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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35화 (534/1,615)

00535  암천향(暗天鄕)

나는 미호를 동영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백금을 미호의 방에 가득 쌓아두자, 그녀는 흡족한 듯 백금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백웅. 이쪽 일은 맡기거라. 흑요석을 많이 캐서 주겠다."

"잘 부탁해."

나는 문득 생각나서 질문했다.

"음양사나 막부의 암살자들이 귀찮게 할 텐데..."

"걱정 마라. 지금까지는 귀찮아서 하지 않았지만."

미호가 백금괴 한 덩이를 손에 집어들며 말했다.

"이거 5덩이 정도만 있으면 코우가(甲賀) 전체를 내 편으로 고용할 수 있다. 그들이 내 호위가 되어준다면 앞으로 암살이나 음양도 따위는 두렵지 않아."

"코우가? 그건 닌자 아닌가?"

"이가류와 함께 최대의 닌자세력이지. 이능력(異能力)을 타고난 자들이 많다고 한다."

미호가 저 정도로 자신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미호를 데려다준 후 나는 곧장 장령곡으로 복귀했다. 하려고 한다면 할 일이야 많겠으나 지금은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수련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돌아오자 제갈사가 말했다.

"절대지경에 도달한 고수를 스승으로 삼아야 절대지경에 도달할 수 있겠지. 그러니 이번 생에서는 이청운을 되살리자. 백련교주나 무사시는 스승으로 삼을 상황이 아니니까."

나는 불안해서 말했다.

"괜찮을까? 흑패의 권능은 한 번밖에 쓸 수 없는데..."

제갈사가 핀잔을 줬다.

"지닌 게 많으면 잡념도 많아지는 법이지. 지금 너는 너무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되려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다. 어차피 안 되면 자살이나 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말고 가진 걸 팍팍 써."

"......"

"목표가 수련이라고 하지 않았냐? 이번 생에는 끝을 못 보는 게 이미 전제되어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다른건 신경쓰지 마."

안되면 자살이라니 너무나 내 목숨을 대충 말하는 제갈사였다. 하지만 그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고 제갈사가 말하는 거였기에 수긍할 수 있었다.

파앗

나는 비등을 써서 태산의 마을로 찾아갔다. 그리고 흑패를 써서 암천향의 밀림으로 가서 그를 대면했다.

[ 환영한다... 환몽의 땅에 각별한 자가 찾아왔구나...]

"아."

[ 말하라... 나에게 주어진 반전(反轉)의 권능으로... 삶을 죽음으로... 죽음을 삶으로 바꿀 한 번의 권리를 주겠노라... 그 누구라 할지도... 이 권능을 피할 수는 없다...]

나는 저 존재를 몇 번째나 대면하는 중이었기에 복잡한 기분이 치밀어 올랐다. 분명히 내게 신살의 의지를 생기게 할 정도로 재수없고 극악한 신이었지만, 동시에 내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도우미 중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 쳇. 할 수 없지...'

마음같아서는 당장 19번째 전생의 빚을 갚아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최대한 저 놈을 이용해먹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청운을 되살려달라고 하기 전에 평소에 궁금해했던 걸 몇 가지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신이시여.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 하라...]

생각해보니 눈 앞에 있는 놈도 천하에서 제일가는 신격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게 크게 과정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

"[옛 지배자]들은 500여년 후에 찾아올 종언(終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종언에서 [계시]를 받는다고 했는데, 계시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

꾸르륵

밀림의 지배자의 몸통 여기저기에 돋아있던 눈알이 깜박이며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그는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인간이여. 그걸 궁금해하는 이유가 뭐지...?]

"궁금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옛 지배자]는 만물을 초월하는 막대한 권능을 지니고 있으니 뭔가에 매달려 탐욕스러워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죠. 무엇 때문에 그 계시를 갈망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 흐흐흐... 신의 비밀을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실로 흥미로운 자로군...]

두웅

밀림의 지배자가 갑자기 날개를 팔락여서 조금 떠올랐다. 여태껏 이런 반응은 지난 회차의 죽음 막바지에서밖에 볼 수 없었으므로 나는 조금 놀랐다. 그는 내 쪽으로 조금 다가오며 말했다.

[ 흥미로워... 크흐흐.]

나는 그가 말할 때마다 엄청난 마력과 권능이 느껴지는게 부담스러워서 힘겹게 대꾸했다.

"종언이 다가온다는 건 이 세상의 웬만한 존재라면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게 그렇게 신기해하실 일입니까?"

[ 내가 신기해하는 건 두 가지 이유지...]

그 존재가 허공에서 멈춰서며 눈알을 내 쪽으로 고정했다.

[ 첫째. 너는 나와 이렇게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벌레같은 인간종족은 결코 할 수 없는 일... 아무리 흑패의 가호를 가지고 있어도...]

"......"

[ 둘째. 종언은 대개 알고 있으나, 종언 후에 계시가 다가온다는 사실은 아주 극소수만이 알고 있다. 삼황오제 혹은 거대한 비밀에 연관된 운명의 사슬... [옛 지배자]... 또는 그 사도인 존재... 이 또한 필멸자가 알 수 없고... 설령 안다 하더라도 [옛 지배자]가 얼마나 갈망하는지는 모르는 자가 태반이다...]

그는 잠시 후 말했다.

[ 마음에 들었다, 필멸자여... 특별히 계시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도록 하마...]

크게 선심쓰는 듯한 말투였지만 나는 거기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계시]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건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내 전생을 뒤엎을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단숨에 특급정보에 접근한 셈이었기에 나는 뚫어져라 밀림의 지배자를 쳐다보았다.

"말씀해 주십시오."

[ 아주 오래 전... 어쩌면 이 우주가 탄생한 직후부터... 시간의 중심에 허공록(虛空錄)이 새겨져 있었다... 최초의 허공록은 자신의 의지를 지니고 깨어나 외신(外神)으로 승화되어... 이 우주에서 가장 지혜로운 존재가 되었다...]

가장 지혜로운 존재.

외신.

내가 그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을 때 밀림의 지배자가 말을 이었다.

[ 그 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회귀(回歸)하여 강림하는 시간과 장소를 알고 계셨지... 왜냐하면 허공록 그 자체니까... 그래서 그 사실을 수억 년 전부터 [옛 지배자]에게 알리며 주시하셨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회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있었는데...?"

[ 어느 순간 사라지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정확한 순간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행성에서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지...]

"......"

나는 밀림의 지배자에게 말을 듣다가 뭔가 깨닫고 말했다.

"[계시]는 절대자가 회귀하는 일시를 알려주는 행사인 겁니까?"

[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나는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밀림의 지배자가 말을 이었다.

[ 필멸자여... 이 이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내 보도록...]

"... 알겠습니다. 이청운이란 인간을 되살려 주십시오."

[ 좋다...]

파앗!

나는 백광과 함께 바깥세상으로 튕겨나왔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이청운의 묘처로 향했다.

묘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어딘가에 있을 이청운을 향해 사자후를 외쳤다.

[ 뇌신류의 호법사자 이청운!! 뇌신류 제자 백웅이 당신을 만나고자 하오.]

사자후의 반응은 즉시 나타났다. 마치 푸른 안개가 허공에서 결집되듯, 홀연히 이청운이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무예수준이 높아진 지금도 이청운이 무슨 의념절기를 운용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이청운은 흥미로운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지? 내가 되살아난 게 설마 백웅 자네가 한 일인가?"

나는 적의가 없다는 걸 표하기 위해 그에게 포권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믿기지 않는군."

"살아있는 자기자신을 의심할 이유가 있습니까? 호법사자께서는 생각하고 있으므로 존재하는 게 아닙니까?"

내가 질문하자 이청운이 씁쓸하게 말했다.

"자네는 뇌신류가 확실하군."

"뇌신류의 종사여. 이제 제 용건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왜인지 모르겠지만 '종사'라는 말을 들은 순간 이청운의 경계가 약간 풀린 듯 했다.

"말해 보게."

스윽

나는 이청운에게 흑요석을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기억을 전송하는 흑요석입니다. 이걸 받으시면 제가 어떤 경위로 종사를 되살리게 되었는지 아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수상쩍군."

"수상하시다면 저를 때려눕히고 고문하셔도 좋습니다. 간단히 당하지는 않겠지만요."

그러자 이청운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사람을 시정잡배나 양아치로 보는가? 그런 짓은 뇌신류의 종사가 함부로 하지 않아."

"......"

"확실히 자네의 말을 들어야 뭔가가 진전되겠군. 그 돌을 줘 보게."

"여기 있습니다."

우우우우

잠시 후 이청운에게 기억이 전송되었다. 이청운은 기억을 받아들이자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짓다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세상에...? 이토록 장구한 모험을 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생과 사를 거듭하며..."

"종사께서도 저와 함께 하신 적이 있습니다. 칠대절학을 승화발전시킨 팔선신공은 바로 당신의 업적입니다."

"흐음... 그런 말을 해도 실감나진 않는군."

씁쓸하게 말한 이청운이 말했다.

"아무튼 나를 되살려줘서 고맙네. 자네의 무공증진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 보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번 이 자리에서 자네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은데 괜찮겠나?"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파직!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이청운은 뇌신지혼(雷神之魂)을 써서 검지를 내 목젖 앞에 갖다댔고, 나는 검을 절반도 뽑지 못했다. 나는 뇌신지혼의 말도 안 되는 속도에 전율하며 손을 떨었다.

극쾌(極快)!

예전에 수련받을 때도 느낀 거지만 정말로 뇌신지혼의 빠르기는 가공할만 했다. 이 정도 차이라면 나는 이청운과 생사결을 벌일 경우 삼초지적도 되지 못할 것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방금 전의 일 초로 나는 검지에 목이 꿰뚫려 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청운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자네의 실력은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군. 뇌신지혼에 맞서서 검을 거기까지 뽑을 수 있는 검객은 전 중원을 통틀어 한 손에 꼽을 것일세. 보통은 반응조차 못하고 일격사하니까. 방금 전에 어쨌든 강기막으로 버티고 반격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는가? 백련교 기준으로도 순수무예경지로서 한 손에 꼽아."

"... 칭찬 감사합니다."

"다만 거기가 참 힘든 부분이지."

이청운이 난처한 듯 말을 이었다.

"자네는 초절정의 끝자락에 도달한 듯 싶네. 허나 거기에서 절대지경으로 한 발짝을 내딛는 건 무예사상 최대의 관문이라 봐도 좋네. 갓난아이 때부터 평생동안 무(武)를 수련해 온 천재들도 그 벽을 넘지 못하고 9할 이상이 주저앉아버리니까."

"......"

"흠, 그대만큼 재능없는 자를 절대지경으로... 이거 자신이 없는데..."

이청운은 지금 나를 놀리려고 협박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난처해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뭐 일단 장령곡이라는 데로 돌아가서 얘기해 봅세. 이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구만."

파앗

나는 이청운과 함께 장령곡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수련하고 있던 무인 동료들을 모두 불러서 이청운을 소개시켜 주었다. 진소청이나 극호 모두가 존경의 시선을 보냈고, 검마 또한 경탄하는 눈으로 이청운을 쳐다보았다. 이청운은 소개가 끝나자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알다시피 백웅을 절대지경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오. 허나 나는 정상적인 수련법으로는 백 년이 지나도 무리라고 생각하오."

옆에서 듣고 있던 검마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무 회의적인 시각이 아닐까 싶소만..."

"사실이 그렇소. 절대지경에 도달하는 건 절정에서 초절정에서 넘어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오. 나 또한 절대지경에 도달하기 위해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을 정도니..."

이청운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명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소."

"누구 말이오?"

"나와 같은 절대지경의 고수이자, 훨씬 강력한 선배가 한 명 있지 않소?"

우우우웅

나는 이윽고 수련장에서 이청운과 대치한 채 여동빈을 불러내었다. 그리고 여동빈에게 말했다.

"여동빈이여. 내 수명 10년을 바치겠으니 이청운과 대련하고 그와 무론을 토의하여 내가 절대지경으로 나아갈 길을 이끌어 주십시오! 덤으로 무예스승으로 지도도 좀..."

[ ......]

여동빈이 잠시 어이없는 듯 굳었다.

"여동빈?"

그러자 검을 들고 있던 여동빈의 환영이 침중하게 말했다.

[ 연자여. 방금 그 말은 내게 이렇게 들렸다.]

"어떻게요?"

[ 칼 한 자루를 줄테니 요괴 100마리를 물리치고 십만대군과 맞서싸운 후 용도 봉인해 오라는 것과 같구나.]

"......"

내가 방금 한 제안이 그렇게 양심없는 거였단 말인가?

여동빈은 황당해하는 기색을 잠시 후 지우고는 말했다.

[ 그 청을 들어주고자 하면 아무리 그대가 연자라지만 최소한 70년의 수명은 받아야겠다.]

"치... 칠십 년."

그건 너무 긴 수명 아닌가?

아무리 내가 심심하면 죽어나간다고는 해도 이번 생의 목표는 수련이었다. 70년의 수명을 날려버리면 아무리 고수의 수명이 길다 해도 100년 이상 살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어쩌면

20년도 안되어서 고꾸라져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삼봉 때와는 차이가 있었으므로 나는 항의했다.

"장삼봉같은 투선들은 인간과 연을 맺으면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의 가르침을 베풀어준다는데 너무 짠거 아닙니까?"

[ 장삼봉이 어떻게 하든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장삼봉은 큰 욕심이 없으니 자신의 영력과 도력을 소모하여 대신 인과율을 감당해주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왜입니까?"

[ 나는 천계에서 힘을 모아서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 내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 서 있던 이청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여동빈. 내가 백웅을 대신해서 수명 20년쯤 내놓겠소. 그걸로 이번 대련 정도는 값을 치를 수 있지 않겠소?"

[ ... 알았다.]

교섭이 이루어진 후 여동빈과 이청운이 마주섰다.

"한 수 부탁하오, 검선(劍仙)."

[ 나야말로 잘 부탁한다.]

드디어 투선과 역대 최강의 뇌신류 호법사자가 맞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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