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24 암천향(暗天鄕) =========================================================================
여와의 반대선언에 나머지 삼황오제들은 곤란해하는 기색이었다. 특히 전욱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참 제멋대로시군.]
여와는 오연하게 전욱을 쳐다보았다.
[ 칠요의 해방은 안 된다. 상고시대부터 계속 말해왔을텐데.]
[ 우리 오제는 여와님 그대가 삼황의 일좌이며 특별한 존재인지라 존중하고 있소. 그래서 얼마 전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소?]
[ ......]
[ 또한 삼황의 의견과 충돌이 있을 경우 언제나 오제 쪽이 양보해 왔지.]
부탁을 들어줬다고?
전욱은 불편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이번엔 다르오. 흉신이 자신의 사도를 중원에 만들어내고 영향력을 뻗치기 시작하면, 우리는 황제와 복희도 없는 상태에서 또 전쟁을 치러야 하오. 흉신 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잡놈들이 끝도 없이 몰려들겠지. 우리는 그 지긋지긋한 전쟁이 지겨워서 계시를 기다리고자 하늘과 땅을 나누고 칠요를 만든 게 아니오?]
[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 우리 오제의 의지는 보는바와 같소. 현명한 결정을 내려 주시오.]
나는 이제야 전욱과 여와의 관계를 알 것 같았다. 명목상 여와가 전욱의 상급자인데다 창세신이라서 존중해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삼황과 오제 사이는 동급이나 마찬가지였다. 워낙 높은 신격들이라서 이미 힘 차이를 비교하는게 무의미한 것이다.
그 때 여와의 옆에 있던 삼황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 시시한 회담이군... 나는 가겠다.]
그러자 전욱이 비웃듯 말했다.
[ 어차피 유폐되신 몸 아니신가? 당신 의견은 이제 와서 중요치 않소.]
[ ......]
[ 갈테면 가시오, 염제(炎帝).]
후웅!
염제의 환영이 사라졌다. 방금 전 이야기를 꺼낸 건 삼황의 일원인 염제 신농(神農)인 것이다. 소문대로 그가 어딘가에 유폐되어 있어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건 사실으로 보였다.
여와가 말했다.
[ 지금 인계를 멸하면 수천 년간 우리가 세웠던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놈들이 계시를 들은 후 순순히 물러난다는 보장은 없지.]
[ 바라던 바요. 어차피 힘이 부족하지는 않은 터. 우리는 이 가면이 싫은 거요.]
[ 그 가면에 장점도 있을 터인데.]
[ 유희는 끝이오.]
[ 그대의 인내심이 한계라는 말을 돌려 하는구나.]
핀잔을 준 여와는 말을 이었다.
[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칠요는 해제되어서는 안되며 인간 또한 멸망할 때가 아니다. 정해진 때를 지키는 게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 고집스럽군...]
불온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전욱을 비롯한 4명의 오제들은 여와에게 점차 적대감을 지니기 시작한 듯 했다. 아무리 여와라 해도 나머지 넷의 대신격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 지는 천상천하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였다.
오제들 중에서 소호금천이 나서서 말했다.
[ 우리끼리 싸워봤자 무의미하지. 황제의 뜻을 물어봄이 어떻소?]
[ 황제라고...]
[ 어찌되었든 그 분이야말로 우리의 시초. 이 문제는 황제께서 논해야 마땅하오.]
곤혹스러워하는 공기가 느껴졌다. 전욱이 소호금천의 말에 대꾸했다.
[ 황제께서 만신전에 칩거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 마침 이 자리에는 창힐의 화신이 있소. 저 놈이 창힐을 불러낼 수 있다면 만신전으로 가는 통로도 얻을 수 있지.]
[ 흐음...]
[ 만신전으로 가는 건 우리의 오랜 소망 아니었소?]
삼황오제들의 시선이 처참한 몰골이 되어 있는 긴나라에게로 향했다.
[ 살아나라.]
여와가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서 긴나라의 저주를 치유했고, 긴나라는 즉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왔다. 여와의 권능은 전욱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보였다. 긴나라가 숨을 몰아쉬자 여와가 그에게 말했다.
[ 창힐을 불러라. 놈의 얘기를 들어야겠다.]
[ 삼황오제여. 너희 마음대로 세상의 운명을 결정지으려 하는 터 아닌가? 너희의 광대놀음에 내 주인을 참여시킬 수는 없다!]
적이긴 하지만 엄청난 정신력이다. 저 지경으로 고문을 당하고도 아직까지 의지가 굳건하단 말인가? 팔부중 긴나라가 발악하듯 강경하게 외치자 여와의 말이 이어졌다.
[ 팔부중이여. 고집을 부리면 그 광대놀음에서 한 마디 할 기회조차 사라질 것이다.]
[ ......]
긴나라는 여와의 말에서 뭔가를 느낀 듯 입을 다물었다. 여와의 말이 최후통첩이라는 걸 알아챈 듯 했다. 그는 입술을 약간 떨더니 조용히 말했다.
[ 너희는 저주받을 거악(巨惡)이다...]
스으으으
그 순간이었다. 희뿌연 안개로 가득하던 대지에서 먹물같은 어둠이 뿜어져 나오더니 하늘의 태양을 집어삼켰다. 태양은 이윽고 혼돈으로 일그러진 구체가 되어 점차 커지더니, 그 안쪽에서 스멀거리며 월광(月光)이 뿜어져 나왔다.
월광으로 만들어진 길에서 무언가가 내려왔다. 그 '무언가'를 본 전욱이 인상을 찌푸렸다.
[ 오만한 놈! 이 상황에서도 본체가 아니라는 말인가? 창힐.]
'창힐'이라고 불린 존재는 혼돈으로 끓어오르는 조그마한 불꽃의 뱀처럼 보였다. 전욱의 말에 따르면 저것조차도 본체가 아니라 화신이나 사도일 것이다. 창힐의 의지를 대변하듯 그 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대꾸했다.
[ 위대한 삼황오제가 나를 찾으니 너무나 놀라운 일.]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그리고 고대 신화의 서열으로 볼 때 창힐은 분명히 삼황오제의 아래였는데도 그다지 공대하지 않았다.
[ 황제의 만신전으로 가는 문을 열어라.]
전욱이 요구했지만 뱀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 그대들이 뭘 하든 상관치 않겠다. 허나 더 이상 내 화신을 괴롭히지 말라. 나를 지켜주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터.]
슈욱!
[ 이 놈!]
전욱이 극도로 노해서 어둠의 창을 던졌지만, 이미 어둠의 뱀과 그 화신인 긴나라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창힐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삼황오제의 경고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화신을 구출하러 온 것인 듯 했다. 긴나라의 영체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제갈유룡의 육신이 널부러졌다.
[ 으으, 저 놈을...]
닭쫓던 개 꼴이 된 전욱은 엄청난 노화가 들끓어오르는 듯 자신의 힘을 해방하려 했다.
그 때 요순이 전욱을 말리듯 말했다.
[ 모든 게 지금 결정났소. 부디 남은 일을 잘 처리해 주길.]
[ 나도 부탁하오.]
스스스...
전욱을 제외한 오제들의 환영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종래에는 장내에 여와와 전욱만이 남았는데, 여와는 전욱의 뜻에 끝까지 반대하는지 계속해서 어둠의 형상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여와를 쳐다보던 전욱이 말했다.
[ 요순이 타락이라고 했는데 당신이야말로 인간에 물들어 타락한 것 같군.]
[ ......]
[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 이만 가 보시오.]
여와의 모습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여와는 잠시 태산 위에서 지상을 내려보는 듯 하다가 말했다.
[ 난 지금도 우리 모두가 황제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인간을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의 진짜 뜻을 알 수 있을테니.]
[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고 주장할 셈인가.]
[ 전욱. 너는 너무 성급하다.]
[ 또 그 음모론이군.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소.]
여와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 세상에서 황제 공손헌원의 뜻을 아는 자는 없지. 그 누구도...]
[ ......]
[ 네가 발안했으니 결과는 모두 네 책임이 될 것이다, 전욱.]
파앗
여와의 어둠마저 사라지자 전욱은 수요와 화요를 들었다.
우웅 우웅
[ 내게 운명의 과업이 내려왔구나.]
수요와 화요는 서로 공명하며 무형의 파장을 내뿜었다. 나는 전욱이 지닌 엄청난 신력이 칠요의 힘을 극대로 끌어내며, 인간이나 대라신선이 쓸 때보다 더욱 막강한 잠재력을 보인다는 걸 알아챘다.
아아아아아
거대한 공명이 대지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아직 힘을 본격적으로 발휘하지도 않았는데도 천지가 파멸을 감지한 것이다.
이미 화요에 감도는 힘은 내가 다룰 때의 열 배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수요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화요와 수요가 공명해방했을 때의 파괴력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도 계속 힘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욱이 이 막강한 힘으로 뭘 할지를 눈치챘기에 내면에서 외쳤다.
[ 그만둬!!]
[ 그만두라니. 내가 지금부터 뭘 할지 알고 하는 말인가?]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 제발! 전욱님께서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인간세상을 놔두십시오.]
[ ......]
이대로 수요와 화요가 공명하면 진정한 의미로 인간세상은 멸망한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칠요에 맺혀 있었다. 안 그래도 [옛 지배자]급의 힘을 보유한 오제 전욱이 칠요공명까지 쓴다면 이미 대재앙이다.
[ 천제단을 부수려 한 건 영겁토록 사죄하겠습니다. 절 씹어잡수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렇게 되면 태산에 있는 내 동료들은 물론이고 인간의 9할이 멸하게 될 것이다. 도시는 모두 대지진과 천재지변에 몰살할 것이다. 인간은 동굴에 숨어살며 동물과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되리라. 나는 그 참혹한 결과를 예상했기에 필사적으로 전욱을 말렸다.
전욱은 웃는 듯 했다.
[ 내가 정말로 그 행동 하나때문에 인세를 멸하려 한다 생각하느냐?]
[ ... 네?]
[ 이건 기회다. 이 가면을 벗고 내가 자유를 되찾을 기회... 그간 줄곧 원해왔으나 이루지 못했던 일이다. 언제가 되었든 나는 너를 지배해서 내 뜻을 이루었을 터! 네 행동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니 자책하지 말거라, 백웅.]
젠장!
나는 속이 타들어감을 느꼈다. 전욱이 잔잔하게 나를 달래는 듯한 말투에서 그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전욱은 내게 별다른 원망이나 분노를 품고 있지 않아서, 그가 말 그대로 나를 애완동물 취급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타협할까?'
이렇게 된 이상 동료들의 목숨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교섭할 것인가? 하지만 인간이 절멸한 대지에서 살아남는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전욱이 나직이 말했다.
[ 네 동료들이 너를 구하러 왔구나.]
심장이 내려앉는다.
제갈사, 미호, 검마, 망량, 진소청, 천우진, 무사시...
그 말대로 저편에서 동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행히도 긴나라의 술법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는지 다들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아마도 내게 삼황오제 전욱이 강림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했다.
' 누, 눈치챘으면 도망가! 어떻게 이겨!'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삼황오제의 힘은 지금으로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전욱이 본체를 강림한 것도 아니고 그저 사도인 나를 통해 힘을 사역할 뿐일텐데 긴나라가 벌레처럼 농락당했다.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결코 전욱을 당해낼 수 없다. 틀림없이 학살당하리라.
전욱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 인간의 애정과 동료애... 라는 것인가? 참 특이한 인간들이군.]
[ 전욱이시여, 제발...]
[ 후하하하하.]
전욱은 광소를 터뜨렸다.
[ 그래... 그냥 멸망시키기 심심했던 차다. 이 정도의 여흥은 있어야지.]
그 때였다.
미호가 전욱에게 꿇어앉으며 말했다.
"전욱이시여! 청이 있습니다."
[ 천계의 여우인가. 무슨 청이냐?]
"저희 모두의 목숨을 바칠 테니 백웅을 살려주십시오."
[ ......]
전욱은 명백히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호 뿐만이 아니라 무사시를 제외한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수치라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진정한 삼황오제가 있기 때문이다.
전욱이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더니 무사시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 ... 넌 뭐냐?]
"신을... 죽인다. 그것이 원월천살법의 의무."
무사시가 자세를 잡았다. 그의 눈에는 결연한 투지가 감돌고 있었다.
"신이여. 신을 죽이기 위한 이 일참을 받아봐라!!"
이천일류(二天一流)
신살참(神殺斬)
스캉!!
해신이 팔을 들어 방어하게끔 했던 그 푸른 검기가 시공간을 꿰뚫고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아무래도 저게 무사시가 쓸 수 있는 최강최후의 기술이 틀림없었다. 같은 절대지경에서라면 누가 받아낼지 의문일 정도였다.
그러나 전욱은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고, 그의 몸은 가볍게 그 검기를 투과해 버렸다. 스친 자국조차 없었다.
"......?!"
무사시는 절대지경의 고수답지 않게 평정심이 다 깨진 표정으로 비틀거렸다. 설마 스치지도 못할줄은 예상도 못한 듯 했다. 그가 경악하자 전욱이 귀찮다는 듯 중얼거렸다.
[ 참 하찮군. 본좌가 이런 장난에 어울려줘야 하다니...]
"어, 어떻게. 시간의 단면을 베었는데..."
[ 이 기술은 어떠냐? 벌레죽이기라고 한다.]
퍼억
전욱이 손가락을 마주치는 순간 무사시가 혈편이 되어서 죽었다.
너무나 당연한 듯이 결판이 나 버려서 비현실적이었다. 인간과 신격 사이의 어마어마한 격차라는 걸, 무사시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내심 눈을 질끈 감았다.
' 제길... 해신 때 그렇게 당해놓고도 모르다니... 바보냐...'
하지만 이건 내가 전욱의 권능과 전생능력으로 신의 힘을 체감할 일이 수도 없이 많았기에 가능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무사시에게 있어서 해신은 좀 강력한 마물에 지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신격의 힘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만 것이다. 동영 역대최강의 고수조차 신 앞에서는 벌레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했다.
전욱은 꿇어앉은 좌중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 좋다. 너희는 주제를 알고 있는데다 내 사도가 아끼는 필멸자들이니 특별히 만귀전에 받아들여주겠노라. 영생불사를 누리도록 하라.]
제갈사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인세파멸을 철회하실 뜻은 없으신 겁니까?"
[ 마도사여. 황제께서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는 한 그런 일은 없으리라.]
"그렇군요, 폐하. 그럼 저희를 파멸에서 지켜주시겠습니까?"
[ 지켜보아라.]
우웅
전욱의 손에 있던 칠요가 한순간 빛났다.
[ 나, 전욱이 중원을 멸하겠노라.]
두 자루의 칠요에서 공명이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지평선 너머, 서쪽 하늘이 불타는 순간이 눈에 아로새겨졌다. 나는 전욱과 신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일격으로 사천지역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쿠구구구
대지가 끓어오르고 화산이 폭발한다. 땅에 잠들어 있던 지맥과 용맥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인간의 도시를 뒤집어엎었다. 잿더미와 연기가 하늘을 틀어막으며 지상에는 처참한 죽음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지금 이 순간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었을까?
확실한 건 최소한 수백만 명이 명부로 인도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욱은 영체를 모두 느낄 수 있었기에 육체에서 영혼이 솟아오르는 장관을 보고 있었다. 전욱은 영체의 혼백이 분리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수요를 치켜들며 외쳤다.
[ 너희의 영혼은 내 것이다.]
슈슈슈슈슉!
수천 리 밖에서 수백, 수천만 개의 영혼이 날아와서 수요 막야에 흡수된다. 사천에서 죽은 인간이나 동식물의 영혼이 모조리 삼황오제의 소유가 되는 광경이었다. 빛의 광선이 내게로 집중되는 듯 했으나, 그건 내가 공격당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의 영혼을 흡수한 수요는 검붉은 빛을 번득이며 어둠을 뿜어냈다.
키기기긱
수요가 갑자기 눈을 뜨는 듯 했다. 수요의 자아가 깨어나며 머나먼 북방에 있던 존재와 연결되는 게 느껴졌다. 전욱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아직 멀었다. 종말의 열쇠가 되려면.]
콰과광
다시 한 번 전욱이 수요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남쪽이었는데, 하남과 호북 지역이 일거에 몰살당한 듯 싶었다. 이번에도 수천만의 영혼이 날아와서 전욱의 힘을 강화시켰다. 갈수록 전욱은 자신의 신위를 발휘하는데 거침이 없어졌다.
[ 두세 번만 더 하면 되겠군.]
그 때였다.
제갈사가 한발짝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역시 칠요를 해방할수록 세상은 멸망에 가까워지는지요?"
[ 건방지군. 인간 따위가 감히 신의 비밀을 알려하지 마라.]
"인간을 다 죽이고 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 그건 다 죽이고 나서 알려주지.]
그 순간 아군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미리 이야기해둔 바가 있었는지 눈빛을 교환하는 듯 했다. 제갈사는 씩하고 웃으며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한가지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해라.]
"만귀전에 속한다 함은 우리 모두가 만귀전의 귀신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까? 생명을 잃게 되는게 아닙니까?"
[ 그렇다.]
갑자기 제갈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럼 저로서는 이렇게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 그렇지 않습니까?"