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534화 (533/1,615)

00534  암천향(暗天鄕)

제갈사를 영입한 후 나는 진랑곡에서 장령곡으로 본거지를 옮기기로 했다. 진랑곡에도 망량이 나름대로의 정보단체와 세력을 일궈놓은 상태였지만 제갈사가 장령곡에 만들어둔 것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곧장 나머지 기연을 챙기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앗

먼저 내가 간 곳은 화신류의 한진성이 내게 알려줬던 비밀동혈, 용문석굴의 빈양남동(??南洞)이었다. 이미 안쪽의 좌표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굳이 열다섯번째 불상 뒤편의 벽을 부술 필요는 없었다. 역시나 이 곳에는 엄청난 백금(白金)이 비장되어 있었고, 이 백금은 내게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또한 나는 비장되어 있던 언월도와 백변신투의 비급 다섯 권을 챙겨서 빈양남동의 비고동을 빠져나왔다. 사실 이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건 백금이었고, 이 백금을 기반으로 금력을 확장시킬 수 있으리라.

' 봉래도에 가서 선인들을 구출하고 싶지만 지금은 좀 위험하겠지?'

억지로 탐라도에 있는 칠성단을 찾아가서 천우진의 도움으로 봉래도로 가는 길을 열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그 곳은 해신이 지배한 권역이었으며, 해신이 살아있는 지금 그곳에 머물고 있는 해신족들은 상당히 강력할 게 분명했다. 또한 선인들을 구출한다 한들 해신에게 괜히 주목받는 건 피할 수 없으리라. 내 힘이 웬만큼 갖춰지기 전에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하다.

파앗

나는 즉시 청월이 있던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심처로 향했다. 나는 머지 않아 죽어가는 꼴의 청월을 발견했고, 그를 목갑에 넣었다.

"그 놈은 없나?"

일전에 봤던 삿갓을 쓴 무사가 없는지 잠시 주변을 살폈지만 누군가가 싸우거나 움직이는 기색은 없었고, 심연의 마물들이 여기저기에서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더 오랫동안 머무르면 위험할 거라고 생각해서 일단 비등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잠깐 탐라도의 해안가로 가서 맑은 바다를 감상했고, 제갈사의 말을 상기했다.

[ 우선 빈양남동의 비고동을 얻고, 그 다음은 청월을 구출해라. 그리고 나서 황궁의 전국옥새와 무명제사서를 한번에 얻을 때까지 당분간 힘을 키운다.]

[ 화요와 화룡신검은?]

[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야. 백련교, 화신류, 삼황오제를 한꺼번에 들쑤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일의 진행을 급박하게 만들어 버린다. 화요를 얻는 순간 천계가 우리를 극도로 주시할 게 뻔하지 않냐? 칠요를 두 개나 보유하는건데.]

[ 맞는 말이군.]

[ 어차피 그것들을 당장 누가 가져갈 일은 없으니 조금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전국옥새도 마찬가지. 중요한 건 네가 힘을 키우는 거다. 다음 일은 갔다와서 논의하자.]

제갈사 또한 망량과 마찬가지로 이번 생은 은인자중하는 게 낫다는 견해로 보였다. 확실히 제갈사 말대로 충분한 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화요, 화룡신검, 전국옥새같은 상급 보물을 탐하다가는 단번에 적들의 수준이 높아질 게 뻔하다.

' 흠... 그래도 이대로 가는 건 좀 심심한데.'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 보고 싶다. 내가 최대한 움직여둬야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나는 민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곰곰히 생각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걸 한번 해볼까?"

파앗

내가 도착한 것은 청장고원이었다. 여기에 온 이유는 다시 뇌음사를 찾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에서부터 조금 더 남서쪽으로 가다보면 지형상 천축(天竺) 대륙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천축!

그 곳은 중화의 서쪽에 있다 알려진 대륙이었으며 불교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또한 중화와는 이질적인 거대문명이 존재하고 있으며 범천 등의 서방신을 모시는 독특한 종교가 발달했다고 들었다. 또한 제갈사도 천축의 마도(魔道)는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고 말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곳이었다.

' 가 보자.'

어차피 삼장의 흔적을 쫓게 된다면 천축에 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후왕 본인의 입으로 삼장이 천축에서 뭔가를 말해줬다는 걸 암시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중에 탐색을 빨리 하기 위해서 청장고원에서부터 천축까지 먼저 길을 뚫어두기로 마음먹었다.

타다닷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뛰어서 서방까지 한 번 일주해본 이상, 천축까지 가는 게 두렵지는 않다. 내 경공속도로 달린다면 아마 머지 않아 천축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나는 고원에서부터 험난하기 그지없는 설산과 대맥을 헤치면서 계속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하루 정도를 계속 뛰었을까? 나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고요한 산야에서 웬 이민족이 양을 키우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복색은 청장지역 사람들과 크게 달라서 아마 천축의 초입에 들어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 백웅. 너 도대체 어디 있냐?]

제갈사가 순어구로 통신을 해 왔다. 나는 순어구로 대답했다.

[ 지금 천축에 가는 중이야.]

[ ......]

제갈사는 잠시 말이 없다가 킬킬댔다.

[ 크크크... 말해봤자 입만 아프지.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것 같으니까 일단은 쭉 가 봐라. 천축의 큰 도시에 도착한 다음에 내게 다시 연락해.]

[ 알았어.]

혼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나는 내심 가슴을 쓸며 계속 뛰었다.

타다닷

뛰고 또 뛰다가 잠시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자, 나는 천신경의 술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일대의 강한 영을 찾던 중 고대 무사의 영혼을 찾아서 불러들였다.

[ 나를 불렀는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 나는 살라흐 앗 딘 님을 모시던 맘루크의 대장이다!]

"이름은 없소?"

[ 난 노예출신이라서 없다!]

살라흐 앗 딘?

맘루크?

영문을 알 수 없는 천축의 언어가 들리자 나는 어리둥절했다. 물론 이국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나는 천축의 큰 도시를 찾아가는 중이오. 천축에서 가장 큰 도시로 갈 수 있게 도와주시오."

[ 가장 큰 도시라... 그 곳은 카이로다!]

"카이로? 기억을 좀 보여주시오."

스스스스...

자칭 맘루크 대장이 내게 기억을 전달했다. 그러자 나는 대략적인 천축 일대의 지도와 지형을 알 수 있었고, 카이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황당해서 말했다.

"... 여긴 천축이라기엔 너무 서쪽 아니오? 말로만 듣던 검은 대륙의 북부에 위치한거 같은데."

'검은 대륙'은 나도 제갈사에게 말로만 들은 장소로, 굉장히 덥고 미개한 대륙이라고 들은 바가 있었다. 천축보다 훨씬 서쪽에 있는 곳이기에 나는 단번에 맘루크 대장이 천축사람이라기엔 외지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다.

[ 그런가?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내가 살던 곳에서 동쪽의 전장으로 와서 죽었기 때문에 이 곳은 타지(他地)다.]

"뭐하러 동쪽의 만리타역까지 와서 죽었단 말이오?"

[ 나는 서양의 마도사와 괴수들이 쳐들어온 대전쟁에서 주군 살라흐 앗 딘의 지휘를 받아 적을 패퇴시킨 후 2차 동방 확장전쟁에 참전했으나 분하게도 전사했다!]

"......"

뭔가 복잡한 천축의 역사가 개입된 것 같아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의 나로서는 알기도 힘들고 알 필요도 없는 역사였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천신경의 술법으로 불려왔으면 당신도 생전에 강력한 무사였겠지. 잠깐 몸을 빌려줄테니 일단 근방에 있는 도시에라도 데려다 주시오."

[ 좋다!]

타다닷

이윽고 맘루크 대장이 내게 빙의해서 뛰기 시작했다.

[ 엄청난 차크라군!! 그대는 반신인가? 인간의 차크라가 아니구나!]

맘루크 대장이 크게 경탄하며 대번에 십여 장을 뛰어올랐다. 역시 그도 기를 익숙하게 다루는지 손쉽게 신법을 운용해서 달리는 듯 했다. 나는 그가 신법을 발휘하는 걸 보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 천축에도 무공이 발달해 있소?]

[ 무공?]

[ 기를 이용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내가 무공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자 그가 금세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 요가를 통해 차크라를 운용하는 걸 말하는 건가? 차크라와 요가는 고대부터 상급무사들이 기본적으로 익히는 소양이다! 나는 브라만이나 요기 정도는 아니지만 생전에 열심히 무예를 수행했다. 그래서 차크라를 뿜어내어 내 신체의 전투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 그렇군.]

[ 이래봬도 살라흐 앗 딘 님 휘하의 맘루크 중에서는 내가 가장 강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모든 세상의 인간들이 기(氣)에 대해서 알고 있구나.'

서양에서는 카프트(Kraft).

천축에서는 차크라(chakra).

명칭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가 '기'라는 힘을 이해하고 운용할 줄 알았다. 기는 중원인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맘루크 대장도 생전에 기를 이용한 무예에 달통해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기 때문에 천신경에 불려나올 정도의 강력한 영이 된 것이다. 아마 중원으로 치면 절정의 최후반에 도달한 고수였으리라. 나는 방금 맘루크 대장이 했던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질문했다.

[ 당신이 방금 서양의 마도사들이 쳐들어온 전쟁에 참여했다고 말했잖소. 그건 무슨 전쟁이었소?]

[ 서양의 무수한 기사와 마도사들이 대군을 이루어 우리의 땅을 침범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맞서싸웠고 오랜 전쟁 끝에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사악한 신을 숭배하는 무리들이었으나 자신들의 성지를 수복한답시고 쳐들어왔다.]

그는 약간 아쉬운 듯 말을 이었다.

[ 내가 그 전쟁에서 사자심왕에게 한칼을 먹어서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이런 이역만리에서 죽을 일은 없었을텐데... 아무튼 성지를 지키는 전쟁이었다!]

[ 성지?]

[ 자세한 건 모른다. 나는 전쟁을 하는 군인이었으니 다른 자에게 물어봐라.]

타다닷

그는 약 다섯 시진 정도를 계속 달렸다. 그리고 어딘가 거대한 도시에 도착했는데, 먼 곳의 언덕에서 그 도시를 쳐다보며 말했다.

[ 도착했다. 바로 저기가 바라나시다. 카이로만큼은 아니지만 이 일대에서는 가장 번영한 도시다!]

[ 바라나시? 저기는 뭐하는 곳이오.]

[ 힌두를 믿는 자들이 잔뜩 몰려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휘이이잉

맘루크 대장이 천천히 내 몸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물러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심지어 눈치를 보는 기색이었다.

[ ... 이봐, 나 일을 열심히 했으니까 정말 구원해 주는 거겠지?]

응?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어리둥절해 했다.

"무슨 소리요? 구원이라니?"

[ 이 술법은 구원을 약속하는 거 아닌가. 그것 때문에 저승으로 가는 것도 거부하고 가슴졸이며 기다리고 있었거늘.]

"......?"

[ 나는 브라만이나 요기가 날 구해줄 줄 알았는데, 뜻밖에 이국인이 구해주는구나.]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던 맘루크 대장이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 으하하하. 아무튼 나는 구원받으러 간다!]

번쩍

그의 영혼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현상은 천신경의 술법을 쓸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일을 끝마친 영혼은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천신경의 술법에는 그 영혼들이 '어디로' '왜' '어떻게' 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구원?

천신경의 술법이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에게서 구원받는단 말인가? 그리고 브라만이나 요기라면 천축사회의 상위계급이나 요술사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들 또한 대라신선 전용술법인 천신경의 술과 비슷한 걸 사용할 줄 안다는 말인 걸까?

머릿속에 의문이 쌓였지만 나는 고개를 털었다.

"쳇. 생각해봤자 모르는거면 생각해 봤자지!"

일단은 눈 앞의 도시로 간다!

나는 바라나시로 들어가서 도시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서양과 달리 문물은 그렇게 발달한 것 같지 않았고 사람들이 중원과는 이색적인 복색을 입고 있었다. 도시 중앙에 왕궁이 있는 건 중원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왕궁쪽으로 가서 둘러보았지만 크게 특별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경비병들이 조총으로 보이는 총기를 장비하고 있는 게 특이했다.

' 중원 말고는 다들 총을 쓰고 있는 건가?'

어쩌면 중원이 세계 문명발전의 대세에 늦은 게 아닐까?

나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고개를 흔들며 비등을 썼다.

파앗

장령곡으로 돌아오자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꼭 해야할 일도 아닌데 꼭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거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하지만 일을 미리 해놓는 게 마음이 편해서..."

"뭐 됐다. 아무튼 천축으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면 된 거지. 어디에 도착했지?"

"바라나시."

"호오, 제대로 갔군. 거기에 아마 베다가 있을텐데..."

뭔가를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천축 일은 지금은 더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보다 미호를 동영에 데려다주고 와라."

"미호를?"

"흑요석을 캐야할 거 아냐. 앞으로 흑요석이 필요할 일이 많을테니 흑요석 광산을 찾아서 지배하게 만들어야지."

"아..."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네가 가져온 빈양남동의 백금을 미호에게 줘라. 아무리 현혹술을 쓸 수 있어도 막부의 쇼군과 교섭하려면 돈이 있는 편이 낫겠지. 그 백금으로 흑요석 광산을 사들이는 게 제일 무난하다."

"그래야겠군."

그러고보니 미호는 동영의 권력자였다. 미호가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하면 앞으로 필요할 흑요석을 많이 공급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미호를 데려다주고 난 다음에는 장령곡에 돌아와서 수행을 시작해라. 수행이 궤도에 오르고 나면 그때부터 황궁을 견제하고 무명제사서와 전국옥새를 얻으러 움직일 거다."

"알았어."

그가 히죽 웃었다.

"최선을 다해서 널 도와주지. 그러니까 이번 생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원없이 수련이나 해 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