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526화 (525/1,615)

00526  암천향(暗天鄕)  =========================================================================

23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외양간에 누워서 허탈하게 천정을 쳐다보았다. 분노와 절망이 뒤엉켜서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고, 다른 누구보다 내 자신의 무력함을 용서할 수가 없다는 감정이 처참하게 몸과 마음을 내리눌렀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선택했더라면!

차라리 그랬더라면 동료들의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으아... 아아아..."

자책감 때문에 눈물이 눈가로 새어서 귀로 줄줄 흘러내렸다. 남이 보면 너무 한심해보일 광경이었지만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지배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잊어버리고 싶다.

나는 갑자기 머리속을 내리누르는 중압감을 잊어버릴 방법으로 술이 떠올랐다. 여자라든가 약도 있겠지만 그냥 지금은 술이 미친듯이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근처의 마을로 뛰쳐나갔다.

타다닷

달리고 또 달린다. 나는 이번에는 천암비서조차 챙기지 않고 그냥 막 달렸다. 이대로 누워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냥 막 달렸다. 역시 이번에도 내공이 전승되었는지 사흘밤낮을 달려도 끄떡없는 체력이 적용되었다.

' 술... 술 많은 곳에 처박혀서 술만 마시고싶어.'

내가 한참 달려서 도착한 곳은 바로 관중이었다. 그리고 관중에서 가장 큰 기루(妓樓)였다.

춘경관(春景關)

나는 현판을 보고 멍하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에서 일하던 점소이 하나가 불쾌하다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야? 아침에 청소하려고 문열자마자 웬 거지꼬맹이가..."

"술... 술 줘!"

나는 점소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점소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내 멱살을 잡고 끌어내려 했다.

"젠장! 재수가 없으려니 원..."

휘리릭

"억."

나는 곧장 뇌신류의 금나수법을 써서 점소이를 뒤로 내동댕이쳤다. 워낙 깔끔하게 내던진지라 점소이는 바닥을 몇 번 구르고 나서야 자신이 던져졌다는 걸 알아챈 듯 했다. 나는 점소이를 무시하고 춘경관의 술 저장고를 찾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있다.

' 마시자! 마시고 다 잊자!'

나는 술이 쌓여있는 곳을 찾아내자 곧장 술동이 하나를 골라서 통째로 집어들었다. 내 몸뚱이보다 더 큰 술동이였지만 나는 거침없이 입을 대고 꿀꺽꿀꺽 마셨다. 제법 독한 술인듯 알싸하게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근데 안 취해!

술기운이 올라오는 기운이 들자 내 내공이 저절로 저항해서 해독해 버렸다. 나는 내 내공이 워낙 많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란 걸 알고 있었고, 일부러 저항력을 낮추려고 기혈을 통제해 보았다. 하지만 내공이 너무 많아서 해독력이 너무 좋았다. 어지간한 술기운으로는 의식하지 않아도 말짱할수밖에 없었다. 굳이 이걸 해결하려면 기경팔맥을 따로 연구해서 술에 취하는 혈을 자극해야 할 듯 했는데, 그건 또 너무 귀찮았다.

' 젠장... 나도 몰라.'

그냥 미친듯이 마시다보면 뭐가 되겠지!!

그렇게 생각할 이유는 없는데도, 나는 술동이를 기울여서 계속 위장에 술을 들이부었다.

벌컥벌컥

"으... 으아... 미친놈이다!!"

뒤따라 온 점소이가 기겁을 하며 술을 들이붓는 내 몸을 끌어당겼지만, 나는 점소이 따위에게 끌려갈 무공이 아니었다. 적어도 구파일방의 장문인쯤은 와야 움직이는 척이라도 할 것이다. 나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점소이한테 고개를 돌렸다.

"술값 나중에 줄테니까 마시게 내버려 둬!!"

"히익."

약간 내공을 담아서 외쳤기 때문인지 점소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어느 새 술독 하나를 다 비웠지만 취하기는 커녕 그냥 물이나 잔뜩 마신 기분이라는 걸 알아챘다. 나는 즉시 물기운을 체외로 배출하며 미친듯이 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마시다보니 점소이가 또 웬 패거리를 끌고왔다. 점소이와 함께 있던 춘경관 주인이 흥분하며 그 패거리들에게 외쳤다.

"저 꼬맹이를 끌어내 주시오!! 우리 집 술이 다 동나겠소."

"무공 좀 하는 꼬맹이같은데 잘못 걸렸다."

"어린 새끼가 벌써부터 술을 밝히고 지랄이여!"

팔다리를 분지르겠다느니 하면서 엄포를 놓는 주먹패들은 보아하니 관중의 사파무인들 같았다. 하지만 역시 별볼일 없는 놈들이었고 무공수준이 하찮았다.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술을 마셨고, 사파 패거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와아아."

터터텅

"으아악."

"끼엑."

순식간에 십여 명은 되는 장정들이 태극권에 맞아서 날아갔다. 너무 수준이 낮아서 뇌신류 무공을 쓸 이유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다. 놈들은 모두 정확하게 요혈을 맞아서 기절했기에 한동안 깨어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나는 계속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 제길... 잊혀지지가 않아.'

그들이 날 위해 죽었던 그 풍경이 뇌리에서 사라지지가 않는다. 첫번째 표사의 생을 살 때는 이렇게 미친듯이 퍼마시다 보면 기억이 끊겨서 대충 기절했었는데, 이젠 그것도 내 맘대로 안 된다는 소리인가? 정신이 계속 말짱하니 답답하고 괴로워서 더 우울해졌다.

벌컥벌컥

결국 나는 술독을 일곱 동이째 비우게 되었다. 뒤에 서 있던 주인이 오들오들 떨면서 말했다.

"히익... 인간의 주량이 아니야..."

하지만 아직 춘경관 전체로 치면 30동이 정도는 남아 있었다. 나는 괴로운 눈으로 다음 술독을 집어서 위장에 들이붓기 시작했고, 주인이 달아나듯 밖으로 뛰쳐나가며 외쳤다.

"으아아아!! 극호!! 극호는 출근 안했냐아아!!"

나는 계속 술을 마셨다.

잊고 싶다.

잊고 싶은데, 왜 안 잊혀지는 걸까?

그냥 접시물에 코박고 죽고싶은데 난 죽음조차 해결책이 아니다.

너무 괴롭다. 제발 술이 이 괴로움을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술독을 다시 여섯 동이를 비웠을 때, 등 뒤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인기척은 창을 비스듬이 들고 있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야 꼬맹이! 술 맛있냐?"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쓸 기분이 아니라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버럭 외쳤다.

"넌 술을 맛있어서 먹냐?!"

"하아?"

그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갑자기 낄낄거렸다.

"푸하하. 이거 참 또라이일세? 이야, 내가 주도(酒道)를 걸은지 10년이 더 되었는데 니 나이때 그런 생각은 못 했거든. 어려보이는데 뭐가 그리 힘든 일이 있었던거냐?"

"....."

"야,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 좀 해 봐. 지금 내가 술먹는 거 방해하냐? 대답 정돈 해 줄 수 있잖아."

나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풍류남아인 척 하는 쑥맥 새끼."

"뭐야, 까칠한 새끼구만."

그는 투덜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꼬마야. 나는 여기서 일하는 극호라고 한다. 니 이름이 뭔지 대답 좀 해봐. 그래야 술값을 외상으로 달아두던가 할거 아냐."

그랬다.

내 등 뒤에서 창을 들고 건들거리고 있는 놈은 바로 극호였다. 지금은 술집 춘경관의 기둥서방 겸 호위무사로 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뇌신류의 전승자이며 이광과 관련있는 놈이었다. 또한 뇌신류 최고의 신법 중 하나인 멸혼보의 전수자이며 천광까지 쓸 수 있었다. 나는 전생을 하는 동안 극호의 내력을 다 알 수 있었기에 극호가 그저 술집 기둥서방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극호가 의외로 대단한 놈이란 게 지금 내 맘을 어떻게 치유해 줄 수 있나?

나는 그런 생각 때문에 한층 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씨발 닥쳐!! 난 백웅이라고 하니까 같이 술 먹을 거 아니면 저리 꺼지라고."

"호오... 백웅... 이름 참 단순하구만?"

극호는 자신의 턱을 긁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옆에 앉았다.

풀썩

내가 극호를 돌아보자, 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까짓거 형님이 같이 마셔 주지 뭐."

"......"

"참고로 내가 관중 최고의 주당이라고 불리는데 네가 이 형님을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음하하."

벌컥벌컥

극호가 껄껄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지금은 저 기생오래비 잡놈을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을 추스리기만도 바빴다. 그냥 술을 진창 마시고 기억이 끊겨서 다 잊어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벌컥벌컥

"크으, 춘경관 술맛 죽이지 않냐? 근처 농민들한테서 사오는 과실주인데 이게 한번에 훅 간단 말이지."

벌컥벌컥

"크으으~ 취한다."

극호도 나와 함께 앉아서 술을 동이째로 들이붓고 있었다. 뒤쪽에 서서 지켜보던 주인이 안절부절 못하며 외쳤다.

"극호 뭐 하는거냐!!"

"보면 모르시오? 대작하고 있잖소."

"아니... 저 꼬맹이를 꺼내야지 무슨..."

"흐흐. 내 술값은 내가 낼테니까 걍 보고 있으시오 아저씨."

"으으."

극호는 피식 웃더니 계속 술을 마셨다. 나는 한동안 계속 위장에 붓고 또 붓고를 반복하다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극호를 쳐다보았다.

' 저 새끼도 잘 마시는군.'

물론 극호도 초절정의 반열에 올라있어서 내공이 심후하긴 하지만 나이가 아직 청년이라서 중원 최정상급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주정을 몸 바깥으로 밀어내는 요결을 쓰고 있을테지만 어쨌든 주량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미친듯이 술을 퍼마시는 걸 대작해 준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졌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나와 극호는 한동안 말없이 술을 마셨다. 그러던 중 30동이가 거의 다 사라져서 이제 세 동이밖에 남지 않았다. 극호는 내가 그 술독으로 손을 뻗자 갑자기 내게 질문했다.

"백웅이랬냐? 너 그 술에 미안하지 않냐?"

멈칫

나는 뜻밖의 소리에 손을 멈췄다. 극호는 말을 이었다.

"이 관중에 술처먹고 진상부리는 새끼들이 여럿 있지마는~ 그놈들도 다 술을 사랑한다고. 적어도 그 술이 무슨 술인지는 알고 어떤 맛인지 알고 아낀다고. 처자식보다 술이 좋은 술고래들한테도 애정과 원칙이 있어. 근데 백웅 너는 그 술이 무슨 맛인지 알고 먹는거냐?"

"......"

뜬금없는 극호의 말에 나는 정신이 확 맑아졌다. 원래부터 맑았기 때문에 뜻밖에 상식적인 소리를 들으면 이성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극호한테 이런 말이나 듣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오면서 머뭇거리게 되었다.

"... 모르고 먹으면 어때서 그래. 술은 취하려고 먹는거잖아."

"어 맞아. 취하려고 먹는거지. 근데 너는 술을 모독하고 있어."

"술을 모독하고 있다고?"

벌컥벌컥

극호가 근처에 있던 술동이를 잡고 들이킨 후 입가를 닦았다.

"쌔끼야~ 잘 들어. 술은 기분 좋으려고 먹는거야. 먹기 전에는 기대가 되어서 기분이 좋고, 먹으면 알딸딸해서 기분이 좋고, 취한 다음에는 세상만사 행복해서 좋고... 그러면서 남한테 민폐 안 끼치고 기분좋게 먹고가란 말이야. 여긴 그런 술집이야."

극호가 앉은 자세로 허벅지에 턱을 괴며 나를 노려보았다.

"근데 씨발, 아까부터 술 처먹으면서 죽을상 쓰면서 똥처먹은 표정이면 술을 모독하는 거 아니냐? 안 그래? 그 술을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않냐?"

"......"

"어? 그 뭐냐, 자신만의 주도를 소신있게 지키라, 이말이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 노... 논리적인 개소리군.'

그럴듯하게 말하긴 했지만 결국 내가 술먹는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시비를 거는 셈이었다. 망량이나 제갈사에게 논리적인 일침을 당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극호가 나머지 술동이를 먼저 다 먹어서 비워버렸다. 그리고는 히죽 웃었다.

"야, 내가 춘경관 술 다 먹었는데 이제 어쩔 거냐? 다른 술집 갈거야?"

"......"

"그러지 말고 나랑 내기 하나 할래? 술 잔뜩 먹을 수 있으니까."

"내기?"

극호가 킬킬 웃었다.

"마, 기왕 술먹는거 화끈하게 먹자고. 너랑 나랑 관중의 술을 함께 비워보자. 누가 더 많이 마시느냐로."

어처구니가 없다.

술로 아픔을 달래려던 생각이 싹 날아갈 정도로 황당한 놈이다.

"내가 왜 그런걸 해야하는데?"

"쫄리냐? 쫄리면 하지 말고~"

"내가 혼자 술 좀 먹겠다는데 무슨 오지랖이..."

"할 거야 말 거야? 크크크."

나는 황당해서 피식 웃어버렸다.

"내가 이길걸."

두둥

잠시 후 춘경관 주인을 비롯해서 관중 유흥가에 있던 모든 술집 주인들이 술통과 술동이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관도의 행인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삼삼오오 몰려들어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술동이는 수백 개도 넘게 쌓였고, 나와 극호는 술동이에 둘러쌓인 형상이 되고 말았다.

극호가 내공을 돋우어서 외쳤다.

"여러분~ 관중 최고의 술고래를 여기서 가리겠슴다~~"

"뭔 일이야?"

"이 승부의 심판은~ 귀신도 잡는다는~ 관중무림의 희망! 청룡무관 관주 삼절 이광!"

맞은 편에는 어느 새 이광이 와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옆에는 진소청이 청룡무관의 관도 몇몇을 데리고 와 있었다.

이광은 극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극호. 이 짓거리를 책임 못지면 네녀석은 파문이다..."

"히히. 뭐 어떻습니까."

이광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사람들의 이목이 이광에게로 쏠리자, 이광이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외쳤다.

"시작!"

벌컥벌컥

벌컥벌컥

' 에라,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은 이광이고 극호고 지랄이고 그냥 다 잊고 술이나 마시고 싶었다. 이광에 대한 원한으로 복잡하게 머리를 쓰기도 싫었다. 나는 계속해서 술동이를 뱃속에 털어넣고 털어넣고 또 털어넣었다. 극호도 마찬가지인지 술로 배를 채우듯 미친듯이 마시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그렇게 둘이서 마신 술독이 스무 동이를 넘기자, 지켜보던 행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저게 인간의 주량이야?!"

"술의 신이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관전하고 있던 진소청이 경악했다.

"미쳤군..."

이광이 차분하게 말했다.

"소청아. 너라면 얼마나 마실 수 있겠느냐?"

"어... 저는 술을 별로 안좋아해서..."

"......"

물론 그렇지 않다.

진소청도 극호만큼이나 술을 좋아하는 놈이었다. 마시기도 잘 마셨다. 나는 전생을 하면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50동이를 넘길 때였다. 극호가 갑자기 주정을 배출하다 말고 안색이 파리해졌다.

"우읍."

역시 아무리 극호가 주정을 배출해도 한계가 있었다. 내공이 받쳐주지 못하니 해독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는 현재 술때문에 구토를 하기 직전으로 보였다.

' 이겼군.'

저 상태가 되면 이제 한 동이를 비우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극호가 갑자기 정신을 집중했다.

"흐으읍!!"

갑자기 극호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의 내공이 한단계 상승했다. 파직거리며 뇌령기가 강하게 솟아올랐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광이 감탄했다.

"녀석, 해냈구나! 벽을 뚫다니."

"....."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극호를 쳐다보았다.

' 뭐야? 뇌령의 경지를 타통하고 기혈을 크게 뚫었는데 그게...'

술에 대한 의지력만으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 정도가 되면 극호의 주도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내가 살면서 온갖 경험을 다 해봤지만 술 마시다가 무예경지가 상승하는 건 오늘 처음 본 것이다! 극호는 의지를 불태웠다.

"... 내 주도 경력 최대최후의 강적이 바로 너구나, 백웅."

"아니 그게... 너 왜 그러냐... 무섭게..."

"흐압."

내가 질려서 중얼거리자 극호가 술 한 동이를 바로 한 입에 비워버렸다. 약간 술배가 나온 극호였지만 빠르게 주정을 배출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나와 극호의 대결을 보고 있던 술집 주인들은 머리가 어질거리는지 여기저기서 풀썩풀썩 쓰러졌다. 그들은 인간이 이렇게 많이 마실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더러는 이 술값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한계는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 으... 나도 취한다... 진짜 취한다...'

술을 마시는 속도와 양은 내가 극호보다 더했다. 그렇다보니 내 내공이 아무리 막강하다지만 결국 한계가 온 것이다. 백 동이 가까이 비워서야 겨우 알딸딸한 기분과 함께 머리가 띵해졌다. 여기서 주정을 배출하는 요결을 쓰면 아마 극호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왠지 그렇게 하면 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취한다.

나는 드디어 확하고 취한 느낌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기분에 전율이 일었다. 그토록 원했던 감각이 다가왔지만 나는 왠지 단순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몸이 나른하고 눈꺼풀이 감기고 코와 입으로 술냄새가 턱턱 들어오는 느낌, 그리고 목과 입이 따끈하게 달궈지는 느낌 전체가 내가 취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술에 취해서 잠에 들기 직전, 극호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게 들렸다.

"마... 내가,,, 쉬펄,,, 관중최고다,,, 알것냐... 엉!!"

아냐, 너는 관중최고가 아냐.

나를 꺾었다면 극호 너는 이미 중원제일이다...

나는 내심 헛웃음이 나왔다.

' 큭큭큭.'

이게 뭔가.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나? 이런 것도 인생이었나.

풀썩

나는 앞으로 쓰러지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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