마사, 금괴와 은괴, 달의 짐승에게서 벗겨낸 가죽, 그리고 언월도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꼭 필요한 걸 제외하고 나머지를 다 털어넣는 기분이다. 특히 저 금괴와 은괴는 해적단에게서 뺏은 보물이었는데 금력 확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까웠다. 하지만 아까운 기분을 내색하지 않고 여동빈을 쳐다보자 그가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 충분하다.]

"오오, 그럼 선검의 강화를..."

[ 하지만 이건... 왜 올려놓은 것인가?]

우웅

여동빈이 신비한 힘을 발휘해서 자신의 영체 손바닥 위에 은빛 봉황조각을 올렸다. 그는 왠지 언짢은 기색으로 은빛 봉황조각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에게 말했다.

"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물인 거 같아서 좋아하실까봐..."

[ 흐음.]

"......"

나는 의문이 생겨나서 질문했다.

"대체 그게 뭔데 그러시는 겁니까?"

[ 이건...]

여동빈은 대답하기 싫은 듯 미적거리다가 말했다.

[ 발해(渤海) 왕족(王族)이 가지고 있던 보물이다. 나와는 악연이 있었으므로 받기 싫다.]

대놓고 고개를 돌리는 걸 보면 정말로 은빛 봉황조각이 싫은 모양이었다.

"악연요?"

[ 설명할 이유는 없다.]

아무래도 보통 악연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 제단에서 은빛 봉황조각을 빼서 회수했고, 여동빈은 그제서야 제물을 받아들이며 밝은 빛을 내었다.

[ 선검을 강화하여 그대의 그릇을 안정시키겠노라.]

파아앗

나는 예전보다 머리가 한층 맑아졌다는 느낌이 여실히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내면에서 뭔가 새하얀 칼날이 반짝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 칼날은 마음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지만 범상치 않은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 이게 선검(仙劍)인가?'

나는 일을 마치자 다시 장령곡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경과를 제갈사에게 말해주자 제갈사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발해의 왕족이라?"

"그렇게 말했어."

"은빛 봉황조각을 나한테 줘봐."

제갈사는 봉황조각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이 물건의 내력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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